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겨울의 경계

일상 2013. 11. 11. 02:39

  주말에 학원 하나 다니는 게 나를 너무 바쁘게 만들고 있다. 2주 연속 비오는 아침에 학원을 갔다. 첫주에는 그래도 12명 정도 왔는데 이번주에는 정확히 절반이 왔다. 6명 정도 앉아서 수업하니 바로 앞에서 선생님이 설명해주시고 더 공부도 잘되고 좋았다. 영어 학원 가는데 제일 힘든 건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거 아닐까. 정말 힘들어..

  영어를 본격 공부하겠다 마음 먹고 한지 일년인데, 이제와서 후회해서 뭐하겠냐만 대학 때 지금 하는 정도로만 공부했어도 내 영어 수준은 훨씬 높았을 것 같다. 하긴... 첫 직장이 영어와 아예 무관해서 오히려 그땐 내가 왜 토익 점수 따려고 발버둥 쳤나 후회했지. 


  전화영어 하는 사람이 미국 남자로 바뀌었다. 이제까지는 미국 사는 나이 좀 있는 아줌마들이었는데... 이제까지 선생님들 중에 가장 호들스러워서 매번 부담스럽지만, 제일 잘 가르쳐주는 것 같다. 그 분이 나보고 발음은 완벽하다고 했는데. 크크크. 이번 주 수업 중에도 옆에 앉은 사람이 나보고 영어 잘한다고 칭찬해줘서 기분 좀 좋았다. 하지만 잘하긴 개뿔. 아직도 간단한 문장 하나 기억이 잘 안나니까. 


  내가 영어를 공부하는 이유가 뭘까... 사실 평소에는 그렇게 필요도 없는데 말이다. 하지만 혼자 영국 갔을 때 영어가 안통하니 너무너무 불편했다. 내가 일 때문에 뭘 그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이렇게 더 공부해서 또 외국에 나가서 첫번째 영국 여행보다 아주 조금이라도 편하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그러니깐 언제가 될지 모를 여행을 위해 영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저번 주에는 관두기로 맘 먹은 분이 관둔다고 회사에 선포(?)를 했는데, 그 이유 때문인지 우리팀 차장님이 부담스럽게 나에게 친절해지셨다. 회의 시간에도 저번주랑 분위기가 180도 다르고, 넌 안관둘꺼지 라고 물어보시질 않나. 이 약빨이 얼마나 가실지.. 과연. 일주일도 안간다는 것에 500원을 걸겠다. 차라리 그냥 원래대로 대해주시는게 속이 편하겠다. 


  이번 주 목요일에는 직장인 건강검진 때문에 휴가를 냈는데, 건강 검진도 해야 하고 성인 여드름 때문에 피부과 선생님도 만나기로 되어 있고, 요즘 내 속을 무지 무지 썩이고 있는 차도 카센터에 맡기고 찾아와야 하고, 치과도 가야한다. 쉬어도 쉬는게 아니겠지만, 아무렴 회사 가는 것 보다는 낫겠지. 


  오늘 일요일에는 아침 일찍 결혼식 가기 전 오전 11시 부터 저번에 수원에서 결혼한 새댁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그렇게 사교적이고 애교 있는 스타일이 아닌데, 때문에 시댁에서의 생활에 적응하는데 많은 애를 먹는 것 같았다. 하긴.. 그건 어떤 성격이든지 힘들겠지. 친분있는 사람들을 결혼 후에 만나면 다들 결혼은 늦으면 늦을수록 좋을 것 같다고 말들을 하니... 진실인가. 뭐 그 사람들은 이미 했으니까 결혼에 대해 어떤 말이든 할 수 있는 거겠지만, 결혼이 연애의 완성이고 행복해지기 위한 단계 같은 건 아닌 모양이다. 

