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동안

일상 2016. 6. 8. 17:26

연휴동안 대학 때 같이 수업듣던 언니의 결혼식에 갔다.

언니가 나한테 소개시켜줬던 언니네 회사 사람도 오겠지? 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재수없게 너무 가까운 자리에 앉게 되서 짜증났다. 그냥 보이는 자리 앉은건데 하필 왜 그 쪽에 앉아 있었던 건지.

내가 먼저 아는 체 하기도 웃겨서 그 남자가 날 보는 시선이 느껴지는데도 계속 안보이는 척 했다. 그 남자 정말 이상하고 황당한 남자였는데, 이제 다신 안보길 바랄 뿐이다.

결혼식장에 혼자 간 게 이번이 네 번째인데, 네 번 다 혼자 밥 잘 먹었다. 이번에는 갈비탕이었는데, 살짝 아쉬웠지만 무난한 맛이었다.

결혼식이니 예의를 차려야지 싶어 원피스에 저번달 백화점에서 산 9cm 굽의 오픈토를 신고 갔는데, 오는 길에 발이 너무 아파서 전철에서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이었다. 나중에는 내 앞에 앉아있는 사람한테 '저 발이 너무 아파서 그런데, 자리 좀 비켜주시면 안될까요?' 라고 말할까 말까 심각 고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농담이지만.. 진짜 그러고 싶은 맘이었다.) 그래도 꾹 참고 서 있다, 시간이 갈수록 너무 아파서 살긴 살아야하니 그냥 맨발로 서 있어야하나.. 하고 큰 맘 먹을 쯤 자리가 나서 얼른 앉았다.

그 신발은 굽도 굽이지만, 더 큰 문제는 볼이 좁은 것인듯 하다. 하늘색이라 예뻐서 샀는데, 너무 아파서 다음에 신을 용기가 날지.

결혼하는 언니에게는 부럽다 를 남발했지만 또 식장에 들어가는 언니를 보니 꼭 결혼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고 그랬다. 어쨌든 결혼이란 책임은 커지고 자유는 줄어드는 것이니까. 물론 언니는 행복해 보였다.

결혼식에서 사회자가 신랑에세 저질스러운 짓을 시켜서 지켜보다 기분이 상했다. 남편보고 신부 치마 안으로 들어가 '이곳이 천국이다.' 라고 외치라고 시켰는데, 만약 내 결혼식에서 사회자가 그딴 짓을 시키면 그 자리에서 죽빵을 날려버렸을 것이다.

일요일에는 엄마 생신이 6월10일이라 가족들이 모여서 생신 축하한다고 말씀드리고 외식도 했다.

우리집의 가족사를 돌이켜보면, 단 한시기도 경제적으로 넉넉했던 때가 없었는데, 매년 부모님 생신 때마다 그 사실이 참 실감이 나서 슬퍼진다. 내 월급도 지금은 엄청 적고...돈을 못벌면 평범하게라도 살아야 하는데 이 나이되도록 결혼도 못하고 애도 못낳아 걱정만 끼치고. 항상 가난하게 살며 지금까지도 고된 육체노동을 하는 엄마를 보면 마음이 아프고 나의 보잘것 없는 능력에 죄책감이 든다.

요즘 꼭 가야하는 약속인 결혼식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할 일이 없는 주말이 계속되고 있다. 뭐 이런 시간도 필요한 거니까, 의미없는 시간이라는 생각은 안하기로 했다.





