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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 뿐인 상대

일상 2007. 12. 6. 21:59
내친구의 편지 내용 중에서 (친구도 이정도 공개는 이해해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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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몇년전 생각을 자주 해. 모두가 서로를 장기판 졸이요. 쓸모없고 가치 없는 인간으로 보고 사는 세상에서 의미있는 미소, 존중하는 눈빛과 따뜻한 대화로 호의를 확인하는 거. 진짜 생각보다 귀한거였어.
운명이래도 놓칠 수 있는거야. 다만 자기가 유일하게 집중할 수 있는 상대인거지.
운명이라고 잡을 수 있고 행복해질 수 있는 보증이라면 세상에 비극이 왜 있겠어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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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성애자라는 가정하에
영원히 동성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것과 영원히 이성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것.
꼭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뭘 택할까.
예전에는 당연히 이성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것을 택한다고 말을 했다.
이성들하고 어울리는 시간보다 동성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훨씬 더 많을 거라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만신창이가 되어서 세상에서 겪은 설움을 눈녹듯이 녹여줄 사람이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남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친구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난 이 친구한테도 저 친구한테도 똑같은 위로를 받을 수 있지만, 남자한테는 그게 또 아니다. 너 아니면 누구한테도 위로받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게 사실이다. 남자에게만은 우정처럼 너도 이만큼 좋고 너도 이만큼 좋아. 난 너에게 못받음 다른 사람에게 가면 돼. 이게 안된다. 적어도 나는.
(그래서 인기가 없나)

내 친구 말로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인간관계가 바로 친구 인 것 같다고 말을 했다.
하긴 여타의 의무관계가 없으니까. 그리고 솔직히 남녀는 헤어지면 끝 이니까 말이다. 속으로는 이랬었지 저랬었지 생각하고 가끔씩은 무릎꿇고 제발 용서해달라고 빌고 싶은 맘도 들고 날 특별한 여자 대접 해줘서 고마웠다고 진심으로 인사해주고 싶고 그런데.
정작 헤어지고 나면 상대방에게 해줄 건 아무것도 없다. 정말로 아무것도. 그놈의 자존심과 이러면 내가 또 이상한 여자 취급받겠지 싶어서 마음을 억누르고 또 억누르고 억누른단 말이다. 인간으로서의 자존심과 이상한 여자 취급받겠지 라는 우려때문에 그런다는 건 사실 거짓말이고, 상대방을 다시 한번 잡아보고 싶다거나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고마움을 표현하는 행동에 장애가 되는 생각은 '거절당할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상대가 부처수준의 자비과 관대함을 발휘하여 참아줄 수는 있지만 헤어질 때의 여러가지 정황과 상대방의 행동 말 등을 통해 '나와는 되지 않을 사람' 이라는 것을 신체의 모든 감각을 통해 느꼈다면 그건 거의 맞을 경우가 높단 말이다. 아니 높은 정도가 아니라 그게 진실이다. 믿고 싶지 않아 몸부림을 치고 시덥지 않은 말로 그렇지 않다는 주변 사람들의 동의를 구해도 가장 중요한 건 언제나 내 자신이 다 알고 있을 때가 많으니까 말이다.
혹시나 내가 이렇게 한 번 무너져서 예전처럼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말도 안되는 생각이다. 그럴수록 나는 더 우스워지고 상대방은 나를 더 싫어할 뿐이다. 속으로는 골백번 매달리고 싶다고 외치고 실제로 그렇게 해보려 하면 할수록 난 비참해지고 웃기는 여자되고 자존심도 없는 사람이고 내 소중했던 진심, 내 마음을 열어보겠다는 어려웠던 결심  그 조차도 희화화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한번도 시도 안해보고 후회하는 것 보다는 낫다고? 절대 아니다. 시도했을 때는 안 그랬을 때의 백배도 넘는 후회와 자기혐오감이 밀려든다.  

그런데도 정말 내가 싫어지는 건. 예전보다 현명해진 지금 상태에서도
내가 한 번만 더 잡았으면 지금 우리는 함께였을까?
나 정말로 내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을 놓친 건 아닐까?
혹시 그 사람도 나처럼 똑같은 생각을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끔씩 아주 강하게 든다는 거다.

그리고 더욱 슬픈 건 나만 이런 생각을 할 것이라는 거다.
그리고 또 다행스러운 건 단 한순간이라도 상대방도 나와 같은 생각. 그러니까 내가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었고, 놓쳐서 조금은 아깝고, 진심으로 용서를 빌고 싶었다면. 내가 가끔 이것 때문에 울곤 하는 것 처럼 진심을 다해 단 1초라도 그런 마음이 들었다면.
난 그것만으로도 정말로 고마워할만큼 조금은 어른이 되었다는 거다.

풋. 술도 안마셨는데 이런 거나 쓰고 있고.
요즘 아주 배불렀다 배불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