  친구가 신혼 여행 갔다오면서 사준 향수는 불행히도 너무 내 스타일이 아니라, 한번도 못 뿌릴 것 같다. 박스 채 진열해놨는데, 저 향을 좋아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 것인가. 병이 예뻐서 사준 것인가. 흑. 그래도 고마운 내 친구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또 다른 대학 친구가 오늘 12시 20분에 결혼을 했다. 무려 9년 연애를 한 대단한 커플. 걔는 내가 대학 친구 중 유일하게 아직도 연락하고 있는 남자애인데, 오늘 새신랑 단장 하고 양복도 입혀놓으니 인물이 확 살았다.

  이야~~~ 멋있다!!! 라고 칭찬하고, 옆에 부모님께도 인사를 하는데, 친구 아버지가 무슨 TV배우처럼 잘생기셔서 깜짝 놀랐다. 친구 인물도 나쁜 편이 아닌데, 아버지를 보니 친구가 아빠보다 못하구나 싶었다. 친구의 부모님에게서 유복함이 느껴졌다. 신부네 집도 마찬가지. 그래서 그런건지 뭔가 결혼식 분위기가 더 화기애애한 느낌이었다. 식장 들어가자마자 꽃향기도 나고, 양가 다 유복한 가정에서 행복하게 자란 것 같아서 식 보는내내 내가 다 흐믓했다.

  식이 끝나고 식당으로 내려와서 딱히 먹을 게 없어 육회만 두접시 먹고 있는데, 친구가 2년 전에 소개시켜줘서 잠깐 만났던 (정말 사귀었다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잠깐이어서 더 민망한) 남자를 봤다. 아마 그 사람도 나 봤겠지. 친구랑 꽤 가까웠던 사람이라 올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정말 마주치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다. 식장 안 에서는 안 마주치는 거 성공했는데... 괜히 식당 가서 육회를 먹어선. 


  집에 돌아와서 일찍 샤워를 하고 누워서 배철수 음악캠프를 듣는데 잠이 솔솔 와서 그대로 잠들었다. 그리고 일어나보니 새벽1시. 아까 제멋대로 벗어놓은 스타킹이랑 자켓 치마등을 좀  정리하고 내일 출근할 때 가져갈 가방을 정리하고 그랬더니 2시 28분이 되었다. 보통 이렇게 깼다 잤다 하면 아침에 더 피곤하든데, 내일 걱정이다. 하지만 7시 부터 1시까지 꽤 긴시간을 자서 그런지 눈이 말똥말똥하다. 그래서 이렇게 패딩 조끼까지 입고 노트북 앞에 앉아 있다. 이제 정말 겨울이 오고 있는 것 같다. 우울할 수 밖에.

  

  사실 저번주까지 정체모를 심각한 우울함에 괴로웠다. 길을 걸으면서 회사에 앉아 있으면서 운전을 하면서 나에게 허락된 수명이 35살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의 수명이 35살이어서, 내가 35살에 죽는 게 나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 절대 슬픈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어제 오늘 바쁘게 지내면서 우울함에서 많이 벗어난 것 같다. 벗어난건지 잠시 그냥 잊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나는 언제까지인지 모를 주어진 하루, 주어진 일주일, 주어진 한달을 살아야겠지. 

  

  다음 주에는 정말 교회가야 할 것 같다. 뭘 바라느라고 가는 건 아니고, 억지로라도 눈감고 내 인생에 뭐가 제일 중요한 것인지 잠깐이라도 생각하다보면,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내가 독실한 신자는 아니긴 하지만, 어쩌면 근근히 유지하고 있는 신앙 때문에 내가 이정도나마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친구의 결혼식날

일상 2013. 10. 21. 00:38

  오늘 친구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수원 경기도청 옆에 있는 예식장이었는데, 대중교통으로 2시간이 넘게 나와서 차를 끌고 나섰다. 생각보다 길도 하나도 안 밀려서 나는 예식보다 1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영동고속도로 밀린대며...)

  친구를 보니 행복해보였다. 싱글벙글에다가 심지어 친구도 친구 엄마도 아빠도 아무도 안 울어. 크크크. 나 그렇게 전혀 안 우는 결혼식은 처음 본 것 같네.

