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개봉하지 않은 작품이지만, 오로지 잘생긴 매튜 구드에 대한 팬심하나로 이 영화를 찾아 봤다. 어둠의 경로로 영화를 볼 때마다, 번역과 자막의 중요성을 뼈져리게 느낀다. 이번에도 품위없는 자막에 고통받았다.
개봉한 영화가 아니라 정보가 거의 없으니 줄거리를 좀 자세히 쓰겠다.
옥스포드 역사학과에 입학했지만, 장래 화가를 꿈꾸는 '찰스 라이더' (매튜 구드). 그는 옥스포드에 입학한 다른 아이들처럼
유명 사립 고등학교 출신도 아니고, 귀족도 아니다. 출신이 다른 동급생들 사이에서 묘한 고립감을 느끼던 어느 날, 찰스는
'브라이즈헤드' 라고 불리우는 유명 대저택에 살고 있는 '세바스찬 플라이트' (벤 위쇼) 와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세바스찬을
따라 으리으리하고 아름다운 브라이즈헤드에 방문하면서부터 찰스는 세바스찬처럼 최상류층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품게된다.
한편, 지독한 가톨릭 신자로서 엄격한 교리에 따르며 완벽한 신앙과 믿음을 지킬 것을 강요하는 플라이트 부인은 어려서 부터 강압적
태도로 세바스찬과 그의 여동생 '줄리아' 를 정신적으로 괴롭혀 왔고, 이를 견디다 못해 그들의 아버지는 정부(情婦)와 함께 베니스로 도망쳐
살고 있다. 세바스찬과 줄리아는 여름방학을 맞아 오랜만에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베니스에 가는데 이 여정에 찰스도 동행한다. 여행
중 찰스와 줄리아는 서로 사랑에 빠지고, 찰스를 친구 이상의 감정으로 사랑하고 있었던 세바스찬은 이에 크게 낙담하여 알코올
중독자가 된다.
줄리아 역시 찰스를 사랑하지만,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줄리아의 엄마는
공공연하게 자신을 무신론자라고 소개하는 찰스와 절대 결혼 시킬 수 없다며 서둘러 줄리아를 다른 남자와 결혼 시키고, 술에 절어
폐인 생활을 하던 세바스찬은 결국 모나코로 도망쳐 노숙자 같은 삶을 살며 병에 걸려 죽어간다.
그렇게 브라이즈헤드와 멀어진 찰스는 몇 년뒤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성공한 화가가 되고 선상(船上) 전시회에서 우연히 줄리아를
만난다. 영원히 못볼줄 알았던 줄리아를 다시 만난 찰스. 그는 줄리아를 아직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고, 부인과 이혼한 후 줄리아와
재혼 하기로 한다. 그렇게 줄리아와 찰스는 각자 가정을 져버리고 브라이즈헤드를 떠나는데, 저택을 떠나는 길에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브라이즈헤드를 찾은 줄리아의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신을 부정하며 종교를 혐오하던 아버지는 놀랍게도 죽기 직전 죄를
회개하며 신자로서 평화로운 죽음을 택하고, 이를 지켜본 줄리아는 자신은 영원히 신앙을 버릴 수 없다며 찰스에게 이별을 고한다.
그렇게 혼자가 된 찰스는 또 몇 년이 지나,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군인 신분으로 브라이즈헤드를 찾고, 이제는 군대의 임시 기지가 되어버린 그 곳에서 과거를 회상하며 깊은 죄책감에 괴로워 한다.
원작 소설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본 이 영화는 조금 아쉬운 영화였다. 더군다나 에블린 워가 쓴 동명의 소설은 아직 한국에 번역 출간되지 않아서 영화에서 풀리지 않았던 내 궁금증을 풀 수도 없으니, 아.. 정말 다시 생각해도 아쉬워 죽겠다. 해리포터도 원문으로 읽다 포기한 내가, 이런 심오한 소설을 원문으로 읽을 수 있을리가 만무하니 원문을 읽을 수도 없다. 내용만 봐서는 너무 읽고 싶은 주제인데, 국내에서 유일하게 에블린 워 책을 출간한 민음사에 메일 보내서 제발 이 책 좀 번역해 달라고 사정해봐야하나 고민했다.
