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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후

일상 2013. 9. 29. 23:28

 런던이랑 서울과 시차가 꽤 많이 나서, 나는 런던가서도 한동안은 새벽 5시에 일어나고 한국와서는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루고 그랬다. 저번주에는 3시 쯤에 잠들고, 또 언젠가는 5시까지도 잠을 못자서 회사에 앉아 있기가 정말 힘들었다. 그래서 눈치 안보고 6시반 땡하자마자 일어나서 바로 집으로 갔다. 운전하면서도 어찌나 졸리든지.

 아무래도 다음 주 중에는 꽤 바쁜 일이 기다리고 있던데, 아마 내일은 월요일이니까 회의도 하겠지. 끔찍하다. 휴. 회의 때 또 무슨 소리를 하실 것인가... 

 직장인이 되어서 여행을 가서 좋은 건 딱 하나인 거 같다. 당분간은 아무도 날 못 건든다는 거. 설령 큰 일이 터졌다 해도, 비행기 타고 날아오라고 하진 못할테니까 말이다. 

 어제는 10월 5일에 하는 the killers 콘서트 티켓을 예매했다. 1집만 좋아하는데 가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아무 이유없이 소리를 좀 지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충동적으로 예매했다. 다른 더 좋은 공연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별로 없더군. 프란츠 퍼디난드보다는 그래도 킬러스를 더 좋아하니까. 1집 이외 다른 앨범은 거의 안들었지만, hot fuss 앨범은 1번 부터 끝 곡까지 다 가사 외우니까. 공연 위해서 다른 앨범 찾아듣거나 그러진 말아야지. 

 런던에서 지금 제일 잘 나가는 밴드는 Arctic Monkeys 인 거 같았다. 음악도 많이 나오고 포스터도 많고 TV에도 많이 나오고. 그래서 관심 갖고 들어봤는데 영 별로네. 런던 음식은 지독하게 맛없지만, 아무 음식점을 들어가도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많이 나와서 좋았다. 오래된 앨범인 Ok computer 에 들어있는 곡도 꽤 들었다. 

 그리고 런던에는 잘생긴 남자가 많아서 좋았다. 뭐 그래도 제일 멋진 남자는 아일랜드에서 봤지만. 서양인들 기준에서 그게 잘생긴건지 어쩐지 잘 모르겠지만, 바로 잡지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남자들이 길에 즐비했다. 구경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또, 난 어학연수 가는 애들 대학 때 하나도 안 부러웠고, 오히려 돈 많은 집에서 태어나서 좋겠다. 하는 반감과 조소를 좀 하던 사람이었는데, 처음으로 어학연수 다녀온 애들이 부러웠다. 이런 상황에서 어학 연수 다녀온 애들은 영어 술술 나오겠지 싶어서 말이다. 영국애들은 내 영어 발음을 못알아들었다. 내가 외국 가서 살 건 아니지만, 여행 다닐 때 불편함 없을 정도로는 영어를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사무치게 하고 왔다.

 

 여행 전 더블린에서 딱 하룻밤 자는데, 이걸 넣을까 뺄까 엄청 고민했었다. 그러다 결국 넣었는데 안갔으면 엄청 서운할 뻔 했다. 다녀와서 아일랜드에 관심이 생겨 '슬픈 아일랜드' 라는 책을 읽고 있다. (꽤 재밌다.) 다음에 아일랜드만 다시 가고 싶을 정도다. 

 더블린은 참 멋진 도시인 거 같다. 유네스코에서 문학의 도시로 지정했다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문학"의 도시라니. 엄청 폼난다. 지금 아일랜드는 영어와 더불어 캘틱어를 사용하려고 정부 차원에서 노력 중이라고 한다. 근데 또 이게 애매한 것이, 아일랜드에서 유명한 소설은 다 영어로 쓰였고, 나는 잘 모르지만, 지금 영문학계에서 잘나가는 아일랜드 출신이 많다는데, 이제와서 영어를 버릴 수도 없고. 700년 넘게 영어를 써왔으니 쉽게 버리진 못하겠지.

 2013년의 가장 큰 과업이라고 생각했던 여행을 끝내고 나니 조금 허무한 생각도 들었다. 여행을 밥먹듯이 가는 사람들이야 별 거 아니겠지만, 나한테는 정말로 크나큰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 우울하다. 여행 후 에는 더더 재밌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억지로라도 많이 돌아다니고, 아무거나라도 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이번에는 엄마, 아빠, 동생 선물과 정말 친한 친구 3명꺼만 선물을 샀는데... 내가 생각해도 정말 선물을 너무 잘 골랐다.

 엄마에게는 면세점에서 팔찌를 사드렸고 아빠께는 언제나 처럼 술 한병과 에딘버러에서 산 캐시미어 목도리, 동생꺼는 시계를 샀는데 선물 나눠줄 때 정말 행복했다. 어제도 친구에게 러쉬에서 산 핸드크림을 주고 오늘은 에딘버러에서 산 장갑을 줬는데 다들 맘에 들어해서 뿌듯했다. 어쩌면 이 맛에 여행가는 거 같기도 하고. 특히 혼자가는 여행은. 돌아가면 선물 줄 사람이 있어서 행복했다. 여행하는 내내.


 그래도 2013년은 꽤 기억에 남는 한 해가 될 것 같다. 벌써 지금 직장에서 일한지도 1년이나 됐고.


 휴 근데, 엊그제 차장님이 에너지버스 라는 책을 읽으라고 주셨는데. 정말 내가 대체 뭘 잘못한건지 모르겠다. 그런 책을 읽으라고 하시다니.......너무 가혹한 형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