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7/08/13 (일) 산본



  결혼한 친구네 동네 놀러갔다 왔다. 한동안 운전을 제대로 안해서, 운전연습 좀 할 겸 차를 가져갔는데, 주차하는데 너무 오래걸렸다. 군포에 새로 연  반디앤루니스 구경하면서 친구 기다렸는데 서가가 예뻐서 좋았다. 진열도 예쁘고.



  친구가 주머니에 그림 그려줬다. 옷에 그릴 수 있는 크레파스 같은 게 있다는데, 친구 솜씨가 좋다. 친구는 아기 옷에도 저런 식으로 직접 그림 그려서 입히곤 한단다. 참 귀여운 취미다. 전에 내가 좋아하는 완두콩인형이라고 사진 보냈더니 주머니에 그려줬다. 정신승리라고 해도 하는 수 없지만, 진짜 내 마음 이해해주는 건 이 친구 뿐이다. 오랜만에 대화다운 대화를 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운전은 웬만해선 까먹지 않을 것 같다. 연습을 해야 한다는 압박은 이제 안 갖기로 했다. 운전 한 번하면 대중교통 불편하다든데 난 전혀 안 그렇다. 이 날 주차장 자리 한 20분 기다리는데 차 안에서 혼자 지겨워 죽는 줄 알았다.


2. 2017/08/19 (토) 예술의 전당-모리스 드 블라맹크 展



  내가 좋아하는 블로그 주인이 이 전시회 좋다고 해서 좀 가고 싶었는데 마침 누가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갔다. 아... 하지만 정말 예술의 전당 우리집에서 너무나 멀었다. 예전에는 어떻게 그렇게 자주 예술의 전당에 간 건지, 과거의 나 정말 대단했다.  난 솔직히 모리스 드 블라맹크 누군지도 몰랐다.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그림들 좋았다. 여름에 겨울 풍경 보니 영화 렛미인 봤을 때처럼 청량한 기분이 들었다. 그림마다 화가가 직접 쓴 글이 있어서 따로 오디오 가이드 없이 봤다. 전시회 다보고 마지막에 빔프로젝터로 그림 체험하는 곳 있는데, 오. 엄청 신기하고 재밌었다. 나 막 대형붓으로 칠하는 것도 다 하나하나 해봤다. 도록이 생각보다 싸서 2만원 주고 사왔는데, 집에와서 설명은 하나도 안 읽고 그림만 한번 쭉 다시 보고 책꽂이에 고이 꽂아놓았다. 아마 영원히 안 읽을 듯.


3. 2017/08/20 (일) 카페



  자유공원에서 내려오는 길에 많은 카페가 있는데, 그중 식민지 시절 일본 가옥을 개조해서 만든 좀 유명한 카페가 있다. 겨울에 실컷 걷다가 집에 오는 길에 혼자 이 카페에서 뜨거운 차 한잔 마시면 그렇게 기분이 좋아지곤 했는데... 이날은 배가 고파서 카페에 갔고, 혼자 앉아서 체호프의 '지루한 이야기'를 읽었다. 옆에 백합이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다신 6월과 같은 상태가 되지 않으려고 죽도록 노력 중이고 꽤 효과가 있다. 내가 하는 노력이라고 해봤자 독서, 음악듣기, 산책이지만, 이 세 가지만 충실히 해도 그 지경까지는 안 가는 것 같다.


4. 2017/08/25 (금) 세종문화회관



  친구 아는 사람이 연주회를 하는데 자리 좀 채워달라고 부탁했다고 해서 나도 따라갔다. 친구랑 종로에 어떤 건물 들어가서 저녁 먹는데, 그 건물의 세련됨에 너무나 놀라버렸다. 나랑 친구는 시골쥐가 되어 도시 체험하는 느낌이었다. 아... 종로 사람들은 퇴근하고 이런 데서 저녁먹고 데이트하고 그러는구나... 라고 생각하니 부러웠다. 내가 있는 가산디지털단지는 삭막 그 자체에 매력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고, 친구 회사 있는 상일동은 여기 서울 맞나? 싶을 정도로 시골인데. (상일동 친구네 회사 갔을 때 친구랑 설렁탕 먹으러 갔는데 식당이 비닐하우스였다. 맛은 있었지만... )

