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연시 내가 했던 일을 쓰느라 좀 길어질 것 같지만, 그래도 정리하는 의미에서.
12월 24일 월요일 – 종로
대부분은 이 날 휴가를 내고 4일 연속의 연휴를 즐겼다. 나는 휴가를 낼 수 있는 부서에서 일하는 것도 아니고 휴가를 내도 할 일도 없고 나중에 일본여행 갈 때 연차가 부족할 수 있는 여러 상황 때문에 그냥 나와서 일 했다. 대신에
12월 25일 화요일 – 백화점
휴일이니만큼 난 그냥 집에서 쉬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약속이 없기도 했고. 24일이 월급날이고 이틀 뒤가 내 생일이니 나에게 뭔가 선물을 사야겠다 결심하고 백화점에 갔다. 사람이 별로 없었다. 하긴, 크리스마스에 그런 일상적인 곳에 올 사람이 별로 없겠지. 가서 맘에 드는 바지와 니트를 샀다. 바지에서 좀 무리를 했다. 정말 맘에 들긴 했지만, 내가 가진 바지 중 제일 비쌌다. 원래는 좀 여성스러운 원피스 같은 거 사려고 갔는데, 한 번 입어보고 그냥 맘에 들어서 그만… 백화점 갈 때 모르고 핸드폰을 안 가지고 갔는데 들어와서
“엄마 나 핸드폰 놓고 갔지?” 물어봤더니 엄마께서 말씀하시길.
“야. 문자 하나 안 오더라.”
하하하하하하.. 확인해보니 엄마 말이 진짜였다.
12월 27일 목요일 – 내 생일
그냥 평소와 똑 같은 날이었다. 집에 가서 부모님과 함께 했다.
12월 28일 금요일 – 종무식
사옥이 없어서 그럴 가능성이 최고 높지만 우리회사는 공장에서 종무식을 한다. 흠. 하긴 공장 인원이 본사 인원보다 많기도 하고. 회사 행사가 싫은 게 아니다. 그냥 공장까지 차를 타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 싫은 거다. 행사가 끝나면 충무로로 오고 나는 충무로에서 다시 한 시간 반 동안 차 타고 집에 가는 거 자체가 너무 피곤해서. 그 날은 행사가 끝나고 나니 비가 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충무로에서 다시 집으로 오는 게 싫어서 그냥 그 동네 터미널에서 인천 시외버스를 타고 왔다. 시외버스나 고속버스를 타면 고등학교 때 엄마랑 헤어져 살았을 때, 자취하면서 전주 갔던 일 이 생각나서 우울해진다. 특히 밤에 버스를 타면.. 예전에 어떤 게시판에서 어떤 대학생 여자가 집에 내려갔다가 버스 타고 자취방으로 들어오는 과정을 써 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밤에 자취방으로 뛰어가면서 우는 것으로 끝이 나는데, 그냥 일반인일 뿐인 그 여자가 글을 너무 잘 써놓은 바람에 게시판 글 보면서 나도 덩달아 운 적이 있다. (뛰어가면서 우는 상황이 어찌 보면 굉장히 코믹하지만) 나 역시 터미널에서 내려서 엄마가 싸준 음식을 낑낑대면서 들고 오랫동안 보일러를 틀지 않아 냉골 같은 방으로 혼자 기어들어간 그 날 밤은 항상 울다가 잠들었던 것 같은데.
12월 31일 월요일 – 고흐전
12월 31일은 왠 일로 우리회사에서 쉬게 해줘서 쉴 수 있었다.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라 생각하고 고흐 전에 갔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예술가들이 남겨놓은 작품 중 가장 좋은 작품을 내놓는 시기는 항상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아닐까. 원래 내가 느꼈던 감동이나 생각을 전달하는 것에는 잼병이라 표현을 제대로 못하겠지만, 틀림없이 멋진 그림들이었다. 역시 난 넘치는 기쁨을 표현한 작품보다는 슬픔이나 고뇌 등을 잊기 위해 혹은 위로 받기 위한 작품에 더 끌리는 것 같다 노래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그림도 역시 마찬가지다. 궁지에 몰려서 유일하게 이것 이외에는 달리 이겨낼 방도가 없을 때 나온 작품들, 한마디로 말하면 ‘처절함’ 이 느껴지는 것 들 말이다.
1월 1일 화요일 – 목욕재계
나는 원래 뜨거운 방이나 뜨거운 물에 들어가서 견디는 것을 잘 못한다. 찜질방에 한번도 못 가봤지만, 안 갔다고 표현해도 괜찮을 듯 하다. 목욕탕도 안가고 온천도 그닥 끌리지 않는다. 근데 1월 1일에는 욕조에 물을 받아서 꾹 참고 들어가서 앉아있다가 나와서 목욕을 깨끗하게 했다. 4일간의 연휴가 끝나고 회사에 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웠지만, 어찌되었든 2008년이 되었고 이젠 26살이 되어서 뭔가 새로 시작한다는 기분을 내고 싶었기 때문에. (그래놓고 고작 한 것이 ‘집에서 혼자 목욕하기’ 다. 크큭)
1월 2일 수요일 – 연말정산
생전 처음으로 하는 연말정산이라 아예 개념이 잡히질 않았다. 1월 2일에 전 직장 이상형 과장님께 전화한 이야기는 이미 썼으니.. 넘어가도 될 듯 하고.
