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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5.20 Melancholia 와 어제 오늘 우울한 나 2



금요일에 휴가가 너무 많이 남아서 그냥 하루를 썼는데 정말로 할 일이 없었다. 연주회에 가려고 했는데 늦게 예매하려고 봤더니 매진. 결국 난 그냥 정처없이 9100번 버스를 타고 예술의 전당에 가서 괜찮은 전시나 공연이 있나 봤지만, 전혀 땡기는 게 없었다. 그래서 또 마을버스를 타고 그냥 코엑스에 갔는데 걱정 없어보이는 서울 사람들을 보니 기분이 더 우울해져서 결국 아무 것도 안하고 집으로 와버렸다. 


저번달 저저번달 돈도 못벌면서 돈을 엄청써서 결국 내 씨티카드 결제액 중 일부를 리볼빙 했다. 돈을 쓰지 말아야지 리볼빙에서 벗어나야지 결심을 하니 확실히 돈을 적게 쓰게 되는데, 역시 사람은 닥치면 닥치는 대로 살고 뭐든 할 수 있는 것이다. 난 이제 계약 만료가 다가오기 때문에 예비백수에다가 애인도 없으니 예비 노처녀가 되는데 뭐 그 생활도 닥치면 어떻게든 살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집에만 있으면 죽을 것 같은 우울함을 느껴 어떻게든 바깥을 돌아다니려고 하는데 그 노력의 일환으로 혼자 멜랑콜리아 를 시청하였다. 

내 꿈이 평론가이긴 했지만, 평론가들만큼 고정관념에 꼰대정신 풍부한 사람들도 없는 것 같다. 뭔가 이름난 감독이면, 무조건 별 네개 날리고 본다. 라스폰트리에는 그런 평론가들이 숭배하는 감독 중 한명이다. 이 영화 역시 칭찬 일색이던데... 도대체 라스폰트리에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길래 이렇게 평론가들이 좋아하는가 라는 생각으로 봤다. 


이 영화는 지구 종말을 다루고 있는 영화다. 영화를 보다보면 나 같아도 그냥 정말 영화 속 인물같이 지구의 종말을 맞이할거야.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디펜던스데이처럼 사람들이 지구의 종말을 슬퍼하며 울부짖고 구원해줄 영웅을 기다리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행성이 충돌해서 지구가 없어지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영화 시청후 1시간 쯤 지났을 때 이놈의 영화는 도대체 언제 끝나나 하는 심정으로 핸드폰을 계속 봤다. 지루하고 정말 지루하다. 그 시간까지는 등장인물도 극소수고, 영화를 관통하는 메인 스토리도 없다. 다큐멘터리 비슷하게 대저택의 인물들의 생활을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마지막 지구 멸망 장면 즉, 지구와 멜랑콜리아 행성이 충돌하는 장면에서는 그 광경과 음악에 압도 당해서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고, 정말 지구에 종말이 온 것 같이 온 몸에 전율이 흘렀다.


라스폰트리에 감독 본인이 우울증 환자라는데, 이 영화만큼 영화를 보고 나서 우울한 사람의 머릿 속을 직접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은 영화를 본 것도 처음이다. 

위에 링크한 동영상은 영화 오프닝인데 큰 스크린에 저 화면이 펼쳐지는데 가슴이 벅차고 자꾸 온몸에 소름이 돋아서 눈물이 핑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