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으로의 워크샵

일상 2013. 6. 30. 00:10

블로그에도 썼지만, 우리 회사가 부산에 지사를 만들었다. 우리 회사랑 관련있는 국가 기관이 모두 다 부산으로 이전을 하는 터라... 우리 회사 뿐 아니고 이 업계는 아예 부산으로 이전을 하거나 이전은 못해도 다들 지사는 만들고 있는 분위기다. 

그래도 난 죽어도 부산으로 안갈거야. 

집 밖에서 자는 건 언제나 피곤한 일이다. 그리고 전에 이제나 저제나 난 이 회사에서 탈출하련다. 하는 마인드로 일할 때는 나는 술자리에 끼지 않아도 되고, 모든 직원에게 친절하지 않아도 됐다.

물론 지금도 난 모든 직원에게 친절하지 않고 싫어하는 직원 앞에서는 벌써 표정부터 변하지만, 적어도 술자리는 예전 회사에 비한다면 내 수준에서는 할 수 있는 수준까지 하고 있다. 

정말 친한 사람 무리들과 술을 마셔본 지가 언젠지 기억이 안나서 내 술버릇은 잘 모르겠지만, 나도 술을 마시면 목소리가 커지는걸까? 목소리 커지고 자기들끼리 신나서 박수치는 걸 보면 나는 정말 고독하고 괴리감이 느껴지고 그런다. 나는 아무래도 여러 사람 속에 섞일 수 없는 성격인걸까. 

예전에 어떤 트위터에서 그런 자리에서 어떤 남자가 옆에 와서 "재미 없죠" 라고 말해주면 반할 것 같다고 한 걸 봤는데 나 역시도. 그 무리들 사이에서 얼마나 외롭고 재미가 없었는지 모른다. 


나는 민감한 이야기를 들어도 그냥 웃는 성격도 아니고, 깍듯하게 인사하지도 못하고, 또 상냥하지도 않은데 이번 술자리에서 돌려서 말하긴 하지만 나를 겨냥해서 다른 팀장이 하는 설교를 듣고 있었는데 나는 못알아듣는 척 했다. 그리고 아무리 술을 마셨다고 한들 둘다 결혼했는데 그 분이 다른 분께 너무 추근덕 거리시는 것 같아서 그 자리가 너무 불편했다. 그러면서 누구씨는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줘서 너무 좋아. 이러는데 난 그런 게 농담인 것 같지 않던데. 


부산 사람들의 부산부심을 듣는데도 너무 지쳤다. 나는 뭐 서울부심도 웃기지만, 부산 사람들의 말도 안되는 부산 자부심이 너무 불편하다. 서울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경계심도 웃기고. (모든 부산 사람이 그러는 건 아니지만, 부산이 그렇게 좋고 서울이 싫으면 그냥 부산에서 계속 사시지) 사투리도 싫고. 여하튼 결론은 부산이 싫다는 거다. 부산이 외국도 아닌데 음식도 너무 맛없어서 솔직히 많이 남겼다. 


우리 회사 사장님이 장어를 너무 좋아해서 회식 때마다 장어집을 가는데 솔직히 말하면 장어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음식 중 하나다. 전라북도 가서 장어 먹어보긴 했는데 그건 그래도 양념이 제대로 되어 있어서 좀 먹었는데 부산에서 먹은 장어는 정말 내 인생 최악의 음식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 장어가 부산에서 엄청 유명한 집이래. 그런 장어가 맛있는 장어인 줄 아는 부산 사람들이 불쌍할 지경이다. 아 정말 사장님 장어 좀 그만 먹으면 안되나. 장어 정말 싫다. 근데 보통 장어 하는 집은 장어 이외 다른 음식을 하지도 않아서 밑반찬으로 나오는 것만 깨작 거리도 오고 그런다. 


요즘 사장님이 경제 신문 기사를 요약해서 가져다 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몇 페이지 읽었는데, 헛웃음이 났다. 이런 생각으로 내가 직장생활을 하니까 힘이 든건지 모르겠는데, 나는 경영학 자체가 모두 허구라고 생각한다. 경제기사나 경영학 서적을 보면 전체를 요약하면 솔직히 한 줄이면 되는 거고, 다 당연한 말만 한다. 이번 워크샵에서도 그런 당연한 소리만 듣고 왔다. 


그래도 성과라면 몇 년만에 비행기 타본 거? 김포-김해 왕복하니 한 40분 걸리든데 쾌적하고 좋더라. 국내선은 처음 타봤다. 기류 때문에 좀 멀미하고, 피곤해서 비행기 안에서 자고 싶었는데 거의 잠도 못잤다. 하루만 쉬고 내일 또 출근이라고 생각하니 몸이 엄청 피곤하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아서 타이레놀을 먹었는데도 나아지지 않고.


