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TV 서비스를 신청하면서부터 영화를 보기 손쉬워 졌다. 리모콘으로 검색하고 비밀번호 누르면 끝.

누군가 나에게 제일 행복한 순간이 언제냐 물어본다면, 샤워 다하고 맥주 하나 놓고 보고 싶었던 영화 시작하기 직전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한 때 꿈이 평론가였지만, 영화나 책 봤을때 감상문을 못써서 그동안 정리를 못썼다. 그래도 한번은 남겨놓아야 될 것 같아서 짧게라도 남겨놓기로 한다. 

 

1. 원데이

: 이 영화는 따로 포스팅을 한 내용이 있다. 하지만 그래도 더 덧붙이자면, 상호작용없이 상대방을 혼자서만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 얼마동안 가능할까? 나의 경우는 딱 2년이었다. 다신 못할 짓이고 안할 짓이지만, 누군가를 나보다 더 좋아하는 것은 (아무런 연애적 상호작용없이) 딱 한번은 해볼만한 경험이다. 난 솔직히 그때는 대신 죽으라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는데. 지독한 자기 혐오에 시달렸고, 아직까지도 종종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고, 한 때는 증오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쩔 땐 이런 경험 한번 없는 사람이 딱해보일 때도 있다. 영화 속 엠마에 심하게 감정이입을 하면서 봤다. 물론 엠마는 젊었을 적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이 훌륭한 여성이지만.  

 

2. 이터널 선샤인

: 이 영화도 따로 포스팅을 했다. 더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없다.

 

3. 킬러들의 도시

: 이 얼토당토 않은 한글 제목의 원제는 In Brugge 다. Brugge 는 벨기에에 있는 도시 이름인데, 이 영화의 주배경이다. 실수로 성당에서 기도하고 있던 어린 소년을 죽이게 된 킬러 레이는 보스에게 Brugge라는 도시에 근신하고 있을 것을 명받고, 그의 사수라 할 수 있는 같은 킬러 동료 켄과 함께 동화같은 도시 Brugge 에서 지루한 날을 보내면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에 대한 내용이다.

내가 좋아하는 콜린 파렐이 이 영화로 남우주연상도 받았다고 하던데, 남자다운 척 하지만 실제로는 지독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모습을 잘 표현했다. 크리스마스 쯤 을 시간 배경으로 삼은 것도 마음에 든다. 영화보고 Brugge 정말 가고 싶어졌는데, 이번 여름에 가는 베를린이랑은 너무 멀어서 포기했다. 언젠가는 꼭 가보려고 한다.

근데 이 영화 내용부터 분위기 모든 것이 진짜 특이한 영화다. 끝까지 정말 일관되게 특이했어. (긍정적 의미로)

 

4. 어바웃 타임

: 난 러브 액츄얼리라는 영화 안좋아한다. 내가 일부러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를 안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건 아니다. 난 어벤져스도 무지 좋아했다. 그런데 러브 액츄얼리는 당최 사람들이 왜 좋아하는지 알 수가 없다. 너무 샤방샤방하고 이 세상에 사랑이 가득해요!! 라고 말하는데 나는 영화를 보며 냉소를 날렸었다.

어바웃 타임도 약간 그런 종류의 영화다. 뭐 감독이 같으니 당연한건가.

영화에는 치명적 결함이 있다. 시간을 여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팀은 여자 하나 꼬시기 위해서 초인적 능력을 활용하지 않아도 될만큼 훌륭한 배경에 훌륭한 인격, 훌륭한 부모님을 가졌다. 그런데 왜 시간을 여행하면서 까지 여자를 꼬시는가? 이해할 수가 없다. (본인은 변호사, 자기 아빠는 교수, 거깃다 부모님 사이는 또 왜그렇게 좋으며, 집도 바다 앞에 엄청 좋은집) 그리고, 막말로 지금 지혜와 경험으로 과거 시점으로 돌아간다면 누구나 정말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거 아니겠는가? 

마지막에 '인생은 우리 모두 함께 하는 여행이다. 우리모두 이 여행을 만끽하자.' 이런 비슷한 대사도 나오는데 어휴. 정말 내 취향 아냐.

