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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산 시즌

일상 2017. 3. 26. 22:42

재무제표

  아직도 악감정이 남아 있는 전 회사에서 3월은 최고로 일하기 힘든 시즌이었다. 왜냐면 12월말 결산 법인의 법인세 신고 마감이 3월 마지막날이었기 때문이다. 그 회사 특성 상 유형자산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는데, 그 많은 재고자산이 1년 내내 전혀 체계적으로 관리가 되지 않았다. 1년 내내 엉망으로 내보내고 들여오던 무수한 재고자산을 3월에는 어쩔 수 없이 정리를 해야 했다. 그런데 그 일을 내가 싫어했던 최악 부장이 전권을 쥐고 책임졌다. 그 부장이 3월 내내 우리에게 쏟아내는 어마어마한 히스테리와 짜증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끔찍하다.

  그 부장 지금 생각하면 참 대단하기도 한 게, 3월 내내 거의 철야로 일을 했다. 대체 그런 회사에 대한 무한 충성심은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마흔 넘은 나이에도 연장자에게 칭찬받고 인정 받기 위해서 모든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어쩌면 회사 생활에 가장 필요한 재능이 아닐까.

  2016년은 1월부터 12월까지 온전히 나 혼자 일을 해서, 결산하는데 훨씬 덜 힘들었다. 회계법인 도움을 받긴 했지만, 꽤 힘든 일이어서 재무제표가 나오면 막 감격스러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냥 그렇다. 아무렇지도 않다. 뭐 워낙 구멍가게 같이 작은 회사라 수월한 것도 있었지만, 난 결산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전 회사의 최악 부장같이 주변에 온갖 짜증 부리고 징징 거리진 않았으니 스스로 만족하기로 했다. 다음 주 중에는 완전히 마무리될 것 같다.


사랑의 정의

  내가 혐오하는 사람 중 한 부류가 모든 일을 쉽게 정의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뭔가에 대해 단정 짓는 사람에게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고,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기대를 애초에 접는다. 사랑에 실패해서 상심이 깊은 사람에게 '사랑은 타이밍이다.' 같은 말 하는 사람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건지 모르겠다. 안그래도 가슴 찢어지고 끝없이 자학하고 있을 사람에게 왜 그딴 근거 없는 말을 지껄이는가. 본인이 뭐 얼마나 대단하길래 '사랑' 에 대해 그렇게 쉽게 결론을 내리는가.

  내가 너무 순진할 걸수도 있지만, 난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타이밍이 아무리 안 좋아도, 상황이 아무리 좋지 않아도 끝내 서로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타이밍'이 서로 안 맞아서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가졌던 그 감정이 정말 사랑이었을까? 난 절대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일기로도 썼지만, 내가 '사랑'에 대하여 탐구한 각종 글과 영화, 음악 통틀어 이정도면 정말 사랑의 절대 정의 에 가깝다 생각했던 건 단 두 작품 뿐이었다.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 '사랑에 대하여' 와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사랑에 대해서 쉽게 말하는 사람들은 본인들이 안톤 체호프나, 키에슬로프스키보다 대단하다고 생각하는걸까? 하여튼 정말 싫다.


다이어트

  다이어트라고 말하기도 뭐하지만, 요즘 평일 저녁에 계란과 채소, 과일만 먹고 있다. 요즘 퇴근 하고 와서 몸무게 재면 50키로다. 내 인생 최초로 50키로를 돌파했다. 앞자리가 바뀐 체중계의 몸무게를 처음 본 날 너무 슬퍼서 내 방에서 막 비명을 질렀다. 이건 별로 영광스럽지 못한 기록 갱신이다. 3월이 되면 뭐라도 하자. 는 결심의 '뭐' 중에 운동도 포함이었는데, 주말마다 미세먼지가 너무 심하고 겨울이 깊어지면서 체력이 고갈되어 심하게 몸이 늘어져서 운동도 못했다. 요즘 저녁 때 채소 먹는 것도 다이어트보단 유지가 목적이다. 내 몸무게 목표가 이렇게 소박해졌다. 이렇게 살찐 중년이 되어가나보다.


