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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10.16 판의 미로/이퀄스 단평


  처음 나왔을 때 부터 보고 싶었던 판의 미로를 이제서야 봤다. 중간에 잔인한 장면은 눈 질끈감고 빨리감기를 해버려서 완전히 이 영화를 다 봤다고 할 순 없지만, 아... 역시 듣던대로 좋은 영화였다. 진정한 반전영화란 바로 이런 것 아닐까. 프랑코쪽 정부군인 비달 대위 이 개자식의 악랄함에 진저리치며 봤는데, 실제 전쟁은 영화보다 훨씬 더 끔찍하겠지. 정말 상상조차 못하겠다. 우리나라의 625도 스페인내전보다 심했으면 심했지 절대 덜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에 오필리아가 피흘리며 죽을 땐 진짜 가슴이 찢어진다. 그냥 좀 찡한 정도가 아니라 말그대로 가슴이 갈갈이 찢어지는 느낌이라 펑펑 울었다.

  스페인어로 된 영화 거의 처음봐서 신기했고, 미술이 끔찍하면서도 독창적이고 아름다워서 잊지 못할 화면이 끝도 없이 나온다. 오필리아 역 맡은 여자 아이 '이바나 바쿠에로' 의 까만 눈이 이상하게 좀 슬픈 느낌이 들어 적역이라는 생각을 했다.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부인이 아역 오디션에 동석했는데, 이바나 연기하는 걸 보고 울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바나가 시나리오의 오필리아보다 살짝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캐스팅된 것이라고. (나도 영화에서 오필리아가 죽기 전에 아직 갓난아이인 동생을 안고 내동생을 죽일 순 없다고 울먹일 때 부터 슬펐다. 그러다 총맞고 죽어가는 장면에서 울음 대폭발) 어린 아이가 죽는 장면 보는 거 아무리 영화라고 해도 심적으로 너무 괴롭다. '그을린 사랑' 에서도 기독교 민병대가 울부짖으며 달려가는 5살 정도 밖에 안된 무슬림 부모를 둔 여자애 등에 총을 여러발 쏴서 죽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 보고 며칠 우울했다. 잊지 말자. 전쟁은 결국 이렇게 잔인하고 악마적이라는 걸. 어떤 이유에서도 정당화 되어서는 안된다.  


  한창 직장생활로 힘들 때, 정수리에 감정 on/off 버튼이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종종했다. 상사 말 한마디에 열받고 상처받는 게 너무 수치스러웠다. 일하는 동안은 감정을 off 해놓고 오로지 로보트처럼 일만 하고 싶었다. 이 영화는 내가 했던 생각과 비슷한 컨셉으로, 모든 감정을 범죄로 규정하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어마어마한 설정에 비해 영화는 좀 밋밋했다.

  배경만 미래일 뿐 결국 사랑이야기인데, 남녀 주인공이 현재 헐리우드에서 제일 잘생기고 예쁘다는 니콜라스 홀트랑 크리스틴 스튜어트인데도 하나도 떨리지가 않았다. 두 미남미녀가 다 벗고 둘이 같이 샤워를 하는데도 이상하게 하나도 야하지가 않고,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이 전혀 나지않아 당황스러웠다. 렛미인이나, 화양연화에서는 둘이 손만 잡아도 '헉' 하며 가슴이 쿵쿵쿵 뛰었는데....

  주연 남녀의 외모도 사랑 영화에서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결국 제일 중요한 건 연출과 연기라는 걸 다시한번 깨달았다. 뮤직비디오 같은 감각적 화면과 최신 사운드 그리고 마냥 훤칠하고 잘생긴 니콜라스 홀트 보는 재미는 있었다.


*사진 출처-Daum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