다음주 목요일 오후 반차 냈는데 난 야구보려고 휴가냈는데 아무래도 비가 와서 못볼 것 같네. 기아 타이거즈가 계속 5위 굳히기로 가고 있어서 좀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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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의 사진을 공개하는 건 내가 내 무덤을 파는 것이나 다름없는 줄 알면서도, 워크샵때 일어난 일련의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선 이 사진만큼 적절한 것이 없기에 공개한다.
옆에보이는 저 쭈그려 자고 있는 인물은 여러분들도 예상하셨다시피 본인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런 사진이 찍혔는가. 그렇다. 난 워크샵을 갔던 금요일 밤 술에 완전히 취해서 화장실 앞에서 잤다. (왼쪽에 조금 열린 문이 화장실 문 임)
  우리회사는 그닥 큰 회사가 아니라서 숙소를 좋은 곳을 잡지 못했는데 뭐 자는 곳이야 그렇다치고 금요일날 4시간 넘게 행사가 있었던 '실내'는 말이 실내지, 사람들이 물을 바닥에 흘리니 그 자리에서 그대로 얼어버리는 그야말로 바깥 보다 못한 실내였다. 진짜로 발이 얼어서 죽는 줄 알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부장님의 동물적 센스로 인해 우리팀은 워크샵 행사에 참가 안하고 주관하는 쪽으로 빠지게 되었는데 그 때문에 뮤지컬이나 난타 마임 탈춤 등 다른 사람들이 하는 초큼 민망한 행사에 다 열외로 빠질 수 있었다.

  금요일 행사가 다 끝나고  술을 마셨는데, 솔직히 말하면 난 어느자리에서고 술 못마셔서 고생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감사하게도 난 우리 집안의 나름 탁월한 알콜분해효소를 타고났기 때문이다. (알콜분해효소와 함께 술을 사랑하는 마음도 타고났다. 헐)
  1차로 식당에서 팀끼리 술을 적당히 마시고 방으로 왔는데, 우리 방은 사원급만 5명이서 쓰게 되어 있어서 그나마 맘이 편했고, 또 다들 나랑 친한 선배들이랑 방을 같이 쓰게 되서 난 매우 만족하면서, '우리 다른 방에서 안부르면 그냥 나가지 말고 씻고 윤도현의 러브레터나 보다가 잠들어요. 호호호!!!' 하고 짝짜쿵 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왠걸. 우리 팀 최고 주당인 대리님께서 바로 전화를 하셔선 당장 내려오라고 하시는 거다.(대리급들 방은 밑에 층 이었음) 거깃다 그 대리님은 대학 선배이기 까지. 이미 1차에서 나를 '자기~~ ' 라고 부르시며 옆에 끼고 연거푸 쏘맥을 들이키라고 강요하셨던 대리님이셨다. 아아. 맞다. 예전에 '난 니가 탐나' 비법을 알려주신 대리님이라고 말하면 편하겠구나. 워낙 대리님 성격이 호탕하고 웃기기까지 하셔서 내가 좀 따르는 분이라.. 안내려가기도 뭐했다.
  이미 1차에서 그 대리님이 쏘맥을 직접 제조해서 주시며 원샷 원샷을 외치셨고, 내가 좀 끊어 마시니까 "식도를 열고! 한번에 원샷!" 라고 뭐라 하신 상태였고, 내려가서도 날 옆에다 앉히고 컵 없으니까 아쉬운대로 커피잔에라도 마시라면서 손잡이 달린 커피잔에 계속 쏘맥을 주시는거다.

  난 순수하게 술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술자리는 별로 즐기질 않아서 대학 내내 쏘맥을 마셔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내 주변도 쏘맥 마시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솔직히 말하면 쏘맥은 소주와 맥주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한다. 진짜로.
  또한 이제까지 10명이상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남자가 없었던 적도 한번도 없었다. 친구들이랑 마실때 많아야 3명이지 여자 10명이서 미친듯 술을 마시는 시츄에이션은 평소 때 만들기 힘든 시츄에이션 아닌가.
 도저히 못 마시겠다고 도망도 가봤지만 결국엔 발을 잡고 질질 끌려와서 술을 마셨는데 심지어 내가 옷장안에 숨으려고 까지 했댄다.(본인은 기억 안남) 그때 난 이미 적어도 소주 2병 맥주 3병 이상을 섞어마신 상태였다.
이 다음부터 필름이 끊긴 것 같은데, 지금 상태에서 기억나는 상황을 말하자면.