 

5. 남자사용설명서

: 꽤 창의적인 한국 영화였다. 그런데 대체 왜 포스터는 왜 그렇게 밖에 못 만들었는지 알 수 없고, 왜 한류스타 역할에 오정세를 캐스팅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시종일관 즐겁게 볼 수 있다. 왜 흥행에 실패했는지 모를 정도로. 아무리 생각해도 오정세, 이시영의 네임 밸류 때문에 흥행까지는 무리가 아니었나 싶다. 둘다 연기는 신이 들린듯 잘했는데.. 오정세가 알몸으로 운전하다 음주운전 단속에 걸리는 장면은 한국 코메디 영화 역사에서도 손꼽힐 명장면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극중 최보나 (이시영) 이 아무리 인기 없는 여자에 남자같은 여자처럼 행동을 해도 얼굴이 귀엽고 사랑스럽고 예뻐서... 아마 그게 이 영화의 최대 단점이고,(이 영화보고 이시영의 팬이 되었을 정도) 두번째 단점은 잘 나가던 영화가 종반에 여자로서 직장에서 받는 차별대우, 그로 인한 비애까지 담아내려고 욕심을 부린 거 아닌가 싶다.

이 영화도 시종일관 계속 재밌게 밀고 나갔어야 했을 것 같은데. 갑자기 뜬금없는 내용 때문에 오히려 몰입에 방해가 됐다.  

극 중 최보나의 집 자유공원 올라갈 때 있는 카페던데, 예전에 정확히 그 위치에서 촬영하길래 딴 길로 돌아간 적이 있었다. 그 때 촬영하던게 아마 이 영화였나보다.

 

아직 본 영화가 많은데... 졸려서 더 못쓰겠다.

영국 여행기 못쓰고 있는 것 처럼 영화 간단 평도 영원히 못쓸 가능성이 높을 것 같군.

내가 올해 본 영화를 나열해보자면

 

싱글맨, 노트북, 부기나이트, 겨울왕국, 주먹왕 랄프, 오블리비언, 언어의 정원, 초속5cm, 마법에 걸린 사랑, 인디에어, 캡틴아메리카:윈터솔져, 그랜 토리노, 아이엠러브, 좋은 친구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늑대아이, 아르고, 그녀, 로마위드러브

 

인데... 아무래도 간단하게 평쓰는 것도 당분간은 못쓰겠군... 내일 출근이니 어서 자야지.


 

   한동안 나에게 슬픈 연애 영화는 금지 영화였다. 어떤 사건이 있은 후로는 여기 일기장에서도 그 사건에 대해서는 입에 올리기 싫었고, 그 사건이 조금이라도 떠오를만한 행동은 아무것도 안하려고 노력했다. 무지하게. 죽을 힘을 다해. 그 사건으로부터 도망쳐 다녔다.

  나에게 있었던 사건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연애도 뭣도 아닌, "그냥 나 혼자 어떤 남자를 좋아하다가 쪽팔려서 죽고 싶을 정도로 찌질하게 끝이 났다." 정도 되겠다. 사건 얼마나 찌질했냐면, 최소한의 자기 변호를 위해 약간의 거짓말을 조금 섞지 않고서는 그 사건에 대해 도저히 한마디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난 내 인생에서 엄청 큰 전환점이 된 이 슬픈 사건에 대해 완벽하게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가까운 친구에게는 2년동안 있었던 그 일에 대해 한 50% 정도는 말했지만, 죽기로 맘먹지 않고서는 이 사건에 대해서 아마도, 영원히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뭐 사실 그럴 필요도 없긴하지만.

  내가 이렇게 주구장창 설명하는 이유는  그만큼 그 때 내가 받은 상처가 컸고, 아직까지도 내 가치관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비통한 기분이 드는 건 마찬가지인데, 역시 세월에는 장사가 없듯 28살 쯤이 되서는 그 사건에 대해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게 됐다. 이건 장족의 발전이다. 한동안 나는 맨날 눈이 퉁퉁 붓도록 울다 잠들었는데 말이다.

