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의 숲

위로 2010. 7. 23.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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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원작만화는 안봤지만, 우연히 케이블에서 해주는 걸 봤다. 난 그림을 엄청 잘 그리는 애니메이션이 좋다. 이누야샤 같이.
요즘 일본 애니메이션 그림체 트랜드는 대충 그린 듯한 거던데(시간을 달리는 소녀도 그랬어), 이건 뭐 원작 만화가 있어서 그렇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림체는 내가 원하는 그림체는 아니다. (난 좀 더 스펙터클하고 잘 그리는게 좋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애니메이션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아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인거 치고는 '열등감'에 대한 묘사가 너무 생생하기 때문이다.
부잣집에 피아노를 하기 위한 모든 걸 아낌없이 지원받는 슈헤이. 홀어머니 아래에서 가난하게 살지만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 카이.
마지막 콩쿠르에서 슈헤이가 '카이 난 널 절대 이길 수 없어. 니 연주를 처음 들었을 때 부터 알고 있었어.'
라고 말하며 혼자 우는 장면에는 감정이입이 심하게 된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안될 걸 알고 있으면서도 아닐거라고 계속 외면하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는 경험은 누구나 다 있기 때문에 그런거라 생각한다.
나쁜 사람도 한명도 안나오고, 시종 일관 좋은 피아노 연주도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나처럼 우연히 TV에서 '걸려서' 시청하게 된다면 딱 기분 좋을 애니메이션 이었다.



I stand alone.

일상 2008. 12. 28. 00:54

원래는 혐오스런 케이양의 일생이라고 포스팅 제목을 지으려다가 참았다. 지금은 밤 12시 43분이 넘은 시간 보통 회사에서 포스팅 할때와는 달리 이 시간에 포스팅을 하면 그 다음날 일어나서 봤을 때 심히 부끄러운 포스팅이 될 것이 틀림 없는데.. 그래도 어제 밤에 3시까지 뒤척거리면서 한 생각을 그냥 묻어두긴 억울해서 이렇게 쓴다.

어제 밤에는 1시반에 누웠는데 너무 추워서 제대로 잠을 못잤다. 어제 날씨가 춥긴 추웠나보다. 오늘 일어나보니 찬 공기 맞으며 자서 그런지 기침을 조금 하기 시작했다. 우리집이 그렇게 추운 집이 아닌데..

히사시 조 앨범을 멜론에서 다운 받았는데 다른 곡은 뭐 다 너무 영화음악스러워서 그저 그랬지만 i stand alone 이라는 곡은 꽤 좋아서 따로 분류해서 듣고 있다. 네이버에 치니까 어떤 분이 올려놓은 게 있던데 내 파일은 DCF 파일이라 여기에 올려도 들을 수가 없으니 첨부는 같이 못하겠다. (궁금하신 분은 한번 들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
노래가 좋아서 새벽에 혼자 계속 그 음악을 듣고 있는데  waiting for you eternally 라는 부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일본사람이 영어로 가사 붙여서 그런지 가사도 무진장 쉽다. 내가 알아들을 정도면 뭐 말 다했죠.

