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과외하면서 그냥 저냥 지내고 있지만, 진짜 괜찮은 자리가 나오면 그래도 이력서라도 넣어봐야지 하고 몇군데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한 군데 진짜 괜찮은 곳을 썼지만 난 떨어졌다. 그 이력서 때문에 송도에 한번 가봤는데 가보고 정말 놀랬다. 완전히 망한 스멜이다. 내가 보기엔 송도가 겁나 고급 아파트들 많이 들어와서 분양 되면 대성공일 거 같다. 국제 업무지구? 풋. 그나마도 아파트까지 다 지어서 복작대려면 20년은 족히 걸리게 생겼던데.
그리고 송도에 가면서 난 또 한번 느꼈다. 인천이 무지하게 크다는 것을. 우리집은 그나마 바로 가는 버스가 있는데도 1시간을 꼬빡 갔다. 참 멀었다. 서울도 크다고 느꼈지만 서울은 서울 안에 지하철이라도 잘되어 있지 인천은 이거 버스도 무지하게 돌고 인천 지하철 역도 몇 개 없고.

송도를 가는데 어렸을 때 교회에서 억지로 끌려갔던 송도유원지가 보였다. 1박2일 인가로 갔던 거 같은데 비오는 추운 날씨에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 그리고 6살이었던 동생은 텐트에서 하룻밤을 잤다. 잘 씻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심약한 체질의 나와 동생은 교회에서 물속에 들어가라고 해서 하는 수 없이 물속에 들어가기도 했다. 물은 또 어찌 그렇게 똥물이었는지. 결국 나와 동생은 그 수련회를 다녀오자마 앓아 누웠고, 그 똥물이 귀에 들어간 뒤로 내 오른쪽 귀에서는 누런 고름이 줄줄 나왔다. 그때 귀가 아파서 어찌나 고생했는지. 아무래도 내가 학교 다닐 때도 수련회나 수학여행 같은 거 싫어하게 된 계기도 교회에서 끌려간 그 수련회의 영향이 큰 거 같다.

저번에 미즈키님도 말했지만 이력서 쓰다보면 정말 황당한 거 적어내라는 회사들이 많은데 키와 몸무게 혈액형은 예사고 아버지 출신 학교 아버지 직업쓰라는 회사도 꽤 된다. 면접 가서도 아버지 뭐하시냐 물어보는 경우도 많았다.(근데 이건 모든 어른들의 공통질문인 거 같다) 그리고 대학 졸업 직 후 썼던 어떤 이력서에는 지인 중 영향력 있는 사람을 3명 이상적어서 내라는 곳도 있었다. (회사랑 직급 쓰는 란 까지 있었다.) 드럽고 치사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나마 내가 아는 사람 중 좀 잘나가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어서 적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런 회사에 그렇게 적어냈나 싶지만 뭐 나름 처절했기 때문에.

몇 군데 면접을 갔을 때 한 곳은 공고에는 시청역 근무라고 되어 있었는데 알고보니 시청역 근무가 아니었고, 한 군데는 그 때 당시 뽀록으로 나온 내 토익점수를 보고 미국 사람들이랑 메신저로 대화하면서 일을 하라는데 저 정말 영어 못해요. 라고 말을 했음에도 나보다 토익 점수 낮은 사람도 다 잘한다고 그래서 황당했다.(뭐 나보도 토익 낮은 애들도 기본으로 다 어학연수는 다녀왔으니까 그렇겠지만 난 솔직히 말하면 학교 수업 이외에 외국인이랑 대화해 본 경험이 지금까지도 전혀 없다)  그회사가 더 황당했던 건 미국 업무시간에 맞춰서 일하라고 했다는 거다. 미국 업무시간을 계산해보니 대략 새벽3시에도 일을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길래 됐습니다 하고 나왔다.

대학 다닐 때 혹시나 하고 써냈던 이력서 후로 아무 연락이 없어서 역시나 이번에도 떨어졌구나 했는데 겨울방학이 되서야 면접보러 오라고 해서 7호선 학동역까지 어떤 건설업체를 간 적이 있었다. 가기 전에 그 건설업체에 대해 좀 알아봤는데 좀 이상한 회사 같아서 망설이다가 면접을 갈까말까 고민하는데 엄마가 그 회사가 좋건 나쁘건 넌 꼭 취직을 해야만 한다고 무조건 가라고 내 등을 떠미는 바람에 빈정이 상해서 학동역에 내렸는데 맙소사 학동역까지도 1시간 40분 가량 걸리고, 학동역에서 내려서 마을버스까지 타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총 소요시간 2시간 10분) 여기는 만약에 와서 다니라고 해도 못다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면접에서 물어보는 이야기가 여기서 일하려면 남자직원들한테 커피 타야 한다. 왜 이렇게 전학을 많이 다녔냐? 아버지 성격이 이상하신가보다. 하나 같이 내 자존심을 긁는 소리만 했다. 집으로 와서 그 회사 진짜 미친 회사라고 욕을 하는데 우리 엄마는 그래도 가라고 해서 더 열이 크게 받았던 기억이 난다. 결국 난 엄마가 돈 벌어오라는 성화에 못이겨서 바로 아르바이트라도 하겠다고 여의도까지 아르바이트를 다녔다.

