1. 캐롤
이 영화에서 테레즈가 캐롤을 보고 한 눈에 사랑에 빠지는 마법같은 순간은 두고 두고 잊지 못할 것 이다.
운명 처럼 사랑에 빠지고, 많은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택한 해피엔딩이라 좋았다.
영화 톤이 예쁘고, 캐롤의 패션을 보는 재미도 상당하다.
이 영화를 보니, 난 이성애자이지만, 케이트 블란쳇 정도면 나라도 사랑에 빠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잠깐 했다. (그 정도로 매력 폭발)
베드신도 아름다웠고, 사랑에 빠져 들뜨고 설렌 테레즈를 보며 진심으로 누군가를 순수하게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2. 주토피아
알다시피 애니메이션의 왕팬인 내가 안볼 수 없는 영화였다. 사회가 규정한 한계에 굴복하지 않고 도전하는 주디와 편견의 희생양 이었던 닉이 자신의 꿈을 이루는 감동적 이야기인데, 거기에 서스펜스 스릴러 까지 가미되어 보는 내내 재밌었다.
여우 닉의 성우가 누군지 몰라도 목소리가 어찌나 좋은지 애니메이션 주인공인 여우한테 반해보긴 또 처음이었다. 다들 나무늘보가 웃겼다 하지만 나에게 제일 웃겼던 장면은 쥐가 대부의 말론 브란도 흉내내는 장면이었다.

3. 곡성
(스포없음)
백만년만에 극장에서 한국영화를 봤다. 여기 저기서 곡성 관련 평론가 평이 쏟아지는데, 스포일러 포함이라 적혀 있어 읽지 못하는 게 짜증나서 결국 혼자 보고 왔다.
촬영이 헐리우드 초일류들이 만든 시카리오 못지 않게 훌륭하다. 스토리에 약간의 헛점이 있지만, 정말 독창적이고, 사운드도 잘 쓰였다.
개인적으로 곽도원씨 연기는 살짝 아쉬웠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에 대한 이야기다. 기독교를 믿는다면 훨씬 더 재밌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는 성경 중 예수님이 부활하여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나를 만져보라 하는 부분이 나오지만 나는 주인공이 고약한 시험에 들었다는 점에서 예수님이 광야에서 기도할 때 사탄이 나타나서 니가 예수면 돌을 떡으로 만들어 보라고 시험하는 장면도 떠올랐다.
어렸을 때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외할머니께 들은 무서운 얘기 중 기도원에서 기도하다 예수님이 나타났는데 느낌이 이상해서 썩 물러가라 했더니 귀신이 "안속네." 하면서 낄낄 거리며 도망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 영화와도 통하는 게 있는 이야기라 오랜만에 그 이야기도 생각났다.
누가 진짜 인지 영화 끝날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 2시간 넘는 런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감독이 어렸을 때 곡성에서 자랐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시골 특유의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잘 살렸다. 나 역시 고등학교 때 인천에서 전라도로 전학가서 도서관 갔다 오는 길에 도시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고요함과 칠흑같은 어둠이 너무 무서워서 벌벌 떨었던 경험이 있어서 그 느낌을 잘 안다. 영화 제목 곡성이 지명을 뜻하는 곡성은 아니라 하지만, 그 공간이 주는 공포, 초자연적 힘이 집결할만한 흉악한 산등성이와 범접하지 못할 대자연이 주는 공포를 훌륭한 촬영과 연출로 잘 살렸다.
막판에 무명역의 천우희의 카리스마가 대단하다. 앞으로 팬이 될 듯 하다.
덧. 이게 어떻게 15세 관람가를 받은거지? 적절치 못한 등급이라 생각한다. 이건 청불이어야 한다.