이건 평소 때도 너무 내 열등감을 드러내놓는 거라 말 안하고 버티고 있었던 건데 어제밤에는 심각하게 내가 왜 2005년 이후로 애인이 없는가에 대해 곰곰히 생각을 해 보았다.
뭐 가장 큰 원인으로는 저번 블로그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논했던 어떤 사람 때문임이 크다. 뭐 블로그 뿐 아니라 그 해 다이어리도 지금 보면 온통 그 사람 얘기. 크크크. 내가 진짜 맛이 가긴 갔었지. 근데 또 전적으로 그 사람 때문이라고 말하긴 좀 뭐하다. 그 사람이 뭐 나한테 피해준 건 없으니까. 어찌되었든 난 그 사람때문에 말할 수 없이 큰 상처를 입었다. 가장 큰 상처로 꼽자면,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가 내가 좋아하는 것 만큼 좋아해줄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수렴한다. 이 생각이 거의 굳혀 졌다는 거다.
이게 참 신기한게 그 사람이 나한테 너 진짜 싫어. 이런 얘기를 한마디도 한 것이 아닌데 (오히려 저 반대의 말을 들었으면 들었지) 모든 사건이 지나가고 난 뒤에 드는 생각은 이상하게 저 생각 뿐이었다. 말로는 내 잘못이 아니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모든 게 다 내 탓이라고 생각을 했고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그 쪽에서는 아무런 제스쳐도 아무런 마음도 없는데 나혼자 막 열렬히 사모하는데 상대방 반응이 뜨뜻미지근 하니까 혼자 실망하고 그 실망이 진짜 너무 극에 달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블로그고 다이어리고 모두 그 사람과 관련된 얘기로 도배된 건 그 미치고 팔짝 뛰겠는 그 감정을 어떻게 주체할 수가 없어서 그랬나보다. 뭐 심신이 건강한 사람은 그런 마음 조차 긍정적 에너지로 승화시키거나 다른 무언가를 하면서 잊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같은 사람은 그게 참 어려웠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날 좋아해주지 않는다는 것 이게 괴로움의 근원이었다. 이건 진짜 답이 없는 문제 아닌가? 그냥 자존심이 상하면 너도 그 인간을 봐도 그만 안봐도 그만 하든가. 계속 괴로울 자신이 있으면 계속 얼굴이라도 보여줍쇼. 하고 옆에서 붙어있던가 이 둘중 하나였는데 한동안은 난 가끔이라도 얼굴 보는 것 만으로도 감사합니다. 하고 옆에 붙어 있으려고 다짐을 했다. 정말 미련한 생각이었지만 그렇게 몇 년을 있다보면 언젠가는 나를 한번 쳐다봐주지 않을까? 하는 그 허황된 기대가 날 버티게 만들었다. 근데 쿨하게 내가 필요하면 날 찾아줘 베이붸. 이런 태도가 아니었다는 것이 문제다. 애초에 약간 애정결핍적 성향이 있는 나는 그렇게 어른 스럽게 옆에 있질 못했다.
생각해보면 참 여자가 그렇게 남자한테 그렇게 노골적으로 나는 당신이 좋아 미치겠다고 표현하기도 참 어려운 건데 자존심도 뭣도 없이 참 열심히도 매달렸던 것 같다. 내가 남자였어도 아마 그 당시 나 처럼 그렇게 매달리면 좋다가도 싫어지겠다. 이제와서는 다 이해가 간다. 지금 같아선 약 2년간 참고 지켜봐준 그 사람한테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라고 상패라도 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근데 나한테 정말 화가나는 건 알고 지낸 2년동안 한 거라곤 만나서 밥먹기, 차마시기, 얘기하기 이정도 밖에 없었던 사람을, 사귀기는 커녕 손 잡은 횟수도 손에 꼽는 그 사람을 왜 아직도 못 잊냐. 이거다. 이건 정말 인정하기 싫어서 한번도 얘기 안한건데, 이제 거의 안본지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어떻게 어떻게 하루에 한번씩은 꼭 생각이 나느냐 이거다. 그 사람을 어떨까? 이렇게 생각하고 저렇게 생각해도 나 따위는 아마 그 일이 있고 나서 1개월 정도도 안되서 다 잊었을걸.
그 일은 말이다. 이제와서 말이지만, 내가 썼던 블로그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그 사람이 읽고 있었다는 사건이다. 이것도 뭐 블로그를 전체공개로 버젓이 다 쓰고 있었던 내 잘못이지. 그리고 오는 사람이 정말 적었던 탓에 찌질한 내 감정까지도 너무 솔직하게 다 써버렸다. 당연히 욕도 있었고 모든 사건을 내 입장에서 해석한 말도 안되는 억지 투성이였다. 그런 내용을 당사자가 낱낱이 몇개월동안 다 읽고 있었다고 생각을 하니 내가 아무리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자존심 다 접고 들어갔대지만, 다시는 얼굴을 못볼 것 같았고 실제로 우리 둘은 진짜 지저분하게 끝을 맞았다.
 
