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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무가치함

일상 2012. 10. 10. 01:08

서른살이 끝나가고 서른한살을 앞둔 지금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내 성향을 미루어보아, 어렴풋하게나마 뭐, 난 내가 결국 이렇게 늙을 줄 알고 있었다. 나는 태어나면서 부터 혼자 외롭고 그렇다고해서 그 외로움을 타파하기 위해서 별다른 노력도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 이다. 매년 이렇게도 비참하고 무참하게 외로운 신세인 건 내가 이성에게 있어 잡고 싶은 사람은 아니라는 반증이 될 수도 있고. 

흠. 그런데 더 무서운 건 난 외로운 게 무슨 느낌인지도 잊었다는 거다. 그냥 내 곁에 이성친구가 없어서 드는 지금 이 느낌이 외로운 건가? 근데 이 느낌은 남자친구가 있을 때도 느꼈던 느낌인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도 혹은 반대로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도 항상 언제나 늘 느껴왔던 느낌인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느끼는 고독과 외로움이 단순히 남자친구가 없어서 느끼는 감정인건지 인간이기 때문에 느낄 수 밖에 없는 근원적 고독인건지 잘 모르겠다는 거다. 

자연스럽게 나는 왜 혼자인가에 대하여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의외로 사무실에서 일할 때는 아무 생각이 안든다. 딱히 내 일이다 하는 일은 없어도 뭔가를 항상 하고 있기는 하니깐 말이다. 


삼천포로 빠지는 얘기지만, 며칠 전에는 사무실에서 키보드를 치고 있는데 문득 내가 태어나서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대학 졸업해서 지금까지 우리 엄마 아빠가 나를 얼마나 애지중지 키워주셨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근데 나 이거 이미 블로그에 쓴건가? 데자부인가? 왜 이미 쓴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우리집은 내가 7살 때 까지는 공기업에 다니시던 아버지 때문에 넉넉한 편이었고, 그 이후로는 쭉 가난한 편에 속했다. 집에 돈이 부족한 것이 사람의 인격과 능력과 성품과는 별개로 얼마나 사람을 구차하게 만드는지도 옆에서 봤고 또 나도 가끔 그런 구차한 인간이 되어보기도 했고. 그렇지만, 우리 부모님은 부모님께서 해주실 수 있는 한 최고로 최선을 다해서 애지중지 키워주신 것이다. 지극히 정상적인 범주 내에서. 서른 살의 갑작스러운 깨달음이었을까. 

부모님의 크신 사랑도 깨달았으니 이제 다른 사랑도 깨달을 때가 된 것 같은데, 도무지 마음의 문을 열 수가 없다. 


그렇다고 내가 남자에게 심하게 상처를 받았느냐, 또 그것도 아니다. 어렸을 때는 그게 큰 상처인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했던 남자나 나를 차버린 남자들은 정말 젠틀한 남자들이었고 그 어느 누구 하나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 당시 원망했던 것이 미안할만큼.  

결국 또 혼자인 이유에 대하여 계속 계속 계속 생각을 해봤는데 작은 결론을 하나 내렸다. 

나는 오만 방자한 사람이지만, 또 어느 면에 있어서는 지나치리만큼 나를 비하하는 사람이다.  글 재주가 없어서 설명은 못하겠지만 매 순간 신기하게 그 두 감정이 맞닿아 있다. 나는 남들보다 잘난 사람이기도 하고 못난 사람이기도 하고.  

내가 못났다는 생각이 들 때는 정말 참을 수가 없어지고, 누군가에게 끊임 없이 세상 최악의 악담만 끊임없이 듣고 있는 기분이 든다. 잠들기 전, 퇴근 하는 길, 버스 안, 주말 오후 시도때도 없이. 


내가 기다리는 사람은 지독하게 나쁜 이 감정의 나락에서 나를 꺼내줄 사람이다. 구해줄 사람이다. 그 사람이 손을 내밀어서 밝은 세상으로 인도해 줬으면 좋겠다. 유치한 말이지만, 난 정말로 더 즐거운 사람이 되고 싶다. 만약 미지의 그 사람을 만났다면 그 이후로는 죽을 때까지 단 한순간도 나쁜 감정의 나락에 빠져들고 싶지 않다.  

은연중에  이 따위 생각을 하고 있으니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도 그 사람에게서 단 1%라도 나의 이런 절박한 기대에 벗어나는 기미가 보이면 자연스럽게 마음의 문을 닫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또 결국 멀어지고, 상대방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고. 그러다 보면 또 내가 싫어지기도 하고.  이런 악순환이 어느 시점부터 계속 반복되고 있다.

내가 원하는 그런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를 구원해줄 사람을 인생의 동반자로 원할 바에는 아예 종교에 귀의 하는 게 맞는 길 일지도 모르겠다. 여러가지를 종합해보면 내가 말하는 사람이 내 눈앞에 나타날 확률은 거의 제로에 수렴한다는 결론이 나오고 이 얼토당토 않은 내 머릿속의 결론이 더욱 더 나를 괴롭게 만들고 있다. 

 

근데 알고보니 나만 빼고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다 위에 내가 말한 것 이상의 동반자를 만났다는 생각에 행복에 젖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있는 거면 어떡하지. 그런 거 라면 조금 겁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