극복해야 할 문제

일상 2007. 12. 20. 09:37
난 몸을 엄청나게 사리는 사람이라 어제 밤에 11시에 누웠는데 2시간 넘게 잠을 못 이루며
아.씨. 이러면 내일 진짜 피곤한데!!!!
라면서 끝끝내 누워서 뒤척였다. 누워서 피로라도 풀자 싶어서.
어제는 아빠 생신이었다. 주말에 이미 선물을 드렸고,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원주에서 보셨다던 '왕이 되려고 했던 사나이' DVD를 추가 선물로 드렸다.
엄마가 맘먹고 갈비를 하셔서 밥 한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케익까지 아구아구 집어 먹었더니 배가 살살 아팠다.
TV에는 온통 대선특집방송만 하는 중 이었다.
내 주변에는 아무도 이명박을 지지하지 않아서 여론조사는 다 조작한거라고 라고 믿고 있었다.
난 정동영이 흔히 말하는 사표를 찍었다. 그렇다고 이회창을 찍은 건 아니었다.
난 이명박이 싫다.
어디서 봤듯 경제회생이 대통령의 최대 공약이 되는 것 자체가 비극 아닌가.

어제 누워서는 또 우울한 생각을 했다.
누군가에겐 나 좀 불쌍하지 않어? 라고 말을 했지만, 어제 느꼈던 감정은 내가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찌질한 나 자신에 대한 동정심은 아니었다.
그냥 기분이 계속 좀 나쁘네. 이것도 거짓말이다. 기분 나쁜 것과는 다른 감정이다.
이 생각 자체를 우울한 생각이라고 표현하기에도 좀 웃기다.

어제밤에 누워서 2007년에 나에게 어떤 일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나. 곰곰히 생각해봤다.
그렇다. 난 사실 7월에 벌어졌던 사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난 비겁했다. 그렇다. 완전히 비겁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자. 내가 그 사람이었다면? 나는 훨씬 더 심하게 모욕하고 비방하고 경멸했을 거다.
그래 이전의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그 이후의 그 사람이 어떻게 될지는 전혀 생각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새삼 깨닫고 있다.
아직도 문득 문득 생각이 나서 괴롭다.
난 아직도 궁금한 것이 나에게 그런 말을 할 당시 오랜시간 그 말을 기억하면서 괴로워하라는 의도로 그런걸까. 아니면 홧김에 그런 말을 한 걸까.
어떤 의도에서든 나는 당분간은 그 말때문에 괴로워할 수 밖에는 없다.

그렇다면 나는?
누군가에게 상처될 말을 하면서 이 사람이 내가 한 말 때문에 얼마나 긴 시간을 괴로워할지 단 한번이라도 생각해봤었나.
그래.. 솔직히 말하면 한번도 그런 생각 해본 적 없다.
내가 이렇게만 말하면 이 상황을 끝내버릴 수 있다고 생각해서 쏟아낸 말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비겁하고 상대방에게 부담과 민폐만을 주는 인물이었다고 해도,
난 진심을 다해 많이 좋아했고.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든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든 사정이 있을 거라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이해하려고 애썼다. 아니 애쓰지 않아도 좋아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에게 전혀 이해되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것이, 그게 그냥 너무 슬픈거다.
난 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고 걱정도 많이 했는데
그 사람은 내 일기를 보면서 나에 대하여 왜 이 사람은 이렇게 이상한 생각을 하면서 살까 생각했다는 것이.
나는 그 사람에게 있어 끝끝내 이해하기 힘든 사람이고 말도 안되는 불만만을 쏟아내는 여자였다는 것이.
그런 중에도 그래도 내가 그 사람에게 아주 큰 의미까지는 아니어도 조금은 의미있는 사람이겠지.
내가 가끔은 위로가 되는 사람이겠지.
라는 어리석은 착각에 빠져서 전화 한통에 울고 웃었다는 것이..
말로 표현하지 못한 많은 이유들 때문에
7월이후로 난 말로는 다 못할 만큼 가슴이 쓰리다는 거다.
흠. 그래. 뭐 이것조차도 그 사람의 의도와는 완전히 벗어난 말도 안되는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이겠지만.

2007년이 끝나고 2008년이 쨍하고 밝으면 난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까?
순전히 감정적인 문제라 누가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 문제도 아닌데.
난 상대방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는 여자라는 생각에서 언제쯤 자유로워 질 수 있을지.
극복하자.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