웃기는 건 그 사건이 있기 바로 전 만났을 때는 분명 날 좋아한다고 말했다. 아니 그 이전에도 한 두번은 날 좋아한다고 말을 했다. 그런데 나랑 사귀지는 않았다. 그러면서 서로 애인 없이 만나길 2년. 그리고 우리는 끝이 났다. 뭐 애인사이였다고 말하기도 뭐하고 그냥 일방적으로 나혼자서만 좋아하다가 그냥 끝났다고. 대학 때부터 졸업해서 둘 다 취직해서도 가끔 얼굴보고 1시간 넘게 전화만 하다가 끝이 났다고. 그 사람이 어디 취직했다고 나한테 말했고 난 변변한 직업 구해보겠다고 면접이나 보다가 그냥 끝이 났다.

그 사람이 나한테 좋다고 말한 건 진심이 단 1g 이라도 섞인 말이었을까? 진짜 그렇게 2년동안 날 옆에서 지켜보면서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냥 부르면 바로 나오고 전화하면 바로 받고, 문자 보내면 답문 꼭 해주고 그냥 그런 애? 나한테만 말하는 거라고 했던 건 진짜로 그랬던걸까? 자기 편 들어주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고 했던 말도 그냥 옆에 묶어두려고 말해본거야 아니면은 진짜였던거야. 그리고 진짜 너무 궁금한 건 앞으로 나랑 계속 그렇게 지낼 생각이었던 걸까?

이렇게 묻고 싶은 말이 아직도 너무 많다. 그리고 2년동안 그렇게 진짜 하늘에 맹새코 단 한순간도 생각치 않은 적이 없고, 기도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사람과 끝끝내 끝이나고보니 앞으로도 영원히 어떤 남자를 좋아해도 그놈의 끝 때문에 뭘 시작을 못하겠다. 아니 못하다기 보다는 그냥 시작하고싶은 마음 조차도 생기질 않는다. 그냥 열등감만 더 심해졌을 뿐이다.
궁금한 건 언제까지 나의 이런 상태가 지속될지 모르겠다는 거다. 뭐 복수라고 표현하긴 거창하지만, 내가 더욱 현명하고 똑똑하다면 그런 일이나 남자 따위 다 묻고 한번에 다 잊고 보란듯이 잘 살았어야 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난 아직도 매일 생각이 난다고. 이렇게 말도 안되는 경우가 어디있냐고.

이정도로 집착하는 내가 진짜 어제 새벽에는 혐오스러워서 견딜수가 없어서 또 좀 울었다. 근데 예전 같으면 엉엉 울었는데 어제는 진짜 조금 찔끔거리는 정도였다. 이제 한 2년 지나면 울지 않을 정도가 되려나. 모르겠다. 모르겠어. 이런 상태로 누군가를 만나는 건 불가능하다. 불가능해.일단 상대방이 날 좋아할 거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를 않는다고. 근데 난 술 안취했는데도 이정도 글이 나온다. 참나.


열등감 폭발

일상 2008. 3. 1. 23:31


어제는 한달동안 못보고 있었던 그 사람을 만났다. 오랜만이었다. 연락하기 어려웠을 한달동안에도 틈날 때마다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보내던 사람이었다. 그럴 때마다 보고 싶지 않냐고 물었지만, 난 한번도 보고 싶다고 말하지 못했다. 사실이 그랬다. 거짓말이라도 보고 싶다고 말할 수 있었지만, 그런 질문에 거짓말로 답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난 진짜 보고 싶으면 보고 싶냐고 묻기 전에 내가 먼저 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니까. 생각해보니 예전에 내가 좋아했던 사람한테는 보고 싶다는 말을 잘도 했다. 지금 나한테 말하는 오빠처럼 나 역시도 '나도 보고싶다.' 라는 말을 한번도 듣지 못했다.

