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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친구.

일상 2010. 8. 21. 00:15
요즘 내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거리는 과외하기다. 과외하는 아이의 집안 사정을 일일이 다 쓰는 것 같아서 아무리 개인 블로그라고 해도 안 쓰려고 했지만 써야겠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과외는 2개인데 그 중 1집 아이와 엄청 친해졌다.
남에게 무심한 척 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동정심이나 책임감 등을 과도한 나는 그 집 아이를 그냥 과외 학생으로만 대하기가 어렵다.

중2짜리 오동통하고 키는 벌써 165cm 라 이제 그만 커도 되는 여자애인데, 걔가 처한 상황을 보며 과거의 중학교 시절을 되돌아보곤 한다. 동생도 없고 언니 오빠도 없는 무남독녀인 그 친구(별다른 호칭을 찾지 못하겠으니 이제부터 친구라고 하겠음)는 밤 11시 부터 반지하방에서 혼자 자고 혼자 일어나서 학교에 간다. 새벽에 엄마가 들어오긴 하지만, 엄마는 들어와서 취침을 취하기 때문에 일어나서 씻고 학교에 가는 건 그 친구의 몫이다. 집이 가난한 건 아니지만, 집에서 밥솥에다가 한 집밥다운 밥을 먹을 수가 없는 상황이라 저번에는 이틀동안 과자 부스러기 먹은게 전부라는 말을 듣고 안쓰러워서 시장 안에 있는 밥집에 데려가서 밥도 사서 먹였다.

뜬금 없지만 중요한 이야기를 하나 또 하자면 아까 낮에 청년백수의 심정이라고 글을 썼지만 한정적으로 백수에서 벗어났다. 바로 다음주 월요일부터 출근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런데 또 취직이 되었다고 마냥 기뻐할 수도 없는 게 면접 볼 때 최장 2년 계약 정규직 혹은 계약 연장 절대 없음을 못박은 곳이라, 시한부인생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2년 뒤는 여기서 짤린다 하는 절박한 상황이 되면 그 안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 인생에서 승부를 볼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결심으로 출근하기로 했다. 이러한 대우에 걸맞게 월급도 매우 저렴한데, 대신 우리집에서 버스 한번에 20분 정도면 도착하니까 업무 이외 시간을 정말 제대로 좀 활용해서 이런 비참한 상황에서 좀 벗어나보자. 제발.

출근을 하게 되어서 과외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했는데 나의 괜한 오지랖 때문에 이 친구를 그냥 나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할 수가 없었다. 그 집 어머니도 애가 너무 선생님을 좋아하고 따르는데 주말만이라도 와서 봐달라고  하니까. 또 나도 이미 친해질 대로 친해져서 모른 척 하기도 그렇다. 그래서 오늘 그 친구에게 주말 평일 다 활용해서 일주일에 4시간 정도로 수업 하는거 어떠냐고 물으니 괜찮다고 해서 당분간은 수업을 하기로 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취직을 해야만 하는 이유, 부모님께서 하는 가게의 월세, 나의  미래에 대한 막연한 계획까지 그 친구한테 말했는데, 의외로 어른스럽게 내 상황을 이해도 해주고 위로까지 해줘서 고마웠다. 저번에는 진심으로 "선생님 이해해줘서 고마워" 라고 말했을 정도니까. 중3이면 96년생. 정말 내 기준에서는 어린이인데 요즘에는 수업 하는 시간보다 둘이 수다떠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져서 고민이다. 중간고사 닥치면 진도를 어떻게 빼야할 지. 수업하면서 질문하면 대답도 꼬박꼬박 하고 수학 문제 푸는 거 보면 원래 머리가 나쁜 애는 아니라 이번 중간고사때는 꼭 수학을 80점대로 올려놓으리라!!! 하고 의지를 불태웠는데 80점 맞으려면 4문제 정도 틀려야 하는거라 쉽지 않다. 수업하러 가면 얼굴에 "학교에서 있었던 일 이야기 하고 싶어요" 라고 써 있는게 눈에 보이는데 그걸 다 무시하고 수업만 주구장창 하기도 어렵다.

원래 하려던 이야기는 그 친구 집에 있는 애완견 이야기였는데, 외롭게 있어야만 하는 상황이다 보니 이런 경우에는 애완견이 참 도움이 되겠구나 생각을 했다. 요즘에는 애완견이라고 안하고 반려동물 이라고 하는건가? 여하튼.
나는 동물과 사람이 한 집에서 사는 건 불가능 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다. 개들이 자기 몸을 털 때 마다 그 털에서 나올 세균을 생각하면 진저리가 쳐지고, 개가 집안 곳곳에 똥오줌을 싼다고 생각을 하면 소름이 끼치고, 심지어 만약에 나중에 결혼해서 남편이 죽어도 집에서 애완견을 키우겠다고 하면 별거사유 혹은 이혼사유일 정도로 털 있는 동물을 가까이 하는 걸 혐오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난 강아지 똥오줌 치워주고 밥 챙겨줄 자신 없다. 레옹처럼 난 최소한만을 요구하는 식물이 좋다. (백수가 되고 부터 집안에 있는 식물을 더 애지중지 하고 있음)
하지만 그 친구는 애완견이라도 없으면 너무 외로운 상황이고, 그 애완견도 그 친구를 무척 따르기 때문에 난 하는 수 없이 그 강아지와 한 방에서 함께 과외를 하고 있다. 옆에서 그 늙은 흰 개가 내가 수업하는 걸 앉아서 지켜보고 있고, 그 친구는 그 강아지가 움직이면 금방 또 그 개한테 정신이 팔리고 그러는 상황이다. 뭐 그거까지는 괜찮은데 문제가 또 있다. 하필 내가 과외하는 그 시간대가 그 개가 똥을 싸는 시간이라서 저번에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수업하고 있는데 옆에서 똥을 쌌다. 베란다가 없는 집이라 똥도 그냥 집에다가 싸는데 죽을 맛이다. 진짜. 냄새는 또 어찌나 지독한지. 그 개가 똥을 싼 날에는 집에 와서 누워서 잘 때까지 그 놈의 똥 생각만 난다. 아아아. 그런데 그 개는 내가 1주일에 3번씩이나 그 집에가서 그런지 나한테 엄청 들러 붙는다. 난 개 정말 싫은데, 애완견 키우는 모든 사람들 정말 존경스럽다.  오늘도 자야 하는 데 자꾸 그 개가 싼 똥오줌이 생각나서 이렇게 포스팅 한다. 참나.
 
아 그리고 저번 밀린 사진 정리 포스팅에서 빼먹은 사진이 있는데 그 친구네 과외하러 오다가 저번에 찍은 무지개다. 무지개보고 그 친구에게 무지개 떴다고 무지개 보라고 문자 보냈는데, 자기 방에서는 안보인다고 안봐도 괜찮다는 문자가 왔다. 아아. 너무 감정이 메마른 어린 친구. 그래서 나랑 말이 통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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