  세종문화회관 지나만 다니고, 처음 들어갔다. 그런데 나 광화문 광장 지나갈 때마다 느끼는건데, 아무리 세종대왕이 대단한 사람이긴 하지만, 세종대왕 동상 인간적으로 너무 경관 해치고 있다는 생각 들지 않나? 뒤에 있는 궁전이랑 능선 너무 예술인데, 중간에 세종대왕이 떡하니 버티고 있어서 볼 때마다 짜증 난다. 그냥 아무것도 없고 궁만 보이면 훨씬 예쁠 텐데.

  연주회는 플루트 연주회였는데, 내가 아는 곡이 단 한 곡도 없었다. 연주회장에 한 15명 밖에 없어서 나까지 좀 당황스러웠고 발시려워 죽는 줄 알았다. 그리고 아무리 연주회 횟수 채우느라 하는 연주회지만, 너무 성의가 없었다. 나 그렇게 주름 자글자글한 드레스 입고 집에서 대충 묶은 머리로 연주하는 연주자 처음 봤다. 큰 감동은 없었지만 졸리진 않았다. 곡이 좋아서 졸리지 않았던 건 아니고 너무 추워서 도저히 잘 수가 없었다.


5. 2017/08/26 (토) 당산-종로3가




  결혼식 때문에 당산에 갔다가 벼르고 벼르던 엄마 시계 수리를 맡겼다. 오*가 시계 치곤 싼 모델일 것 같지만, 엄마가 결혼할 때 산 시계라 안 고치고 있긴 너무 아까웠다.  책에서 본 시계명장이 운영하는 시계방을 찾아갔는데, 그 시계방이 위치한 상가와 이름이 같은 빌딩이 있어서 엄청 헤맸다. (난 당연히 그 빌딩일 줄 알고 거기로 찾아감) 인사동에서부터 종로성당까지 정말 어찌나 열심히 걸었는지. 거기까지 갔는데 시계방 문 닫아서 못 고칠까봐 너무 초조했다. 사장님이 시계상태 보더니 너무 심각하다고 꼭 고쳐야겠냐고 하셨지만, 그냥 고쳐달라고 했다. 무사히 시계 맡기고 다시 지하철 역으로 가는데 멀리 보이는 종묘에 마음이 끌려, 샌들 신어 발이 어마어마하게 아픈데도 들어갔다.

  날씨가 아름다웠고, 조선의 왕과 왕비가 죽어 누워있는 곳을 혼자 걷다보니 기분이 묘했다.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장소는 분리된 곳인 거 같다. 그날 종묘 바깥에서는 시위 때문에 엄청 시끄러웠는데, 종묘 안으로 딱 들어가니 어찌나 고요하든지. 도저히 같은 서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6.2017/09/02 다시 종묘



  시계 찾으러 일주일 후 다시 종묘에 갔다. 시계 수리비는 15만원 나왔다. 예전 배터리 교체한 곳에서 부품 하나 잃어버린 것 같다고, 스위스에도 없는 부품이라 수리비가 많이 나왔다고 하셨다. 사장님이 이거  비싼 시계도 아닌데 괜히 돈 쓴단 식으로 자꾸 말씀하셔서 좀 민망했다. 뭐.. 그 사장님이 보는 시계는 다 몇백몇천만 원짜리 시계일 테니.. 내가 가진 시계가 엄청 우스웠겠지.

  일주일 지나 또 종묘를 찾았는데, 9월이라고 확실히 햇빛이 한풀 꺽였더라. 좀 슬펐다. 그렇게 덥더니 물러갈 때가 되니 언제 그랬냐는 듯 그냥 더위가 갔다. 올 여름은 참 신사적이었다. 더울 때 확 덥다, 미련없이 가버렸다.