2005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이다. 그리고 2005년부터 한번도 변함없이 날 좋아해준 사람이었다. 2005년에는 내가 누굴 진짜로 좋아해본 적이 없었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끊임없이 거절당하는 것이 얼마나 지치고 힘든 일인지 전혀 상상조차 못하는 그런 뭣 모르는 사람에 불과했다.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잔인하게 거절을 하고, 다신 만나지 말자고 말했으나, 그럼 그냥 친구로라도 지내자. 는 말에 알겠다고 말하고 이제까지 제일 친한 사이로 지내오던 사람이었다. 그 사이 난 누군가를 좋아했고, 그걸 뻔히 다 보고 알고 있으면서도 한번도 내 곁에서 떠나지 않았고, 화 한번 내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벌을 받았는지 2년 남짓한 시간동안 진심으로 좋아했던 그 사람한테 끝내 난 거절을 당했고, 누군가를 혼자 좋아하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건지 어느정도는 알게 되었다. 예전에 날 좋아해줬던 사람한테 했던 나의 싸가지 없는 행태에 대해서도 많이 반성을 했고, 나 따위를 좋아해주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제대로 깨달은 또 한가지는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방식이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애정결핍에서 비롯된 건지, 아니면 내내 혼자 좋아해서 그런건지, 나란 인간이 원래 그런건지 하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만약에 누군가가 내가 했던 방식 그대로 날 좋아한다면 나 역시도 오 마이 갓을 외치며 도망갔을 지 모른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일단 내가 좋아한다고 말하는 순간 상대방은 나한테서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거다. 의문이라는 표현은 좀 어색하다. 요즘에는 이 의문이 점점 확신으로 굳혀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색은 안하고 있지만, 내가 생각보다 남자들한테 사랑받기 힘든 인간이구나. 라는 생각도 이젠 거의 확신 단계로 가고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이런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그나마 내가 자신감을 회복하는 방법은 무식하게도 그래 그렇다면 아무도 안좋아하면 되잖아. 이거였다. 실제로도 이렇게 생각을 하고나니 알고지내던 남자들한테도 미련이 없어졌고, 더이상 다른 남자를 만나고 싶지도 않았고, 예전의 상처를 극복하는 것에도 도움이 되는 듯 보였다.

감정의 문제로 고민하는 것 자체가 사치로 여겨지는 요즘이었다. 그냥 회사에서 하루 제대로 보내면 다행이었다. 다른 건 하나도 필요하지 않았다. 내가 사랑받지 못해서 괴로운 건 생각도 안날만큼 지겹고 구질구질한 일상이 계속되고 있었다. 한 달전에는 50% 이상 결심을 굳힌 상태였다. 한 달 후에 이 사람이 돌아오면 내가 먼저 손을 내밀기로. 어떻게 말을 할 지까지 생각해놓은 상태였다.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해서는 아니었다. 단지 이젠 벌써 2008년인데 2년이 넘었는데 이 상태로 받기만 하고 있는 건 너무  양심불량 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젠 누굴 좋아할 용기도 없고 마음도 없기 때문에 그렇다면 그냥 날 진심으로 좋아해주는 사람이랑 함께 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첫월급을 탔다면서 저녁을 사주고 차를 마시는 데 어쩌다보니 서로 알고 있으면서도 말 안하고 있던 문제에 그 사람이 먼저 말하기 시작했다. ("=" : 내가 말하는 부분)

