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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6.15 2014년 본 영화 간단 평2 2

저번에 간단히 쓴다고 해놓고 구구절절 너무 길게 썼다. 영화에 대해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은 사람은 지금 내가 쓰는 글도 읽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으니 참고하셨으면.

1. 싱글맨

구찌 디자이너였던 톰포드가 감독한 영화. 잘생기고 멋진 남자들의 향연.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나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는 런닝타임 내내 눈호강 제대로 할 수 있다. 한동안 핸드폰에 넣고, 좋아하는 장면을 몇 번씩 리플레이했다.

가끔 보면 영국인을 동경하는 미국인들이 많은 것 같은데 톰포드도 그런 사람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나는 추호의 의심도 없이 톰포드가 영국 사람인 줄 알았는데, 미국사람이었다. 이 영화 주인공이 영국에서 온 미국대학 교수인데, 뭔가... 영국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게 워낙 많이 나와서 톰포드가 영국 사람인 것으로 착각할만도 하다.

영화 내용은 간단하다. 죽고 싶었던 남자가 간신히 삶의 희망을 찾았는데 죽어버린다는 이야기다. 다른 건 다 재쳐두고 멋을 잔뜩 부린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 꽤 뜻 깊었던 영화다.

2. 센스 앤 센서빌리티.

한 10년 전부터 이 영화를 보려고 했는데 드디어 봤다. 페라스 역할에 맹한 젊은 시절 휴그랜트가 그렇게 적역일 수 없었다. 제인 오스틴은 여자가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남자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 같다. 어리숙하지만, 다정하고, 나만 바라봐주고, 능력도 있고, 속깊고, 진중하고, 가볍게 자주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진심이 느껴지는. 등등 더 말하고 싶지만 참는다. 제인 오스틴 시대나 지금이나 그런 남자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제인 오스틴이 괜히 평생 혼자 산 게 아니다.

지금은 거물이 된 이안 감독의 헐리우드 진출작인데, 영화만 봐서는 동양 사람이 감독인 거 전혀 느낄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이안감독이 아시안으로서 자존심을 버렸다고 (특히 브로크백 마운틴 감독한 뒤로) 싫어하지만, 이 정도로 국제적 감각을 가진 동양 감독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 미국 배경이든 유럽 배경이든 중국 배경이든 자유자재.

그나저나 브로크백 마운틴은 보고 싶긴 한데 언제나 집에 엄마아빠가 계시니 볼 수가 없다. 휴. 나이 32살인데 아직도 이런 거에 엄마 아빠 눈치를 보다니...

3. 노트북

이 영화 매니아층이 꽤 있는 거 같던데. 난 정말 재미 없었다. 여자주인공이 진짜 나쁜년이다. 남자 주인공도 좀 싸이코 같다. 나 버리고 떠난 여자 그리워 하면서 왜 전쟁 미망인은 매일 밤 불러내서 같이 자는 것이며, 여자 주인공도 진심으로 자기 좋다는 백만장자에게 사랑한다고 해놓고 종종 첫사랑 남자 만나서 바람이나 피고. 대체 사람들은 이 영화가 왜 좋아하는거야? 이해불가.

두 남녀가 너무 민폐다. 아무리 어린시절 풋사랑으로 어쩔 수 없이 헤이져 서로 그리워 했대지만.

4. 부기나이트

이 영화에 대해서는 꽤 긴 포스팅을 남기고 싶었지만, 결국 이렇게 짧게쓰게 되어 안타깝다. 이 영화는 내가 중학생 때 개봉했다. 그 때 당시 영화 잡지고, 신문이고 난리가 났었다. 천재 감독이 나타났다고.

이 영화를 만들 당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29살.

난 만으로 쳐도 벌써 30살 인데도 이렇게 살고 있는데 29살밖에 안된 영화 감독이 이정도 작품을 내놓았으니 당시 세계가 난리가 날만하다.

