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아주 잠깐 영화 평론가를 꿈 꾸었지만,딱히 정말 이 사람의 팬이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영화 감독은 없다.

  하지만, 어렸을 적 내 감수성 발달에 가장 큰 기여를 한  감독이 누구냐 묻는다면 그 사람은 두번 생각할 필요도 없이 왕가위 감독일 것이다. 특히 중경삼림, 타락천사, 해피투게더 (중국어 원제는 춘광사설) 이 3개 영화를 접하지 못했다면, 내 중고등학교 시절은 얼마나 황폐했을까?

  오늘 우연히 위 사진을 봤다.

  저 곳은 해피투게더에서 아휘(양조위)와 함께 일하던 장(장진) 이 니 슬픔을 묻어주고 오겠다고 하면서, 아휘가 울며 녹음한 녹음테이프를 들었던 곳 아닌가. 아래  유투브 트레일러에서 1분 좀 넘으면 그 장면이 나오는데... 이 사진을 보니 또 가슴이 쿵 하고 내려 앉는 기분이 들었다.

  Happy together 가 퀴어 영화라고는 하나, 주는 메세지는 딱 하나다. 한국 포스터에 있던 문구가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용기" 였던 거 같은데, 그 포스터 문구를 쓴 사람이 아주 정확히 봤다. 이 영화의 메세지는 딱 그거다.

  큰 스토리도 큰 사건도 없는 영화인데다, 왕가위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인 뮤직비디오를 연상시키는 감각적인 화면에 까이따노노 벨로소 를 시작으로 프랑크 자파, 피아졸라, 이름 모를 탱고까지 시종일관 흘러나오는 음악까지 누군가 보면 이게 영화인가 뮤직비디오인가 착각할 수도 있는 있는 영화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이 영화는 내 인생 최고의 영화 중 하나라는 것을. 

  그렇지 않다면, 저 사진 한장에 아직도 15년이나 지났는데도 이렇게 가슴이 두근 두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Happy together 노래 가사는 언제들어도 참 좋고, 영화 내용 때문인지 이 버전의 Happy together를 들을 때마다 어쩜 이렇게 울컥한지.

* 참고로 저 등대는 아르헨티나에 있는 우수아이아 라고 한다 오늘 처음 알았다.


왕가위와 중경삼림.

위로 2008. 12. 11. 16:44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 장래희망 : 영화평론가 라고 떡하니 적어놓았을만큼 한 때는 내 꿈을 위해서라도 웰메이드 영화를 보자. 하면서 일부러 영화를 막 봤던 적이 있었다. 중고등학교때지 뭐.
나 중학교 때는 한참 왕가위 열풍이 불 때였는데, 그 때 당시 나름 영화광의 길로 나아가고자 했던 나는 그래 왕가위 정도는 챙겨봐줘야지 하면서 그때만 봤다.
영화를 꽤 좋아했던 거 치고 좋아하는 감독 누구냐 하면 말하기가 조금 어렵다. 어떤 감독이 좋다고 하여 그 감독영화 다 챙겨보고 그런 스타일은 아니라. 그나마 마틴 스콜세지 영화를 제일 많이 본 거 같은데 또 마틴 스콜세지를 좋아하는 건 아니니.(요즘 그 분 영화는 진짜 싫고)

왕가위가 무지하게 떴을때는 영국이 중국에 홍콩을 반환해야 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는 시기 였는데, 그때 당시 영화잡지는 웰메이드 홍콩영화가 나왔다 하면 그거랑 연관해서 평론을 해놨던 거 같다.
내가 챙겨본 영화가 다 우울한 종류여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실제로 그때 당시 홍콩에서 만들어진 영화는 거의 다 우울한 분위기였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중국에서 만든 무협영화에서 중국어를 들으면 어휴 시끄러. 이런 느낌인데 또 그때 당시 홍콩영화에서 말하는 중국어를 들으면 또 그게 그리 멋있게 들리고 그랬다. 또 야경이 멋있는 나라라 그런지 왠지 다 밤풍경이 낮풍경보다 훨씬 더 많은 것 같고.
흠. 아직도 생각나는게 그때 당시 홍콩에 만들어진 영화 중에 최고평점을 받은 건 무명감독, 무명배우가 만든 Made in Hong-Kong 이라는 영환데 이거 지금 구해서 볼 수 있을까. 진짜 보고 싶었는데 청소년관람불가라 극장가서 못보고 결국 이제까지 못봤는데.  

