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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9.14 애사심과 배움의 끝.

애사심과 배움의 끝.

일상 2012. 9. 14. 00:15
새 직장에 계신 은혜로우신 인천시민 한 분이 나를 아침마다 출근시켜 주시기로 하였다. 그 분은 나보다 3살이나 어린 여자 분인데 운전을 어찌나 잘하는지 매일 아침 선망의 눈빛으로 그 분을 쳐다보고 있다. 내가 대단하다 고맙다 하는 걸 진짜 부담스러워 하시는데 그 분이 없는 출근의 고행길을 생각하면 정말 하늘이 내려주신 분이다. 신세를 엄청 지고 있기 때문에 돈으로라도 성의 표시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곧 죽어도 안 받으시겠다고 해서 못 드리고 선물만 사드렸다. 돈을 받으면 그만큼 책임이 늘어나기 때문에 일부러 안받으시는 거 같기도 해서 또 막 무조건 드리지도 못하겠다.

그 분은 내가 나이는 많은데 회사에서는 후배니까 호칭을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한 모양이다. 그 점이 우리 둘의 사이를 일정한 거리로만 유지되도록 만들고 있다. 

그리고, 약 2주동안 그 분에게 신세를 진 후 ,마음이 편치 않아서 이번 주말부터 차 끌고 운전 연습을 하기로 했다. 사고난 직 후에는 운전대 못 잡을 것 같더니만 누군가에게 짐스러운 존재가 되고나니 더이상 미룰 수가 없구나 하는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남들도 다 하는데 남들보다 한 다섯배 하면 어떻게든 하기야 하겠지.

이번 주 월요일에 환영식을 했는데 나이가 좀 들어서 새로 들어가니까 일어나서 자기 소개 안해도 되니까 좋았다. 몇 개월전에 대기업 입사를 확정지은 동생에게 그룹 연수가면 몇 백명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큰소리로 자기소개하면서 평소답지 않게 행동 하라고 강요할텐데 눈앞이 깜깜하지 않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동생이 말하길 원하는 회사에 취직되면 그보다 더 심한 짓도 할 수 있댄다. 생각해보니 난 취직되서 뛸 듯이 기쁜 기분 느껴본 적은 없으니까 이해가 안가는 걸지도 모르지. 난 생각만해도 눈앞이 깜깜한데, 그렇게 춤추고 노래 하는 게 취직되서, 좋아서 진심으로 우러나서 그러는 거 랜다. 그게 바로 신바람이 절로 나는 건가. 어떻게 생각하면 대기업 입사는 그런 재롱 잔치가 가능한 자들만이 가능한 것 같기도 하고. 예전 회사 공채로 들어온 애들이 대강당에서 탱고 추고, 사물놀이하고, 노래 하는 거 보면서 내가 공채로 입사하지 않게 하신 신께 진심으로 감사드렸는데.   


아까 아침에 회사에 조금 일찍 와서 쓰던 글을 전체 공개 해놓은 걸 이제서야 알았다. (지금은 밤 11시 45분) 내가 다닐 회사의 팀장(여자 팀장님)과 면담을 했는데, 팀장의 요지는 하나였다. 업무시간에 딴짓하지 말라는 거. 여기에서 딴 짓은 네이버 뉴스나 검색도 해당된다. 생각해보면 난 예전 회사에서도 학교에서도 "잡담" 이 많은 편 이었다. 아무리 치가 떨리는 회사 사람들이어도 진짜 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한명은 있었기 때문에  좀 짬이 난다 싶으면 어김없이 실없는 잡담을 즐기는 사람이었는데 여기 오니까 팀장 앞에서는 팀원들이 개인적인 말 한마디를 안한다. 나는 내 밑의 후배가 일이 좀 한가해서 놀고 있어도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는데 겨우 2년 후배라 그랬던 걸까? 물론 걔가 워낙 훌륭한 아이 였기 때문에 눈치 봐서 적절한 타이밍에 나랑 놀아줘서 그런 걸 지도 모르지만, 난 회사가 좀 한가하면 조금 여유부리면서 시간 보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어떻게 업무시간 8시간 내내 업무만 할 수 있느냐 말이다. 

난 지금 팀장님이 인간적으로는 좋은 분인 것 같고, 정도 많은 것 같고 악의는 없으신 분인 것 같아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떻게 자기가 속한 회사에 그런 무한 애정과 충성심을 품을 수 있는 것인지 진심으로 궁금하다. 사람이 10년 이상 한 회사에서 일하면 자연히 그렇게 되는 걸까. 내가 회사에서 일하는 원동력은 충성심, 애사심 이런 것과는 한참 거리가 참 멀었는데, 백수에서 날 구해준 현재 회사에 고마운 마음은 엄청나게 크게 갖고 있는데 여하튼 내 업무 스타일은 팀장님이 강조하신 거랑은 좀 거리가 멀다. (어떻게 보면 내가 그나마 직장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팀장이 그렇게 혐오하는 "잡담"과 "딴짓" 이었는데 크크크크크)


팀장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내가 맨 처음 정규직으로 일하면서 만난 부장님을 올 초에 뵌 적이 있었다. 그 분 말로는 나는 뭐든지 빨랐댄다. 미영이는 빠르지. 이러시는데 내가 빠른가 싶으면서도 아 그래도 내가 완전 느림보에 바보 멍청이 같진 않았구나 싶어서 다행스러운 기분도 들고 좀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고맙습니다. 이부장님. 늦게라도 칭찬해주셔서.


새로 들어간 회사가 무역 회사이기 때문에 생전 보도 듣도 못한 이메일과 서류들을 보고 있다. 영어와 전혀 관계 없는 일을 했던 내가 이제 앞으로는 영어만 봐야 한다고 생각하니 좀 걱정이 된다.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하도 감이 안잡혀서 책을 구입했다. (사실 면담에서 책 하나 사서 보라고도 했고. 근데 나 팀장님 이해 안간다면서 말은 또 겁내 잘듣네 책 사라고 해서 바로 또 책 구입) 회사에서 수입하는 물건이 나와는 정말 거리가 정밀기계 인데, 전공자들은 그 정밀기계가 뭐하는 기계인지 대충 알고는 있던데 나는 전혀 감이 안잡힌다. 아 또 처음부터 다시 다 시작하고 배워야 생각하니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다. 


일반 회사에서 내 나이 쯤 되면 실무 경력 5년차 6년차의 고급인력이 되어있을 나이인데 난 이제 무역 입문서 책을 보고 있으니  갈 길이 멀어서 까마득하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닥친 이 변화가 앞으로 내 인생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렇다. 뭐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다보면 뭔가가 되어있긴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