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연시 내가 했던 일을 쓰느라 좀 길어질 것 같지만, 그래도 정리하는 의미에서.

 

12월 24일 월요일 종로

대부분은 이 날 휴가를 내고 4일 연속의 연휴를 즐겼다. 나는 휴가를 낼 수 있는 부서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고 휴가를 내도 할 일도 없고 나중에 일본여행 갈 때 연차가 부족할 수 있는 여러 상황 때문에 그냥 나와서 일 했다. 대신에 5시부터 출근 준비를 해서 5시 반 땡 하자마자 퇴근을 했다. (빨리 한다고 했는데 내가 우리 팀 일등 퇴근자가 아니었다.) 5시 반에 충무로에서 출발하니 6시가 되기 이전에 시청역 앞 광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6시에 시청 앞 루체비스타가 켜지는데 날이 날이니만큼 사람들이 엄청 많았고 난 그 인파들 가운데 혼자 서 있었다. 얼마간 그 주위를 혼자 맴돌았는데, 우울할 수 있는 상황인데 생각보다 기분이 좋았다. 그 날은 월급날이기도 했고, 누군가를 만나고 싶지도 않았고. 뭐 하지만 6시 넘어서는 혼자가 아니었다. 명동을 갔는데 아마 그때 당시 대한민국에서 인구밀도가 제일 높았을지도 모른다.

 

12월 25일 화요일 백화점

휴일이니만큼 난 그냥 집에서 쉬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약속이 없기도 했고. 24일이 월급날이고 이틀 뒤가 내 생일이니 나에게 뭔가 선물을 사야겠다 결심하고 백화점에 갔다. 사람이 별로 없었다. 하긴, 크리스마스에 그런 일상적인 곳에 올 사람이 별로 없겠지. 가서 맘에 드는 바지와 니트를 샀다. 바지에서 좀 무리를 했다. 정말 맘에 들긴 했지만, 내가 가진 바지 중 제일 비쌌다. 원래는 좀 여성스러운 원피스 같은 거 사려고 갔는데, 한 번 입어보고 그냥 맘에 들어서 그만 백화점 갈 때 모르고 핸드폰을 안 가지고 갔는데 들어와서

엄마 나 핸드폰 놓고 갔지? 물어봤더니 엄마께서 말씀하시길.

. 문자 하나 안 오더라.

하하하하하하.. 확인해보니 엄마 말이 진짜였다.

 

12월 27일 목요일 내 생일

그냥 평소와 똑 같은 날이었다. 집에 가서 부모님과 함께 했다.

 

12월 28일 금요일 종무식

사옥이 없어서 그럴 가능성이 최고 높지만 우리회사는 공장에서 종무식을 한다. 흠. 하긴 공장 인원이 본사 인원보다 많기도 하고. 회사 행사가 싫은 게 아니다. 그냥 공장까지 차를 타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 싫은 거다. 행사가 끝나면 충무로로 오고 나는 충무로에서 다시 한 시간 반 동안 차 타고 집에 가는 거 자체가 너무 피곤해서. 그 날은 행사가 끝나고 나니 비가 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충무로에서 다시 집으로 오는 게 싫어서 그냥 그 동네 터미널에서 인천 시외버스를 타고 왔다. 시외버스나 고속버스를 타면 고등학교 때 엄마랑 헤어져 살았을 때, 자취하면서 전주 갔던 일 이 생각나서 우울해진다. 특히 밤에 버스를 타면.. 예전에 어떤 게시판에서 어떤 대학생 여자가 집에 내려갔다가 버스 타고 자취방으로 들어오는 과정을 써 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밤에 자취방으로 뛰어가면서 우는 것으로 끝이 나는데, 그냥 일반인일 뿐인 그 여자가 글을 너무 잘 써놓은 바람에 게시판 글 보면서 나도 덩달아 운 적이 있다. (뛰어가면서 우는 상황이 어찌 보면 굉장히 코믹하지만) 나 역시 터미널에서 내려서 엄마가 싸준 음식을 낑낑대면서 들고 오랫동안 보일러를 틀지 않아 냉골 같은 방으로 혼자 기어들어간 그 날 밤은 항상 울다가 잠들었던 것 같은데.

 

12월 31일 월요일 고흐전

12월 31일은 왠 일로 우리회사에서 쉬게 해줘서 쉴 수 있었다.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라 생각하고 고흐 전에 갔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예술가들이 남겨놓은 작품 중 가장 좋은 작품을 내놓는 시기는 항상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아닐까. 원래 내가 느꼈던 감동이나 생각을 전달하는 것에는 잼병이라 표현을 제대로 못하겠지만, 틀림없이 멋진 그림들이었다. 역시 난 넘치는 기쁨을 표현한 작품보다는 슬픔이나 고뇌 등을 잊기 위해 혹은 위로 받기 위한 작품에 더 끌리는 것 같다 노래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그림도 역시 마찬가지다. 궁지에 몰려서 유일하게 이것 이외에는 달리 이겨낼 방도가 없을 때 나온 작품들, 한마디로 말하면 처절함 이 느껴지는 것 들 말이다.

