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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세상.

일상 2010. 3. 30. 10:51

나는 낯을 엄청 가리는 거 같으면서도 낯을 안가리고, 사람한테 엄청 경계심을 품고 있으면서도 안그런 척 잘한다. 그래서 상대방이 나중에서야 내 실제를 알고 당황하는 경우도 많다.
대학교 1학년 때 잠깐 동아리 할 때도 친한 사람이 많은 것 같으면서도 정작 보통 대학 애들이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끼리 하는 밤세워 놀기, MT 가기 등은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 (한번 갔다가 내 길이 아니다 하고 절대 안감)난 솔직히 체력 소비하면서 노는 게 왜 재밌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나도 참 독특한 성격이야. 노는 걸 좋아하는 거 같으면서도 별로 안좋고, 뭐 솔직히 말하면 여러 사람 모여서 술 마시는 것도 싫다. 그런데 또 처음 얘기해본 사람들은 그런거 엄청 좋아하는 줄 알고. 아니 내가 어딜봐서!!
여하튼 이러한 이유로 나는 주변에 친해질 뻔 해서 얼굴 이름만 알고 만나면 인사하는 대학 때 알던 사람이 꽤 많은 편이다. 물론 서로 연락을 해서 만나진 않는다.
어제는 평소와 같이 동인천 직통을 타서 핸드폰으로 뉴스 좀 보다가 신도림쯤 되면 자는 시간이라 팔짱을 끼고 잘 준비를 하고 있는데 누가 내 다리를 가방으로 툭툭 치는거다.
아 신도림에 사람이 엄청 타나보다 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런데 또 일부러 내 발을 치는 게 느껴져서 저번처럼 또 할아버지가 나보고 넌 젊으니까 일어나라고 눈치를 주는 것인가 하고 눈을 떴다.(예전에 어떤 할아버지가 자고 있는데 일어나라고 발로 내 정강이를 찬 적이 있었다. 엄청 화났지만 군말없이 일어났다)
수면 하려는 소정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해서 좀 짜증이 난 체로 눈을 떠보니 내 앞에 대학 때 친한 듯 지내다 결국 연락 한번 안했던 대학 때 알던 오빠가 떡하니 서 있는게 아닌가.
오~ 오랜만. 이러다 핸드폰 번호 알려주고 회사 얘기하다가 그 오빠는 부천에서 내리고 난 집에 와보니 동생이 약정이 24개월 짜린데 3개월 만에 핸드폰 잃어버렸다고 짜증이 엄청 나 있는거다.
갑자기 퍼뜩 대학 때 아까 전철안에서 만난 오빠가 핸드폰을 자주 바꿨던 것이 떠올라서 문자를 보냈다. 오랜만에 만나서 이런 얘기 해서 미안한데 혹시 sk 텔레콤 공기계 있냐고.
오늘 아침에 네이트온으로 이 오빠 친구인 나랑 연락하는 다른 오빠에게 이 얘기를 하니 철면피가 따로 없댄다. 2년만에 만나서 한다는 얘기가 나 공기계 줘 냐며.
나는 내가 달라고 안했다. 산다고 그랬다. 이랬는데 그냥 준다고 그랬다고 하니까 하여튼 나보고 대단하댄다.
그래서 갑자기 그 오빠한테 미안해졌다. 헐;; 난 진짜 한 5만원 정도로 살 의향이었는데.
어쨌든 이 경우를 봐도, 나는 시장 이나 지하상가에 가서 깍아달라는 말을 잘 못하고 흥정이 필수인 곳 (예를 들면 용산 지하상가, 혹은 핸드폰 파는 곳) 은 아예 안가는 편이다.
저번에 한국시리즈 5차전 때 sk 다니는 사람한테 표를 4장이나 얻었을 때 후배랑 잠실 야구장 가서 남은 표 2장을 암표상 아저씨들이랑 엄청 열심히 "나는 몇 년 전서부터 암표상에게 표를 비싸게 팔려고 태어났다는 듯" 흥정을 했다. 옆에 후배가 선배 진짜 짱이라고 했으니까. 그 때 광주가 고향인 잠실 쪽 사는 친구가 하필 핸드폰을 놓고가서... 에잇. 사실 암표상에게 팔아넘겨야 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는데 친구한테 핸드폰으로 전화를 20번했는데도 전화를 안받아서 어쩔 수 없었다. 표를 한 며칠 전에 얻었다면 진짜 야구 보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그냥 줬을 거다. 5차전 시작 30분 전에 표를 얻어서 어쩔 수 없었어.
이런 내 모습은 "뭐든 닥치면 다 하게 되어 있다." 는 나의 신념에서 비롯한 것이라 생각한다. 어렸을 때 부터 남다른 생존력이 있었으므로 좋게 생각해야지.
포스팅 제목은 좁은 세상 인데 내용은 계속 산으로 가고 있고나.
원래 처음 의도는 세상은 넓은 거 같으면서도 좁으니 죄를 짓지 말자는 거였다. 망한 일기가 되어버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