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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응자.

일상 2009. 6. 12. 20:01

교육을 다녀왔다. 저기 용인 깡시골에 있는 곳으로 다녀왔는데 난 용인이 그렇게 시골인 줄 몰랐다. 인천이 뭐 용인에 비하여 얼마나 세련된 도시겠냐만은 난 용인사느니 인천살겠다. 교통이 너무 심하게 안좋잖아. 7월달에는 회사에서 저기 경북 문경 가서 산악자전거 타고 사격하자는데 정말 돌겠다. (그것도 무려 금요일 토요일 1박 2일의 스케줄) 고등학교 때도 수련회 안가고 학교에서 자원봉사로 잡초 뽑고 비디오 봤던 내가 1년동안 4번씩이나 되는 숙박 교육을 가려니까 말 그대로 토 나온다. (대학때도 1박 2일 엠티는 단 한번 갔었다. 갔다와서 기관지염에 시달렸었지.;;)
교육 받은 거 자체는 꾸역꾸역 회사에서 받으라고 하니까 돈 벌어야 하니까 하는 건데, 거기서 멍하게 교육 받고 있으려니 정말 세상살기 너무 힘들단 생각을 마르고 닳도록 했다.
용인이 도저히 전철로 오기에는 동인천과 거리가 멀어서 아빠에게 나 좀 집에 데리고 가주세요 하고 부탁을 했는데 생각보다 교육이 일찍 끝나서 기다리는 동안 연수원 안에 있는 산책로를 혼자 걸었다. 회사에서 딱히 친한 사람도 없고 아쉬운 소리 하기 싫어서 아빠한테 부탁한건데 다들 과보호 받는 딸인 줄 알더라. 다른 회사 사람들은 끝나자 마자 차 타고 잘 들 떠났다. 낯선 곳에서 혼자 산속 산책하다보니 기분이 부쩍 우울해져서 시골로 내려간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난 아무래도 회사 체질이 아닌 것 같다고 하소연을 했다. 내 친구에게서 지극히 현실적이고 당연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 뭐 우리 둘이가 어줍잖은 말로 희망을 복돋아줄만한 사이는 아니지.
거기 연수원은 현대그룹 전체 연수원이 다 모여 있는 곳이었는데 교통이 너무 불편하다는 것만 제외하면 공기가 무지 좋고, 뻐꾸기도 울고 산책로는 베리 굳이었다.

저번에 어떤 사람에게 니 주변 사람은 왜 다 못됐냐?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비꼬는 투였다) 그러니까 내가 항상 주변 사람들 불평불만만 하고 나쁜 사람 만드는 거라는 뜻이었다. 그리고선 아마 니 자신을 먼저 되돌아 보라고, 남의 결점만 보는 사람은 자신의 결점은 못보는 거라고 말했었다. 그 이외에도 다른 말이 많았지만, 시간이 좀 흐르고 보니 다른 말들 보다 이 말이 참 나에게 큰 상처가 된 거 같다. 이제까지 나랑 친구관계 유지하여 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했고. 이런 불만 투성이의 볼멘 소리에도 다들 공감해주고 오냐 오냐 해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

내 직속 과장도 관두고 새로오고, 그 위에 팀장도 새로 왔다. 저번주에는 새로 오신 팀장이 개별 면담을 하는데 난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냉소적으로 대답을 했고, 역시나 내 신변에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작년에는 회사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한가지라도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2년이 다 되어가는 마당에 하고 싶은 일이 단 한가지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하고 싶은 일 하고 사는 사람이 없는 건 안다. 하지만 적어도 하기 싫은 일을 이렇게 죽어라 하면서 평생 살아야하나.
평소 때 피해의식 있는 사람 싫다고 얘기는 하지만 어쩌면 내가 피해의식이 쩌는 인간인 거 같다. 요즘들어 가장 부러운 사람은 나이 생각 안하고 내가 지금 이미 반 이상 걸어온 길이 처음부터 잘못된 거 같으면 그래 시간 좀 보내면서 잘 생각해보라고 응원해줄 수 있는 집안의 사람이다. 이거 또한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경제력 아닌가.
난 왜 똑똑한 인간이 못되어서 대학 4년을 그리 허송세월하고 이 지경으로 되어 있나. 애초에 승부욕 있고 경쟁심 있는 사람이 아니라 뭘 한들 평균 정도만 하면 되는 생각으로 살아온 게 문제일 수도 있는데, 도통 나같은 인간이 이런 사회에 발 들여놓을 자격이 있나. 버틸 능력이 되나 싶다.

회사 사람들이 그 책을 쳐다보는 것 만으로도 아마존의 열대우림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썩을 경제 경영 서적이나 자기개발서에서 나오는 얘기나 나에게 지껄이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냥 내가 여기 버티고 하는 일 하고 있어야 지들 심간이 편해서 그러는 거겠지. 아무리 인간적으로 회사 내에 친하다고 해도 나랑 일에 있어 관련이 되면 그 사람이 아무리 죽을 똥 살 똥 몸과 마음이 아파서 한 2~3일 회사 안나오면 내 몸이 힘들고 왜 걔는 회사 안나오고 지랄이야. 하는 생각 드는 게 회사다.
꼴에 3년차라고 일이 넘쳐나서 내 유일한 위로였던 블로그도 제대로 못하고, 6월 쯤에는 9층 건물 창문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닌데. 이거 역시 내가 모든 것에 삐딱해서 지극히 당연한 사회의 이치에 수긍하지 못하고 혼자 왜왜왜! 하고 불평 불만만 늘어놓기 때문이라면, 나같은 건 그냥 집안에 틀어박혀서 밥이나 축내는 인간으로 살아야 할 거 같다.
뜬금없이 이런 얘기하기 뭔 하지만, 카프카의 변신 를 읽었을 땐, 역시 나같은 단세포 인간이 이해하기엔 어렵다는 생각을 했는데, 참 지금 내 상황에 그보다 더 걸맞는 소설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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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 천장 물이 새서 조명이 튀어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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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이 튀어나오기 직전의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