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와 거지'를 읽고

위로 2017. 10. 23. 09:50

 

왕자와 거지
국내도서
저자 : 마크 트웨인(Mark Twain) / 남문희역
출판 : 펭귄클래식코리아 2008.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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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때 읽은 동화책을 지금 다시 읽으면 어떨지 궁금하여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왕자와 거지' 와 '피터팬'을 샀다. 그중 '왕자와 거지'부터 읽었다. 그리고 이 책과 함께 며칠 유쾌한 시간 보냈다.
  '왕자와 거지'의 줄거리는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긴 소설인지는 처음 알았다. 각 장마다 거지였다가 왕자가 된 톰 캔티, 왕자였다가 거지가 된 에드워드 튜더의 이야기가 아주 유려하게 전환된다. 이쯤에서 우리 똘똘한 톰이 궁금한데? 라고 생각하면 다음 장에 톰 얘기 나오고, 우리 불쌍한 에드워드는 또 무슨 고생을 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하면 틀림없이 다음 장에 에드워드 얘기가 나온다. 작가가 어쩜 이렇게 귀신같이 독자 마음을 잘 알까 싶어서 읽는 내내 진짜 신기했다.
 
  마흔을 향해가는 나도 참 재밌게 읽었지만, 책을 좀 좋아하는 고학년 어린이도 펭귄클래식 버전 그대로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전 연령대가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 참 흔치 않은데 이 책이 바로 그런 책 중 하나다.
  16세기의 잉글랜드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어, 주석을 참조해서 당시 왕실과 빈민의 생활상을 상상해 보는 것도 꽤 흥미로웠다. 특히 왕자 대신 매 맞아주는 '회초리 시동' 이 기억에 남는다. 관련 주석을 보니 작가가 지어낸 게 아니라 실존했던 것 같다. 근데 너무 불쌍하잖은가. 오로지 맞기 위해 궁에 있는 어린 소년이라니. 원래 소설에 포함되었다가 막판에 제외되어 부록으로 실린 '한 소년의 모험'이라는 에피소드는 온전히 회초리 시동의 이야기인데, 특별히 이런 에피소드까지 쓴 걸 보면 마크 트웨인 역시 왕 대신 매를 맞던 옛날 회초리 시동 소년이 딱했던 모양이다.
  주인공 아이 톰과 에드워드가 의젓한 왕 같다가도 결국 영락없는 어린이라 읽다 보면 그들의 귀여움에 절로 미소 짓게 된다. 에드워드가 죽을 위기에 처해 눈물을 줄줄 흘릴 땐 너무 안쓰럽고, 톰이 옥새로 호두 까먹었다고 말하는 장면은 또 너무 깜찍하다. 
  일단 '왕자와 거지'는 지루할 틈 없이 재밌었다. 부디 '피터팬'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기를.


  톰은 녹초가 된 죄수 같은 기분이 들어, 혼자 하겠다는 눈짓을 보내고 장화를 벗으려고 했지만, 역시 대기 중이던 방해자가 잽싸게 무릎을 꿇고 시중을 들었다. 그 밖에 두어 가지를 더 혼자 해보려고 시도 했지만 번번히 방해를 받았고, 결국 톰은 포기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젠장, 숨도 나 대신 쉬어주겠다고 나서지 않는 게 용하네!"

-p.52


고향에 돌아가기만 하면 다들 그의 귀환에 기뻐 어쩔 줄 몰라 할거라고 기대했건만, 오히려 지독한 냉대 속에 죄수 신세가 되고 말았다. 기대와 현실의 격차가 너무나 벌어져, 넋이 나가고 만 것이다. 비극이라고 해야 할지 괴상하다고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무지개를 기대하며 어깨춤을 추고 나갔다가 벼락을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p.216


이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소년은 마른 몸에 예의 바르되 잘 웃지 않는 아이로 유머 감각이 신통치 않을뿐더러 날 때부터 우울한 기질을 타고 났다.

-p.279 ('부록: 한 소년의 모험' 중)

: 앞에 말한 부록의 회초리 시동에 대한 마크 트웨인의 묘사. 잘 웃지 않고 우울한 기질을 타고난 마른 몸의 소년이 괜히 마음에 들어 적어 둔다.



