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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8.09 무더운 하루 연차, Midnight in Paris 2

 

 

지금 회사에서 남은 휴가를 다 쓰는 계획은 실패할 것 같다. 저번 회사에서는 남은 휴가는 돈으로 받았는데 이번 회사는 그런 것도 없을 것 같고. 그래서 일주일에 하루씩이라도 쓰려고 노력 중인데 그것도 좀 쉽지가 않다.

나는 꼭 일주일에 딱 하루만 휴가를 쓴다고 하면 수요일을 선호하는데, 물론 월요일이나 금요일도 좋긴 한데 이틀 일하고 하루 쉬고 이틀일하고 또 쉬고 이 재미가 좀 쏠쏠하다.

8월 1일 수요일에 하루 휴가를 내고 명동가서 영화보고 마사지 받고 덕수궁 미술관까지 갔다왔다. 그 날 서울 기온이 최고를 찍었는데 한동안 2012년 8월 1일의 뜨거움은 잊지 못할 것 같다. 나 참 태어나서 그렇게 더워보기는 처음이야. 정말 햇빛 밑에 20분 정도 있으면 기절할 것 같은 날씨였다.

명동에 갔더니 내가 명동 가본 중 최고로 한산했다.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일본이나 중국 관광객들. 날잡아서 한국까지 비행기타고 왔으니 꼭 돌아다녀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3년전 내가 도쿄 갔을 때 그런 사람 중 한명이었지. 8월의 도쿄는 무지하게 덥고 싫었다. 그때문인지 도쿄는 앞으로 가고 싶은 기분이 전혀 안들어) 명동역에서 바로 앞에 있는 CGV 로 들어가는 중에도 숨이 어찌나 막히든지.

미드나잇인파리는 인천 CGV 에서도 하루에 딱 한번 상영해줬는데 시간이 아침 9시 40분 이었다. 휴가 날 일어나보니 9시 20분이어서 포기하고 딴 영화 볼까 하다가 이미 맘을 미드나잇인파리로 정하고 나니 다른 영화는 전혀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미드나잇인파리를 보면서 500일의 썸머에서 남자와 여자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이 생각났다. 남자가 듣고 있는 음악을 듣고 여자가 " Smith " 라는 밴드 음악 나도 좋아한다고 말하고 결국 둘은 사랑에 빠지고 헤어진다.  생각해보면 내가 대학교 때 좋아했던 사람도 유일하게 Incubus 를 아는 사람이었다. 그 뒤로도 그 전으로도 Incubus 아는 사람은 못만났다. 내가 호감을 가진 남자가 만약에 자기계발서적을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내가 끔찍하게도 싫어하는 요즘 가수들 노래를 듣는다면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가 없겠지. 그런데 진짜 신기한 게 내가 싫어하는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 혹은 내가 싫어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랑은 모든 면에서 결국에는 안맞더라. 취향과 성격이 그물처럼 얽히고 얽혀서 한 덩어리가 되고 결국 하나가 어긋나면 그 큰 덩어리도 다르니까 맞을래야 맞을 수가 없겠지. (뭔 괴변이야 이거 크크크)

미드나잇인파리를 보면서 파리도 가보고 싶고, 헤밍웨이 책을 보고 싶고 로트렉 그림도 보고 싶고 했지만, 무엇보다 나랑 말이 통하고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비슷한 남자랑 카페에 앉아서 얘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혼자 시원한 극장안에서 구슬아이스크림 먹으면서 영화보는 느낌은 좋았지만, 영화가 다 끝나고 느껴지는 알지못할 쓸쓸함을 뒤로 하고 나는 전신 아로마 마사지를 받았다.

 

요즘 들어 내 등에 생기는 담이 아예 고질병이 됐는데 오늘도 아침에 허리를 숙이다가 전기가 통한 듯 아픈 통증을 느꼈다. 아아... 이거 정말 고칠 수 없는 걸까. 마사지샵에서도 허리가 많이 휘었다는데 그러면서도 난 맨날 바른자세 유지를 못하니까.

 

그리고나선 버스를 타고 덕수궁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서울시청 앞을 갔는데 아니 정말로 쌩뚱맞은 서울시청 건물을 보니 저건 뭔가 싶었다. 나름 미래지향적 디자인으로 볼 수도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시청이미지는 아니던데. 뭐 건축가들이 알아서 잘 지었겠지만.

아까도 말했지만 날씨가 너무 뜨거워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내려서 덕수궁으로 걸어가면서 내 옷과 속옷은 완전 땀으로 젖어버렸다. 나중에는 거의 자포자기 심정이 되서 그냥 땀을 줄줄 흘렸는데, 엄마가 가져가라고 해서 가져온 양산을 오랜만에 제대로 활용했다. 난 양산 쓰는거 귀찮아서 엄청 싫어하는데 2012년 8월 1일 서울 날씨에 양산을 안썼으면 나는 그냥 그대로 터미네이터2처럼 아스팔트에 녹아버렸을지도 몰라.

 

투썸플레이스에서 샌드위치로 배를 채우고 덕수궁미술관으로 가서 이인성 탄색 100주년 특별전을 보고 2층 한국 근대화가 전시회도 봤는데 마침 작품설명해주는 시간 대에 가서 그림 설명도 들었다. 2층 한국 근대화가 전시회에서는 박수근의 "할아버지와 손자" 도 봤는데, (관련 링크 :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667) 박수근의 일생과 박수근이 썼던 편지를 생각하니 좀 울컥할만큼 감동을 받았다. 이런 느낌때문에 사람들이 그림을 보고 전시회를 찾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난 아주 가끔 연주회도 가고 전시회도 가지만 전시회가 훨씬 좋은 것 같다. 연주회로는 크게 감동을 못받겠다. 뭐 정말 몇십만원 짜리 필하모닉 이런거 보면 또 다르겠지만... 전시회는 아무리 비싸도 만2천원이면 갈 수 있으니까. 심지어 덕수궁 미술관은 공짜였다!

 

7시 되니까 미술관 시간 끝났다고 나가라는 방송이 나와서 더 자세히 못봤는데 2층 전시는 12월까지 한다고 했으니 한번 더 가서 볼 작정이다. 원래 연차내고 집에서 놀고 먹는 것만 하는데 그것도 그 나름대로 좋은 휴가지만, 저번주 수요일 하루 연차는 부지런히 움직였다는 생각에 보람찼다. 가만 보면 나도 은근히 집에만 하루종일 못 있는 성격인 거 같다. 대학생 때는 방학동안 전주에 가서 일주일 내내 집에만 있고 일요일에 딱 한번 교회갈때 나가고 그런 적도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