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후

일상 2016. 8. 16. 12:54

엄마가 그렇게 아파하는 걸 처음 봤다. 수술 전에 엄마랑 농담으로 애 낳는게 아플까. 이 수술이 더 아플까. 하는 얘기를 했는데, 우리 엄마는 마취에서 깨서 정신 없는 와중에도 이게 백배는 더 아프다고 말씀하셨다.

수술 전날 입원한 엄마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많이 울었다.

엄마가 입원하기 전까지는 계속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었다. 좀만 더 지나면 꿈에서 깨어나고, 우리 엄마는 건강하게 일도 하고 평소처럼 깔깔깔 웃으실 것만 같았다.

그런데 엄마가 환자복 입고, 병실에 누워 있는 걸 보니 정말 현실이구나 싶었다. 이 끔찍한 악몽에서 깨어나는 일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엄마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 엄마도 나도 엉엉 울 것 같아서 엄마 앞에서는 눈물을 보일 수 없었다. 간신히 엄마는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나는 엄마가 60대가 되고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도 건강하실 줄 알았는데, 어쩌면 그보다 일찍 엄마와 이별할 수 있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나 혼자 남겨놓고 가면 도저히 편히 눈을 못감을 것 같다고 하신 것이 떠올라 그 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 마음이 편할 수 있다면 내일 당장 아무 남자와도 결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엄마가 수술 침대에 누워서 울고 계시는데, 나는 도저히 수술실로 들어가는 걸 못볼 것 같아서,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엄마가 수술실로 들어가고 나서야, 내가 엄마 손을 잡아줬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우리 엄마는 결국 4기초 진단을 받았다. 다행인 것은, 의사가 치료를 포기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큰 일이 닥치고 보니 정말 작은 것에도 감사하게 된다. 간혹 전이가 너무 심하게 진행되서 개복하자마자 닫는 경우도 있다는데, 그래도 우리 엄마는 수술을 6시간 가량 하셨으니 치료를 포기할 정도는 아니구나.. 싶어서 안도했다.

한동안 정신없이 좌절하다가, 지금은 엄마가 항암치료가 가능한 정도라는 것에 감사드린다.

일요일에 교회만 가는 정도였는데, 큰 고난이 닥치고보니, 종교가 큰 힘이 된다. 기도를 하면 엄마가 완치될 것만 같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이제 나도 책임이 좀 무거워졌다. 제일 걱정인 건, 아빠다. 아빠가 잘 하실 수 있을까. 지금까지와 다르게 엄마 마음 편하게 해드릴 수 있을까.
이런 때 일수록 나나 동생이 아빠랑 잘 지내서 엄마 마음을 편하게 해드려야 하는데... 자신이 없다.

어쨌든 2016년 이 덥고 또 더운 여름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 같다. 잊고 싶은 여름이 되겠지만, 아마 절대 잊지 못하겠지. 


작년과 올해

일상 2016. 7. 16. 15:58


작년 이맘 때 불미스러운 일로 회사에서 짤렸다. 내가 사표를 내긴 했지만, 사표를 쓰라는 압력이 있었으니 짤린 거나 다름 없었다.

이 모든게 겨우 1년 밖에 안된 일이라니... 아주 아득하게만 느껴지는데 말이다.

작년 여름의 가장 더운 시절은 모교에서 보내고, 지금 직장에 온지도 1년이 되간다.


저번 주 화요일에는 교육 때문에 신답역에 갔다. 서울에 이렇게 아담하고 귀여운 역이 있다니... 흥미로웠다. 플랫폼에 저렇게 작은 수풀도 우거져 있고, 단 하나뿐인 출구로 나와도 어찌나 고요한지. 서울은 언제 어디서나 북적거리고 사람으로 넘쳐나는 곳인 줄 알았는데, 신답역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우리집 인천에서 이렇게 먼 곳을 누비며 회사 생활을 할 지 꿈에도 몰랐다. 난 대학 졸업할 때도 이직을 고려할 때도 항상 인천 우선으로 직장을 구했는데, 이상하게 인천이랑은 연이 닿질 않는다.


작년에 몹쓸 여자 하나 때문에 회사에서 온갖 수모를 겪으며, 올해는 좀 평안하게 지나갈 줄 알았는데, 요즘 우리집 분위기는 오늘 날씨만큼이나 우울하다.


