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동무

일상 2012. 1. 27. 00:34
대전에서 초등학교 6학년 때 부터 중학교 2학년 까지 정말로 친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바로 우리 옆집에 살던 sh 였다. 내가 살던 아파트는 5층짜리 오래된 저층 아파트의 맨 꼭대기층. 처음에는 서로를 몰랐지만, 옆집 애도 나와 동갑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우린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sh의 부모님도 장사 때문에 하루종일 집에 안계시고, 우리 엄마 아빠도 각자 직장에서 일하시고 학교에서 돌아와도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 시간은 나와 친구의 것이었다. 거기에 바로 옆집에 살았기 때문에 어쩔 때는 학교에서 집에 도착해도 우리집 문을 먼저 두드리기 보다는 친구네 집 문을 먼저 두드려보고 친구가 있나 없나 확인을 할 정도였다. 그건 걔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집에서 우리를 맞아주는 부모님이 없었기 때문에 그나마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친구에게는 오빠가 있었는데 오빠는 고등학생이라 야자를 해서 나와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고, 내 남동생은 나보다 더 시간이 남아도는 어린이였기 때문에 결국 우리 셋은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남동생 데리고 나오는 것을 꺼려했던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sh 는 동생과도 잘 놀아줬다. 아마 바로 옆집에서 내 상황을 다 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차하면 둘이 잠도 같이 자고 특히 방학 때는 눈을 떠서부터 밤에 잠들 때 까지 늦게 일어나서 같이 점심먹고 엄마 아빠 늦으시면 같이 저녁먹고 그 집 부모님이 오실 때 까지 집에서 TV 보고 만화책 보고, 겨울에는 연도 날리고 눈이 오면 눈사람도 만들고 여름에는 자전거도 타고.
우리 둘 사이에는 정말 비밀이라곤 없었는데,  비밀이 없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서로 전혀 다른 학군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로 전혀 다른 중학교에 다닌다는 것 이었다. 서로에게 학교에서의 얘기를 엄청나게 풀어놔도 소문이 날 염려도 없었고, 우리 둘은 항상 서로의 편을 들어줬으니까 말이다.  
하릴없이 남아도는 시간을 함께 보내준 친구였는데 내가 대전에서 그 아파트를 떠나면서부터, 그리고 그 아파트를 떠나서 아예 다른 지역인 인천으로 오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져버렸다. 내가 쓴 전학간다는 내용의 편지를 읽고는 전화해서 콧물 들이키면서 울어준 친구. 
인천에 와서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는데 학교에 있을 땐 울지 않다가도 집에와서는 잠들기까지 울다가 잠들고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학교가서 수업 듣고 또 집에와선 현관문을 열자마자부터 울기 시작하고 그랬다. 그런 우울증세에 시달리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아마 그 친구의 부재였을 것이다. 
예전에는 인터넷도 크게 발달하지 못했고, 고등학생이 아예 다른 지역으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도 여의치 않아 결국은 지금은 모르는 사이처럼 지내고 있는데 페이스북에 알수도 있는 친구에 그 친구 이름이 떠 있다. 그 친구 이름을 보는 순간 눈물이 날 것 같고 가슴이 먹먹하고 쓸쓸한 느낌이 들고 그래서 노트북 앞에서 이러고 있다.
나의 가장 여렸던 사춘기의 정중앙을 관통하면서 함께 보내준 친구를 이렇게 처음 만나는 사람보다도 못한 사이로 지내고 있다는 것이 서글프다. 만약 내가 계속 대전에 살았다면 아마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냥 페이스북에 "알수도 있는 사람" 이 되어버리다니.
걔는 내가 알 수도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나의 이제까지의 인생 전체 시간을 원형 그래프로 만든다면 아마 1위 아니면 2위 정도의 지분을 차지하는 친구인데.
아 이건 예전에 정말 좋아했던 남자가 결혼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보다도 더 우울하고 슬픈 일이다.  