보람 있는 연휴

일상 2016. 5. 8. 23:06

1. 어린이날
  앞머리를 자를까 말까 엄청 고민하다 결국 그냥 자르기로 맘 먹고 오전에 미용실에 갔다.
  난 내 잘생긴 이마에 대한 자부심이 있지만, 너무 넓고 오랜만에 다시 이마를 까자니 어색하고, 당분간은 이 헤어 스타일을 유지할 것 같다.
  그리고 백화점에 가서 눈썹 왁싱을 했다. 저번 왁싱 때 너무 아파서 다시 왁싱할 용기를 못내고 있다가 양쪽 눈썹 비대칭이 너무 심해서 결국 다시 찾아갔다. 역시 돈이 좋긴 좋다. 기가 막히게 예쁜 눈썹이 되었다.
  집에 와서는 미루고 미루던 겨울옷 정리를 했다. 창고에 있어 못입고 있던 봄옷을 이제야 제대로 입을 수 있게 되었다. 세탁기만 세번을 돌렸다. 원래 드라이크리닝 하던 옷을 용감하게 그냥 다 세탁기에 돌렸는데 그 중 니트 두개는 드라이크리닝 세제를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완전 망했다. 니트가 어찌나 줄었는지, 머리 넣는 구멍에 내 머리는 커녕 내 발목 밖에 안 들어가게 생겼다. 니트가 그렇게 심하게 줄어들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놀랐다. 겨울동안 잘 입던 니트였는데... 안타까울 뿐. 그 외 오리털 점퍼 등은 선방했다.


2. 5월6일 금요일

 여의도에 가서 영화를 보고 저녁을 먹고 차를 마셨다. 주토피아를 늦게 봤는데, 여우 캐릭터인 닉에게 반해버렸다. 여의도 공원을 좀 걷다가, 나중에 집에 가려고 대방역에서 급행을 기다리는데 어렸을 때 여의도에서 알바하던 시절이 생각나서 조금 울적해졌다. 그 때 25살 밖에 안됐는데,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못난 여자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는 건 거짓말이고 내가 왜 그랬는지 아주 잘 알고 있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다.


3. 5월7일 토요일

  하남으로 이사간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 친구에게 일단 놀러 간다고 말했는데 편도 74km 나 되서 솔직히 가기 전까지 괜히 간다고 한건가. 하고 좀 후회했다. 하지만 막상 가서 멀끔해진 친구네 집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이 친구에게 우리집에서 짐덩어리로 전락한 실내자전거를 팔았다. 다행히 우리집 차 트렁크에 들어가서 배달까지 직접 해줬다. 난 큰 짐덩어리 하나 정리하고 돈까지 벌어 좋고, 내 친구는 싸게 사서 좋고.

  혹시나 하여 기름을 가득 채워 가야겠다 다짐하고 원래 가던 동네 주유소를 가보니 셀프 주유소로 바뀌어 있었다. 한번도 해본적이 없어서 차에서 내려서 셀프 주유 기계 앞에서 멀뚱멀뚱 서 있었더니, 결국 주인이 와서 다 해줬다. 이번에 잘 배웠으니, 다음에는 잘할 수 있겠지.

  올때 갈때 모두 밀렸고, 주기보다 하루 일찍 시작한 생리와 함께 온 예상치 못한 생리통 때문에 운전하면서 좀 힘들었다.


4. 오늘

  어버이날이라 동생이 와서 점심 외식을 했다. 인천에는 옛날 송도유원지가 있던 구송도가 있고, 신송도가 있는데 오늘은 구송도로 갔다. 경사가 너무 심해서 운전하며 올라가는데 거의 차가 직각으로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왜 네비가 그따위 길을 인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난 그대로 우리집 차가 뒤짚히는 줄 알았다. 벌벌벌 떨면서 엑셀을 밟았다.

  동생이 한우를 사줘서 우리가족은 우리 아빠 환갑 이후 처음으로 외식하며 한우를 먹었다.

  그 동네에 있는 집들이 다 운치있고 좋았다.


5. 내 성격에 대해.

  일기를 쓸 때 나는 대체적으로 엄청 비관적으로 변한다. 중학교 때 부터 그랬다. 몇 명 없을 이 일기를 읽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찌질하고 부정적인 글만 보게 해서 좀 미안한 생각도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맨날 쓰는 이유는 이게 유일하게 내가 제 정신으로 살아가기 위한 방법 이기 때문이다.

  내 성격이 좀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한다. 난 열심히 살고 있지만, 점점 더 내 자신이 혐오스럽게 느껴질 때가 많다. 난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진심으로 사랑받을 수도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이 때문에 요즘 들어선 정말 죽지 못해 사는 기분이다.

   이런 기분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잘 모르겠어서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다급하게 책을 찾아 읽는다. 그나마 책을 읽으면 이런 생각이 안드니까. 그런데 책을 못 읽을 때에는 정말이지 미쳐버릴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