 

1월 1일 화요일 목욕재계

나는 원래 뜨거운 방이나 뜨거운 물에 들어가서 견디는 것을 잘 못한다. 찜질방에 한번도 못 가봤지만, 안 갔다고 표현해도 괜찮을 듯 하다. 목욕탕도 안가고 온천도 그닥 끌리지 않는다. 근데 1월 1일에는 욕조에 물을 받아서 꾹 참고 들어가서 앉아있다가 나와서 목욕을 깨끗하게 했다. 4일간의 연휴가 끝나고 회사에 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웠지만, 어찌되었든 2008년이 되었고 이젠 26살이 되어서 뭔가 새로 시작한다는 기분을 내고 싶었기 때문에. (그래놓고 고작 한 것이 집에서 혼자 목욕하기 다. 크큭)

 

1월 2일 수요일 연말정산

생전 처음으로 하는 연말정산이라 아예 개념이 잡히질 않았다. 1월 2일에 전 직장 이상형 과장님께 전화한 이야기는 이미 썼으니.. 넘어가도 될 듯 하고.

 

1월 3일 목요일 비법전수

7년 동안 남자친구가 없다는 대리님이 남자친구가 무려 5명이나 된다는 친구에게 도대체 비법이 뭐냐고 물어봤는데 한가지 비법을 알아왔다면서 나한테 얘기해주시는 거다. 그 비법은 우선 1. 남자들이 많이 가는 모임에 간다.  2. 괜찮은 남자를 찾는다.  3. 전화번호를 받는다.  4. 그날 밤 잠들기 전에 나는 니가 탐나. 라는 문자를 보낸다. 이거 였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푸하하하하. 하고 웃는데, 대리님께서는 야 진짜래 진짜. 이렇게 하면 남자들이 반응이 온대. 이모티콘은 넣지 말고 진짜 딱 저렇게 나는 니가 탐나. 이렇게 도발적으로 하면 된다고 그랬다니까. 라고 하시는 거다. 나는 니가 탐나. 라니!

 

1월 4일 금요일 소개팅

저번에 친구가 외국으로 파견 나가는 남자도 괜찮냐고 물어봤을 때 지나가는 말로 괜찮아 괜찮아 다 괜찮아.라고 말을 했는데 갑자기 친구가 소개팅을 하라는 거다. . 진짜로 하는 거였어? 라고 물어봤더니 그럼 진짜지. 라면서 결국 약속이 잡혀버렸다. 이번에는 저번처럼 한참 얘기하고 있는데 내가 타는 버스 왔다고 그냥 버스 타고 가버리는 바보 같은 행동도 안 했는데, 그냥 끝나버렸다. 서로 오늘 즐거웠어요. 라는 예의 상 하는 문자 하나씩만 주고 받고. 흐흐. 흠.. 소개팅을 이제 딱 두 번 했지만, 이게 참 웃긴 거 같다. 그래도 3시간이면 꽤 긴 시간 아닌가? 그동안 이런 저런 말 해놓고 다시는 안보는 거 자체가 좀 웃긴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또 한가지 깨달은 게 난 뭐 외롭다 어쩌다 해도 결국 아직은 남자 사귈 생각이 없다는 거. 그냥 억지로 사귈 필요는 없는 것 같다는 거지. 그나저나 이번 소개팅에서 위에 말한 비법이나 한번 써 먹어볼걸 그랬나.

 

1월 9일 수요일 비극적인 현실

친구가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다고 말했다. 여러 사람이 있는 사진을 봤을 때 난 엇 이사람이지! 하고 딱 알아 맞췄다. 그냥 딱 봐도 그 친구가 좋아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문제는 여러 정황 상 저번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딱 짝사랑인 것 같다는 거다. 짝사랑 경험자로서 속상했다. 그 친구는 2월부터 5월까지 인도로 현장실습을 간다. 걔네 회사는 좋은 회사라.. 태국 가고 싶었는데 인도 걸렸다고 우울해 하고 있었다. 수요일 근무시간에 걔랑 채팅을 하는데 그 오빠도 인도 걸렸단 소문을 들었다는 거다. 난 혼자 흥분해선 왠일이야! 그럼 인도가서 매일 보는거야? 진짜 매일?  잘하면 잘될 수도 있겠다~~!!!!! 라면서 난리를 쳤다. 근데 그 친구는 요 며칠 상황을 봐선 도저히 안될 것 같아서 그냥 인도가서 정리나 해야겠다. 했는데 이게 뭐냐면서 진짜 빨리 맘정리 해야겠다고 말을 하는 거다. 예전의 나 같았음 포기하긴 이르다 면서 독려할텐데, 어떤 상황에서는 그냥 맘정리 해버리는 게 덜 상처 받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서 오히려 너한텐 그게 좋을 수 있겠다고 말했다. 만약에 이 상황이 영화라면 중간에 그 남자가 여자가 인도로 실습가는 소문을 듣고 자기도 인도로 간다고 말을 한다든지 하는 러블리한 장면이 있겠지.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거..  좋아하는 사람을 집 떠나서 매일 보는 거 어떻게 보면 엄청 괴로운 상황 일텐데 친구가 지혜롭게 대처했으면 좋겠다.

 


이 이외에 요즘 회사에서 여러 복잡한 일들이 있었다. 이거는 나중에 따로 정리해야 할 듯싶다. 솔직히 말하면 요즘 진정한 위기가 왔다. 위태위태하다. 내 자신이. 새해부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버티자. 일단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