  혼자 종묘 걸으며, 작년 여름을 떠올렸다. 엄마가 수술실에서 나왔던 직후, 수술 후 항암 때문에 입원하셨던 모습, 퇴근하고 병원으로 가던 밤과 그 길, 차가웠던 공기, 퇴근하고 집에 오면 바닥에 수북했던 엄마의 머리카락... 인과관계도 없이 시간 순서도 없이 마구잡이로 끼워진 사진첩을 보듯 장면 하나 하나가 머리 속에 떠올랐다 사라지곤 했다. 그래, 6월에 힘들었지만, 올 여름은 작년보다는 살만한 여름이었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여행 때문에 영어 공부를 좀 해야할 것 같아서 영어학원에 등록했다. 학원비가 어마어마했지만, 억지로라도 외출할 이유 만들기 위해선 학원만한 데도 없겠지 싶어서 그냥 등록했다. 내가 다닐 때 계셨던 선생님은 당연히 안계셨다. 루크 선생님 진짜 좋아했는데... 어디로 가셨을까. 3개월 할부로 12개월을 등록했다. 그래서 앞으로 3개월 동안 거지같이 돈 아끼며 살아야만 한다. 돈 아깝지 않게 다시 영어 공부 열심히 해야지. 레벨테스트했는데 꼴찌 등급 나왔다. 문법도 겨우 50점 맞았다.



지난 여름 휴가 마지막 날에는 혼자 예술의 전당에 가서 오르세미술관전을 봤다. 평일이라서 사람이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평일인데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운이 좋게 큐레이터가 설명해주는 시간에 맞춰 도착하여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으며 볼 수 있었다. 미술에 대해 아는 게 없는 나에게는 더없이 좋은 설명이었다. 고흐가 굉장히 인텔리전트 했다는 얘기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혼자 미술관 간 건 처음이었는데 혼자 가는 묘미가 있었다. 그림을 더 열심히 볼 수도 있고 생각도 좀 할 수 있고. 다음에도 또 혼자 가고 싶은 마음이 있다.
버스에서 내려서 예술의 전당으로 걸어가는데 외제차가 빨리 지나가라고 열라게 빵빵거려 완전히 잡쳤던 기분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이번 여름을 돌이켜보면 비만 온 것 같다. 내가 간 날도 역시 비가 오다말다 하는 날씨였는데 반바지에 낮은 웨지힐을 신고 갔는데 그조차도 너무 허리에 무리가 가고 아팠다.
가장 좋았던 그림은 역시 저 위에 포스터에도 나온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에" 였다. 대부분이 저 그림 보러 온 거 아니었을까? 그 그림 앞에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옛날에 가로등도 없던 시절에 밤 풍경을 그리기 위하여 고흐는 밀집모자에 촛농으로 초를 고정해놓고 떨어지는 촛농을 맞으면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또 고흐는 찢어지게 가난한 와중에서도 물감만은 최고급으로 사용했는데, 그래서 지금까지도 그 화려한 색감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것이라고 큐레이터가 설명해줬다.
고흐 그림에 이끌려서 간 전시회지만 밀레와 드가의 그림도 참 예뻤다.
미술에 대해 쥐뿔 아는 것도 없으면서 괜히 유식해진 기분도 들고 내가 점점 외로운 게 어떤 느낌인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되어가는 느낌이 들어서 우울하기도 했다. 배고파서 9200번 버스안에서 소세지를 먹으면서 DMB 로 기아타이거즈 야구를 보면서 한밤중에 집에 도착했고, 그 다음날 아무 사건도 없었던 휴가를 마무리 짓고 출근을 하였다.

이제서 새삼스럽게 올리기 좀 민망하지만 일본여행을 다녀온 다음날 우리가족은 그래도 명절인데 어디 가야하지 않겠냐 싶어서 예술의 전당에 갔다.