- 이번 년도에는 진짜 누가되었든지 사귀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어.
= 아. 그래?
- 이젠 정말 외로워.
= 오빤 내가 아직도 좋아?
- 응.
= 진짜 뭐 여자로서 좋고 그런거야? 아니..신기한게. 내가 그런 감정을 느끼기엔 힘든 인물 아닌가..
- 내가 널 진심으로 안좋아한다면 이렇게 고민할 이유가 없지. 그냥 사귀고 아니면 말면 되니까.
= 오빠 난 요즘에 뭐 누굴 사귀고 싶고 뭐 남자 만나고 싶고 그런 생각이 아예 안든다. 그냥 다 귀찮아. 근데 오빠가 보기에도 난 앞으로 남자 만날 일이 아예 없을 것 같지?
- 그건 그래. 솔직히 말하면 너 나 아니면 다른 대안이 없다니까.
= (웃으며) 그..그런가. 근데 이제부터 나 남자 진짜 많이 사귀겠다 작정하고 남자 만나도 안될까?
- 안되지. 아니. 그게 니가 못생기고 매력이 없고 그래서 그렇다는 게 아니라.. 니 성격에 그런 게 될 것 같냐?
= 하긴.
- 그냥 요즘에는 고민중이야. 난.. 니가 날 안좋아한다는 걸 알거든.
= (쥬스 마시다가) 컥.
- 예전에는 니가 날 하나도 안좋아해도 상관없다고 생각을 했는데, 지금 이 상태로 널 사귀어도 되는걸까.. 니가 날 하나도 안 좋아하는 걸 이렇게 뻔히 알고 느끼고 있는데.
= 쥬스가 안넘어가네.
- 근데 난 요즘에는 그냥 니가 나 아닌 다른 남자라도 만나고 사귀고 그랬으면 좋겠어.
= 그..그래?
- 너 그대로 가다간 진짜로 아무도 못만나고 사귀지도 못하고 결혼도 못할 것 같거든.
= 사실.. 오빠 나.. 앞으로 결국 아무도 안좋아할 것 같고 뭐 사귀지도 않을 것 같고 그래서 그냥 오빠랑 사귈까 생각을 했다. 그냥 사귀다보면 좋아지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 나도 똑같은 생각을 했는데.. 얘가 그래도 사귀다보면 날 좀 좋아해주지 않을까. 하는. 근데 그렇다고 사귀고보자고 하기에는 너무 위험이 크잖아. 그러다 헤어지면 이제 앞으로 못볼텐데.


너무 시간이 늦어서 결론을 못내고 집에 오는 길에 내 머릿속을 맴돌았던 말은 이젠 나 아니어도 되니까 다른 사람이라도 만났으면 좋겠다. 라는 이 말이었다. 난 아직 26살이고 뭐 설마 앞으로 내 연애라이프가 이렇게 끝이 나겠냐고 생각도 하고 주변에 애인 없는 사람이 있는 사람보다 훨씬 많으니까. 라고 생각하면서 별로 내 상황에 대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뭐 사실 지금 하루가 지난 상태에서는 또 대수롭지 않은 생각이 들지만.  
어제밤에는 갑자기 내가 앞으로 정말로 아무도 좋아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언제는 아무도 안 좋아하겠다고 결심했으면서 말이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연애가 끝나고 내 다시는 연애 안한다. 라고 결심을 했는데 (그러면서 또 결혼은 한다고 말했음) 진짜로 난 연애를 다시는 못하고 있다.  근데 또 결심한 것 처럼 진짜 아무도 좋아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드니까 별안간 두려워지고 서러웠다.

내가 결심은 했다고 말은 했지만, 연애를 한번도 안하겠다는 것도 누군가를 절대 좋아하지 않겠다는 것도 다 거짓말이다. 그냥 못하고 있는 걸 들키기 싫어서 안하고 있다고 앞으로도 안하겠다고 둘러대는 것 뿐이다. 또 '사귀다보면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건 나한텐 해당되지 않는다는 걸 아주 오래 전에 깨달았다. 그렇다고 그냥 끝내기엔 뭔가 미련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이게 바로 내가 그렇게 욕해마지않던 사귀기는 싫고 그렇다고 보내기는 싫은 사람 곁에다 두고 못살게 구는 행위 아닌가. 

이 모든게 내 자신에 대해 자신감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은데 문제는 자신감을 복구할 방법이 아직까지는 뭔지 모르겠다는 거다. 자신감 문제가 아니라면 너무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본다는 게 문젠데. 이런 건 그냥 단순한 상처가 아니고 이미 오랜시간 굳혀진 생활태도 중 하나라 시간이 지난다고 해도 해결할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답답하고 다시 또 두려워졌다.

P.S 월요일 아침 - 어제 밤 새벽 1시까지 친구와 통화를 했는데,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내 친구 말로는 나만 그런게 아니랜다. 크크큭. 모두들 마찬가지란 얘기. 하하핫.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