  더 이상 못 마시겠다고 아예 현관문을 열고 뛰쳐나옴 - 술을 깨야겠다고 생각하고 야외 주차장을 두바퀴 걸음 - 그래도 술이 안 깨서 로비에 있는 쇼파에 앉으려다 강하게 엉덩방아 - 전화함 - 전화 내용 기억 안남 - 전화하고 엘리베이터 타고 내 방으로 돌아감 - 어쩌다 화장실 앞에서 자게 되었는지 기억 안남 - 화장실에다 두차례 토함 - 지쳐 잠듬.

  일단 취중에도 내 방을 제대로 찾아간건 칭찬해줄만 하다. 취한 기분에 다시 그 술판이 벌어지는 방으로 들어갔음 진짜 큰일날 뻔 했지. 그 술판은 새벽 4시경 끝났다는데 4시에 돌아와보니 내가 위에 보이는 사진 처럼 화장실 앞에서 자고 있었다는 거다. 더욱 충격적인 건 내가 토하느라고 입과 머리는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있고 나머지 목부터는 방바닥에 있었다는 건데, 다행이다. 그 사진은 안 찍혔다. ;; 근데 이 사진을 찍은 분들 진짜 야속한 게 날 아침까지 저 상태로 내버려 두었다는 것이다. 자기들은 방안에서 이불 덮고 자고 나는 화장실 앞에서 자다가 너무 추워서 아침에 깼다. 흑. 내가 도대체 왜 나를 그대로 두신 거냐고 뭐라고 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웃겨서' 였다. 아니 웃겨서라니!!!!!!!

  토요일에 일어나서도 나는 속이 미식거려서 밥 한 술 못먹었는데, 토요일에 저 진짜 미칠 것 같다고 말했더니만 어제 뛰쳐나갈 때 '겉보기에는' 지극히 정상이었댄다. 절대 정상이 아니었는데. 또 하나의 실수는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토를 했다는 건데 이것 때문에 같이 마신 사람들이 다 내가 '술 엄청 마시고도 멀쩡한 애' 로 낙인이 찍혀버렸다.

  뭐 술병이 나고, 쏘맥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진 것과 나중에 또 술을 엄청 마실 가능성이 높아진 것 이걸 다 제쳐두고라도 사실 진짜 큰일은 따로 있다. 위에서 강조한 것으로 예상하셨겠지만, 저 전화가 문제다. 왜 전화를 그 오빠한테 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아니 도대체 왜 예전에 사귀던 사람한테도 안하고, 죽도록 좋아했던 사람한테도 안하던 짓을 도대체 왜 한 건지!!!! 여기서 말한 그 오빠는 힘든 일 있음 매일 상담해준다는 그 오빠인데. 토요일 아침에 밥을 못 먹겠어서 충주호 주변을 혼자 산책하다가 불현듯 내가 어제 전화한 게 꿈이었나 아니었나 긴가 민가 해서 전화목록을 봤더니 떡하니 그 분 이름 세글자와 함께 새벽 1시 58분 이 찍혀 있는 거 아닌가. 거기에 전화도 짧게 한 것도 아니고 14분 09초 씩이나.

  토요일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걸 어떻게 하나 하다가 '그래 그냥 아예 기억 안나는 척 하는거야!' 라고 마음을 굳힌지 5분도 안되서 결국 궁금한 마음에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한거냐고 전화로 물어봤는데, 한동안은 얘기를 안해주다가 저번주 금요일에서야 그 답을 들었다. 일단 그 당시 나는 4개의 문장을 무한 반복했고. (무려 14분 동안이나) 막판에는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만 계속 하다가 끊었다는데, 그 말을 그 분에게 들으면서 얼굴이 어찌나 화끈 거리든지.
  거기에 한 편으로는 그 분이 무슨 말을 듣고 싶어하는 지 뻔히 아는데 취중에서까지 미안하단말만 되풀이 한 것 때문에 미안해져버렸다. (헉. 미안한게 또 미안해져버렸네) 하긴, 미안하단 말 듣는게 얼마나 짜증나는 건지 아는 나는 맨정신에선 미안하단 말을 한 번도 안했지.
 
  웃기는 건 이정도 했음 좀 쪽팔리고 어색해질만도 한데 결국 또 그 분과는 예전 그 상태로 그대로 돌아왔다는 거다. 역시 우리 둘이 그 분이 원하는 대로 더이상 발전하지 못하는 장애물은 너무 편해서인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그 분과 이제 약 7주간은 연락을 못하게 되었다. 7주동안 있어보면 결판이 날 지도 모르겠다. 허전할 수도 있고,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을 수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