엄마가 8월 4일에 수술을 하신다. 암인지 아닌지는 수술해서 조직 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다고 한다. 조직검사하는데 한 일주일은 걸리니까.. 8월 둘째주까지는 엄마의 병이 암이 아니길 하면서 기다리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자궁근종이야 워낙 흔한 병이고, 주변 자궁근종 환자들도 근종 제거하는 것으로 끝났는데, 우리 엄마는 생긴 모양이나 위치가 누가봐도 양성 근종은 아닌 모양이다.


너무 큰 비극은 오히려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

아무리 비관론자라고 해도 누구나 '나에게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날 리 없다' 고 생각하는 일은 엄청나게 많으니까..

난 당연히 엄마가 큰 병이 아닐 거라 믿고 있다. 만약 암이라고 해도 폐나 간, 대장암보다는 제거가 쉬운 부위고 완치율도 높은 암이니 씩씩하게 치료 받으시면 완치될 거라 믿고 있다.

하지만 만약에 정말 만약에 우리 엄마가 암 판정을 받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지 지금으로선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엄마의 병이 별거 아니라는 말을 지금 당장 들을 수 있다면, 작년에 회사에서 당한 수모를 열번 쯤 더 당해도 상관 없을 것 같다.


어쨌든 현재로선 기도하며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친척 동생의 결혼식

일상 2016. 6. 19. 23:04

6월에만 결혼식 두 개를 가야했다. 휴. 이제 그 미션을 완료했다.

어제 결혼한 사촌 남동생은 나와 가장 친한 친척 중 하나로, 28살 밖에 안됐는데 결혼했다. 일한지 1년 조금 넘었는데 결혼할 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외삼촌께서 서울에 살 아파트를 마련해 주셨기 때문이겠지.. 

이번 결혼식은 양쪽 다 기독교라 예배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억지 웃음을 유도하는 사회자가 없어서 좋았다.

부모님 모시고 공덕까지 전철로 왕복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친척들이랑 얘기 하느라 아침 10시 반쯤 나가서 5시쯤 집에 도착했는데 날씨도 뜨겁고, 구두를 신어 발도 아프고, 여러가지로 너무 너무 피곤했다. 집에 오자마자 씻고 밤 7시쯤 누워 자다 밤 11시쯤 잠깐 눈떴다가 오늘 아침까지 잤다.

엄마가 몸이 안좋아서 부쩍 우울해하셨는데 이모들 보고 조금 기분이 나아지셨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나저나 부부가 되어도 남이라는 걸 나는 친가나 외가 갈 때 느낀다. 부모-자식은 몰라도 역시 부부는 남이다.

너는 왜 시집 안가냐는 말을 엄청나게 많이 들었다. 이젠 그냥 그런가보다... 하게 된다.


회사에서 연봉협상을 하는 중이다. 스트레스가 심했는지 며칠전 임금동결되는 꿈까지 꿨다. 우리집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엄마가 무리하게 일을 늘려서 하고 계신다. 그런 의미에서 내 월급이 꼭 올라야 하는 상황인데 안 올려줄까봐 걱정도 되고.

회사 이전이 확정 되었다.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좌절했는지 모른다. 뭐 이사가면 지금보다 집에서 가까워지긴 하겠지만, 일이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한달은 나 죽었다... 하고 일해야 할 것 같다.


영어 작문을 일주일에 두개씩 하고 있는데, 점점 틀리는 게 줄어들어서 보람있다. 그런데, 아마 내 영어 작문 수준은 1학년 애들이 그림일기 쓰는 수준의 문장이겠지 싶다.


날이 점점 더워진다. 기분이 좋아진다. 난 역시 더운 게 좋다.



여름 좋아.

일상 2013. 7. 15. 23:12

작년 여름은 정말 지옥같았다. 나랑 오래 알던 친구들은 너 알고 지내면서 니가 여름에 덥다고 하는 거 처음 본다고 까지 했으니까 말이다.