쭈꾸미

  내 성격과 체력 모두 사회생활의 걸림돌이지만, 입맛도 꽤 큰 걸림돌이다. 난 매운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한다. 신라면도 매워서 못먹을 정도니 이 정도면 '전혀' 못 먹는다는 표현이 어색치 않다. 대체적으로 한국인들이 매운 음식을 좋아하고 또 먹고 싶어하는데, 난 매운 음식을 먹으러 가면 차라리 굶는 것을 택하다보니, 그런 자리 가면 괜히 천덕꾸러기가 된 기분이 든다.

  맨날 맛있는 거 타령하는 부장님 때문에 저번주 어느 날에는 마리오 아울렛을 30분이나 헤맸고 금요일에는 쭈꾸미 먹으러 꽤 멀리까지 갔다. 나는 혼자 먹겠다고 주장해봤지만, 어떻게 혼자 먹게 두냐면서 자꾸 같이 가자고 해서 하는 수 없이 쭈꾸미 식당 가서 혼자 양푼에 김치찌개를 먹었다.

  저번 금요일에 사장도 없고 전무도 외근 가서 부장급 들이 아주 놀기로 작정을 하고 쭈꾸미 먹으면서 소주랑 맥주를 내리 마셨다. 그 광경을 보자니, 이 회사도 3년 넘으면 미련 갖지 말고 떠나는 게 내 미래를 위해 유리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뭐 그 때 되면 나이가 꽤 있어서 어디 다른 회사 가지도 못할 가능성이 많지만.

  좋아하지도 않는 불판의 쭈꾸미를 물끄러미 보다가 술도 싫고, 아줌마 아저씨들이 IMF 이전에 얼마나 회사 일 하기 편했는지 그리워 하면서 말하는 거 듣기 싫단 생각을 하며 난 정말 체질적으로 단체 생활이 맞지 않음을 다시한번 확인했다. 거기 앉아서 술 마시느니 일하는 게 낫겠단 생각이 들어서, 난 그냥 중간에 와서 열심히 일을 했다. 오후 늦게 부장들이 들어왔는데 역겨운 술냄새 풀풀 풍겨서 그 냄새 참고 일하느라 힘들었다.


불행한 여자들

  내 주변에는 50살이 훨씬 넘었는데 아직도 남편한테 맞고 사는 분도 있고, 선물 옵션으로 이미 2억 넘게 재산을 날렸는데 아직도 실시간으로 일이천만원씩 날리는 남편을 둔 분도 있다. 이 얘기를 다 이번 주말에 들었다. 대체 행복하게 사는 대한민국 중년 여성이 존재하긴 하는걸까. 교회 사람들도 친척들도 엄마 친구들도 죄다 마찬가지다. 우리 엄마와 친한 친구분 딸은 대학 기숙사 세탁실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고 하고. 큰 엄마는 진지하게 황혼 이혼 고민 중이시고... 그래도 우리 엄마는 내가 시집가서 애기 낳고 남편이랑 살았으면 좋겠다고 내가 딱해 죽겠댄다.


아기

  요즘 고양이 사진을 너무 많이 본다. 고양이만 키워도 고양이가 이뻐 죽겠다는데, 만약 내 자식을 키우면 고양이를 사랑하는 감정의 백배 천배는 내 애기가 예쁘고 사랑스럽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엄마 아빠가 신혼일때 아빠가 가끔 숙직 때문에 집에 못 들어오셨는데, 엄마 혼자 자려면 그렇게 외롭고 무섭고 슬프셨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태어난 후 나랑 같이 자니깐 그렇게 든든하고 좋았댄다. 그래서 갓난 아이가 엄마를 지켜주지도 않는데 든든해? 하고 물었더니 그래도 아기가 옆에서 자고 있으면 전혀 외롭지 않다고, 근데 넌 아직도 아기를 못 낳아서 어떡하냐 면서 엄마는 또 슬픔에 빠지셨다. 이 얘기를 들은 후에는 나도 좀 슬펐다. 나는 동물은 키우고 싶지 않다. 하지만 아기는 좋다. 가끔 아기들을 가까이서 보면 마음이 찡해진다.  아기 처럼 예쁜 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