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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일상 2019. 8. 1. 09:43

  7월 25일에 옮긴 병원에서 세 번째 이식을 했다. 첫 번째는 배아를 2개 넣었고, 두 번째는 3개. 이번에는 정말 상태 좋은 배아 딱 한 개를 넣었다.

  이제까지 다른 사람들처럼 이식 후에 유난을 떨지 않았는데, 실패한 이유가 정성을 들이지 않아서 그런가 싶어 이번에는 좀 유난을 떨었다. 이식하고 휴가를 3일 하고도 반차를 더 냈고 집에 있는 동안은 배에 담요도 두르고 되도록이면 무리도 안 하고 삼시 세 끼도 다 잘 챙겨 먹고.

  의사선생님께서 긍정적으로 말씀을 해주셔서 기대를 많이 했는데 어제 갑자기 몸이 가벼워진 기분이 들어 임신테스트기를 해봤더니 깨끗한 한 줄이다. 왜 이런 예감은 반전이 없을까.

  배아 이식하고 쉬는 동안 엄마가 시골에서 가져온 반찬을 준다고 집에 오셨는데 아빠까지 같이 오셔서 또 화를 엄청 내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다 가셨다. 딸이 2월부터 임신한 번 해보겠다고 고생하는데 아빠는 다른 거 다 안 보이고 본인 감정만 중요하신가 보다. 아빠 때문에 그런 건 아니겠지만 아빠가 그렇게 나한테 소리를 지르고 간 후부터 몸이 유난히 가벼워진 기분이라 아빠까지 원망스럽다. 어제 어떤 사람이 자기는 오랜만에 가족 만나기 전에는 우울증 약을 평소 두배를 먹고 나간다는 트윗을 썼더라. 내 가족들도 나처럼 나를 만나는 걸 싫어하고 불편해했으면 좋겠다면서. 일생동안 가족만큼 힘을 주는 사람도 없고, 가족처럼 날 미치게 하는 사람들도 없는 것 같다. 연을 끊는 것도 불가능하고 내가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평생 함께 해야 하는 나의 친족들.

  아빠는 저번 배아 이식 때도 사위 앞에서 술주정을 해서 내가 남편한테 미안하다고 거의 빌다시피 하고, 이번에는 소리 고래고래 지르다 가시고. 엄마 딴에는 몸조리하는 중에 뭐라도 챙겨주고 싶어서 오시는 거지만 운전을 못하는 엄마를 데려다주느라 옵션으로 항상 따라오는 아빠 때문에 몸조리는커녕 항상 살얼음판 걷는 기분이 된다. 다음에는 시댁에는 말해도 우리 가족한테는 배아 이식 얘기 일절 안 할 생각이다. 요즘에는 차라리 좀 거리감이 있는 시댁이 훨씬 좋다.

  어제 그런 생각을 했다. 내 평생의 운은 아빠와 단절되게 살게 해 준 남편을 만나는 데 다 쓴 거 아닐까. 하는. 일기에도 여러 번 썼지만, 난 운이 좋아서 뭔가를 이룬 적은 거의 없고 남들만큼 노력해도 그만큼 결과가 따라주지 않는 편인데, 내 인생에 정말 이렇게 기쁠까 싶었던 일이 남편이랑 결혼한 일이었다. 남편과 내가 고른 집 거실에서 멍하니 TV를 보다가도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한동안은 너무 행복했다.

  남편을 사랑하다보니 남편을 닮은 애가 있으면 얼마나 귀여울까 하는 생각에 나는 내심 아들을 낳고 싶었다. 딸은 안중에도 없었다. 배아 이식을 할 때마다 내 상상 속의 아이가 있었고, 아이한테 밥을 먹이고, 공원에 가고, 그네도 밀어주고 남편이랑 아이한테 뽀뽀도 하고 그랬다. 계속 실패하면서도 내 상상 속 아이는 한 번도 사라진 법이 없었다. 그런데 어제 세 번이나 실패를 하고 보니 내가 항상 상상 속에서 키우고 있던 그 아이가 현실에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면서 겁이 났다. 그렇게 고통스럽게 세 번째 아이와 작별을 하고 눈물을 펑펑 쏟고 누가 봐도 어제 울다 잔 퉁퉁 부은 눈을 하고 사무실에 앉아 일기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