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맛같았던 연휴가 끝이 났다. 어찌나 슬픈지 모르겠다. 금요일에 눈을 떴는데 영락없이 토요일 같았다. 그래서 TV 에서 왜 영화가 좋다 안하지? 이러면서 불만스러웠는데 맙소사 금요일이었다. 

금요일에는 친한 친구와 종로에 가서 아이언맨을 봤다. 작년에 회사에서 나오는 복리후생비가 많이 남아서 롯데시네마 관람권을 왕창 사놨었다. 한 8장 샀는데 이제 겨우 2장 썼네. 

나는 작년에서야 배트맨 시리즈를 봤는데 영웅물에 큰 관심이 없기도 했고, 배트맨 시리즈 좋아하는 사람들의 맹목적인 신봉도 맘에 안들어서 일부러 안본 것도 있다. 그러다 배트맨시리즈를 보고 나는 왜 이시리즈가 이렇게 인기가 있나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재밌는 걸 왜 이제서야 봤을까 하고 아쉬울 정도로.  그래도 난 아직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너무 심각한 척 하는게 맘에 안들기도 한다. 인셉션도 보긴 봐야 하는데 기회가 안되네.

작년 어벤져스도 생각보다 재밌었는데 어벤져스에 나오는 사람들 나온 영화를 단 하나도 안보고 봤는데도 재밌었다. 웃기기도 했고. 이런거 보면 난 의외로 영웅물 체질인지도 모르겠다.  

아이언맨3 역시 앞 시리즈 하나도 안보고 봤는데, 재밌었다. 유머도 꽤 내 스타일이고, 중년 남성의 순정에 대리 만족도 가능하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아저씨는 완전 멋지다. 귀여운 매력이 있다. 조지 클루니에 이어 멋진 아저씨 목록에 추가하기로 했다. (그래도 아직은 조지클루니 아저씨가 최고야. 왜냐면 아직 결혼을 안했으니까 크크크크크) 

아이언맨 시리즈도, 배트맨 시리즈도 다 재밌긴 했지만, 영화가 점점 2시간 짜리 미니시리즈가 되어 가는 건 좀 슬프다. 점점 원래 있던 스토리 가져다 쓰는 것도 좀 맘에 안들고 이러다가나는 마블 코믹스에서 나오는 모든 만화가 다 영화화 될지도 모르겠다. 예전부터 말하지만, 순전히 영화를 위해 쓰여진 시나리오에 딱 2시간이 안되는 시간 안에 나에게 말할 수 없는 감격을 안겨주는 영화가 좀 그립다. 빌리 엘리어트나 Ghost world, 500일의 써머 같이 말이다. 뜬금없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빌리 엘리어트랑 Ghost world 인 것 같다. 요즘도 가끔 생각이 나니까. Ghost world 의 스티브 부세미 아저씨는 극 중 도라버치가 사랑할 수 밖에 없다. 허리 디스크 있어서 복대 차고 다니고 2:8 가르마에 배까지 촌스러운 면바지를 입고 다니는 앞니 툭 튀어나온 그 아저씨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다. 너무 아름다운 남자와 여자가 한눈에 반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사랑에 빠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고귀한 러브스토리. 

요즘 본 영화 중에서 제일 내 이상형에 근접한 사람은 "들어는 봤니? 모건부부" 에서 휴그랜트의 캐릭터. 흐흐흐 그 영화 기대 없이 봤는데 정말 사랑스러운 영화였다. 러브 액추얼리에서 휴그랜트 보다 훨씬 귀엽다. 


수요일에는 의정부에 외근을 다녀왔다. 회사 사람들은 내가 운전 이제 웬만큼 잘하는 줄 안다. 그런데 전혀. 나는 아직도 회사-집 왔다갔다 하는 코스 이외에는 다른 코스 운전은 하고 싶지도 않고, 약 34km 정도 되는 그 출퇴근 코스도 내가 원래 가는 코스 이외에는 단 한번도 다른 코스를 벗어난 적이 없다.