영화를 보다보면 1970년 대에 대한 감독의 애정이 듬뿍 느껴지고, 포르노 업계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미국 사회를 정말 생생하게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에서 제일 놀랐던 장면은 등장 인물 이름이 빨간색 네온 사인 느낌의 자막으로 나오며 영화 속 포르노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를 영화 안에 그대로 사용한 장면인데, 그 장면은 지금 봐도 정말 혁신적인 연출 방법이다.

또 돈 치들 (극에서 포르노 업계에서 번 돈으로 오디오 가게를 열고 싶어하는 "벅" 역할) 이 임신한 부인을 위해 빵을 고르는 장면인데, 그 때 돈 치들을 진열된 빵 시점에서 얼굴을 카메라로 잡는데 그것만으로도 그 가게에서 심상치 않은 큰 사건이 일어날 것을 관객은 느낄 수 있다. 이런게 영화적인 기술인가 싶었다.

덕 디글러가 신예 포르노 배우에게 밀려나며 오랜 기간 함께 했던 잭을 떠나 거리에서 자신의 성기를 보여주거나 몸을 팔며 갖은 고생을 하다가 다시 잭을 찾아갔을 때 잭이 덕을 용서하고 받아줘서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참고로 난 그냥 모자이크 버전으로 마지막 장면을 봤는데 (모자이크 없이 보고 싶은 마음도 없음) 그 장면이 선정적이다는 소문으로 유명해졌지만, 어떻게든 그 시대를 다시 살기로한 한물 간 포르노 배우 덕 디글러의 결의와 희망이 느껴지는 중요한 장면이었다. 파격적이긴 하지만, 그의 거대한 성기 덕분에 포르노계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으니, 그런 방법으로 마지막을 장식하는 건 알맞는 연출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는 이래서 좋다.

어쨌든 끝에 가서는 인간에 대해 희망을 버리지 않고, 힘들고 한 때는 누구나 나를 혐오하고 나조차도 나를 혐오했다 하더라도,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넌지시 희망을 던져주니 말이다.

진짜 잭이 덕을 다시 받아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5. 겨울왕국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라푼젤 보다 겨울왕국이 더 좋은 것인가 진지하게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라푼젤을 한번 더 봤다. 그리고 역시 디즈니 영화 중 최고는 라푼젤이구나 하고 단호하게 결론을 내렸다.

엘사라는 이제껏 디즈니에서 볼 수 없었던 걸출한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좋게 볼 수 있겠지만, 이야기의 연관성이 라푼젤 보다는 좀 떨어지는 느낌이다.

라푼젤에서는 라푼젤과 유진이 서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여러 가지 상황이 있었다. 그런데 안나랑 크리스토프는 갑자기 왜 뜬금없이 좋아하는 것인지 좀 의아했다.

하지만 못말리는 라푼젤빠인 나도 한동안은 겨울왕국이 너무 좋아서 사운드트랙을 하루에 2번 이상씩 듣고, let it go 동영상을 하루에 적어도 5번 이상 씩은 돌려보고, 극장에서 이 애니메이션을 2번이나 시청했을 정도로 좋아했다.

엘사가 방에 갇혀 있을 때, 엘사가 자기 정체가 밝혀져서 도망갈 때, 울라프가 친구를 위해서는 녹아도 괜찮다고 했을 때도 눈물이 났다.

이정도면 라푼젤 만큼은 아니지만, 겨울왕국도 아마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10위 안에는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겨울왕국에 라푼젤 제작진도 참여했다는데, 대체 왜 남자 주인공들의 얼굴이 그렇게 현저히 못생겨 질 수 있지 궁금하다. 왕자님도 크리스토프도 너무 못생겨서 디즈니에 항의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유진은 진짜 완전 최고 멋있는데.... (심지어 성격도 남자답고) 근데 크리스토프는 아니야. 안 멋있어. 진심 슬펐다. 이 점이. 그리고 이 점이 라푼젤이 최고라는 내 결심을 더 굳히게 만들기도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