  오스카 와일드가 경험은 실패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고 했지만, (200% 맞는 말이라 뭐라 반박도 못하겠다. 나쁜 오스카 와일드. 꼭 그렇게 진실을 가슴아프게 콕 집어 말해야했나!!!) 그 실패로 인해 깨달은 바가 많다. 내 인생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훨씬 더 많이 미친 것 같긴 하지만, 아마 그 때 사건이 없었다면 난 엄청 재수없는 속물이 되었을 것 같다. 지금도 재수 없는 속물이지만, 그 사건이 없었다면 아마 난 정말 대책없는 여자가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 얻은게 전혀 없는 실패는 아니었다.

  덕분에 원데이 같은 영화 보면서도 울 수도 있으니까.

  영화는 20년동안 엇갈리기만 하는 두 남녀에 대한 이야기다. 대학 시절부터 인기 많았던 덱스터를 짝사랑하는 엠마. 하지만 덱스터는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엠마를 몰라보고 철부지 행동만 하다가 뒤늦게 그녀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  

 슬픈 영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엠마는 행복한 여자다. 죽기 전까지는 덱스터한테 사랑 받았으니까 말이다. 세상에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도 사랑받지 못하고 그냥 끝나는 짝사랑이 훨씬 많을거다. 아마도. 그 중 나도 포함이고. 

  이 사람이 내 평생의 소울메이트다 이런 생각은 서로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건 아닌 거 같다. 그런 감정을 한쪽만 느낄 수도 있는거다. 이 영화에서는 서로가 딱 맞는 소울메이트였던 것으로 나오지만, 내가 좋아하는 또다른 영화 '500일의 써머'는 그 반대에 있다. 남자 혼자 이 사람이 내 소울메이트다 라고 착각하다가 끝나니까. 어쩌면 소울메이트라는 말 자체가 그냥 서로가 주체 못할 감정에 빠져 허우적대는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고.  

  모든 슬픈 연애 영화의 귀결은 "있을 때 잘하자" 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 영화도 다르지 않다. 

  둘의 고향이 에딘버러라, 여행 가서 봤던 거리를 다시 볼 수 있어 반가웠고 작년 가을 혼자 했던 여행이 떠오르면서 기분이 아련해졌다.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이 나는 장면은 각자 다르겠지만, 마지막에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대학 졸업식 다음날 장면이 다시 나올 때 눈물이 흘렀다. 그랬어야 했는데. 하는 안타까움 때문에. 

 

  다 쓰고보니 내가 짝사랑 했던 그 남자를 엄청 미워하는 것처럼 썼지만, 사실 나와 그 사람 사이에도 즐거웠던 일이 꽤 있었다. 옛날엔 죽도록 미웠던 적도 있긴 하지만, 지금은 하나도 안 밉다. 심지어 어릴 때 경험해봄직한 사건을 만들어 줘서 고마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어쩌면 이건 내 인생 전체로 볼 때 엄청 건전한 경험이었으니까.

 

  당시 꽤 친했던 우리 둘이 했던 별거 아닌 귀여웠던 행동들이 조금씩 기억났다. 이 영화 덕분에 완전히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내 어린 시절을 다시 추억할 수 있었다. (세상에!! 내가 이 사건에 대해 추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날이 올 줄이야!!!)

 

  하지만 못내 또  그냥 친구 사이로만 알도록 내가 처신을 잘 했다면 덜 비극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또 했다. 수백 수천번 했던 그 후회를. 그런데 또 다시 생각해보면 만약 친한 친구사이로만 남았다면 나는 아마 이 영화속 엠마처럼 10년 20년이 지나도록 짝사랑만 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 2014년을 기점으로 그런 후회 조차도 안하기로 다짐했다. 아주 아주 오래전 일 일 뿐이다. 벌써 내 나이가 32살이니까.

 

 

P.S 두 남녀 주인공 비주얼이 요 근래 본 영화 중 최고라서, 인물 보는 재미가 상당하다. 앤 헤서웨이야 워낙 유명하니 말 안해도 될 거 같고, 짐 스터지스라는 남자 배우 역시 깍아놓은 것 같은 진짜 진짜 미남이다.  만약에 배두나랑 사귀는 게 진짜라면 나는 그 둘이 헤어지기 전까지는 배두나를 저주할 거 같다. 제발 거짓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