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과 올해

일상 2016. 7. 16. 15:58


작년 이맘 때 불미스러운 일로 회사에서 짤렸다. 내가 사표를 내긴 했지만, 사표를 쓰라는 압력이 있었으니 짤린 거나 다름 없었다.

이 모든게 겨우 1년 밖에 안된 일이라니... 아주 아득하게만 느껴지는데 말이다.

작년 여름의 가장 더운 시절은 모교에서 보내고, 지금 직장에 온지도 1년이 되간다.


저번 주 화요일에는 교육 때문에 신답역에 갔다. 서울에 이렇게 아담하고 귀여운 역이 있다니... 흥미로웠다. 플랫폼에 저렇게 작은 수풀도 우거져 있고, 단 하나뿐인 출구로 나와도 어찌나 고요한지. 서울은 언제 어디서나 북적거리고 사람으로 넘쳐나는 곳인 줄 알았는데, 신답역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우리집 인천에서 이렇게 먼 곳을 누비며 회사 생활을 할 지 꿈에도 몰랐다. 난 대학 졸업할 때도 이직을 고려할 때도 항상 인천 우선으로 직장을 구했는데, 이상하게 인천이랑은 연이 닿질 않는다.


작년에 몹쓸 여자 하나 때문에 회사에서 온갖 수모를 겪으며, 올해는 좀 평안하게 지나갈 줄 알았는데, 요즘 우리집 분위기는 오늘 날씨만큼이나 우울하다.


엄마가 8월 4일에 수술을 하신다. 암인지 아닌지는 수술해서 조직 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다고 한다. 조직검사하는데 한 일주일은 걸리니까.. 8월 둘째주까지는 엄마의 병이 암이 아니길 하면서 기다리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자궁근종이야 워낙 흔한 병이고, 주변 자궁근종 환자들도 근종 제거하는 것으로 끝났는데, 우리 엄마는 생긴 모양이나 위치가 누가봐도 양성 근종은 아닌 모양이다.


너무 큰 비극은 오히려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

아무리 비관론자라고 해도 누구나 '나에게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날 리 없다' 고 생각하는 일은 엄청나게 많으니까..

난 당연히 엄마가 큰 병이 아닐 거라 믿고 있다. 만약 암이라고 해도 폐나 간, 대장암보다는 제거가 쉬운 부위고 완치율도 높은 암이니 씩씩하게 치료 받으시면 완치될 거라 믿고 있다.

하지만 만약에 정말 만약에 우리 엄마가 암 판정을 받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지 지금으로선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엄마의 병이 별거 아니라는 말을 지금 당장 들을 수 있다면, 작년에 회사에서 당한 수모를 열번 쯤 더 당해도 상관 없을 것 같다.


어쨌든 현재로선 기도하며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난 어제 밤에 구토를 총 3번 하고 설사는 샐 수 없을 만큼 하다가 오늘 출근했다.
3박4일 내내 멀쩡하다가 왜 출근 전날 그런건지? (너무 오기 싫어서 그랬나)
결국 물 한모금 못 먹고 출근했는데 계단 내려가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고꾸라질 뻔 했다.
엄마가 전철안에서 토할 지도 모른다고 검정봉지까지 챙겨줬는데 서울역 들어오는데 갑자기 속에서 또 반응이 오는거다. 그래서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했다. 토 안하게 해달라고.
어제만 해도 좋았다. 친구랑 예스맨 보고 롤도 먹고 타조 차이티라떼도 먹고. 근데 집에와서 목마르다고 물 한컵을 벌컥벌컥 마셨는데 그게 그렇게 되냐고.
약 먹은 것도 다 토하고 웬만하면 회사도 안오려고 했는데 무슨 중요한 면담 있다고 해서 왔더니만 나는 다음으로 미뤄졌댄다.
그리고 오늘 따라 중고 카메라 팔기로 한 사람 만나고 들어가기로 했다.
이젠 열도 나고 막 오한이 오고, 중요한 면담이라고 해서 치마 입고 오느라고 다리도 시려 죽겠다.

