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숙제'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5.10.22 미술 숙제와 제임스딘

학창시절, 집까지 스케치북을 가져가서 밤새 그림을 그려오는 여자애들과 달리 나는 항상 미술시간에 시간이 남았다. 언제나 남들보다 빨리 끝내고 혼자 밀린 눈높이 수학을 몰래 풀곤 했다. 겉 보기엔 바느질도 잘할 것 같고 엄청 여성스러워 보이지만 가정 시간에 바느질 실기평가는 언제나 C를 맡아놓고 받았고, 미술시간에 그림도 도저히 여자애가 그렸다고 볼 수 없을 흉하고 성의 없는 그림 일색이었다.
노트필기도 마찬가지. 노트 필기에 공을 들이는 여자애들과 달리 나는 글씨를 누구보다도 빨리 썼고, 무조건 검정색 한 색으로만 모든 필기를 마무리 짓곤 하였다.

그렇게 줄곧 미술 열등생이다가, 중3때 유일하게 미술 실기 만점을 받은 과제가 있었으니, 그건 지점토로 움직이는 사람 표현하기였다. 나는 줄넘기를 하고 있는 여자를 만들었는데, 그 주제에 잘 부합한다고 선생님께서 만점을 주셨다.

지점토 공예 점수를 잘 받은 건, 내 초등학교 시절 취미와 관계가 있다. 내성적이고 친구가 별로 없었던 나는 시험이 끝나도 혼자 집으로 직행하여 엄마 퇴근하시기 전까지 책 한권을 뚝딱 읽거나 500원 짜리 지점토를 사서 병같은데 붙이고 색칠하고 니스칠까지 해서 엄마에게 선물하곤 하였다. 그때 그렇게 연마했던 실력이 발휘된 것 이었다.

그 뒤에 아크릴 판화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았다. 미술선생님께서는 대부분 만화캐릭터를 배낀 것과 달리 나 혼자 테트리스 게임기를 그려 판화로 찍어서 소재가 좋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칭찬을 두번이나 들은 나는 의욕적으로 여름 방학 미술 숙제에 임했다. 매년 대충 해가던 미술 숙제 였지만 그 해 만은 달랐다.

그때 난 모자이크를 하기로 맘먹고 사람 얼굴은 본드로 생쌀을 붙였는데 그게 문제였다. 쌀을 본드로 붙이고 말리기 위해 베란다에 내놓은 작품(?)을 개학날 전에야 꺼내보니 나방 유충들이 쌀 위를 꾸물꾸물 기어다니고 있었다.

​정말 징그러웠다.

​​​고등학생 시절 미술 시간에 고무판화로 만들었던 제임스딘 사진을 보다 문득 잊고 있던 그 유충들이 생각나서 사무실에서 웃었다. 크크​​​​​

제임스딘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개봉한다는데 데인 드한은 너무 유약한 이미지라 좀 매칭이 안된다.

뭣도 모르면서 영화잡지에서 준 제임스딘의 대형브로마이드를 벽에 붙여놓은 적이 있었다. 제임스딘이 지금까지도 청춘 아이콘인 이유는 그에게 느껴지는 이글거리는 에너지 때문인 것 같다.
내성적이고 과묵해보이지만 눈빛에서는 폭발직전의 감정 같은 게 있다.
그 점에선 데인드한이 적역인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