우리 친척들은(특히 친가) 명절이 되어도 가족들끼리 복작보작 모이거나 몇시간을 걸려서라도 귀향 하는 일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다들 성격이 비슷비슷해서 꺼려하는 분위기랄까? 혹시 만나도 딱 점심한끼 같이 하고 말지 그 집에서 자고 먹을 것 해먹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명절증후군도 없고 우리가족 역시 명절 연휴는 연휴 내내 늘어지게 잠자고 쉬고 그러는거다. 그렇다고 친척들이랑 원수지고 사는 것도 아니고 다만 성격의 차이일 뿐이다. 우리 엄마는 처음에 이런 게 다들 너무 차갑게들 지내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 했다는데, 솔직히 난 이게 훨씬 합리적이고 좋다고 생각한다. 20년 넘게 이런 집안 문화에 길들여진 나로서는 친척들이 다 둘러앉아서 음식하고 TV 보고 얘기하고 하는게 왠지 끔찍하고 싫다. 얼마나 불편해.;;

우리가 갔던 날 예술의 전당에서는 칸딘스키와 러시아 거장전 이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생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칸딘스키라. 전시회 제목만 보면 칸딘스키 그림이 엄청 많을 것 같지만 그냥 러시아 거장전 이라고 하는 게 나을 뻔 했다. 다른 작가들 그림이 훨씬 많았다.

생전 처음 보는 러시아 그림을 보니 러시아에 한번 가고 싶어졌다. 여러 작가들이 각기 다른 그림을 그렸음에도 모든 그림에 뚜렷하게 나타나는 음침한 색감이 인상적이었다. 고흐 그림처럼 태양이 작열하는 느낌이 나는 그림은 거의 없었다. 여름을 그리고 아무리 화려한 색을 썼어도 약간 어두워 보였다. 단순한 난 러시아 춥긴 진짜 추운가보다. 이런 생각을 했다.

저번에 미국애들이 러시아를 도저히 눈뜨고는 못봐줄 정도로 싫어하는 이유는 러시아한테 문화적 열등감이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작가로만 봐도 그렇다. 톨스토이, 푸쉬킨,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 안톤 체홉♡ 을 비롯한 러시아의 쟁쟁한 작가들과 비교해본다면 솔직히 뼈속까지 미국인이라 할 수 있는 굉장한 작가가 누가 있나. (그리고 미국애들은 '백경'을 굉장한 문학작품으로 포장하던데 난 읽으려다 너무 재미 없어서 포기했다) 음악도 그렇고 영화에서도 영화의 이해 같은 입문서를 펼쳐보면 러시아 감독이 많으니까. 거깃다 나 역시 러시아 하면 왠지 닥터 지바고 생각나고 왠지 낭만적일 거 같고 그런데 미국 하면 과장하기 좋아하는 놈들. 깊이 없는 놈들. 심지어 뿌리 없는 놈들. 이런 생각만 든단 말이다. (인디안이나 흑인 각 민족에 대해서는 아니지만 미국이라는 나라 전체를 볼 때)
아 미국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미국 애들이 스타워즈에 죽고 못사는 것은 미국인 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미국만의 설화나 이야기가 없고 그 자리를 스타워즈가 대체해서라는 주장도 어디서 봤다. 미국이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건 그들만의 특이한 정서가 없기 때문아닐까? 또한 난 미국이 그렇게 죽고못사는 스타워즈도 재미가 하나도 없던데. 돈주고 보라고 그래도 시간 아까워서 보기 싫을 정도.

이번 전시회를 보면서 러시아의 정서가 고스란히 그림에 담겨져 있는 것 같아 신기했다.
내가 가장 좋았던 그림은 바로 밑의 그림인데 이미 몇가지 색을 안 썼고 형태도 매우 간결하지만 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허해지고 쓸쓸하고 그랬다. 그래서 엽서도 샀는데 불행히도 난 작가이름도 그림이름도 벌써 기억이 안난다. 집에서 블로그 하게 되면 작가명하고 이름도 붙여 놓겠다.;;겨울과 관련된 제목이었던 것 같은데. (이 죽일놈의 아이큐)
그 전시장에서 봤던 인상적인 문구 는 (정확하진 않지만) '나쁜 평화가 뜻있는 전쟁보다 항상 낫다.'(러시아 속담) 라는 문구다. 전쟁 그림 위에 붙여져 있던 문구인데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혹시 더 궁금하시다면 http://www.2007kandinsky.com 을 방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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