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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전선 이상 없다
국내도서
저자 :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Erich Maria Remarque) / 홍성광역
출판 : 열린책들 2006.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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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있음)


  가끔 목숨이 끊어질만큼 큰 위기가 닥쳐도 나는 인간다움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동물이 아닌 인간으로 죽기 위해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등등 얼토당토 않은 생각을 해보곤 한다. 이런 생각 때문에 내가 전쟁 영화를 자주 보는지도 모르겠다. 전쟁 영화가 주는 장르적 쾌감도 있지만, 잔혹한 묘사에만 집중하지 않는 잘 만들어진 전쟁 영화를 본 후에는 남의 생명이든 내 생명이든 소중히 여기자는 다짐을 반드시 한번쯤은 하게 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전쟁 영화 중 하나가 (여기서 여러 번 말했던) '워호스' 인데, '워호스' 주인공의 반대편에서 싸웠던 독일군 입장에서 1차세계 대전을 그린 소설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에 이 책을 골랐다. 책을 읽는 중 너무 참담한 심정이 되어 더 읽지 못하고 가끔 쉬기도 했지만, 어쨌든 다 읽었다.


  작가 레마르크의 본명 미들네임이 '파울' 인 것에서 알 수 있듯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의 주인공 '파울 보이머' 는 작가의 분신이다. 레마르크는 살아남았지만, 소설 속 파울 보이머는 종전을 앞두고 결국 죽는다. 전쟁을 경험한 이상 운이 좋게 살아남더라도 흡사 죽은 자처럼 남은 인생을 살아나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특히 패전국의 군인들은 승전국의 군인들이 맞는 환대도 명예도 전혀 없을테니 아마도 더 비참하리라.


  나는 막연히 전쟁 중 군인이라면 오늘 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 말지 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게 아니었다. 나이든 칸토레크 선생의 선동에 아무것도 모르고 10대에 입대하고 전장에서 20대를 맞은 파울 보이머는 자기가 군인 이전에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에 가장 괴로워한다. 나이가 좀 들어 참전한 군인들은 전쟁에서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가면 목수거나 농부거나 대장장이로서 살 수 있지만, 파울은 만약 살아서 고향에 돌아간다고 해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파울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것 외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다는 막막함이 당장 내일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만큼 크다. 

  자기들이 가진 모든 것은 전쟁으로 인해 파괴되었고, 심지어 전쟁 이전의 나도 이미 파괴되어 이젠 동정심없고 생존 욕구 밖에 없는 자신만 살아남아 있다. 혐오스럽게 변한 자신이 스스로도 의아하고 어색하지만 무슨 짓을 해도 절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파울은 전쟁 후의 삶에도 전혀 희망이 없다. 하지만 군인이니까 어쩔 수 없이 전투에 임하고 살아남기 위해 악전고투 한다. 파괴되어 가는 나와 전우를 그저 지켜봐야만 하는 것이 전쟁의 가장 큰 비극인 것이다.

  이 소설은 '슬프다. 괴로웠다.' 등의 감정묘사가 전혀 서술되지 않고 아주 건조한 문장으로 쓰여져 있는데 작가 레마르크가 거대한 비극을 겪으며 그가 느꼈을 감정에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부족하기 때문에 감정 표현을 아예 하지 않은 것 아닐까. 간호사에게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도 부끄러워 머뭇거리는 어린 파울이 죽고 그 밖에 다른 군인들이 갖가지 방법으로 비참하게 죽어나가도 독일군의 보고서에 '서부 전선 이상 없다.' 고 쓰여지는 결말을 보며 마음이 무척 서늘했고 아파왔다.


  우리가 전쟁터에 온 이후로 일부러 그러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전 생활과 완전 단절되어 버렸다. 이전 생활을 개관해 보고 설명해 보려고 여러번 시도해 보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칸토레크 선생이 강철 같은 청춘이라 부른 스무 살에 불과한 우리들, 크로프, 뮐러, 레어 그리고 나에게는 모든 일이 불투명하다. 그런데 나이 든 사람들은 모두 이전의 생활과 확고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들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부인과 자식, 직업과 여러가지 이해관계가 있다. 이것들은 전쟁으로도 파괴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결속되어 있다. 하지만 스무 살인 우리에게는 고작 부모밖에 없으며, 개중에는 여자 친구가 있는 사람도 있다. 이는 그리 대단하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 나이에는 부모의 힘이 가장 미약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은 여자 친구에게 온통 마음을 뺏길 정도도 아니다. 이것 말고는 우리에게 별로 대단하다 할 만한 게 없다. 그저 약간의 몽상, 약간의 취미 그리고 학교가 있을 뿐이다. 우리의 삶이 아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중에 남아 있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