대학 때 유명한 회사 인사담당 직원들이 와서 말하는 면접 비법 이런 거를 한번 들을 일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개소리였다. 아직까지도 생각나는 건 면접 갔을 때 왜 면접관들이 자존심 상하는 질문을 하는지 아냐. 그건 지원자가 얼마나 마인드 컨트롤이 되는지 보려고 그러는 거다. 라고 강의 하더라. 그걸 들으면서 난 속으로 비웃었다. 그 유명 회사 인사담당 사람의 얼굴에 "오만함" 이 가득했다. 

쓰다 보니 난 정말 이 사회에 불신이 가득한 거 맞는 거 같다. 예전에 내가 정신상태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싶어 학교에서 운영하는 심리상담소에 가서 상담을 한 번 받았는데 어떤 테스트를 하더니 사회에 대한 불신감 수치가 교도소에서 수감 중인 사람들 만큼 높다고 나한테 엄청 겁을 줬었다. 난 아직까지도 나름 전문가였던 그 아저씨가 계속 내가 상담받게 만들려고 조금 과장해서 말한 거라고 의심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별 거 아닌 것도 큰 의미를 둬서 말을 하는 부분도 꽤 있으니까.
새벽이 되어 뻘소리가 길었다. 내일 수영을 가야 쓰겄는가 말아야 쓰겄는가 고민 중이다. 술도 안마셨는데 술취해서 쓴 거 같은 이 포스팅을 내일 아침에 본다면 무척 쪽팔리겠지만, 그래도 포스팅 하고 이제 난 자야겠다.  

그나마 공채하는 곳에 원서를 내려고 중부교육청까지 가서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떼어왔다. 몇년만에 보는 생활기록부인지. 신기했다. 종이 몇장으로 내 과거를 마주대하다니.  내 생활기록부의 몇몇 기록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출결상황
- 3년 내내 개근. 흐흐흐. 고등학교 때 난 꽤 착실했다. (그리고 꽤 건강했나보다) 지각은 많이 했지만.

2. 신체발달상황
- 키는 3년 동안 0.5 cm 밖에 안자랐고, 체력급수는1학년, 2학년 3학년 각각 1급 2급 1급. 이거 누가 보면 완전 체육소녀인줄 알겠지만, 중학교 때는 4급 4급 5급 이었는데 전라북도의 체력급수 기준은 불구가 아닌이상은 2급 받을 수 있나보다. 나 50미터 9초에 뛰고, 다리 밑으로 손 내리기는 9cm (만점은 20cm 넘었음)로 반 전체에서 꼴찌에서 2등하고 윗몸일으키기는 야매로 만점 맞았는데. 아 오래달리기는 선생님이 날 다른 반 애로 착각해서 1바퀴 덜 달린 적도 있었다. 거의 걸어서 들어왔는데.. 아 나는 세상에서 오래달리기를 최고로 싫어했었지. 이때 전학와선 초등학교 때 부터 생전 못받아보던 체력장 1급을 받았다. 전학가서 얻은 소득이라면 소득이군.

3. 수상경력
- 해당사항 없음. 크크크

4. 진로지도상황
- 특기 또는 흥미는 독서, 음악감상, 독서. 1학년때 장래희망은 영화평론가 라고 써 있다. 풋. 2학년 3학년은 진짜 부끄럽지만 연구원이랜다. 우리 엄마 아빠의 진로희망은 3년 내내 공무원.

5. 특별활동상황
- 1학년 : 배드민턴반, 2학년 : 수학반, 3학년 : 현대문학반. 전혀 일관성이 없다. 그도 그럴것이 저기 있는 클럽활동부서는 클럽활동 시간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허송세월 보내기로 유명한 선생님 쫓아서 들어간거다. 클럽활동 들어가선 그냥 몇시간 내내 친구랑 놀다왔음. 배드민턴반 옆에는 나보고 서브능력이 뛰어나다고 써있다. 푸하하하. 배드민턴반 가서 배드민턴 친건 아마 3번도 안될 걸.

