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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0.27 주말 영화 두편 - 보이후드, 제인에어

  이번 주말은 아무도 만나지 않고 영화만 두편 봤다.

 

1. Boyhood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시리즈는 평생의 배필을 만나면 보려고 안보고 있다. 사실 로맨스 장르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기도 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비포선라이즈 같은 영화를 보면 너무 우울해질 것 같아서 선뜻 손이 안간다.

  나는 이번에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 영화를 처음 봤지만, 아마 현재 미국 감독 중 평론가와 관객들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감독 중 한명이 아닐까.

  이 영화는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소개해주는 걸 듣고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2년에 6살이었던 아이를 12년 동안 매년 만나서 15분 정도의 이야기를 찍은 영화라고 하니... 아마도 앞으로도 이런 영화는 나오기 힘들것이다.  

  내 나이가 나이인 만큼, 영화 속에서 아이보다는 부모입장에 더 공감이 가고 몰입이 됐다. 극의 부모가 23살 때 실수로 아이를 낳은 것으로 나오고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정도로 나오니 딱 내 나이 쯤인 부모의 12년 간의 일대기 이기도 한 것이다.

  6살인 메이슨이 하늘을 쳐다보며 시작하는 영화 도입부에서는 Coldplay 의 Yellow 가 흘러 나온다. 나는 이 노래를 대학 원서를 넣어놓고 결과 기다리며 배경음악으로 많이 들었다. 이 곡만 들으면, 당시 살았던 정읍 시골에서 생각보다 수능을 못봐서 그냥 아무데나 붙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살았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컴퓨터 게임에 빠졌던 그 시절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6살 귀엽기 그지 없었던 메이슨이 어느덧 20살 (징그러운) 청년이 되는 과정을 다 보고 나면 나도 함께 걔를 키운 것 같은 생각에 뭉클해진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6살 메이슨은 정말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귀여운데 커갈수록 어째 그 모습이 사라져... 흑흑)

  난 가난하게 자랐는데도 생각보다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는 편인데, 내가 왜 엄마아빠를 원망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요즘에는 알 것 같다. 우리 엄마 아빠가 동굴 같은데 금은보화를 숨겨놓고 나에게는 돈을 안 주신게 아닌 걸 알기 때문에 난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Boyhood 를 보면 철부지 같았던 아빠가 12년 세월동안 쫌생이가 되어가는 과정, 최선을 다해 혼자 아이들을 키우며 그지같은 남편들(?) 때문에 분투했던 엄마...

  영화 안에 나오는 대사지만, 남녀 관계는 타이밍이라는 말, 정말 한 때 제일 싫어하는 말 중 하나였는데, 인정을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메이슨의 엄마아빠도 둘다 세상을 알고 성숙해졌을 때 만났으면 이혼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에 안타까웠다.

  하지만 아무렴 어떠랴, 메이슨은 어엿한 청년이 되었고, 대학에 입학하여 앞으로 하고 싶은 일도 있고 아마 영화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여자애와 사랑에도 빠질 거고, 또 언젠간 부모가 될테니까.

 

  그런데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나는 과연 부모가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도 좀 했다. 9월에 독일 여행 다녀와서 만약 평생 마음이 맞는 사람을 찾지 못한다면 혼자 살아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내 최종 꿈은 부모다. 지금으로선 그 꿈을 이루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주변에 선뜻 말은 못하지만, 아마도 이 꿈을 평생 못 이루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요즘 우울해진다. 찬바람도 불고. 이런저런 이유로 씨네큐브에서 혼자 영화 보고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또 혼자 깊은 한숨을 쉬었다.

 

 

2. Jane Eyre

  중학교 3학년 때 짝꿍이 제인에어 진짜 재밌다고 해서 그때 두꺼운 제인에어를 구입했지만, 제인에어가 밤마다 손필드 저택에서 이상한 소리를 듣는 데까지 읽고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난 그 이후로도 결국 제인에어를 못 읽고, 언젠가는 읽으리라 다짐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빠가 오후에 너무 무료해 하셔서 제인에어를 틀어드렸고 그러다 결국 나도 끝까지 다 시청해버렸다. 소설원작인 영화를 보면 소설은 안 읽게 되는 법인데... 불행히도. 이미 다 봤다.

  미와 와시코브스카 (난 이 여자 이름은 죽을 때 까지 못 외울것 같다.) 가 고아로 자란 제인에어 역에 정말 적역이고, 며칠 전 봤던 바스터즈 에서 영국군으로 나왔던 마이클 패스팬더가 매력 만점 로체스터 역을 맡았다. 역시 여자 작가는 여자의 마음을 아는 법이다. 옛날 여성 작가가 창조한 로맨스 소설의 남자 주인공은 죄다 멋지다. 

  소설이 원작인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점인데, 이 영화도 마찬가지로, 대체 왜 남녀 주인공이 왜 그렇게 서로를 사랑할 수 밖에 없었는지 약간 이해가 안간다. 아마도 소설은 명작 소설이니 읽어보면, 이해가 가겠지만...

  화면이 아름답고, (잘은 모르지만) 그 당시 저택의 모습이나 옷차림 등을 굉장히 섬세하게 재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두컴컴한 실내, 우울하기 그지없는 영국의 날씨가 기억에 남는다. 서로 사랑에 빠졌을 때는 그렇지 않았을 때와 대비하여 눈부시게 맑은 날씨로 표현이 되는데 그 장면들도 참 아름다웠다.

  제인과 로체스터가 서로 사랑하면서도 속마음과 전혀 다른 말만하고 또 그렇게 행동만 하는 걸 보며, 옛날에도 저랬구나 싶었다. 서로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장면에서는 혼자 흐믓했고, 저택의 비밀이 밝혀진 뒤 떠나려는 제인을 붙잡는 로체스터를 볼 땐 가슴이 찢어졌다.

 

  나는 어렸을 때 고전 문학 속에서 나오는 남녀간의 사랑이 실제 나에게도 일어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 맛(?)에 소설을 읽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운명같은 만남, 도저히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고, 외면하려고 해도 어떻게든 결국 서로 사랑하게 되는 그런 거 말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난 그 정도의 사랑은 못해본 것 같다. 앞으로 올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만약 그런 사랑이 온다고 해도 읽었던 소설 속의 문장처럼 멋지게 표현할 수는 없겠지..

 

이렇게 재미없는 주말이 또 지나갔다. 내일부터는 날씨가 완전 추워진다고 하여 우울하다. 원래 오늘 여름 옷 넣고 겨울옷 꺼내려고 했는데 그 계획을 거짓말처럼 까먹고 제인에어보고 낮잠이나 잤다. 다음주에 꼭 겨울옷을 꺼내야 그 다음주에 얼어죽지 않겠지. 다음주 주말에는 나를 찾아줘 보려고 하는데 토요일에 영화보고 일요일에는 열심히 옷 정리를 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