  밥도 맛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난 뷔페가 아니라 갈비탕이 나와서 행복했다. 예식장 뷔페가서 두접시 이상 먹어본 기억이 없다. 완전 배고파서 허겁지겁 멋었다. 오늘 결혼한 친구와는 워낙 오래된 친구라 그 집 식구들도 다 알고 지낸다. 결혼식을 계기로 오랜만에 친구 동생들도 보고 친구 어머니도 보니까 반가웠다. 친구의 여동생이 오히려 울고, 또 친구의 남동생까지 얼굴 시뻘개져서 울더라. 하지만 친구와 친구의 어머니는 전혀 눈물 한방울 안보이셨다. 멋있으신 부모님과 친구. 

  친구는 아마 엄청 행복하게 살 것이다.

 

  밥을 먹고 또 친구와 인사를 하고 주차장에서 차를 끌고 나왔는데 머리속이 온통 백지장 이었다. 아직 내비게이션이 내 위치를 못잡고 있는데 뒤에서는 늦게 간다고 빵빵댔다. (어떤 아저씨는 옆에 와서 창문 내리고까지 뭐라고 했어. 젠장 그게 뭐라고 할 일인가. 내가 여자라서 그렇게 한마디 한 거 같은데 난 단지 조금 느리게 갔을 뿐, 사고날 뻔 하지도 않았다고. 더 웃긴 건 내 앞에 에쿠스도 똑같이 나처럼 길 몰라서 늦게 갔는데 그 아저씨한테는 한마디 못하더군? 더러운 세상!!) 

  가만 보면 난 운전을 못하는 것도 못하는 거고, 또 아예 방향감각도 전혀 없다. 그러다보니 운전이 재미 없나봐..  정말 주차장에 들어올 때 어느 차선을 타고 왔는지 조차도 기억을 못하는 건 좀 심각한 것 같다.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 기억이 전혀 안났다. 딱 한시간 반 전에 왔던 길인데도. 

  결국 난 내비게이션이 내 위치를 잡을 때 까지 엄한 수원 시내를 우회전 했다 좌회전 했다가 하면서 괜히 돌아다녔다. 크크크크. 저번 송도 갔을 때도 당최 어느 방향인지 감을 못잡아서 옆에 비상등 켜고 내비 위치 잡을 때까지 기다렸는데..

  이번 사건으로 건물로 들어올 때 대충 어느 방향으로 왔는지 정도는 기억해야 한다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거라도 기억했으면 그 반대 방향으로 나가면 되는 거니까.

 

  집에 와서 생라면을 부셔 먹으며 야구를 봤다. 난 엘지트윈스를 응원했는데 장렬하게 패배했다. 화가 나는 한편, 기아 타이거즈는 7등 해서 이런 꼴 안봐도 되니까 참으로 좋구만. 하고 생각했다. 젠장!

  메이저리그도 내가 응원하는 팀마다 포스트시즌에서 패배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팀은 크게 좋아하는 팀이 안생겨서 난 무조건 스몰마켓 팀을 응원한다. 예를 들면 뉴욕 양키즈 vs 템파베이 레이스 이렇게 붙으면 템파베이 응원하고, 오클랜드 vs 센프란시스코 붙으면 오클랜드 응원하고 이렇게.

  오클랜드 응원했는데 지고, 디트로이트 응원했는데 또 지고.

  한국 시리즈도 내가 제일 싫어하는 두 팀이 붙으니 재미도 하나도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보긴 하겠지만.

 

  야구 보고 나서 낮잠도 아니고 밤잠도 아닌 6시부터 9시까지 3시간 동안 잠을 잤다. 그리고 샤워를 하고 손톱 발톱을 손질했는데, 난 손톱 발톱 손질하는 게 참 좋다. 손질이 다 끝나면 이 세상에서 가장 청결한 여인이 된 기분이 든다.

  세상에서 가장 청결한 나는 이제 잠을 청해야지.

 다음주는 목요일에 휴가를 냈다. 때문에 훨씬 덜 우울한 일요일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