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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동 준비

일상 2016. 10. 23. 15:39

옷정리

  사계절이 존재한다는 건 정말 좋은 것일까? 우리나라의 뚜렷한 사계절 때문에 여름 겨울 앞두고 옷 정리 할 때마다 고통스럽다. 그 엄청난 일을 어제 드디어 해냈다. 만세. 집이 넓으면 사계절 옷 다 한꺼번에 걸어놓고 옷 정리 같은 거 할 필요 없겠지. 넓은 집 사는 사람들 부럽다. 어제 정리하다보니 니트가 너무 너무 많은데, (겨울옷의 4분의 3이 니트) 그런데도 고급 니트는 별로 없다. 싸구려 니트는 이제 그만 사자. 아니 이제 옷을 그만 사고 버릴 건 좀 버려야 한다. 제발


노트북

  14만원 내고 고친 노트북이 엄청 빨라졌다. 윈도우10은 몹쓸 OS 인 것 같다. 다시 윈도우7 을 깔아서 쓰니 이렇게 쾌적할 수가 없다. 노트북으로 하는 일이 음악 CD 를 mp3 파일로 바꾸기, 블로그하기 이 두가지 뿐이다. 지금 노트북은 성능은 떨어져도 키보드가 좋으니, 블로그 용으로는 아무 문제 없이 좋다. 윈도우 10으로 업그레이드 한 뒤 부턴 DVD 롬이 작동하지 않았는데, 7으로 돌아오니 이제 DVD 롬도 잘 돌아간다. 14만원이라는 큰 돈 들인 보람이 있다.


사무실 이전

  이전할 사무실 답사(?)를 갔다. 다행히 가산디지털단지 쪽으로 결정됐다. 우리집에서 제일 가까운 서울로 이전하게 되서 정말 다행이다. 지금 회사 직원이 워낙 없어서, 이전 관련 업무의 90% 이상을 내가 해야만 한다. 눈앞이 캄캄하다. 그나마 가까운데로 오면서 일을 해야 하니 기쁜 맘으로 하리라 맘은 먹었지만, 사무실 이사 한번도 안해봤는데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도 안잡힌다. 


최대 몸무게 갱신

  2년마다 한번씩 해야 하는 직장 건강검진을 받았다. 몸무게를 재고 크게 충격을 받았다. 드디어, 내 몸무게 앞자리가 5가 되어버린 것. 하루종일 우울했다. 딱 50이긴 했어도... 역시 영원히 40키로대 일 순 없구나. 싶었다. 세월이 무상하기도 하고. 대학생 때 몸무게 40키로 초반일 때 스스로 날씬하다는 생각을한번도 안했다. 내 다리가 굵다 생각해서 짧은 치마도, 짧은 바지도 잘 안입었다. 그게 너무 후회스럽다. 거 참... 일생에서 제일 날씬했을 시절인데, 왜 더 몸매에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살았던건지. 이 충격 때문에 저녁 밥 안 먹고 있는 중인데, 지금 몸무게를 빼자는 생각보단, 더 찌진 말자고 다짐했다. 회사가 가까워지면 운동 좀 할 수 있으려나.


CT 결과

  지난 월요일에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그 날은 우리 엄마의 CT 결과 소식을 듣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난소암 항암제로 쓰이는 약은 엄마가 현재 쓰는 세가지 약 이외는 없다. CT 검사로 이제까지 항암치료로도 암이 사라지지 않았음이 밝혀지면 사실상 우리 엄마는 항암 치료는 중단하고 신약이 나오길 하염없이 기다리거나 기적을 바라는 수 밖에 없었던 것이기 때문에, 조직 검사 결과 들을 때 만큼이나 떨렸다. 다행히 좋은 소식을 들었다. 이제 4차 항암을 마치고, 수요일에 퇴원하셨는데, 3차 때와는 다르게 훨씬 더 힘들어 하신다. 그래도, 항암 치료를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한다. 엄마의 면역이 (내가 백혈구, 혈소판 등 면역과 관계 있는 세포들에게 붙여준 애칭) 들이 건강하게 자라나길 기원할 뿐이다.


클래식 음악

  락으로 시작해서 재즈를 듣다가 클래식으로 가는 게 음악 애호가들의 공식 코스라는 말을 어디서 들었다. 나에게 대입하면 그 말이 딱 맞는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클래식만 듣는 건 아니지만, 몇 년전과 비교해보면 확실히 클래식 음악을 듣는 시간이 많아졌다. 선호하는 작곡가나, 연주자도 없지만, 울적하고 날씨까지 흐릴 때 단조라고 적힌 유명 클래식 아무 곡이나 재생하면, 대중적인 곡을 듣는 것 보단 훨씬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다짐

일상 2015. 8. 3. 00:50

어제 오늘 집에만 있었다. 너무 뜨거워서 나갈 엄두가 안나기도 했고, 또 갈 곳이 없기도 했다. 오늘 오후 2시쯤 공부할 책을 보러 교보문고에 갈까? 잠시 결심 했다가 옷을 챙겨 입는 것이 너무 귀찮아서 그냥 인터넷 미리보기로 책을 보고 구매했다.

 

어제는 학교에서 하라는 신체검사를 하러 인천기독병원에 갔다. 적어도 30년 이상 된 것 같아 보이는 기독병원은 천장이 엄청나게 낮았고, 종합병원답지 않게 한산해서 좋았다. 큰 스탠드형 에어컨 두개가 양쪽 끝에 있었는데 시원했다. 그런 큰 스탠드형 구식 에어컨도 오랜만에 봤다.