방대한 스토리를 영화로 옮기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여러가지를 생략하기 마련인데, 내 생각에 주제를 위해 꽤 중요한 몇가지 이야기가 영화에 드러나지 않아, 완벽히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일단, 첫번째로 세바스찬과 줄리아가 어머니의 종교적 억압에 평생 괴로워 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정신적 학대가 어느 정도 였는지 영화로는 짐작할 수 없다. 저택 안에 거대하고 화려한 예배실이 있고, 매일 매일 가족 미사를 드리지만, 그것만으로는 플라이트 부인의 종교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영화 중반 쯤 세바스찬이 엄마 앞에서 야단맞는 아이처럼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플라이트 부인이 기독교 교리의 핵심인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 부터 죄인이라는 '원죄' 개념을 주입시키며 남매에게 정신적 학대를 했을 거라 나 혼자 추측만 했는데, 과연 내 추측이 맞았는지 궁금하다. 세바스찬이 단지 찰스를 여동생에게 뺏겨서 그렇게 폐인이 되고, 치료 의지도 상실한 채 모나코에서 죽어갔을까? 그건 아니었을 거라 생각한다. 찰스와 줄리아에 대한 배신감과 도저히 집에 머무를 수 없을만한 다른 종교적 이유가 있었을 것 같은데, 그게 뭘까!!! 아아... 결론은 어서 책이 출간되어야 되다는 것이다.
두번째로 찰스 라이더가 진정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마지막에 찰스가 군인으로 다시 브라이즈헤드를 찾았을 때, 내가 가진 건 죄책감 뿐이라고 말한다. 찰스는 세바스찬이 폐인으로 죽은 이유 중 자기가 가장 큰 이유임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고, 줄리아 역시 브라이즈헤드를 차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사랑한 면이 없지않아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이런 내용을 알 수 있는 장면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 맨 첫장면에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독백 하나로 말하기엔 너무 중요한 내용인 것 같은데 말이다. 음.. 어쩌면 소설에서도 찰스 본인이 뭘 원하는지 알 수 없어 방황을 하거나 혼란스러워 했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영화에서는 그 조차도 나오지 않으니 답답할 뿐이다.
또 선상 전시회에서 찰스와 줄리아가 재회했을 때, 둘은 행복해 하며 하루밤을 보낸다. 난 근데 줄리아와 찰스가 다시 만나서 마냥 좋아만 하는 게 정서적으로 납득이 안됐다. 줄리아에게 친오빠이자 찰스에게는 둘도 없는 친구였던 세바스찬이 먼 타국에서 거지 꼴을 하고 비참하게 죽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둘이 마냥 좋기만 할 수 있느냔 말이다!!! 영화의 베드신도 둘이 키스하고 벗고 껴앉고 침대에 눕는데 갑자기 흘러나오는 느린 피아노 소리가 좀 촌스러웠다. 뭐 어떤 사람에겐 그 장면이 아름답게 보였을 수도 있지만 나는 애초에 다시 만났다고 그저 서로 좋아만 하는 게 너무 이해가 안가는 상태였기 때문에 불만이 더 컸다. 찰스가 진짜 세바스찬을 친구로 생각은 한걸까? 줄리아를 진심으로 사랑하긴 했던걸까!! 너무 궁금하다. 아... 결국 원작 소설을 읽고 싶다는 마음만 더 커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건 영화로 알 수 없는 점이라기 보단 한 편의 영화로서 나에게 제일 아쉽게 느껴졌던 점인데 바로 캐스팅이다. 영화에서 플라이트 부인 역을 맡은 엠마톰슨 외 등장인물들이 너무 역할에 안 어울린다. 심지어 내가 사랑하는 매튜 구드도 찰스 역할에 안 어울린다. 영국에서 80년대 초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동명 5부작 드라마에서는 찰스 역을 '제레미 아이언스' 가 맡았다고 한다. 젊은 제레미 아이언스는 찰스 역에 잘 어울렸을 것 같다. 못봤지만. 이 찰스라는 남자는 남매 모두에게 사랑받는 넘치는 매력의 소유자면서 야망도 있고 또 이기적인 면도 있는 남자다. 그런데 나의 매튜는 여전히 잘생겼지만, 찰스가 느끼는 혼란, 죄책감, 무신론자로서의 신념 등을 잘 표현했다고 하긴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제일 심각한 건 바로 줄리아다. 그 배우 이름도 모르긴 하지만 너무 매력이 없었다. 아니 어떻게 레고머리 같은 끔찍한 단발머리에 매튜보다 더 넓은 어깨와 뭉뚱한 코를 가진 여배우를 줄리아 역에 캐스팅할 수 있단 말인가!!! 벤 위쇼는 세 인물 중에서는 가장 뛰어난 연기를 하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에서 특별히 뛰어나다는 생각도 안든다. 역시 이 영화에서는 줄리아가 최악이었다. 줄리아역 맡은 여배우 때문에 국내 정식 개봉이 안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다.