내가 일하던 사무실의 벽걸이 에어컨은 아무리 틀어도 시원하지 않았고, 가스라도 충전하면 나아질까 했는데 가스충전 하는 아저씨도 도저히 너무 주문(?) 이 밀려서 못온다고 하시고. 나는 정말 에어컨이 고장난 줄 알았다. 틀어도 틀어도 아무 소용이 없었으니까. 그 때문에 나는 후임자 앉혀놓고 인수인계 하면서 꼭 가을되면 에어컨에 가스 충전해 놓으라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그렇게 지옥같은 여름을 보냈기에 나는 여름이 좀 싫어질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나는 여름이 아직도 좋다. 물론 요 며칠 수건이 너무 안마르고 빨래도 마를 기미가 안보여서 제습기를 사고 싶어지는 건 우울하지만 (더 우울한 건 내가 영국 호텔 예약하고 비행기를 예약하느라 돈을 탈탈 털어 썼기 때문에 제습기 살 돈이 없다는거다. 그것만 아니었으면 아마 당장 샀을거야.) 나는 여름에 얇은 이불 덮고 누워 있을 때 그 느낌이 정말 좋다.

가끔 초등학교 3학년 이던 내가 여름 방학 의 어느 날 거실에 나와서 잤던 밤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난 책을 읽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던 것 같다. 특별한 일도 없었던 밤이었는데 왜 그날 밤만은 그렇게 기억이 또렷한지.

또 이건 앞에 말한 거실에서 자던 때보다 더 어렸을 땐데 우리집이 낡아빠진 나무문이 달린 엄청 후진 집에 살던 시절,  문이 잘 맞지 않아서 닫을 때는 발로 꽝 차야만 하는 그 집에서 살던 시절 어느 여름밤, 나는 아마 엄마랑 밤에 교회를 다녀왔던 것 같다. 낮에는 비가 새차게 내렸었고 그래서인지 우리 문 옆 담벼락에 왕달팽이가 기어가고 있었다. 역시 문이 너무 후져서 따기 힘들었기 때문에 우리 엄마가 또 그 문때문에 낑낑 대고 계셨고 기다리는 동안 나는 문득 뒤를 돌아 하늘을 봤다. 순간 내 뒷통수 뒤로 별이 쏟아지는 것 처럼 엄청 크게 엄청 많이 떠 있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아직도 햇갈릴 정도로 말이다. 8살이었던 내가 순간 울컥 하면서 눈물이 날 뻔 했으니까 말이다.

또 더 어렸을 때로 가면 난 한여름에 화단에 앉아서 앉아서 채송화 씨가 들어 있는 작은 주머니를 열어서 화단에 뿌려주고 혼자 놀고 있었다. 아마 어렸을 때도 혼자 노는 걸 좋아했나보다. 별 거 아닌데 이거 역시 참 강렬하게 기억이 난다. 내가 입었던 원피스와 샌들 모양까지 말이다.어렸을 때 우리 엄마는 나에게 예쁜옷만 사서 입히셨었다. 운동화도 나이키만 사서 신겨주고. 물론 우리집이 잘살았을 시절 얘기다.

그때 타들어가는 듯 뜨거웠던 내 목덜미의 느낌과 채송화 꽃을 돌로 빻아서 빨간 물을 손바닥에 묻었던 것 같이 작고 아무일도 아닌게 생각나고 그런다.

가끔 내게 죽음이 닥치면 앞에 말한 거 이외에 다른 장면도 다 스쳐지나가겠지 싶다. 나중에 애 낳으면 잘해줘야겠다. 이런 걸 보면 말이다.

 

태생적으로 추운 걸 싫어했던 나는 겨울에는 이런 기억이 별로 없다. 어렸을 때 사진을 봐도 여름에 찍은 사진이 압도적으로 많고 말이다. (아마 우리 부모님도 겨울을 싫으셨던 모양이다. 우리 가족이 강원도에 살기도 했고.)

 

이러한 기억과 추억들이 자꾸 자꾸 여름을 좋아하게 만드는 것 같다.

 

잠깐 요즘 근황을 말하자면

우리 회사는 고양, 즉 경기 북부에 어찌나 비가 많이 오는지, 이건 한국산 비는 아니다 싶은 내 주먹만한 빗방울이 시도때도 없이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차를 타고가다 그런 빗방울이 창문으로 떨어지는데 너무 놀라서 혼자 소리를 지른 적도 있다.

