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봄봄봄 2편

일상 2017. 5. 23. 13:02

  4월~5월 동안 많은 일이 있었는데 일기를 미루다 보니, 이제 별로 기억나는 일이 없다. 다 별일 아니었나보다. 우선 기억나는 일들만.


 1. 절약 (이어서)

  재작년에 짤린 회사는 직원들 의식수준이 너무 수준이 낮아서 그렇지 임금은 지금보다 높았다. 당시에는 내가 이 험하고 드러운 꼴 참는 대가로 이 돈 받는다 생각도 했다. 근데 그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랬던건지,쓰기도 엄청나게 많이 썼다.

  그런데 지금은 월급이 워낙 적다 보니 조금이라도 원래 수준에서 벗어난 돈을 쓰면 한 몇개월은 혹독한 절약을 해야만 한다.

  평생 부족하게 살아왔으니 절약하는게 큰 어려움은 아닌데, 친구네 집 갔다온 뒤로 좀 처량한 기분이 들었다. 친구 월급 얼마인지 아예 관심도 없다가 그 날 이후, 인터넷에 친구네 회사 연봉 검색해보고는 너무 높아서 깜짝 놀랐다.  동생에게 이 얘기하니 큰 회사는 다들 그 정도 받는댄다. 다시 한번 내가 모르는 세계는 어마어마 하구나 싶었다. 비겁하게 친구 연봉 몰래 검색하고 놀라고 부러워한 게 스스로 좀 속물 같아서 우울해졌다.


2. 비둘기

  여름을 앞두고 에어컨을 수리했다. 우리집 에어컨은 순전히 비둘기똥 때문에 고장났다. 실외기에 매일 같이 앉아서 똥만 싸대는 비둘기놈들 때문에 실외기 부품이 부식되어 버린 것. 심지어 그 부품 교체비가 25만원이나 되서 작년에는 수리도 못하고 그냥 덥고 더운 여름을 보냈다.

  나는 여름마다 실외기에 앉은 비둘기놈들 울음 소리에 단잠을 깼고, 베란다 문을 열고 컴퓨터를 하는 계절에는 내 컴퓨터 바로 옆에서 똥싸며 날개를 푸드덕 거리는 비둘기를 진심으로 증오했다. 하지만 이 지독한 비둘기들은 내가 아무리 부지런히 쫓아내도 10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우리집 실외기에 앉아있곤 했다. 똥냄새는 또 어찌나 심한지. 나에게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동물이 무어냐 물으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비둘기' 라고 답할 것이다.

  부품교체를 하기 직전에는 비둘기 두마리가 쉴새없이 우리집 실외기에 왔고 급기야 실외기 주변에 둥지를 틀고 알낳고 부화까지 했다. 내가 너무 싫어하는 비둘기와 동거까지 하게 된 것이다. 결국 난 더 참지 못하고 실외기 수리하면서 실외기 주변에 어떻게든 비둘기가 다시는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자고 했다.

  부랴부랴 A/S 를 예약했고, 평일 엄마아빠만 집에 계실 때 실외기 부품 교체가 진행되었는데, 이미 다 큰 우리집 실외기 비둘기가 자기 둥지 주변에 사람이 왔다갔다 하는데도 꼼짝도 안하더란다. 실외기 교체해야하니 빨리 날아가라고 별 짓을 다해도 그 비둘기는 멀뚱멀뚱 사람만 쳐다보고 있어, 결국 하는 수 없이 A/S기사님이 밀어 떨어뜨렸더니 그제서야 날아갔다고 한다.

  자기가 무슨 카이저 소제도 아니고, 그렇게 못 나는 척을 하며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끝까지 실외기에 버티고 있다니. 안그래도 싫어하는 비둘기를 더 싫어하게 됐다.


3. 동생집

  동생이 이사한 뒤로, 엄마가 동생집에 한번도 가보지 못하여 성남에 갔다. 나는 안가고 싶었는데 엄마가 너도 가야한다고 하도 그래서 생리 이튿날이라 아파 죽겠는 몸을 이끌고 갔다. 결국 동생네 집 침구에 피만 잔뜩 묻혀서 이불이랑 요를 인천으로 다 들고 와야 했다. 아 정말 죽을 맛이었다. 이번달에 생리통도 유난히 심했고.

  우리 엄마는 예전에 동생 군대 갔을 때도, 당시 출근만 하면 자살충동 날 정도로 회사 생활에 지쳐있던 나를 한 달에 한번씩 죽어도 동생 부대 면회에 데려가서 미칠 노릇이었다. 면회가서도 뭐 두시간 있다오는게 아니라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 9시에 부대 도착해서 저녁 5시까지 좋지도 않은 부대 면회실 딱딱하고 추운 의자에 앉아있다 왔다. 거기 한번 갔다오면 머리가 너무 아파서 타이레놀만 4알을 먹고 별 짓을 다했는데. 진짜 지금 생각해도 이건 엄마 너무 원망스럽다.