그런데 차장님께서 수요일에 의정부를 갔다오라는 거다. 우리 회사랑 관련있는 협회의 경기 북부 지사가 의정부에 있어서였다. 나는 가라니깐 못간다 말도 못하고 갔다오겠다고는 했지만, 불안해서 결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음 위성지도를 거의 외우다 시피 왕복코스를 1시간 동안 보고, 외근 전날 차 안에서 내비게이션으로 모의 주행까지 다 해본 다음에야 마음을 잡고 외근에 나설 수 있었다. 출근길에는 보통 외곽순환고속도로를 달리다 자유로 IC 에서 빠지는데 그 날은 자유로 IC를 그냥 지나야만 했다. 그렇게 외곽순환고속도로를 달리는데 나도 꽤나 쌩쌩 (보통 125km/h 정도로 달리고 있음. 그 이상은 우리집 차가 잘 안나간다. ㅜㅜ) 달린다고 달리는데 차들이 북으로 가면 갈수록 엄청나게 빨리 달렸다. 아스팔트 고속도로가 아닌 콘크리트 고속도로가 나오고 2km 가 넘는 터널도 나왔다. 인터넷으로 지도를 본 것보다 차에서 내비게이션으로 모의 주행 해본 게 훨씬 운전에 도움이 많이 됐다. 

올때 갈때 양갈래 길이 있었는데, 의정부로 들어갈 때는 모의 주행에서 계속 우회전이고 갈래길이 나오면 무조건 우측으로 가야 하는 걸 알아서 무사히 갔다. 

의정부에서 서울로 갈 때는 올때랑은 반대로 계속 좌측으로만 가는 길이었다. 고속도로 진입하기 전에 의정부 시내에서 차선 잘못타서 고속도로 진입하는 송추 IC 빠지는 길로 못들어갈 뻔 했는데 맘씨 좋은 트럭 아저씨가 양보해줘서 무사히 진입하고 한바퀴 돌고 이러면서 고속도로 진입을 기다리고 있는데 또 X 자 교차로가 나오는 거다. 마찬가지로 왼쪽으로 빠져야 하는데 내가 바로 그 교차로 직전 바로 앞에 올때까지 차선을 못바꿨었다. 나는 속으로 "망했다. 고속도로 잘못 진입하면 다시 빠져나가서 또 다시 의정부 시내 들어가서 다시 고속도로로 진입해야 하는 것인가. 내가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꺼를 타면 의정부 돌아서 상일동가는 길이 나오는데 젠장..". 이러면서 그 짧은 순간에 별 잡스런 생각을 다했는데 왼쪽으로 진입하는 차선만 2차선이었다. 오 주님. 그 뒤로는 또 신나게 달리다가 자유로 IC 로 못 빠질 뻔 하고 급히 막 차선 바꾸려다 식겁하는 사태가 발생했지만, 다행히 무사히 돌아왔다. 어찌나 긴장을 했든지 막 귀가 멍멍하고 내가 운전하는데도 멀미가 날 뻔했다. 

또 가라고 하면 가기 싫은데 이번에 다녀와서 왠지 이제 막 보낼 것 같다. 


협회에 가기 전에 전화로 엄청 불친절했던 여자가 제발 얼굴 엄청 못생기고 뚱뚱했으면 좋겠다고 빌었는데. 웬걸. 얼굴이 예뻤다. 게다가 닐씬하기까지. 외근 다녀온 뒤로도 차장님이 계속 뭐 물어보라고 시켜서 전화했는데 전화를 끊을때마다 그 여자에게 듣지도 못할 외마디 욕을 하고 있다. 별 것도 아닌데 꽤 스트레스다. 엄청 불친절한 사람한테 차장님이 물어보라는 거 1페이지 뽑아서 물어보는 거 말이다. 


아. 그러고보니 나 의정부는 머리털나고 처음 가봤다. 내가 갔던 의정부역 주변이 신세계 백화점도 있고 의정부 안에서는 꽤 번화가 인 것 같았는데 한적해 보였다. 도심과 엄청 가까운데 부대 입구가 떡하니 크게 있는게 인상적이었고, 신세계 백화점이 인심 후하게 백화점 물건 하나도 안샀는데도 주차료 한푼 안받아서 좋았다. 운전자들도 내가 길 몰라서 엄청 얼쩡대고 느리게 가는데도 친절했다. (역시 인천이 삭막한 거였어...) 내가 지하로 진입해야 하는데 차선 잘못타서귀찮게 했더니 뒤에서 엄청 빵빵 댔던 아저씨도 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조용한 도시의 느낌. 그리고 왠지 쇠락한 느낌. 인천 부평의 스몰버젼 같은 곳이었다. 


동생이 군대에 갔다.

