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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물 수발

일상 2010. 11. 4. 17:31

대학을 졸업하던 해에 뭐라도 해야겠다고 2월 달에 시작한 일은 사무보조 계약직 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사무보조 치고는 꽤나 빡센 계약직이었다. (마감이 있어서 뭔가 꼭 끝마쳐야 하는 업무가 있었다는 거 자체가)
사무보조가 내 업무다 보니까 자질구레한 심부름도 많이 가고 우리 팀 우편물을 각 사람들에게 뿌리고 그 사람들이 보내라는 우편물 있으면 우편 수발실에 갖다주고 그랬다.
거기를 관두고 다시 들어간 회사에서도 막내라는 명목하에 또 나는 우편물 수발을 했다. 팀 특성 상 우편물도 오지게도 많았다. 특히 월이 바뀌면서 잡지가 나오는 쯤이면 난 겁내 무거운 여성동아 여성중앙 같은 쓰잘데 없이 무거운 잡지 몇권도 거뜬없이 들어서 팀에다 가져다 놨어야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난 한 3시쯤 되면 또 우편물을 가지고 와서 각 교수님들 우편함에 넣는다. 내가 뭐 어디서부터 잘못한건지, 아니면 내가 아니라 다른 게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대학 졸업 후 부터 지금까지 하고 있는 일이 똑같다는 것에서 약간의 자괴감을 느낀다. 내가 지금 앉아서 하고 앉아 있는 일은 솔직히 말하면 초등학교만 나와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내가 배운 게 미천하여 내가 가진 능력만으로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난 사람이 매일 매일 치열하게 노력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난 그렇게 살았고, 결국 이런 신세가 되었다. 내 사상을 바꿔야 하는 걸까? 이 세상과 자신에 대해 만족감이 높은 사람들은 정말로 하루 하루를 치열하게 산 사람들인걸까?

아. 이제금방도 어떤 교수가 내가 적어도 10번이상 알려준 사항에 대해서 또 전화해서 또 물어보고 난 또 대답을 했다 분명히 나중에 (그 나중이 내일이라고 하더라도 ) 또 똑같은 걸 또 물어볼 거라 생각한다. 그럼 난 아마 또 대답을 해줘야 할 거다. 이번 같은 경우는 맨날 학교 전화번호를 나한테 물어보는 건데 학교 홈페이지 가서 이름만 치면 전화번호가 나오는데 그게 그렇게 귀찮아서 꼭 나한테 전화해서 물어본다. 도대체 그런 사람들은 혼자 밥은 자기 손으로 퍼 먹긴하는걸까? 입만 벌리면 부인이나 자기 밑에 사람이 떠 먹여주는 건 아닐까?

예전에 루쉰이 쓴 책을 읽으면서 존경심이 새삼 샘솟았던 적이 있는데 물론 책으로만 루쉰을 접하기 때문에 진짜로 루쉰이 존경할만한 사람이었는지 아는 데 한계가 있지만, 루쉰 책을 보면서 난 주변에 진심으로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으면 삶이 참 풍요롭고 내가 품을 수 있는 희망이나 꿈의 크기가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컸을 것 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 나보다 나이가 많든 적든 상관없다. 딱 한명이라도 있었으면 했다.

하지만 내가 커가면서 느끼는 건 존경은 커녕 실망 뿐이다. 실망. 그게 상대방이든 내 자신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