근데 아까 회사 선배가 월말이라 일 많으니까 나보고 빨리 나으랜다.
그 선배 아프기만 해봐라. 나한테 한말 똑같이 해줄테다. 아 서러워.
체한데다가 감기까지 아주 탈수 제대로 되는구나. 아 괴로워. 콧물은 하도 닦았더니 코도 완전 아프다.
제기랄 진짜 지옥이 따로 없네.

일본 여행에 다녀와서부터 몸이 여기저기 아프더니만 결국 담에 또 걸렸다. 내 친구는 담에 걸렸다 표현 안하고 담 들었다고 말하던데. 그렇게 말하는건가?
시름시름 앓기를 며칠, 장염 증세가 며칠 지속, 귀에 염증, 결막염을 거쳐 '담'에 코감기까지 단단히 들어버렸는데 거기에 목소리까지 완전히 맛이 가버렸다. 에헤라.

저번주는 정말 악목같은 일주일 이었다. 내 생애 그렇게 일주일이 길어보긴 처음이었다.
내 생애 가장 길었던 일주일이여. 으흑.
화요일에 회사에 대형사건 하나가 뻥~! 하고 터져서 그 이후로는 수습하느라 반 죽을 뻔 했다. 다시한번 내가 일하는 부서에 회의감이 들었달까. 내 성미에 전혀 맞지 않는 일 하는 거 정말 괴롭다. 직장인들 대부분이 회사 사람들 때문에 힘들다고 한다. 직장 사람들한테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게 뭐냐는 질문 1위에 인간관계가 나왔다고 하니까. 나도 정말 죽었다 깨어나도 친해지지 못할 사람. 친해지고 싶지 않은 사람. 친해지면 안되는 사람. 등등 여러 인간들이 회사에 많고 그것 때문에 관두고 싶다고 골백번 생각을 했지만, 내가 관두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지금 이 일이 너무 싫기 때문이다. 솔직히 학교 다니면서도 죽어도 안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일 중 하나가 지금 하는 일이다. 졸업 후 제대로 돈도 못벌고 계약직으로 일할 땐 정규직이면 옳타쿠나 감사합니다. 하고 가려고 맘을 먹었고 여기 회사에 붙었을 최초에는 기쁜 마음이 컸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회의감이 들고 이 직무로 경력 쌓고 또 너 이 경력으로 회사 옮길래? 라로 자문해보면 오오 Never! 다. 내가 하고 있는 직무가 싫을 뿐 아니라 몸 담고 있는 직종도 싫다. 아. 싫은 것 투성이~~ 그래도 1년도 못 버티고 나오면 어디가서 버틸만큼 버텼다 말하기 쪽팔릴 뿐 아니라, 1년도 못하고 관둔 날 용서할 수 없을 듯 하여 1년은 버텨야 하지 않겠니? 라면서 버티고는 있지만.. 그리고 말할 수 없는 뭔가를 계속 고대하고 있는 상태지만 저번 루쉰 책에 대해서 쓸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포기로 기울고 있다. (안돼!!! 루쉰 선생님의 말을 생각해! 희망은 미래에 속하는 것이잖아!! 라고 맘을 다잡아도 소용없다. 흑)
그렇다고 해결책이 있느냐? 관두고 나오면 니가 뭐 할 것이 있느냐? 없단 말이다. 아아아아악. 그래 일단은 1년이 되기까지의 유예기간이 있다. 이제까지 그래왔듯 그때가 되면 또 불현듯 어떤 결심을 하게 되리라 믿는다. 그렇다. 뭐 고민한다고 되는 일이더냐. 하루 하루 살아가고 주말 제대로 돌아와주면 되는 거 아니냐.
크크 이제까지 쓴글을 찬찬히 읽어보니 이거 뭐 무슨 정신병자가 쓴 것 같네. 반지의 제왕에서 골룸이 혼잣말 하는 거 같잖아. 이거원. 혼자 고민하고 혼자 해결책 수습하고.