  동생은 다른 한국 남자들 대부분이 그렇듯 본인이 군생활 잘한게 인생 최고의 자랑거리인데, 나는 동생이 군대 얘기하면 너 군생활 하는 동안 엄마가 한달에 한번씩 면회와서 하루 8시간 있다 가셨단 말 꼭 하라고 덧붙인다.

  나중에 동생이 결혼하여 며느리될 사람이 우리 엄마의 끔찍한 아들 사랑을 알면 좀 무서울 것 같아서 엄마한테 제발 좀 그만 좀 하라고 해도 도저히 제어가 안되는 모양이다.

   연휴동안 찾은 동생네집이 위치 대비 월세가 엄청 싼 편이었는데, 집안 꼴을 보니 동생이 좀 불쌍하기도 했다. 바로 아래는 노래방이라 엄청 시끄럽고, 동생방은 참 덥고 축축하고 어두웠다. 솔직히 나보고 거기 살라고 하면 도저히 못살 것 같았다. 그런데 아무리 남자라도 그렇지 집이 지저분해도 너무 지저분했다. 책상이 너무 어지러져 내 안경 올려놓을 작은 자리 조차 없었다. 정말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아무리 성별이 다르다지만, 어쩜 이렇게 남매가 다른지. 걔네집에서 1박 2일 동안, 집안을 정리하고 청소하고 싶은 맘을 억누르느라 힘들었다. 대체 어떻게 그러고 사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4. 꽃

  올 봄에 확실히 깨달은 게 있다. 난 꽃을 너무 좋아한다. 우울할 때도 꽃을 볼 수 있음에 금새 기분이 좋아진다. 이제 봄이 지나 벌써 여름이 되어 좀 아쉽다. 여름에도 꽃이 피긴 하지만, 봄만큼 다양하게 피진 않으니.


나의 가치

일상 2012. 6. 10. 00:22

나는 전체적으로는 평균이하의 사람이다. 저번에는 블로그에 중위권에서도 상위권이라고 개소리를 늘어놨지만, 4년제 졸업 초임보다도 훨씬 못한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6년차 직장인이고, 대한민국 평균여성보다 키도 작고. 하여튼 그렇다.

나는 친한 친구에게는 다정한 친구고, 남자친구가 생기면 언제든지 그 남자친구를 걱정해주는 여자친구도 되어줄 수 있고, 남동생한테도 돈도 가끔 준다. 엄마한테도 용돈을 줘야지 하는 생각을 항상 하고는 있다. 쥐꼬리 같은 월급 때문에 그렇게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난 솔직히 어쩔 때 보면 진짜 괜찮은 사람인데. 사회에서의 나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난 졸업할 때 우리과에서 성적도 5등이었고, 대학생 때 안자려고 서서 공부하면서 시험보고 그랬는데. 아 근데 이정도 노력은 누구나 하는건가? 난 그런데 정말 열심히 살았다. 오늘 이력서 본 사장도 그런 말 했어. 열심히 살았다고. 근데 손에 쥔 게 하나도 없잖아.

난 솔직히 월급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전에도 말했지만, 아 일하기 싫어서 죽고 싶을 지경이라는 생각이 안든다면 괜찮다. 8월 계약만료가 돌아오고, 2010년 4개월간의 백수 경험을 볼 때, 난 기본적으로 계속 집에만 있으면 우울해지는 성격이고... 또 죽어라 워커홀릭처럼 일하다가 40대 되도록 결혼 못한 여자들 처럼 되고 싶지는 않아서인지 적당히 여가 즐기면서 일은 그냥 내인생의 부수입 같이 일하고 싶다. 별로 돈욕심도 없는 편이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오늘 면접 본 여의도에 있는 그 곳이 제시한 연봉은 정말 한숨나는 수준이었는데, 또 가만히 생각해보면 난 내가 졸업한 후에 모든 경력을 다 쓸모없이 만들고 싶으니까. (다신 그 경력을 살려서 취직하고 싶지 않다) 4년제 대학 졸업해서 처음 받는 돈이라고 생각하면 뭐 괜찮은 연봉인거 같기도 하고. 나이 서른인데. 근데 또 다시 이력서 쓰고 말도 안되는 소리만 늘어놔야 하는 면접을 또 봐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물가는 계속 올라가는데 그 연봉으로 나 혼자만의 생활을 유지하는 건 어림도 없다. 그런데 뭐 당분간은 내가 월세를 얻어서 혼자 살아야 하는 건 아니고. 그런 자리라도 붙들고 있어야 하는 건가 싶고. 아 젠장. 고민이 깊어지는 밤이다. 수요일까지 답변 주기로 했는데. 

나랑 사려깊게 이런 얘기를 해주는 연장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고민상담처럼 말이다. 그런데 또 난 가만보면 주변사람들에게 고민상담을 잘 하지도 못하는 성격이고, 또 내 주변 사람들은 해답을 주는 사람들도 아니고. 하긴, 뭐 이런 문제에 해답이 있을 리가 없잖아. 내일 교회가서 기도라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