- p.23


  나는 마음이 설레지만 그러고 싶지 않은 심정이다. 왜냐하면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내가 책장 앞으로 걸어갔을 때처럼, 다시 이런 잔잔한 황홀한 기분, 이러한 격정적이고 뭐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충동적인 기분을 느끼고 싶다. <가지각색의 책들에서 솟아오르는 소망의 바람에 다시 한번 휩쓸려 보았으면, 그 바람이 내 마음속 어딘가에 죽어 있는 묵직한 납덩어리를 녹여 버리고, 내 마음 속에 다시 미래에 대한 조급함과 사색의 세계에 대한 활기찬 즐거움을 일깨워 주었으면. 그리고 그 바람이 나의 청춘 시절의 잃어버린 준비 태세를 되돌려 주었으면>

- p.138


  「뭐 그런 것 같습니다.」 나는 그냥 얼버무리며 대답한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이것저것을 묻기 시작한다. 그녀는 나를 반짝 반짝 빛나는 눈으로 바라본다. 깔끔하고 훌륭한 여성이라서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나는 다시 위쪽 침대로 들어 올려진다. 이제 큰일이다. 그녀가 가고나면 나는 즉각 다시 밑으로 내려갈 시도를 해야 한다. 그녀가 늙은 여자라면 차라리 털어놓고 사정을 이야기하겠지만, 기껏해야 25세정도 되는 새파랗게 젊은 여성이고 보니, 어쩔 도리가 없다. 그녀에게 그런 일을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 p.196


  이렇게 만신창이가 된 신체 위에 아직 얼굴이 붙어 있고, 그 얼굴로 하루하루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게 정말 신통하다. 그런데 이것은 단 하나의 야전 병원, 단 하나의 병동일 뿐이다. 독일, 프랑스 및 러시아에는 각기 수십만 개의 야전 병원이 있다.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 지금까지 쓰이고, 행해지고, 생각된 모든 일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 이와 같은 대대적인 유혈사태, 수십만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이러한 감옥을 수천 년의 문화로도 막지 못한다면 세상의 모든 것은 얼마나 거짓되고 무의미한 것인가. 이러한 전쟁의 참상을 바로 야전 병원이 보여주는 것이다.

- p.207 


  p. 138 - 이 책 역시 헌 책으로 산 건데, 책 앞 장에 군대 도장이 찍혀 있었다. 전 주인이 군대에서 이 소설을 읽은 모양이다. 그런데 138페이지에는 밑 줄을 그어 놓았다. 나 역시 납덩어리를 녹인다는 표현이 너무 멋져서 몇 번이고 읽었다. 이 책 왜 팔았을까. 군대에서 읽은거면 의미 있는 책 아닌가. 


  p. 196 - 여기에서 파울이 그녀에게 말하지 못하는 '그런 일' 이란 바로 오줌이 마렵다는 말이었다. 세상에나. 그게 뭐라고. 결국 옆에 있던 친구 알베르트가 대신 말해주는데 간호사가 큰 거냐 작은거냐 묻고 그 질문을 들은 파울은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된다. 모든 장면이 절망적이고 우울한 이 책을 통틀어 유일하게 귀여운 장면이다. 결국 파울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작은 거라고 대답하고, 간호사가 그럼 침대 밑으로 내려올 필요도 없다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병 하나를 건내 준다.


P.S 이 책은 전쟁영화 같은데서 보이는 허세나 미화가 전혀 없어서 좋았다. 가끔 전쟁 영화에서 그런 거 있지 않나. 만든 이가 남성성에 취해 흡사 '어때 이렇게 싸우는 우리 강하고 멋지지 폼나지?' 라고 말하는 듯한 장면이나 대사. 이 책은 그런 거 전혀 없다. 역시 진짜 전쟁을 경험한 자는 전쟁을 미화하지 않는 법이다. 2018년에 이거 영화화 되는 거 같은데 (이미 아주 오래전 영화화 된 적 있지만) 궁금하다.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