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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알아봤을까?

일상 2009. 3. 17. 16:40

작년 휴가 때 후쿠오카에 가서 신기한 걸 하나 발견했는데 일본 여자들은 야구모자를 안 쓰고 다닌다는 거였다. 양산을 쓰거나 아니면 여성스러운 모자를 쓰고 다니더라. 그리고 또 신기한 건 운동화 신은 여자들도 없었다는 거. 컨버스 신은 여자를 오사카에서도 후쿠오카에서도 못 본 것 같다.
항상 여성스럽게 화장도 하고 구두도 신고 이쁘게 꾸미고 다니는 것 같다.
그에 반해 나는 야구모자를 너무 사랑하는데, 모자 수집하는 사람 마냥 모자가 많은 건 아니지만 5천원짜리 모자부터 가장 비싼 건 3만원 넘는 모자까지 여자치고는 꽤 다양하게 모자를 가지고 있는 편이다.
대학시절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는 거의 매일같이 모자를 쓰고 운동화 신고 다녔는데 모자 쓰면 안되는 수업에 내가 내가 모자 썼다는 사실 조차 까먹고 그냥 앉아있다가 점수가 깍였다.

동생이 저번주 월요일에 정기휴가를 마치고 복귀 했는데 휴가나오면 쓸 괜찮은 모자를 사야겠다고 하며 MLB 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 모자를 구입했다. 검정색에 금색으로 별모양 박힌건데 평소 범상치 않은 뒷통수를 자랑했던 나는 내동생 모자도 아주 잘 맞았다. 아...내동생도 모자 사이즈가 절대 작은 편이 아니라고 했는데. 동생 때문에 좋은 모자 하나 얻어서 좋다. 오예! 음 모자 얘기가 잠깐 나와서 말인데 작년 겨울 때 6만 5천원 짜리 세이부 라이온스 모자를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너무 비싸서 안샀는데 이제와서 생각하니 그건 참 잘한 짓이다.

회사에는 모자를 쓰고 다니지 못해서 주말에는 모자를 자주 쓰는 편인데 이번 주 토요일에도 모자를 쓰고 외출을 했다. 요즘에는 자고 일어나서 바로 회사오기 바빠서 화장을 전혀 안하고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 사람들이 나보고 용감하다고 하더라. 피부도 예전 같지 않은데 흔한 비비크림조차도 안바르고;;(심지어 난 썬크림도 안 바른다-썬크림에 알러지 반응이 있는지 그것만 바르면 얼굴에 발진이 나서...) 몰라. 그래도 화장 안하면 10분이나 더 절약되고 밥도 더 많이 먹을 수 있으니깐. 회사다닐 때도 화장을 전혀 안하는데 주말에 내가 화장을 할 리는 만무하고 나름 친구를 만나러 갔던 구월동이면 인천에서 꽤 번화가인데 춥다고 하여 춘삼월에 오리털 잠바에 운동화 신고 친구를 만났다. (한편으로는 이런 차림으로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점에 감사하며. 은근 차려입고 만나야 할 것 같은 사람들 있지 않나? 같은 여자라도)  점심을 먹고 만났던 터라 일단은 커피만 마셨는데 쉴새없이 이야기하다보니 출출하여 스낵랩을 먹었다. 1700원이라는 절대적 가격은 싸나 내용물을 생각해보았을 때 절대 싼 가격은 아닌 스낵랩. 치킨조각 하나랑 양배추랑 머스터드 드레싱 뿌려주고 밀가루로 한 겹 싸 놓은 게 다여;;

한참 친구와 밀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바로 옆자리 맞은 편에 혼자 앉아서 PMP로 동영상 보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낯익은 느낌이 들어서 자세히 보니 대학교 1학년 때 알던 애 였다. 생각해보면 걔가 날 신경을 좀 많이 쓴데다가 선물까지 줬는데 그런 식으로 만날 줄이야! 일생동안 날 좋아했던 남자의 숫자가 워낙 적은 터라 이러저러하게 쟤가 너 좋아한다더라 라고 들은 남자들의 이름은 거의 기억하고 있는 편인데, 역시나 걔 이름 3글자도 또렷이 떠오르는 게 아닌가. 대학교 때도 좀 특이한 취미와 지극히 오타쿠 적인 성격 탓에 알게 모르게 나이 또래 남자애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편입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역시나 혼자서 맥도날드서 동영상을 보다니. 약속이 있어서 기다리는 것 같지도 않던데. (은근 자세히 계속 관찰)
근 2미터도 안되는 거리에서(유난히 가까운 자리였다) 아는 체 하면 쟤가 날 알까? 혹시라도 걔랑 무지하게 닮은 애일 수도 있잖아. 아니 근데 저 키하고 얼굴을 봐서는 걔가 맞는데. 만약에 아는 체를 한다고 해도 지금 내 꼴이 너무 초라하잖아. 이런 수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가면서 친구에게 "나 쟤 아는 애다. 아는 척 할까 말까." 라고 핸드폰 문자화면에 써서 보여주니 아는척을 해 보라는 거다. 근데 결국 아는 척 할 타이밍을 놓치고 알게 모르게 계속 쳐다보고 있었던 나를 눈치 챘는지 결국 걔가 먼저 자리를 떴다. 친구 말로는 걔도 나중에 너를 한 몇 초동안 쳐다보더니 알아보고는 일어난 것 같았다고 하더라.
걔도 인천 출신이라 이렇게 인천에서 만나는 게 그닥 신기한 일은 아니지만, 대학 때 워낙 편협한 인간관계를 자랑했던 터라 이런 류의 우연한 만남이 신기하기만 했다. 집에 와서 다시 걔 생각을 하다가 책상 서랍을 열어보니 걔가 나한테 준 선물이 무사히 있는 것이 아닌가. 크크큭. 사실 걔가 준 선물 한번도 사용 안했는데...
위에 말한 걔의 성격 탓에 걔는 나한테 한 번도 적극적으로 자기의 생각을 말해본 적이 없었는데 가끔 문자보낸 거나 메신저에서 말했던 거나 선물 줄 때 했던 말들이 생각나니 갑자기 그 때 걔나 나나 귀여워졌다. 아는 척 해볼걸 그랬나? 흐흐.
다음에 또 그 쪽에서 만나게 되면 꼭 아는 척 하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꼭 다시는 못 만나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