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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1.23 야간운전의 매력과 여러 가지 생각

  아버지 제사인데도 일 때문에 못내려간다는 친구 메세지를 보고 친구 아버지 돌아가셨던 그 겨울이 생각나서 이내 우울해졌는데 체호프 책을 읽고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이번 주는 쉽게 가는 한 주였다. 그런데 지독히 길었다. 월화수목금 5일 일한게 아니라 월화수목목금 이렇게 6일 일한 기분. 오늘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퇴근시간이 되자마자 나섰다.

  운전을 시작한지 2년이 조금 넘었다. 처음 운전했을 때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살이 빠질 지경이었다. 야근이라도 하는 날에는 미친듯이 질주하는 고속도로의 차들 가운데 나혼자 벌벌 떨었다.

  하지만, 이제 나도 무자비한 야간질주에 동참하게 되었다. (그래봤자 140 정도지만..) 내가 속도내는 구간은 정해져있다. 김포 톨게이트 지나서 서운JC 까지 구간과 경인고속도로 도화 IC 지나 종점까지. 요즘에는 퇴근 길에 운전하면서 음악듣는 이 시간 없이 세상을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발가락에 힘이 바짝 들어갈 정도로 세게 엑셀을 밟으면서도 Just the two of us 나 Bitter Sweet Symphony 같이 아주 오래 전부터 좋아했던 곡이 나오면 적당히 울적해지고, Climbing up the wall 같은 곡이 나오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기분이 되기도 한다.

  야간 운전을 하면 시야가 좁아진다고 한다. 가끔 그런 걸 느낀다. 가로등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빠르게 달리다 보면 도로 끝 작은 구멍으로 빨려들어 가는 기분이다. 이대로 그냥 내 인생이 끝나버려도 전혀 아쉬움 없을 것 같은 기분도 든다.

  확실히 매력이 있다. 야간 운전 말이다. 11년에 접어든 우리집 차는 아빠가 워낙 속도를 안내고 운전하여 처음에는 아무리 밟아도 120 이상이 안나오다, 부품을 하나둘 갈아 끼우고, 내가 야근할 때마다 속도를 내서 운전한 덕분에 이제 145 까지는 속도가 무난히 나오고 있다. 난 앞으로도 차 살 생각 전혀 없는데, (정확히 말하면 못사는거다. 돈이 없으니) 가끔 아우디, 제규어 타면서 고속도로에서 110 키로 정도로 달리는 운전자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한편으론 저런 잘나가는 차 타고 이 도로를 달리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이래서 사람들이 차에 목숨거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나는 차를 안사야 145 이상 속도를 안내게 될테니 돈 없어 다행이다. 이렇게 속도내다 잘못하면 지옥으로 직행할 수 있으니, 조심은 하겠지만, 정말 좋다. 음악들으면서 운전하는 거.

  초등학교 때 부터 이사만 10번 넘게 다니고, 등본 발급할 때 전입신고 기록 포함하면 내가 이사다닌 집의 주소만 3장이 넘게 발급되는 등본을 가진 나는 오래된 동네 친구를 가져본 적이 없다. 부끄러운 내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이 단 한명 없다는 사실에 학창시절 내내 외로웠다. 그렇게 내내 외롭다 보니 이젠 혼자인 게 훨씬 편하고 둘이거나 셋이면 슬쩍 내 행동 마음 모든 것이 나답지 않게 부자연 스러워 지는 것이다.

  내가 그 남자분에게 흥미를 보인 이유는 지금은 사랑하는 이 동네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것과 3년 내내 짝사랑 했던 첫사랑과 똑같은 중학교 고등학교를 나왔다는 것 이었다. 여름에 혼자 운동할 때 전화하면 5분 내로 나올 수 있는 거리에 사는 걸 보면 친해지면 재밌을 것 같아서였는데... 

  만나자는 말 한번 못하고 계속 이리저리 빙빙 돌리는 남자에게 그냥 내가 먼저 보자고 말을 했는데, 내일 느닷없이 고백을 할까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근데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지만, 어쩌면 그 분도 나랑 똑같은 마음일 수도 있는 거잖아? 동네 친구인데 여자면 재밌겠다 하는 생각에 저러는 걸 수도 있는 거니까. 제발 그런 마음이길 바라며 책 더 읽다가 그냥 자야겠다. 이거 누가 보면 정말 웃기겠지. 혼자 김칫국 한사발 시원하게 들이키고 있는 내 모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