학교 정직원들은 분명 학교에서 신체검사 돈도 내줄텐데 나같은 계약직은 내 돈 내고 내가 해야 한다. 이런 썩을. 이 세상은 뭔가 잘못된 거 같다. 내 월급의 2배 이상을 받는 사람들은 왜 공짜로 신체검사하고 난 그 사람들 절반만 받고 일하는 계약직인데 왜 내 돈을 내고 신체검사를 해야 하는가.

신체 검사 중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피뽑기를 하고 지혈을 제대로 안해 핏줄이 막 팔에서 튀어나오려고 했고 그걸 보고 있자니 좀 무서웠다. 결국 팔에 피멍이 들었다.

이번 신체검사를 계기로 내 정확한 키를 알게 되었다 158.2cm 였다. 우울하지만 난 대한민국 평균보다 작다. 

 

우리집에서 기독병원 가는 길은 담쟁이 돌벽 같은게 있고, 옛날 집들이 쭉 늘어서 있다. 그래서 그런지 거기서 유난히 드라마 촬영을 많이 한다. 어제도 윤계상 나오는 드라마 찍는다고 차량 수십대가 와 있고 막 대사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나랑 엄마는 구경할 생각도 없는데 스텝들이 막 앞서서 길을 막아 기분 나빴다. 그 더운 날씨에 서서 보라고 해도 보기 싫었는데... 그나저나 어제 같은 날씨에 야외에서 몇시간씩이나 일하는 방송 관계자들도 좀 안됐더라.

 

요즘 연애가 잘되가서 마음이 넉넉해진 남동생한테 전화가 왔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별로 안 혼나고 잘 넘겼다. 맨날 나를 타박하는 동생이지만, 어찌됐든 내 편이라는 생각이 드니 든든하기도 하고. 자매만큼은 아니어도 남매사이에도 끈끈한 남매애 같은 게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동생이 날 타박할 때마다 미워 죽겠지만, 결국 동생이 이렇다. 하고 결론을 내려주면, 아하!! 하고 확신을 하게 되니, 나도 참 누나 자격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공부를 다시 해야해서 책상 책꽂이 정리를 새로 했고, 오랜만에 토익책을 꺼냈다. 내가 다시 토익공부를 하게 될 줄이야. 동생이 공부한다고 대학 졸업 전에 토익 모의고사 문제집을 2권이나 사놓고 단 한장도 풀지 않은 걸 버릴까 말까 하다가 그냥 놔뒀는데 이제서야 그 문제집을 풀게 됐다. 오랜만에 풀다보니 꽤 재밌었다. 그냥 혹시나 하여 봐두려는 거니 뭐 심각하게는 공부 안하겠지만, 그래도 점수가 높으면 좋을테니까.

난 할 일 없고 우울한 생각 들때 어렵지 않은 문제를 풀면 좀 안정이 되는지라 오늘도 토익 문제 풀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전 회사에서 당한 수모를 생각하면 뭘해도 될 것 같은데, 그것도 뭐 지금 뿐이겠지. 아까 인터넷 서점에서 산 책도 일단 한번 보면 느낌이 올 것 같다. 이게 내 머리로 될 건지 안될건지.

 

친구가 엉킨 실타래를 지금부터 하나씩 푼다고 생각하라는데, 늦은 거 아닐까 싶다. 며칠전 본 중학교 친구는 지금 애가 돌이고 벌써 둘째도 임신했다는데, 난 대체 뭐하고 있는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옛날부터 나는 뭐든 쉽게 되는 게 없었으니까, 이번에도 남들보다 늦는다고 생각하자. 맘 편히 먹자.. 이러면서 혼자 막 좌절했다 혼자 또 정신승리했다 그러고 있다.

 

한가지 위안이 되는 건 우리 엄마는 이 와중에도 쇼프로 보면서 큰소리로 막 웃으신다는 거다. 우리 엄마도 지금 회사에서 고생 많이 하고 있고, 딸 신세가 갑자기 우울해졌는데, 언제나 저렇게 즐거운 걸 보면 막 위로가 된다. 이런 상황에 엄마까지 우울함에 빠져 계셨다면 정말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엄마를 보면서 종교의 힘 같은 걸 느낀다. 그래서 저저번주부터 열심히 교회에 가고 있다. 이상하게 교회 가기 전에 눈이 떠지고, 예전과 똑같이 기도하고 있다.

 

오늘 동생의 조언에 힘입어 나를 힘들게 했던 관계도 오늘 마음 속으로 말끔하게 정리했다. 이렇게 쉬운 것을 왜 망설였는지 모르겠다. 정말 별 거 아니었고, 의외로 내 삶에 별 영향도 없다. 그만큼 뭐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뜻이겠지.

 

아까 8월부터 12월까지 뭘 어떻게 해야겠다는 계획을 좀 세웠다. 엊그제 포스팅 했듯 5년 뒤에도 이 상태면 난 죽든지 사라지든지 해야 하니, 난 누가 알아주든 아니든 열심히 살아야 한다.

 

엄마의 영향과 친구의 영향으로 잠들기 전에 기도를 하기로 했다. 마음을 곱게 먹어야 뭘 해도 될 것 같아서. 성경도 하루 한장이라도 보기로 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종교가 왜 필요한지 뼈져리게 느꼈다. 나는 힘이 없어서 그들에게 복수(?)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벌을 주실거야. 내 마음을 알아주실거야. 하는 생각을 하니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하나님이 계시든 안계시든 난 죽을 때까지 기독교 신자로 살다가 죽기로 했다. 되도록이면 교회도 매주 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