햇빛이 그립다. 요즘에는 와이퍼를 3단으로 해도 바로 앞 헤드라이터가 안보이기도 하고, 내 무릎 바로 밑까지 차 있는 물 위를 엑셀 밟고 지나가기도 하는데 그럴 때 마다 내 가슴이 쿵쿵쿵 뛴다.

친구는 비 그치면 더워지기 때문에 비 그치는 거 싫다고 하지만, 난 빨리 햇빛이 났으면 좋겠다.

 

막상 무더위가 닥치면 제발 여름 꺼져. 하면서 욕하면서 잠들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요즘 날씨

일상 2011. 7. 20.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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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비가 많이 오다가 일요일부터 맑은 날씨가 계속이다. 우리 엄마는 밀려있던 빨래를 하고, 사무실의 내 화분들을 창가에 내놓았다. 예전 회사에서부터 계속 "아이비" 를 죽인 사례가 있어서 이번만은 잘 키워보리 하고 또 아이비를 샀는데 한 8줄기 되던 아이비가 3줄기만 남고 몽땅 죽어버렸다. 초라한 내 아이비.
식물이 참 예민하구나 하고 느끼는게 비 오는 동안 아이비를 제대로 돌보지않고 하루에 한번도 쳐다봐주지 않았다. 그랬더니 슬슬 죽어가는거다. 비 그친 뒤 경각심을 가지고 매일 매일 쳐다보고 예뻐해주니까 비록 3줄기 밖에 안남았지만 3줄기 아이비들은 내 애정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저 3줄기를 열심히 키우다 보면 무성해지고 그러겠지.


이번 장마는 무지하게 길었는데 주말동안 나갈 데도 없는데 비가 쏟아지면 기분이 아련해지고 그랬다. 정말 쏟아지듯 왔으니까. 하지만 거의 20일 내내 비왔다 그쳤다 하는 건 너무 지루했기 때문에 난 오히려 요즘 날씨가 좋다.
흔히들 넌 겨울이 좋아 여름이 좋아? 이렇게 물으면 둘다 좋아하진 않지만 그나마 더운게 낫다 혹은 추운게 낫다 고  대답하지만, 난 더운게 더 나은 수준을 넘어서 4계절 중에 여름이 제일 좋을 지경이다. 내가 싫어하는 겨울이 아직 까마득하게 남았다는 느낌이 들고, 영원히 이 여름이 계속 될 거 같고, 무엇보다 낮이 길고, 여름에는 야구도 하고 아침에 옷 챙겨 입는 시간이 줄어들고 여러가지 이유.
딱 한가지 여름이 안좋은 점은 음식쓰레기에 날파리가 엄청 낀다는거?? 음식쓰레기 버린 뒤 약 2시간만 지나도 초파리나 날파리 각종 벌레들이 잉태되는데, 토나올 것 같고 그렇다. 음식물쓰레기를 내가 버리진 않아도 그 자체가 너무 싫어서 웅진 클리베 같은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 사려고 진지하게 알아봤다. 인천중구청에서 50%를 지원해 준다기에 솔깃해서 알아봤는데, 알고보니 정수기처럼 주기적으로 필터 갈아줘야 하는 물건이었다. 쳇. 그럼 그렇지.
아무리 여름이 좋다지만, 여름이 계속되면 지겹고 늘어지겠지. 가만보면 통일만 되면 정말 우리나라만큼 좋은 나라도 없다. 봄여름가을겨울 있고, 유럽까지 육로로 갈 수도 있고 바다도 가깝고 지진도 안나고 태풍도 잘 안오고. 

