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를 드는 비굴함

일상 2012. 2. 22. 00:48
나는 혼자 사무실에서 일한다. 가끔 사무실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보면 건물에 있는 안내 데스크에 혼자 있는 여자들의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 것만 같다. 대접 받는 자리고 아니고 그렇게 중요한 자리도 아닌 곳에서 혼자 앉아서 되지 않는 머리로 일하고 있노라면 외로움이 더해지는 것이다. 
난 혼자 일하지만 내 위에는 수많은 교수들이 있고 또 단과대학 행정실이 있고, 나보다 나이 많은 다른 여자들이 있다. 집요하게 나를 물고 늘어지던 여자 한명이 계약이 만료되어 이제 딱 하루만 보면 안봐도 되는 사이가 되었다. 며칠 전 그 여자가 복도에서 자기네 강의실 열쇠 가지고 뛰어 오라고 했을 때 내가 뛰는 척을 하면서 속으로 엄청난 욕을 쏟아냈지만, 사실 그 욕은 어쩌면 나를 향한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난 단한번 저항도 못해보고 타협을 했기 때문이다. 그 복도를 뛰어가면서 난 이 세상에서 가장 몹쓸, 그리고 가장 낮은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나에게 이런 비루한 기분을 느끼게 했으므로 난 그 여자의 앞길이 꼬이기를 빌 뿐이다. 
오늘도 그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이 얘기를 하자면 긴데, 단과대학행정실의 어떤 분이 나에게 솔깃한 제안을 했다.(일반회사로 치면 차장 혹은 과장 정도 직급) 계약이 만료되면 본부 다른 부서로 갈 의향이 있으면 말을 해주겠다고 하신거다. 그 분이 날 그렇게 탐탁치 않아 하는 걸 아는데 이건 뭐지? 싶었다. 난 그렇게 되면 감사한 일 아니냐고 말을 했고 기대를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가끔 그 말이 생각이 나서 화가 나기도 하고 내 처지가 우습기도 하고 해서 슬프기도 하고 그런 상태다.  
아니 근데 그렇게 말이 오간 뒤로는 남자를 소개 시켜주시겠다고 하질 않나, 카드를 만들라고 신청서를 주시질 않나 좀 난감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요즘 위의 저 제안이 정말 10%라도 가능성이 있다면 난 그냥 찌그러져서 그 분이 시키는 일을 그대로 다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하면서, 내가 그 단과대학 행정실에서 본능적으로 알아서 기고 있다.
그런데 이 사건을 그 분 밑에 있는 나보다 한참어린 싸가지 없고 못생기고 키작고 뚱뚱한 그 여자애도 아는 것인지 오늘 나한테 겁내 무례하게 구는 것이다.  아오 하지만 난 오늘 아무 말도 못하고 걔한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집에 왔다. 처참하다. 
대체 저 10% 도 안되는 그 분의 제안의 가능성 때문에 내가 이렇게 저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것인가 싶다.  내 자신이 말할 수 없이  비굴해서 이 일은 어디가서 말도 못 꺼낼 것 같다. 
그리고 그 못생긴 여자애는 다른 사람들이 왕따 시킬 때는 진짜 진심으로 걔가 딱하고 불쌍하고 안된 생각이 들어서, 가끔 먹을 것도 따로챙겨주고 심지어 메니큐어나 마스크시트 같은거 사다가 남으면 걔 하나 주고 그랬는데 오늘 그따위로 행동을 하는 거다. 
내가 비굴하게 행동해서 처참한 기분인 것도 있지만 걔한테 뒷통수를 제대로 맞은 것 같아서 분하다.
오늘부터 사람은 생긴대로 논다는 말을 200% 신뢰하기로 했는데 걔는 진짜 내가 이제까지 본 못난 여자 중에서도 못난지수로 따지자면 톱3 에 드는 외모다. (계약만료된 여자는 한 10위 된다. 여하튼 그 여자도 열손가락안에는 듬) 처음 봤을 때 어떻게 저렇게 생겼지? 라고 생각했고 사실 그래서 더 안된 느낌도 들기도 했었다. 크크크큭  찌질하게 남의 외모로 흉보니까 좀 후련한 기분이 든다. 아 다 잊고 잠이나 퍼자야지.

p.s 오늘 수강신청 날이었는데 역시나 분반 인원 조정에 실패했는데 난 사실 이렇게 될 걸 다 알고 있었다. 다 알고 있어서 복도에서 날 뛰어오게 한 여자에게 수강신청 전에 간곡하게 협조를 애원했지만 그 여자는 "악의적으로" 내 의견을 무시했다. 젠장. 교수한테 한 소리 들을 생각 하니까 우울하다. 우울하지만 듣는 수 밖에. 어쨌든 분반 인원은 장난 아니게 각각 잘못됐지만 한 분반이 아예 폐강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으니 완전한 비극은 아니다.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폐강됐으면 난 아마 오늘 밤 한숨도 못잤을 것이다.  

하찮은 비극

일상 2012. 2. 6. 23:51
오늘은 회사에서 좀 일이 있었다. 우울한 일, 비극적인 일. 쥐꼬리만한 월급 받으면서 매학기 시간표 매학기 수강신청 때마다 이렇게 시달려야 하는 것인가. 하지만 내 머릿속을 가득채우고 있는 이 비극적인 사건은 어느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은 일로 날 도우려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수 없는 일이다. 그냥 나 혼자 고스란히 떠안으면 끝인 이 일은 정말 같잖고 하찮아서 더 비참하구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냥 직장생활만 해서는 도저히 사람으로서 살 수 없을 것만 같다. 지금 침대 위에 작은 상을 펴고 노트북 올려놓고 전기장판을 켜놓고 무릎담요를 덮고 fourplay 의 magic carpet ride 를 듣고 있다. 이 곡 정말 좋아서 링크하고 싶은데 유튜브에도 들을만한 음질의 동영상이 없다. 
아아 난 이렇게 하루하루 아둥바둥 기도하는 기분으로 사는데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성격 상 먼 미래를 바라보면서 계획을 세우는 일을 못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이렇게 하루하루 죽여가는 기분으로 살아야 할 것 같은데 마흔이 넘으면 난 뭔가가 되어 있을 수 있을까?
가끔 가는 교회에서도 기도시간에 난 항상 다음주를 위해서 기도를 한다. 다음주 아무일도 없이 지나가게 해주세요. 나쁜 일 없이 지나가게 해주세요. 누군가를 좋아했을 땐 한가지 기도도 더 덧붙였다. 그런데 그 역시 그 사람에게 다음 주에 나쁜일 생기지 않게 해주세요. 이거였다. 더 뭐가 필요한가. (아 그러고보니 고모를 위해 기도한다고 해놓고 못했네)
평생을 가도 친해질 수 없는 부류로, 교회활동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라고 했지만, 내 태생의 종교는 기독교다. 아니 예수님 하나님을 믿어서 기도를 한다기보다는 기도를 하면 흥분했던 마음이 가라앉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는 악몽을 꾸다가 일어나도 혼자 이불 속에서 기도를 했다. 내가 생각하는 종교는 딱 이정도 수준이면 된다. 평생동안 성경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적도 없고 한달에 한번정도 가는 교회에서도 제대로 읽지 않지만, 종교의 의미는 딱 이정도가 아닐까. 
말이 길었지만, 난 오늘 우울했다. 그런데 예전 회사에서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서 스스로 위로하려고 해도 그게 잘 안된다. 사람은 간사하다. 간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