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02.24 안생긴다. 10

안생긴다.

일상 2010. 2. 24. 17:18
이번 설 연휴 동안 묵은 내 짐을 다 정리하는 동안 중학교 때 찍은 스티커 사진 부터 대학 때 뽑아놓은 등록금 영수증 까지 별의 별 물건이 다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물건은 예전에 사귀는 것 같지도 않게 사귀었던 남자애랑 찍은 스티커 사진들하고 내가 2년 동안 엄청 쫓아다녔던 남자의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
사귀었던 애와의 사진과 편지는 다 버린 줄 알았는데 스티커 사진은 꽤 많이 남아있어서 헉!! 했다. 일단은 그 안에 있는 내 얼굴이 너무 어려서 헉! 했고, 내가 걔 얼굴을 전혀 잊지 않고 있다는 것에 또 한번 헉 했다. 사귀는 내내 괴로웠는데 이 죽일놈의 기억력 때문에 사실 난 아직도 걔 핸드폰 번호를 기억한다. 모든 어린 연인들이 헤어지는 흔한 이유인 군대 때문에 헤어졌지만, 난 아무래도 걔한테 저주를 받은 거 같다. 일명 김일병의 저주라고. 걔가 일병일 때 헤어진 이후로 지금까지 남자가 없는 저주다.
내가 걔를 속된 말로 처참히 차버리고, 며칠 뒤에 내 앞에서 걔가 목 매달고 자살하는 꿈을 꿨다. 학교에서 저번에 한번 마주쳤는데 허겁지겁 정말 미친 듯 그 자리를 피했다. (눈이 마주친다면 걔가 나한테 욕을 한바가지 할 거 같았고, 난 욕을 들어도 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지금은 가끔씩 걔한테 마음 속으로 제발 날 좀 용서해서 저주를 풀어달라고 빌고 있다. 내가 지금껏 이런 게 걔 탓은 당연히 아니지만서도, 사귀면서 헤어지면서 못되게 군 벌을 받느라고 이쪽 방면에서 아무런 성과가 없다는 말도 안되는 생각이 들었다. 집도 가까운데 지금이라도 찾아가서 빌까. 크큭;

그리고 나서 대학 다닐 동안 엄청 쫓아다닌 남자가 한 분 있었다. 김일병과 헤어지고 자유를 만끽하는 동안 만난 분인데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어느 순간 반해서 2년동안 그 분을 참 많이도 귀찮게 한거 같다. (근데 정말로 난 진심으로 그 분을 사랑했다) 결국 그 끝은 아주 처참했는데,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는 그 분이 지방으로 취직해 있을 때 다른 데 취직할 때 필요하니 스캔해서 메일로 보내달라고 했던 것 이었다. 그 때 프린트 해 놓았던 걸 이제껏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지방에 가 계실 때 나한테 전화가 갑자기 잦아지고 먼 곳에서도 서울에서 가끔 만날 땐 일말의 희망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 분도 지방 가있고 적적해서 나한테 연락이나 하셨던 거 같다. (그땐 왜 몰랐지) 그게 벌써 2007년 일인데. 그 분과 처참히 끝이 나고 난 완전히 취직을 했고, 취직해서는 회사 집 회사 집 만 왔다갔다 하면서 연애는 커녕 새로 만난 남자와 한달 이상 연락한 적이 없는 암울한 생활을 계속 했다.

김일병과 헤어지고 반해서 어떤 남자를 쫓아다니다가 취직을 하고 이제 연애의 필요성이 전혀 없다고 느끼고 있는 나였지만, 언젠가는 내가 좋아하는 남자가 나타나고 저번의 실패와는 달리 그 남자도 날 좋아하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않을까 않을까 않을까? 하다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확신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가 처참히 끝난 그 분 이후 생기지 않을 거 같고, 날 좋아하는 새로운 남자가 생기지도 않을 거 같고 그래서 난 좀 우울하다.

그런데 내가 좋아했던 그 분은 뭐가 그렇게 맘에 안드셨던걸까? 요즘 들어 소식이 좀 궁금한데 왠지 여자인 나의 육감으로는 나와 그렇게 끝나고 1년이 안되서 결혼하셨을 거 같다. 쳇.

회의 들어가야 하는데 싫다. 이쯤에서 놀라운 소식 하나를 전하자면 (아무도 나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지만) 회사를 관두기로 했다. 3월 말 어쩌면 더 빨리. 나 혼자만의 결심이 아니라 회사에도 이미 말했다. 홀가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