아쉬운 점만 며칠간 쓸 정도인 이 영화에 대해 이렇게 길고 긴 리뷰를 쓰는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여러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태어나면서부터 독실한 종교를 가져야만 했던 사람들이 겪는 고뇌와 때로는 신을 원망하면서도, 끝내 인생 최고의 위안을 신에게 구하는 신앙의 속성에 대한 통찰이 있다. 그래서 더더욱 원작 소설을 읽고 싶었고 나에게 특별했던 것이다. 작가인 에블린 워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 였다는데, 국내에 번역된 그의 소설이 오로지 '한 줌의 먼지' 한 권 뿐이라니. 너무 슬픈 일이다.
(다음 글에는 영화 ‘프리즈너스’의 스포일러가 있음)
기독교적 상징이 많이 등장하는 영화 ‘프리즈너스’ 에서 악의 화신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나쁜 짓을 일삼아온 유괴범 부부는 과거 열렬한 기독교 신자였다. 그러다 자신의 자식을 잃고, 시련을 주신 하나님께 복수 한다는 의미에서 무고한 아이들을 납치하고 학대하고 무참히 살해한다.
나는 악행을 일삼고, 신을 원망하면서도 결국 ‘하나님은 존재한다.’ 는 믿음은 버리지 못한 영화 속 범인 부부의 모습을 보며 종교의 위력을 다시금 실감했다. 생각해보면 종교처럼 비과학적인 게 없다. ‘신은 있다.’ 는 명제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못할 강력한 증거 역시 없다. 하지만 전세계 수많은 나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믿고, 또 심지어 그 종교 때문에 서로 죽이고 싸운다. 현실세계에 약속된 보상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목숨까지 기꺼이 내놓을 수 있는 건, 아마도 종교 밖에 없지 않을까. (‘자식’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자식 대신 내가 죽는 경우, 내 죽음 에는 ‘자식의 살아있는 목숨’ 이라는 실제 보상이 존재하기 때문에 종교와는 다르다고 생각함. )
나는 스스로 신자가 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처럼 태어날 때부터 당연히 종교를 갖게 된 사람이 교회를 안가는 건 가능해도, ‘내가 믿는 신은 존재한다.’는 믿음을 버리는 건 죽을 때 까지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평소 이런 생각을 해왔기 때문에 Brideshead Revisited 에서 남매의 아버지가 죽기 전, 성호를 긋는 것을 보며 전율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또 한가지,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가끔 기독교 신자들은 평일에는 거리낌없이 죄를 짓고, 일요일에 회개하고 자기가 천국 가는 줄 안다. 고 비아냥 댄다. 물론 이런 위선적인 신자도 있다. 하지만 나는 기독교가 대단하면서도 위험한 가장 큰 이유는 ‘땅에서 정한 죄와 하늘에서 정한 죄는 다르다.’ 는 교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 현실의 형법에서는 내가 어떤 나쁜 행위를 했을 경우 처벌받지만 하늘에서는 어떤 나쁜 행위를 생각하고 마음에 품는 것만으로도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리는 신자로 하여금 누가 보든 안보든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르도록 한다는 점에서 대단하지만, 항상 죄의식에 사로잡힐 수 있다는 점에서는 위험하다. 따라서 비종교인들의 비아냥과는 달리 많은 기독교 신자들은 나는 죄인으로 태어나 언제나 죄를 짓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산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바로 1개월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생각하면 대수롭지도 않은 행위와 생각에 대해 몇 년에 걸쳐 죄책감에 시달렸고, 이건 감옥에 갈 범죄는 아니더라도 성경에 따르면 큰 죄악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큰 벌을 받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시달렸다. 결국 난 그것과 관련된 모든 행위를 중단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그리 결심하고 행동하고 난 뒤, 마음이 엄청나게 홀가분해졌다. 내가 기독교인이 아니었다면 지금 결말과는 좀 달랐을 것이다.
Brideshead Revisited 에서 줄리아가 찰스와 함께하지 않는 것도 나와 비슷한 마음 이었을 것이다. 세바스찬 역시 방황을 하면서도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수행자의 모습으로 모나코 수도원에서 삶을 마치지 않는가. 결국 그도 끝내 신앙을 버리지는 못한 것이다.
내가 너무 기독교 신자의 입장에서 영화를 해석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적 완성도에 대한 진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신자로서 ‘Brideshead Revisited’ 는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