살인, 미스터리 그리고 결혼
국내도서
저자 : 마크 트웨인(Mark Twain) / 김욱동역
출판 : 문학수첩 2008.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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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한번도 안 펼쳐본 것 같은 새책을 아주 싼값에 구입해서 읽었다.이 책에는 마크 트웨인이 쓴 다섯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첫번째 소설인 '해들리버그를 타락시킨 사나이' 에서는 정직하고 의젓한 주민들이 모여사는 것으로 유명한 마을 해들리버그 주민들에게 원한을 가진 어떤 젊은이가 기필코 그들의 마을을 망하게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고 교묘하게 어떤 사건을 꾸며 결국 마을 주민들을 온 세상에 망신시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소설 정말 신기한 게 젊은이가 왜 그렇게까지 주민들에게 원한을 갖게 되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건 젊은이가 원한을 품게된 이유가 아니라 근엄한 척 살고 있는 주민들이 얼마나 탐욕스럽고 가식적인지 생생하게 그려내는 데 있기 때문에 마크 트웨인은 과감하게 과거 사건에 대한 서술은 생략해 버렸다. 이 부분이 나에게는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구구절절 서술하지 않고 오로지 한가지 확실한 주제에 집중하고 있다보니 굉장히 간결한 느낌이 든다.


  제일 기억에 남았던 작품은 '캘러버러스군(郡)의 악명 높은 점핑 개구리' 였다. 이 작품이 그 유명한 마크 트웨인의 데뷔 소설이라는데, 소설가로서 처음 내놓은 소설이 이 정도라니, 역시 인정받는 덴 다 이유가 있나보다. 다 합쳐 3장 정도 밖에 안되는 아주 짧은 소설인데,  요즘에도 가끔 이 소설의 주인공 '스마일리' 생각에 피식피식 웃는다. 켈러버러스군에 살고 있는 스마일리라는 젊은이는 내기에 미쳐 있는데, 하루종일 거의 모든 일에 푼돈을 건다. 이 스마일리가 얼마나 내기에 미쳐 있는지 써놓은 본문의 한 부분을 읽으면 내가 왜 피식피식 웃을 수 밖에 없는지 알 것이다.


  참으로 묘한 녀석이었다고. 언젠가 한번은 워커 목사님의 부인이 앓아누워 살아날 가망이 없는 것처럼 보였어. 어느 날 아침, 목사님이 나타나자 녀석이 다가가 그에게 사모님 소식을 물었지. 목사님이 상당히 좋아졌다고 대답했어. (중략) 그러자 스마일리 녀석은 아무 생각도 없이 불쑥 이렇게 말하는거야.

  "하면, 전 사모님이 완쾌되지 않는 쪽에 2달러 50센트를 걸겠습니다."


-p.177


  2달러도 아니고 2달러 <50센트>를 사모님이 완쾌되지 <않는다> 에 거는 이 부분 너무 웃기지 않은가. ㅋㅋㅋㅋㅋㅋ

  내기에 미친 이 얼간이 스마일리는 어떤 개구리를 잡아 멀리 점프하는 훈련을 시켜 가지고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개구리 멀리 뛰기 내기를 제안하고 다닌다. 상대방이 내기할 개구리가 없다고 제안을 거절하면 다른 개구리를 손수 잡아다주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정말 스마일리 이 캐릭터는 마크 트웨인 아니면 창조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머지 '100만 달러 수표' ,'살인, 미스터리 그리고 결혼', '귀신 이야기' 도 읽으며 즐거웠다.  그가 이 소설들을 통해 꼬집고 싶었던 건 돈 앞에서는 영락없는 노예면서 아닌 척하는 당시 미국 사람들과 그 세태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풍자한 우스꽝스러운 사람들 모두 2017년 한국 어딘가에서도 분명히 한번쯤 본 적 있는 사람들이었다. 틀에 박힌 말이지만, 이 소설들 역시 시대를 초월했다는 표현이 부족하지 않은 작품들이었다.



이제서 새삼스럽게 올리기 좀 민망하지만 일본여행을 다녀온 다음날 우리가족은 그래도 명절인데 어디 가야하지 않겠냐 싶어서 예술의 전당에 갔다.