8월 정읍휴가 사진을 이제서 올린다. 2008년 큐슈 사진도 아직 안 올린 마당에..
난 한달이 안되서 오늘도 일하고 금요일에도 일한다. 그래도 어차피 계획도 없고 일한지 얼마 안되었는데 고맙게도 휴가가 끼어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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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휴가의 목적은 휴가의 목적 보다도 친구를 보러 가는 의미가 컸다. 실제로 2박3일동안 2일은 친구랑만 놀았다. 정읍에서 동생도 초등학교 중학교를 나와서 그때 친구들 만나고 엄마 아빠는 엄마 아빠대로 쉬시고.
첫날 나는 완전 포식했는데 처음에 친구 만나서는 와플이랑 커피를 마시고 그 다음에는 정읍에 내려오기 전 부터 먹여야지 먹고말리라 하고 벼르고 있었던 냉면과 시장에서 사온 순대까지 하루종일 먹었다. 냉면은 4천원 가격에 최고의 맛이었다. 으흑. 또 먹고 싶다. 인천에는 그만큼 맛있는 집이 없다. 난 맛있는 집 찾아다니면서 먹는 사람은 절대 아니고 밥은 한 끼 때우면 된다는 주의지만 진짜 인천으로 와서 맛있는 냉면을 먹어본 기억이 없는 건 유감이다.

아까 11시까지 이거 쓰다가 누웠는데 잠이 도저히 안와서 다시 2시에 일어났다. 연휴를 앞두고 설레여서 그런가? 아니면 낮에 편의점에서 사먹은 스타벅스 더블샷의 효과인가. 노래를 5곡 넘게 듣도록 잠이 안와서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왕 쓰던 거 마저 써야겠다.

친구와 맛있는 냉면을 먹고, 시장에서 순대를 사서 내장산 밑에 있는 공원에 가서 물쇼(?)를 보면서 여러 이야기를 했다.  생각보다 모기도 별로 없고, 발시려워서 구비해온 양말을 신었을 정도로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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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날은 정읍살 때 부모님께서 잘 가셨다는 담양의 카페를 가기로 하고 달렸다. 담양에서 정읍으로 오는 길은 영화 촬영도 많이 하는 메타스콰이어 가로수 길이 있는데 움직이는 차 안이고 하여 제대로 찍지 못하였다. 부모님께서 잘 가셨다는 카페는 문을 닫아 폐허가 되어 있었고 물이 넘실 넘실 댔다는 담양호는 물이 바짝 말라 있었다. 쓸쓸함을 뒤로하고 다시 차를 타고 전라북도로 넘어왔다. 동생이 운전을 해본다고 졸라서 동생이 운전을 했다. 난 2006년에 면허 딴 뒤로 운전을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필요함이 느껴지면 자연히 될거라 생각하고 있다. 지금은 전혀 필요가 없다고. 그리고 차를 모는 편리함을 아직 누리고 싶은 생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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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정읍으로 돌아와서 쉬었다가 친구 회사 끝나는 시간에 맞추려고 시내로 나왔다. 나 고등학교 때 보다 시내가 더 커져 있었는데 아무리 일요일이라지만, 문을 하나도 안 열었고 사람도 뜸했다. 고등학교 땐 도시가 그렇게 그리웠는데 이제 커서 정읍 시내를 가보니 그냥 여기서 조용히 사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것도 내가 다른 곳으로 돌아갈 사람이니까 하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친구를 기다리는데 시간이 남아서 아이스크림을 시켜놓고 카페 안에 있는 초등학생용 안철수에 대한 책을 읽었다. (진심 재밌었음. 끝까지 못 읽은게 아직도 한 ;)
친구가 먼 곳에서 왔다고 장어를 먹으러 가자고 해서 차를 타고 고창까지 또 갔다. (약 한시간 10분) 가는 길에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비가 왔는데 친구는  씩씩하게 운전을 잘만 했다.
한마리에 만팔천원 짜리를 친구가 사줘서 황송히 먹는데 도저히 한마리는 다 못먹겠어서 남은 건 포장을 해왔다. 그리고 모텔 (우리 가족은 내장산 안에 있는 모텔에 묵었음) 에 돌아와서 케이블 영화를 한편 보고 죽은 듯 자고, 집으로 돌아와선 돈벌러 과외하러 갔다. 짧은 여름 휴가 사진 정리 끝!