불면의 밤

일상 2010. 5. 15. 01:08
12시 반쯤 누웠다가 노래도 좀 듣다가 도저히 잠이 안와서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원래 야구 끝나고 나서는 컴퓨터 안하는데 누워서 아까 새로 받은 노래 이어폰으로 끼고 좀 듣다가 도저히 잠이 안와서 결국 여기 또 앉았다.
백수라 하더라도 하루 시간은 잘만 간다. 난 대학 때도 그랬다. 그냥 하루종일 집에 있어도 여차저차 시간이 잘도 가더라. 그리고 나름대로 바쁘다. 집에서 밀린 거 할 것도 많았는데 막상 시간이 남아도니까 안하고 있다. 역시 귀찮은 일은 닥쳤을 때 해야 하는건가.
이불덮고 이어폰 끼고 누워 있다보니 혼자살 때가 생각났다.
요즘 하도 새로운 사건이 없다보니 맨날 과거 넋두리만 포스팅 하고 있는 내 신세가 웃기지만, 예전에 특별한 상황에서 들었던 노래를 들으면 그 상황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 처럼 난 예전부터 지금까지 거의 그대로고 그렇다보니 맨날 과거에만 얽매여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새벽에는 머리가 이상해지므로 말이 이상해도 참고 내일 아침에 쪽팔려하자)
대학 4학년 여름 방학 때 난 어쩔 수 없이 계절학기를 들었다.
그때만 해도 엄마아빠가 다 지방에 계셨기 때문에 난 방학 중에는 돈도 아끼고 단 한두달만이라도 엄마밥을 먹고 싶어서 계절학기는 웬만하면 안들었는데 객기로 필수인 영어수업을 2학년 때 안들었다가 결국 4학년이 되어서야 들을 수 밖에 없게 된 것.
여하튼 그 계절학기 수업 때문에 나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매일 학교에 갔고 어쩔 수 없이 덥고 더운 그 방에 혼자 지낼 수 밖에 없었다.
학교 앞에 있는 날림 공사한 원룸들이 대부분 그렇듯, 앞 뒤로 건물도 빼곡하고 창문은 단 하나.
자기 직전까지 에어컨을 틀다가 자기 직전에 에어컨을 끄고 최대한 시원한 상태에서 잠들어보려고 매우 애를 썼다.
앞건물과 너무 가까워서 창문도 활짝 열 수 없어서 조금만 열어두고 어떻게 간신히 잠이 들었는데, 그 더운 여름에 역시 에어컨 없이 장시간 편히 잔다는 건 큰 욕심이었나보다. 어느날 밤 새벽에 너무 더워서 결국 일어났다.
전기세고 뭐고 살고보자 싶어서 룸에어컨을 틀어놓고 그때만 해도 열심히 애용하던 CD Player 를 작동시켰는데 새로 나온 jamiroquai 앨범이 들어 있었다. 지금도 좋아하지만 그때 한창 삘 꽂힌 talullah 를 3번 연속 들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울컥했다.
이런 상황에 맘편히 전화할 사람도 없고. 에잇. 시발.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연애의 로망은 말하기 부끄럽지만, 새벽에 잠에서 깼는데 (더워서 깼을 수도 있고 꿈 때문일 수도 있고) 갑자기 심하게 외로워 지고 서러워 지는 그 새벽에 전화를 했을 때 남자가 내 전화를 받아주는 거다. 크크크크.
남자친구가 있을 때에도 한창 악몽에 시달려 새벽에 눈을 떴을 때 한번도 전화한 적이 없었다. 그냥 외로워. 무서워 하고 말았지. 걔가 그 시간에 내 전화를 반가워 할 것이란 확신이 전혀 없었다.
다시 대학 4학년 여름의 그 밤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음악을 들으면서 경찰차가 지나가면서 내 창문으로 비치는 빨강 파랑 빛을 보다가, 서러워져서 누워서 눈물을 쪼끔 흘리다가, 냉장고를 열어 위스키를 꺼내 얼음이랑 섞어서 한잔 쭉 들이키시고 잠이 들었다. 그 위스키는 놀러온 친구가 오빠껀데 그냥 너 주려고 몰래 가져다고 준다고 말하며 준 소중한 위스키였다. 나름 아껴서 먹었는데 한 달을 못가서 저런 식으로 다 마셔버렸지.
지금은 한달에 술을 한번 마실까 말까 하지만, 계절학기 들었던 그 여름에는 "냉장고에 맥주 항상 구비" 가 나의 철칙이었다. 자기 전 맥주 한캔 이 두캔이 되고 세캔이 되고 안주 없이 마실 수 있는 술의 양이 점점 늘어가면서 이래서 사람들이 맥주 맥주 하는 구나 하면서 맥주의 맛 세계로 입문하였던 때였다. 그때는 내가 평생 자기전 맥주 한캔을 즐길 줄 알았는데 지금은 전혀 아니네.
그 때 당시 내가 가장 좋아했던 맥주는 밀러 였다.
아.. 이제 누우면 잠이 올까? 잠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