6. 단체활동
- 난 전학가는 바람에 1학년때도 극기훈련 받고, 2학년때도 극기훈련 받아야 했는데 2학년 때는 지리산 가기 싫어서 그냥 안가고 학교에서 잡초 뽑았다. 갔다온 애들 말 들어보니 천만번 잘한 일이었다. 오전동안만 잡초 뽑고 오후에는 더워서 교실에서 비디오보고.. 캬. 천국이었지.

7. 행동발달상황
- 1학년 : 침착하며 끈기 있는 일처리를 함.
  2학년 : 언행이 바르고 신중하며 근면한 학생임.
  3학년 : 차분한 성격에 예의가 바르고 근면 성실하며 표정이 밝음.
  오~~ 언빌리버블!!!! 이런 평가가 나오다니.

8. 교과학습발달상황
- 1학년 1학기 : 미술하나만 수 맞고 다른 과목은 다 양 아니면 가의 평점. 이때 저번 블로그에도 썼지만 이모댁에서 한참 방황중이었다.
- 1학년 2학기 : 국어 성적 제일 좋음. 다행히 양하고 가는 없고 오 1학년 2학기때는 미도 없다. 1학년 2학기부터는 전라북도 학교 성적.
- 2학년 1학기 : 영어 성적 제일 좋음. 근데 난 2학년 때 부터 이과 였다는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학2 성적 제일 안좋음.
- 2학년 2학기 : 우와 나 한문 전교 1등이었어!! 근데 난 요즘 신문 보면 한자 거의 못 읽는데..  고등학교 땐 하룻밤만에 한자 다 외우고 시험을 봄과 동시에 머릿속이 백지장이 되곤 했었다. 아 그때 좀 해놓을 걸. (한문 못하는 거 꽤 큰 컴플렉스임)
- 3학년 1학기 : 작문 성적 제일 좋음. 3학년 1학기 때부터는 선생들이 대학교에 수시입학시키려고 점수 막 퍼주는 바람에 평어도 제일 좋다.
- 3학년 2학기 : 역시 작문 성적 제일 좋음. 1급 2급 1급의 체력급수에도 불구하고 체육은 거의 전교 꼴찌권. (실기평가 항상 최하점 맞았고, 체육시간에도 실내 체육관에서 누워자기 일쑤였다. 뭐 더 중요한 건 지독한 몸치이기도 하고)

이번 생활기록부 때문에 날짜까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난 1999년 7월 13일에 전라북도로 이사왔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엄마가 와선 전학 절차 끝냈다고 말씀하시는 거다. 나는 애들한테 인사한마디 못하고 쉬는 시간에 짐챙겨서 교복 입은 채로 낯선 곳으로 왔다. 쉬는 시간에 사물함 정리하는 나를 보며 너 어디가냐고 묻길래. 나 전학간다고 했더니 애들은 장난치는 줄 알고 뭔 말 하냐고 하다가 내가 빌렸던 물건을 주인한테 다 되돌려주고 신발도 안신고 그냥 슬리퍼 신은 채로 계단을 빠르게 내려가니까 그때서 진짜냐고 하면서 몇몇은 고맙게도 눈물까지 글썽거려줬다. 학교를 나올 때만 해도 안 울었는데 그런 날 보고 우리 엄만 우셨다.  아빠 차를 타고선 5개월 밖에 못다녔던 학교를 보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정말 다니고 싶은 학교였다. 14지망 중에 1지망에 쓴 고등학교 였다. (그때 당시 인천의 고등학교 입학 시스템은 무식하게도 인천에 있는 모든 인문계 고등학교에 대해 들어가고 싶은 순위를 적어 내야만 하는 시스템이었다) 운좋게도 1지망에 붙어서 좋아했던 학교였다. 중학교 친구들도 많았는데.. 난 중3때도 전학생이었는데 말이다. 그나마 어렵게 친해진 친구들이었는데. 그걸 다 뒤로 하고 떠나려니 미칠 것만 같았다. 난 중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흰 교복 윗도리에 초코 아이스크림을 쏟았다. 다신 입을 수 없는 교복이었다. 그렇게 얼룩덜룩 한 교복을 입고 한 눈에도 탐탁치 않았던 새 학교 교무실에 들어갔다. 나 혼자만 남색치마 교복을 입고 있었다. 난 아직도 1999년 7월 13일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일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억하고 있구나.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학교에 다녔지만 난 3년 내내 결국 그 학교에 적응을 못했던 것 같다. 빌어먹을 이력서 때문에 다시한번 감회가 새로워져버렸다. (아니 왜 고등학교 생활기록부를 내라고 하는거냐고) 내 고등학교 시절이 머릿속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스쳐가는 것 같다. 제길. 안그래도 우울한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