불면의 밤

일상 2010. 5. 15. 01:08
12시 반쯤 누웠다가 노래도 좀 듣다가 도저히 잠이 안와서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원래 야구 끝나고 나서는 컴퓨터 안하는데 누워서 아까 새로 받은 노래 이어폰으로 끼고 좀 듣다가 도저히 잠이 안와서 결국 여기 또 앉았다.
백수라 하더라도 하루 시간은 잘만 간다. 난 대학 때도 그랬다. 그냥 하루종일 집에 있어도 여차저차 시간이 잘도 가더라. 그리고 나름대로 바쁘다. 집에서 밀린 거 할 것도 많았는데 막상 시간이 남아도니까 안하고 있다. 역시 귀찮은 일은 닥쳤을 때 해야 하는건가.
이불덮고 이어폰 끼고 누워 있다보니 혼자살 때가 생각났다.
요즘 하도 새로운 사건이 없다보니 맨날 과거 넋두리만 포스팅 하고 있는 내 신세가 웃기지만, 예전에 특별한 상황에서 들었던 노래를 들으면 그 상황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 처럼 난 예전부터 지금까지 거의 그대로고 그렇다보니 맨날 과거에만 얽매여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새벽에는 머리가 이상해지므로 말이 이상해도 참고 내일 아침에 쪽팔려하자)
대학 4학년 여름 방학 때 난 어쩔 수 없이 계절학기를 들었다.
그때만 해도 엄마아빠가 다 지방에 계셨기 때문에 난 방학 중에는 돈도 아끼고 단 한두달만이라도 엄마밥을 먹고 싶어서 계절학기는 웬만하면 안들었는데 객기로 필수인 영어수업을 2학년 때 안들었다가 결국 4학년이 되어서야 들을 수 밖에 없게 된 것.
여하튼 그 계절학기 수업 때문에 나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매일 학교에 갔고 어쩔 수 없이 덥고 더운 그 방에 혼자 지낼 수 밖에 없었다.
학교 앞에 있는 날림 공사한 원룸들이 대부분 그렇듯, 앞 뒤로 건물도 빼곡하고 창문은 단 하나.
자기 직전까지 에어컨을 틀다가 자기 직전에 에어컨을 끄고 최대한 시원한 상태에서 잠들어보려고 매우 애를 썼다.
앞건물과 너무 가까워서 창문도 활짝 열 수 없어서 조금만 열어두고 어떻게 간신히 잠이 들었는데, 그 더운 여름에 역시 에어컨 없이 장시간 편히 잔다는 건 큰 욕심이었나보다. 어느날 밤 새벽에 너무 더워서 결국 일어났다.
전기세고 뭐고 살고보자 싶어서 룸에어컨을 틀어놓고 그때만 해도 열심히 애용하던 CD Player 를 작동시켰는데 새로 나온 jamiroquai 앨범이 들어 있었다. 지금도 좋아하지만 그때 한창 삘 꽂힌 talullah 를 3번 연속 들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울컥했다.
이런 상황에 맘편히 전화할 사람도 없고. 에잇. 시발.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연애의 로망은 말하기 부끄럽지만, 새벽에 잠에서 깼는데 (더워서 깼을 수도 있고 꿈 때문일 수도 있고) 갑자기 심하게 외로워 지고 서러워 지는 그 새벽에 전화를 했을 때 남자가 내 전화를 받아주는 거다. 크크크크.
남자친구가 있을 때에도 한창 악몽에 시달려 새벽에 눈을 떴을 때 한번도 전화한 적이 없었다. 그냥 외로워. 무서워 하고 말았지. 걔가 그 시간에 내 전화를 반가워 할 것이란 확신이 전혀 없었다.
다시 대학 4학년 여름의 그 밤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음악을 들으면서 경찰차가 지나가면서 내 창문으로 비치는 빨강 파랑 빛을 보다가, 서러워져서 누워서 눈물을 쪼끔 흘리다가, 냉장고를 열어 위스키를 꺼내 얼음이랑 섞어서 한잔 쭉 들이키시고 잠이 들었다. 그 위스키는 놀러온 친구가 오빠껀데 그냥 너 주려고 몰래 가져다고 준다고 말하며 준 소중한 위스키였다. 나름 아껴서 먹었는데 한 달을 못가서 저런 식으로 다 마셔버렸지.
지금은 한달에 술을 한번 마실까 말까 하지만, 계절학기 들었던 그 여름에는 "냉장고에 맥주 항상 구비" 가 나의 철칙이었다. 자기 전 맥주 한캔 이 두캔이 되고 세캔이 되고 안주 없이 마실 수 있는 술의 양이 점점 늘어가면서 이래서 사람들이 맥주 맥주 하는 구나 하면서 맥주의 맛 세계로 입문하였던 때였다. 그때는 내가 평생 자기전 맥주 한캔을 즐길 줄 알았는데 지금은 전혀 아니네.
그 때 당시 내가 가장 좋아했던 맥주는 밀러 였다.
아.. 이제 누우면 잠이 올까? 잠들고 싶다.

