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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Brooklyn 을 보고

위로 2016. 6. 26. 23:58


(스포일러 있음)

토요일에 개봉 때부터 보고 싶었던 브루클린을 드디어 봤다. 극장에서 못본 것이 너무나도 후회될 뿐이다.

정말 아름다운 영화였다.

고향이 생각나서 에일리스가 혼자 방에서 우는 장면이나, 토니와의 데이트 장면 을 보며 이상하게 마음이 찡해서 눈물을 꽤 흘렸다. 시카리오와 함께 올해의 영화 중 한편이 될 것 같다.


영화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 이후로 이렇게 남자주인공이 멋지다 생각한 것도 오랜만이다.

주인공 에일리스의 남자친구 토니는 인생의 빛이 되는 좋은 남자의 교본 같은 남자다. 변함없는 사랑과 순정, 착한 마음씨, 다정함, 성실함, 화목한 가정, 귀여운 외모까지. 정말 사랑스러운 남자 주인공이었다.

이 영화의 원작과 감독이 모두 남자라는 것을 알고 놀라웠다. 어쩜 이렇게 여자가 원하는 완벽한 남자와 사랑을 섬세하게 잘 표현하였는지.

영화 캐롤과 같은 시대인 1950년의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저번부터 느낀건데 1950년대의 뉴욕 패션 너무 고상하고 멋지다. 이 영화에서도 분명 1950년대 패션을 그대로 재현했는데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색감과 디자인, 헤어스타일 등등 모두 세련미가 넘친다. 영화 다 보고 나서 에일리스가 입었던 가디건, 블라우스 같은 게 눈에 어른 거릴 정도. (캐롤 때도 그랬다)


저번 주에 본 이민자 에서는 여자 주인공이 미국으로 이민와서 불한당 같은 놈을 만나서 죽도록 고생하고 상처받는데, 이 영화의 주인공인 에일리스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남자를 만나서 뉴욕을 두번째 고향으로 삼고 행복한 삶을 살 것을 암시하며 끝난다. 두 영화를 비교하며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언니인 로즈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아일랜드로 다시 되돌아가서 만난 아일랜드 신사 짐 패럴에 흔들리는 에일리스를 보며 토니를 배신할까봐 마음을 졸였다. 토니 편지를 읽지도 않고, 서랍에 넣을 때는 토니에 빙의하여 내 맘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이 영화의 유일한 흠이라면, 에일리스가 고향 아일랜드에서 다시 토니가 있는 미국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하는 계기이다. 식료품 가게의 악독한 켈리 여사가 에일리스가 토니와 뉴욕에서 혼인신고를 한 것을 몰랐다면, 에일리스는 끝내 토니를 배신하고 고향 아일랜드에서 부잣집 도련님인 짐과 결혼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어쨌든 에일리스가 어려운 시간을 같이 보내준 토니를 외면하지 않고 다시 돌아와서 너무 다행이었다.


토니 역할을 한 배우 에모리 코헨은 처음 보는 배우인데, 나이도 어린데 연기를 어찌나 잘하는지 모르겠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에일리스가 야간 대학 수업이 끝난 뒤 토니에게 할말 있다면서 심각하게 분위기를 잡으니, 에일리스가 헤어지자는 말을 할까봐 노심초사 눈치를 보며 에일리스를 바라보는 장면이다. 눈빛이 흔들리며 조마조마 하는 연기를 어쩜 그렇게 잘하는지.

이 영화에서 에일리스와 토니의 모든 데이트 장면이 사랑스러워서, 아까도 한번 더 봤다. 그래도 제일 좋은 장면은 토니가 에일리스의 야간 대학 수업이 끝날 시간에 맞춰 마중 나와선 같이 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장면이다. 혼자 외롭게 귀가하던 에일리스는 토니가 마중을 나와줘서 너무 기뿐데, 그런 에일리스를 보며 토니는 오늘 기분이 아주 좋아보인다고 말한다. 기분이 아주 좋은 건 바로 토니 때문인데 말이다.

토니와 에일리스의 사랑 이외에도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여성들간의 우정 묘사도 좋았다. 미국행 배에서 도움을 주는 여자와 얄밉지만 결국 에일리스에게 관심을 쏟는 하숙집 친구들, 차가워보이지만 에일리스의 기분을 때때로 살피며 나중에는 에일리스를 위해 수영복을 골라주는 매력 넘치는 직장인 백화점의 상사까지.(그런데 이 역할한 배우 누군진 몰라도 정말 예쁘심)  모두 에일리스가 새로운 세계인 뉴욕에서 적응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도 봤던 시얼샤 로넌이 흰 피부와 파랗고 몽롱한 눈을 가진 에일리스 역할로 매력을 발산한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주연 제로의 젊은 시절 사랑으로 등장할 때도 이 배우를 눈여겨 봤는데, 앞으로 좋은 배우가 될 것 같다.


딴말이지만, 며칠전 잠들기 전에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주인공 제로가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사랑스러운 아가사..라는 말과 함께 아가사가 씩씩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던 장면이 생각나 눈물을 쏟았다. 그 영화에서는 아가사가 나중에 어떻게 됐는지 자세히 나오지 않는데도 아가사는 전쟁 중 죽었다. 라는 사실을 앞 뒤 정황과 제로의 독백으로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참 신기했다. 서사를 완벽히 하지 않아도 관객으로 하여금 등장인물의 운명을 짐작케 하는 것도 감독의 역량이라면 역량이겠지.


이렇게 좋은 영화를 봐서 보람찬 주말이었다.  이 영화 속의 예쁜 장면들이 두고두고 생각날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