우리 친척들은(특히 친가) 명절이 되어도 가족들끼리 복작보작 모이거나 몇시간을 걸려서라도 귀향 하는 일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다들 성격이 비슷비슷해서 꺼려하는 분위기랄까? 혹시 만나도 딱 점심한끼 같이 하고 말지 그 집에서 자고 먹을 것 해먹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명절증후군도 없고 우리가족 역시 명절 연휴는 연휴 내내 늘어지게 잠자고 쉬고 그러는거다. 그렇다고 친척들이랑 원수지고 사는 것도 아니고 다만 성격의 차이일 뿐이다. 우리 엄마는 처음에 이런 게 다들 너무 차갑게들 지내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 했다는데, 솔직히 난 이게 훨씬 합리적이고 좋다고 생각한다. 20년 넘게 이런 집안 문화에 길들여진 나로서는 친척들이 다 둘러앉아서 음식하고 TV 보고 얘기하고 하는게 왠지 끔찍하고 싫다. 얼마나 불편해.;;

우리가 갔던 날 예술의 전당에서는 칸딘스키와 러시아 거장전 이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생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칸딘스키라. 전시회 제목만 보면 칸딘스키 그림이 엄청 많을 것 같지만 그냥 러시아 거장전 이라고 하는 게 나을 뻔 했다. 다른 작가들 그림이 훨씬 많았다.

생전 처음 보는 러시아 그림을 보니 러시아에 한번 가고 싶어졌다. 여러 작가들이 각기 다른 그림을 그렸음에도 모든 그림에 뚜렷하게 나타나는 음침한 색감이 인상적이었다. 고흐 그림처럼 태양이 작열하는 느낌이 나는 그림은 거의 없었다. 여름을 그리고 아무리 화려한 색을 썼어도 약간 어두워 보였다. 단순한 난 러시아 춥긴 진짜 추운가보다. 이런 생각을 했다.

저번에 미국애들이 러시아를 도저히 눈뜨고는 못봐줄 정도로 싫어하는 이유는 러시아한테 문화적 열등감이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작가로만 봐도 그렇다. 톨스토이, 푸쉬킨,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 안톤 체홉♡ 을 비롯한 러시아의 쟁쟁한 작가들과 비교해본다면 솔직히 뼈속까지 미국인이라 할 수 있는 굉장한 작가가 누가 있나. (그리고 미국애들은 '백경'을 굉장한 문학작품으로 포장하던데 난 읽으려다 너무 재미 없어서 포기했다) 음악도 그렇고 영화에서도 영화의 이해 같은 입문서를 펼쳐보면 러시아 감독이 많으니까. 거깃다 나 역시 러시아 하면 왠지 닥터 지바고 생각나고 왠지 낭만적일 거 같고 그런데 미국 하면 과장하기 좋아하는 놈들. 깊이 없는 놈들. 심지어 뿌리 없는 놈들. 이런 생각만 든단 말이다. (인디안이나 흑인 각 민족에 대해서는 아니지만 미국이라는 나라 전체를 볼 때)
아 미국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미국 애들이 스타워즈에 죽고 못사는 것은 미국인 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미국만의 설화나 이야기가 없고 그 자리를 스타워즈가 대체해서라는 주장도 어디서 봤다. 미국이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건 그들만의 특이한 정서가 없기 때문아닐까? 또한 난 미국이 그렇게 죽고못사는 스타워즈도 재미가 하나도 없던데. 돈주고 보라고 그래도 시간 아까워서 보기 싫을 정도.

이번 전시회를 보면서 러시아의 정서가 고스란히 그림에 담겨져 있는 것 같아 신기했다.
내가 가장 좋았던 그림은 바로 밑의 그림인데 이미 몇가지 색을 안 썼고 형태도 매우 간결하지만 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허해지고 쓸쓸하고 그랬다. 그래서 엽서도 샀는데 불행히도 난 작가이름도 그림이름도 벌써 기억이 안난다. 집에서 블로그 하게 되면 작가명하고 이름도 붙여 놓겠다.;;겨울과 관련된 제목이었던 것 같은데. (이 죽일놈의 아이큐)
그 전시장에서 봤던 인상적인 문구 는 (정확하진 않지만) '나쁜 평화가 뜻있는 전쟁보다 항상 낫다.'(러시아 속담) 라는 문구다. 전쟁 그림 위에 붙여져 있던 문구인데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혹시 더 궁금하시다면 http://www.2007kandinsky.com 을 방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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