회사 컴퓨터의 고장.

일상 2008. 7. 28. 22:45

내 컴퓨터가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해서 내꺼 컴퓨터를 통째로 들고가버렸다.
좀 오래걸릴 것 같다. 아.. 오래 걸려도 좋으니 복구만 잘 되었으면 좋겠다. 근데 내꺼 개인 폴더에 있는 거 다 찾아서 보는 건 아니겠지? 그럼 안돼~~ 웃긴 사진도 엄청 많은데;
이런관계로 오늘 우리팀 공용 노트북으로 하루종일 일했는데
여러번 나의 성질을 돋구었다. 공용이 그렇듯이, 애가 너무 험하게 다루어져서 인터넷은 수시로 끊기고, 느리기는 더럽게 느리고 또 오늘은 월요일이라 일이 바쁘기는 엄청 바빴다.
내일은 마감일인데. 내꺼 컴퓨터로 죽어라 해도 모자를 판에 버벅대는 놈이랑 하루종일 씨름할 생각하니 암울하다.흑.

나의 여름이 끝나간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난 여름이 좋다. 집에 들어올 때 완전히 어둡지 않은 것도 좋고 출근할 때 난 남들보다 시원할 때 다니지롱~ 하는 느낌도 좋다. 겨울에는 남들보다 추울 때 다니는 것 때문에 매일이 약올랐다.
근데 오늘 아침 느꼈다. 세수하고 내방으로 들어가는데 이젠 내방 형광등을 켜야 하더라.
벌써 새벽이 어두워지고 있다.
이제 며칠만 있으면 내 사랑 7월도 끝난다.  내여름..
난 이번 여름에 무엇을 했나? 응?

하반기 7월 1일이 되면서 6월보단 좀 널럴해지는가.. 싶었는데 다 훼이크였다. 이 빌어먹을 훼이크!

* 오늘 사무실에 출근하여 점심식사 바로 전에 쓴 이야기.
: 요즘 들어 나에게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윤석민의 국대탈락이었다. (무뇌아 같지만 진심이다) 야구도 이번주 목요일까지만 하고 올림픽 때문에 안하는데 올림픽 야구는 꼴도 보기 싫어졌다.
방어율 2위, 피안타율1위, 다승단독선두인 애를 안 뽑은 대한민국 야구계는 반성하라.
안 뽑힌 이유가 뭔가? 도대체 도대체 도대체 왜???
내 생각에는 윤석민 고등학교가 야구부 있는 고등학교 중에선 전통없는 야탑고라서 그런거 아닐까 싶다. 불쌍하다. 한마디로 빽 없어서 안된 거 같다. 내 심정이 이런데 본인은 또 얼마나 억울할까.
국가대표 중에 좋아하는 선수가 안나오니 응원도 하기 싫고, 윤석민이는 나중에 군대가서 상무 에이스나 해야겠구나. 제기랄. 동메달 정도는 딸 꺼 같은데. 저번처럼 대만한테 진다면 그도 안되겠지만서도.
김경문 감독은 자기 팀 애 군면제 시켜주려다 엄한애들까지 다 현역가게 될지도 모른다.( 이사람아 ) 학연,지연은 역시 나쁜거다. 흑.

내가 축구를 별로 안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승부차기 때문인데, 이번 올림픽때 야구에서는 승부치기 한댄다. 푸하하. 이 뭐 병?? 인생 최초로 야구에서 승부치기 하는 거 보게 생겼네. 타임아웃 없는 경기의 묘미 모르시나. 이사람들.
오늘 네이버 스포츠 뉴스보다가 다시 화나서 지껄여본다.

난 사실 올림픽 경기만큼 개막식이 참 기대된다. 중국 사람들 도대체 개막식에 얼마나 공을 들였을까? 저번 호주 올림픽 개막식은 구렸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