다시 내가 원래 말하고자 했던 내 몸의 증상에 대해 말해보자면.
저번 담의 증상은 '오른쪽으로 고개가 안돌아간다. 오른팔이 안 올라간다. 허리를 숙일 수 없다.' 이 정도였다. 아주 대형 담이었다고 할까. 이번 담의 증상은 딱 하나 왼쪽으로 고개가 안돌아간다. 이거 였다. 저번 담에 비한다면 아주 약한 증상이었는데 사람이 목이 제대로 안 돌아가는 거 단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생활이 불편해질 수 있는지 절실히 깨달았다.
오랜만에 우리동네 단골 한의원에 갔더니 의사선생님이 이렇게 날씨 좋은 주말에 무슨 일로 왔냐고 물어보신다. "아.. 저기.. 목이 아파서."라고 말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단번에 "여기랑 여기 아니세요?" 라고 딱 집는데 이런 족집게 같으니라고. 정확하게 그 부분이 너무 아파서 나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부항을 한 4개 뜨고, 침은 한 8방 맞고 찜질까지 마무리 짓는데.. 나이 26에 부항이나 뜨고 누워있고 내 신세가 좀 처량했다. 하지만 부항의 효과는 아주 탁월한 것이어서 한지 3일 밖에 안 지났는데 이젠 왼쪽으로 고개가 잘 돌아간다. 대신 부항 맞은 데 피멍이 크게 4개가 생겼지만.
난 침 맞는 건 하나도 안 두려운데 엎드린 자세로 꼼짝도 못하고 꽤 오랜 시간 있어야 하는 게 어찌나 좀이 쑤시던지.. 나중엔 머리가 지끈 거렸다. 3가지 코스 중 제일 맘에 들었던 건 역시 찜질... 잠이 솔솔 와서 결국 잠이 들었는데 깊게 잠드려는 찰나 끝났다고 일어나라고 해서 너무 아쉬웠다.
 
계산을 하기 전에 키랑 몸무게나 재볼까 하고 쟀는데 키는 그대로 몸무게는 2키로가 빠져있었다. 오.. 역시 최고의 다이어트 비법은 '일' 이로구나 하며 계산하고 나와선 잠깐 친구를 만났다.

여기서 한가지 사건.
집에와서 저번에도 등장하신 그 분과 전화를 하는데 일주일 동안에 살이 많이 빠져서 그런가 어지럽다고 말했더니 그 여세를 몰아서 2키로를 더 빼라는 거다.
그 순간 거짓말 처럼 이제까지의 감정이 싸그리 사라지면서 무서운 속도로 감정 정리가 착착 진행되며 역시 안된다.로 결론이 나버렸다.
하하하하. 역시 말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말 한마디에 당신 너무하는 거 아니야? 그것도 살 빼란 말에? 이렇게 되물어도 소용없다. 내가 기대한 말은 힘들겠다. 혹은 고생이 많았구나. 라는 말이었는데 그 여세를 몰아서 2키로를 더 빼라고? 어허허허. 어이가 없었다. 이런말은 안하려고 했지만, 2키로 더 빠진 내 몸무게는 누가 살빼라고 말할만한 절대 몸무게는 아니었단 말이다.! 그 체중계에서도 분명히 저체중이랬어!! 내가 물론 키가 다른 사람보다 작긴 하지만, 아무리 본인 기준에 내가 살이 좀 있다고 한들 아니 아파서 골골대는 사람한테 살을 빼라니! 이런 당치도 않은. 난 태어나서 누구한테 살 빼라는 말을 한번도 입에 담아본 적도 없는 것 같은데. 내 일생동안 충격적이었던 말 베스트 3 에 들만한 아주 엄청난 말이었다. 2키로 더 빼. 아아악.(오늘 이 아아악. 이 말 참 많이도 하네;) 다시 생각해도 충격적이다.

친한 친구랑 놀고 싶은 맘이 굴뚝같은 지 벌써 한달째. 친구는 시골에 내려갔다. 우울한 마음에 친구한테 이런 저런 넋두리를 늘어놓았더니 역시 내 친구 답게 이구 불쌍한 것. 이라고 해주는 거다. 아.. 눈물나게 고마운 친구. 요즘 날 불쌍히 여겨주는 건 너 밖에 없어. 엉엉. 친구 올라오면 맛있는 거 잔뜩 사주기로 결심했다.

친구오기 전에 이 만신창이 몸뚱아리가 조금의 차도라도 있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