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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철도를 타면.

일상 2012. 10. 5. 20:05
공항철도가 처음 개통 되었을 땐 그야말로 공기만 싣고 달리는 아무도 안타는 열차 였는데 서울역까지 연결된 후론 많은 인천시민을 태우는 중요한 지하철이 되었다. 출퇴근 시간에는 신도림역의 2호선 만큼 사람이 많다. 김포공항역에서 공항철도를 타니 내 맞은편 디스플레이에서 인천공항의 비행기 시간표가 나왔다. 베이징 런던 오사카 홍콩 등등.
난 퇴근 길에 인천공항으로 가서 바로 떠날 수 있는 아무 비행기나 잡아타고 예상치 못한 곳으로 떠나는 상상을 했다. 그러려면 언제나 여권을 들고 다녀야겠지. 매일 여권을 품에 넣고 떠날 궁리만 하는 삶도 크게 나쁘지는 않겠군.
나는 남편도 없고 자식도 없는데 왜 이렇게 떠나기가 어려운 것일까.
회사에서 아직도 내 직무다 하고 밑겨진 일이 없다보니 불청객이 된 기분이다. 오지 말아야할 곳에 와서 꾸역 꾸역 일하고 있는 기분.
대충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겠는데 속시원히 설명을 해주지 않고, 단편적인 이런 저런 업무를 두루두루 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일 의지가 되는 사람은 88년생 우리회사 막내. 오늘은 322페이지의 정밀기계를 제어하는 소프트웨어 사용설명서를 번역하라는 업무를 맡았다. 느려터진 내 번역 속도에 내가 다 짜증이 났다. 그 와중에 별안간 어학연수 갔다온 애들은 이런 것도 두배의 속도로 척척 해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짜증이 솟구쳤다.
근데 어떻게 생각하면 이건 영어 실력도 실력인데 기계나 소프트웨어적 지식이 전혀 없으니 내가 잘 하는건지 어쩐건지도 가늠이 안되고...
세상은 뭐 하나가 끝나면 또 다른 게 시작되니 힘들기도 재밌기도 한 것 같다.
어제는 택시 안에서 내가 죽는 건 무섭지만 아예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것처럼 사라지는 건 괜찮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전혀 특별하지 않고 귀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콧물 찔찔 거리면서 잠이 들었는데 요즘 아침 날씨는 또 왜이렇게 도에 넘치게 좋은건지. 더더더 우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