일상 2008. 2. 27. 11:27

어제는 동생의 입대일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의정부에 갔는데 그곳이 바로 306보충대. 눈이 별로 없는 겨울이었는데 어제 아침에는 눈이 엄청 쌓여 있었다.
어제 군대가는 인원이 약 2400명이라는데 다들 어찌나 어리든지 내가 나이 먹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엄마는 일이 많으셔서 못갔는데 지금 생각으론 안가시길 잘한 거 같다. 가면 100% 많이 우셨을 것 같아서..
집앞에서부터 우셨는데 가셨음 많이 우셨겠지.
내가 보기엔 그냥 군대 보낼때 안울고 잘가~~ 라고 말하는게 가는 사람한테나 가족한테나 좋은 것 같다.
나 역시도 그냥 잘 갔다오라고 하고 울진 않았다. 몸 아파서 안가는 거 보단 낫잖어~ 하고 말았지.
2월 말에 들어가는 거고 3월부턴 점점 따뜻해질테니까 날짜는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다. 100일휴가가 없어졌기 때문에 동생은 7월 경에나 휴가를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아직은 실감이 안나는데 나중에 동생 옷이 소포로 도착함 진짜로 실감 나겠지.

내가 가봤던 훈련소는 친구들 & 나 & 전 남자친구가 갔던 공군 진주 훈련소 인데, 4월이라 날씨가 징그럽게도 좋았다. 걔 갈 때는 눈물 났는데. 흐흐. 뭐 많이 어렸으니까.
근데 내 주변에 의외로 그 진주 훈련소 다녀온 여자들이 많다. 흠.. 공군 가는 애인 둔 사람들은 많이들 가는건가? 내가 그냥 흘리는 말로 나 진주 훈련소는 가봤는데. 라고 말하면 주변에서 나도. 나도. 이런 얘기를 해서 깜짝 놀란다는 거.

동생을 보내고 차를 타고 오는데 차가 어찌나 밀리든지,(밀리는 게 당연하지만) 5시쯤 집에 도착해서는 눈알이 튀어나올 듯 머리가 아파서 허겁지겁 타이레놀 이알을 먹고 잤다. 자고 일어나니 8시. 그렇게 자고도  밤 되니까 졸려서 컴퓨터 좀 하다가 12시 쯤 잤다.

오늘 아침까지도 우리 엄마는 기분이 완전히 다운된 상태. 하지만 뭐.. 내동생이 바보도 아니고 대부분은 몸 건강히 다녀오는 군대니깐 잘 다녀오리라 믿는다.

거기 있던 2400명 남자애들 오늘부터 어제와는 전혀 다른 하루가 펼쳐질 거란 생각이 하니 쌩뚱맞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매일 하는 일을 안해도 되고, 매일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이제 당연해지지 않아 지는, 한 사람의 인생이 변하고 인생이 너무 거대하다면 하다못해 한 사람의 생활패턴이 변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은 얼마일까?
난 단 1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사귀던 사람이 헤어지자고 하는 순간. 내가 사표를 내는 순간. 한국을 떠나는 순간. 결혼하는 순간. 등등 모든 게 다 순간인데. 그 순간을 전후해서 더 행복할 수도 더 불행할 수도 있는건데.
쉽게 변할 수 있을 것 같은 내 일상은 왜이렇게 하루하루가 구질구질하고 재미없고 지루한걸까. 다만 지금 여기만 아니면 어디라도 더 즐거울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뭐가 있을까.
문득 내가 직장인이 되었다는 게 지금 인생에서 쉽게 변할 수 있는 것이 이제까지보다 훨씬 더 적어지는 거 아닌가 싶었다. 사실은 그럴만한 용기가 없어진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겠지만.

몸이 안좋아서 그런지 우울한 생각이 너무 많이 들어서 제발 뭐라도 하고 싶어지는 요즘이다. 여행은 이미 한 1년전에 갔다온 것 처럼 까마득해진지 오래고.

P.S 저번에 엘리베이터에서 이사님을 만났다. 처음 들어올 때 면접을 보셨던 분이라 날 기억하고 계셨는데, 오랜만에 본거라 그런가 "일은 이제 좀 재밌나?" 하고 물어보시는 거다. 한심하게도 난 거기에 대고 되물었다. "근데.. 일을 재미로 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요?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나요? " 라고. 크하하하하. 나 참. 간도 부었다. 그 때 뽑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진 못할지언정 이런 망언을. ;; 내 물음에 대한 이사님의 대답은 당연히 있다면서 그 사람 중 하나가 나라고 하시는거다.
난, 흥! 거짓말! 말도 안돼! 라고 생각했다. 물론 속으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