1월 3일 목요일 – 비법전수
7년 동안 남자친구가 없다는 대리님이 남자친구가 무려 5명이나 된다는 친구에게 도대체 비법이 뭐냐고 물어봤는데 한가지 비법을 알아왔다면서 나한테 얘기해주시는 거다. 그 비법은 우선 1. 남자들이 많이 가는 모임에 간다. 2. 괜찮은 남자를 찾는다. 3. 전화번호를 받는다. 4. 그날 밤 잠들기 전에 ‘나는 니가 탐나.’ 라는 문자를 보낸다. 이거 였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푸하하하하. 하고 웃는데, 대리님께서는 “야 진짜래 진짜. 이렇게 하면 남자들이 반응이 온대. 이모티콘은 넣지 말고 진짜 딱 저렇게 나는 니가 탐나. 이렇게 도발적으로 하면 된다고 그랬다니까.” 라고 하시는 거다. 나는 니가 탐나. 라니!
1월 4일 금요일 – 소개팅
저번에 친구가 외국으로 파견 나가는 남자도 괜찮냐고 물어봤을 때 지나가는 말로 “괜찮아 괜찮아 다 괜찮아.”라고 말을 했는데 갑자기 친구가 소개팅을 하라는 거다. “헉. 진짜로 하는 거였어?” 라고 물어봤더니 “그럼 진짜지.” 라면서 결국 약속이 잡혀버렸다. 이번에는 저번처럼 한참 얘기하고 있는데 내가 타는 버스 왔다고 그냥 버스 타고 가버리는 바보 같은 행동도 안 했는데, 그냥 끝나버렸다. 서로 오늘 즐거웠어요. 라는 예의 상 하는 문자 하나씩만 주고 받고. 흐흐. 흠.. 소개팅을 이제 딱 두 번 했지만, 이게 참 웃긴 거 같다. 그래도 3시간이면 꽤 긴 시간 아닌가? 그동안 이런 저런 말 해놓고 다시는 안보는 거 자체가 좀 웃긴 것 같기도 하고. 그리고 또 한가지 깨달은 게 난 뭐 외롭다 어쩌다 해도 결국 아직은 남자 사귈 생각이 없다는 거. 그냥 억지로 사귈 필요는 없는 것 같다는 거지. 그나저나 이번 소개팅에서 위에 말한 비법이나 한번 써 먹어볼걸 그랬나.
1월 9일 수요일 – 비극적인 현실
친구가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다고 말했다. 여러 사람이 있는 사진을 봤을 때 난 “엇 이사람이지!” 하고 딱 알아 맞췄다. 그냥 딱 봐도 그 친구가 좋아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문제는 여러 정황 상 저번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딱 짝사랑인 것 같다는 거다. 짝사랑 경험자로서 속상했다. 그 친구는 2월부터 5월까지 인도로 현장실습을 간다. 걔네 회사는 좋은 회사라.. 태국 가고 싶었는데 인도 걸렸다고 우울해 하고 있었다. 수요일 근무시간에 걔랑 채팅을 하는데 그 오빠도 인도 걸렸단 소문을 들었다는 거다. 난 혼자 흥분해선 “왠일이야! 그럼 인도가서 매일 보는거야? 진짜 매일? 잘하면 잘될 수도 있겠다~~!!!!! ” 라면서 난리를 쳤다. 근데 그 친구는 요 며칠 상황을 봐선 도저히 안될 것 같아서 그냥 인도가서 정리나 해야겠다. 했는데 이게 뭐냐면서 진짜 빨리 맘정리 해야겠다고 말을 하는 거다. 예전의 나 같았음 포기하긴 이르다 면서 독려할텐데, 어떤 상황에서는 그냥 맘정리 해버리는 게 덜 상처 받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아서 오히려 너한텐 그게 좋을 수 있겠다고 말했다. 만약에 이 상황이 영화라면 중간에 그 남자가 여자가 인도로 실습가는 소문을 듣고 자기도 인도로 간다고 말을 한다든지 하는 러블리한 장면이 있겠지.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거.. 좋아하는 사람을 집 떠나서 매일 보는 거 어떻게 보면 엄청 괴로운 상황 일텐데 친구가 지혜롭게 대처했으면 좋겠다.
이 이외에 요즘 회사에서 여러 복잡한 일들이 있었다. 이거는 나중에 따로 정리해야 할 듯싶다. 솔직히 말하면 요즘 진정한 위기가 왔다. 위태위태하다. 내 자신이. 새해부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버티자. 일단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