홍콩 영화에서 중국으로 가겠다는 말을 할 때는 "본토에 들어가려고 한다." 고 이렇게들 표현하는데 그 "본토" 라는 말이 또 그리 대단해보이고 그랬더랬다. 그때는 인터넷도 없었고 중국산 제품이 크게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었고, 때문에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널리 퍼지지 않았을 때라 그냥 "본토=중국" 이런 말을 들으면 '그렇지 중국은 진짜 본토 혹은 대륙이라고 표현할만큼 넓은 땅이지.' 라는 생각에 심지어 동경까지 했다. 흐흐흐.

아. 그래서 난 어른이 되면 홍콩에 꼭 혼자 가봐야지. 했는데 아직도 못가고 있다. 왕가위 영화를 다시 보고 그 영화에 나왔던 곳을 돌아다닌다면 나는야 꿈많은 고등학생  때 기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근데 난 고등학교때도 꿈 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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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비정전도 안보고 동사서독도 안보고 해피투게더 이후 왕가위 영화는 하나도 안봐서 왕가위 영화가 왜 좋은지 말하는 건 좀 자격미달인 부분이 없지않아 있다. 하지만 내가 왕가위 영화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한 가지. 왕가위 영화 속 주인공들은 항상 외롭지만, 또 항상 누군가가 또 그 사람을 좋아해주고 있다. 더 좋은 건 그 주인공들이 그 사실을 전혀 모른다는 거지.
왕가위도 굉장히 냉소적인 척 영화를 만들지만, 결국에는 별 수 없는 이상주의자라니까. 이 블로그에서도 여러번 말했지만, 나도 냉소적이고 포기한 척 하지만 사실 속으로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때가 많다. 가끔 그런 내가 병신 같고 그 때문에 실망도 크지만, 이 한번 굳혀진 삶의 태도를 뭐 어떻게 하질 못하겠다.
그냥 난 위의 중경삼림, 타락천사, 해피투게더 전체에 흐르는 그 메세지가 맘에 들었다. 뭐 어쩌면 나도 왕가위 영향을 받아서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지. (역시 영화를 포함한 예술으로부터 받는 영향은 대단한 것이다.)

왕가위의 다른 영화도 결국엔 저 메세지가 주된 내용인지는 모르겠다. 흠... 지금 요즘 나온 마이 블루 베리 나이트나 2046, 화양연화 줄거리를 보면 그런 것 같다. 근데 또 중경삼림 때 받았던 강렬함에 못미칠까봐 겁나서 못보는 것도 쪼끔은 있다. 이건 진정한 왕가위 팬이라고 할 수 없는 태도지. 그리고 그때는 뭘 봐도 다 신선했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못느끼는 사람이 되어버렸을까봐도 겁나기도 하고.

근데 난 "니가 보기에도 찌질한 널 누군가가 좋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바보같이 희망적인 얘기를 하면서 한없이 허무하고 외롭고 냉소적으로 보이는 저 위에 세 영화가 너무 좋더라.

마지막으로 독백이 주가 되는 저 세 영화를 통틀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P.S 퇴근시간 다가와서 막써서 내용도 구리고 오타도 많을 것 같다. 새삼 나의 중고등학교 시절의 한때 영웅 왕가위 한테 미안하다. 크크크 내일 다시 수정할 거 있으면 수정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