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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물

일상 2017. 4. 9. 22:44

  인정하기는 싫지만, 요즘의 나는 산업 폐기물 같다. 내가 오물까지는 아니어도, 폐기물에는 꽤 가깝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요즘에는 인간관계도 거의 맺고 있지 않기 때문에, 누구에게 상처를 주지 않지만,  아무 곳에도 쓸모가 없다면 폐기물과 다를 바가 무엇일까. 요즘 나는 정말 아무런 효용가치가 없는 인간이다.

 

 

 

  의무감에 일요일 오후에는 산책을 나간다. 산책을 나가지 않으면 내일이 월요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엄청나게 슬퍼지기 때문이다. 미세먼지때문에 꽃이 피어도 예전처럼 예쁘지가 않다. 슬픈일이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점점 더 살기 어려워지고 있다.

 

  저번주 부터는 프로야구가 개막해서 TV 를 틀어도 좀 덜 심심하고, 다음주에는 콜드플레이 콘서트에 혼자 간다. 우리집에서 너무나 먼 송파까지 가야하고, 콘서트 시작 시간이 너무 늦어서 끝나고 돌아올 일이 걱정이었는데, 그냥 속편히 송파에서 가까운 하남 친구네 집에서 하루밤 신세를 지기로 했다. 근데 일요일에 하남에서 대중교통으로 어떻게 집으로 와야할지 모르겠다. 버스를 타든지 해야할 것 같은데, 동서울터미널에 버스가 있겠지만, 생각해보면 우리집은 인천터미널에서도 한 40분 걸린다. 이런 젠장. 결국 전철이 답인가. 근데 송파에서 인천까지 전철로는 도저히 못올 것 같다. 뭐 아무렴, 어떻게든 와지겠지. 그래봤자 수도권.

 

  저번주 오랜만에 전화한 친구는 내 우울의 원인이 모두 애인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마 친구는 애인이 생겨서 행복한 모양이다. 안그러면 나에게 모든 원인이 '애인' 이라고 말하진 못했겠지. 그 친구 가끔 너무 돈을 밝히고, 돈 없는 남자는 사람 취급을 안해서 거리감 느꼈는데 정말로 돈 많은 애인을 사귀니 오히려 가난한 사람에 대한 '멸시' 같은게 좀 덜해지고 마음이 좀 여유로워졌다.  

  근데 난 사람의 근본은 변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속이 썩은 내가 남자 하나로 언제나 즐거운 내가 될 수 있을까? 글쎄. 뭐 이건 애인 생길 일 없으니 별로 고민할 일은 아닌가. 훗.

 

  엄마가 건강해지신 거 같긴 한 게, 늙은 주제에 너 좋다는 남자 싫다고 하지 말고, 좋다고 하면 무조건 감사히 마음 받아야 한다는 강요와 구박이 다시 시작되었다. 동생까지 합세해서 듣고 있다보면 나이 많다는 이유 하나로 죽을 죄를 진 기분이다. 나는 폐기물인데 소각되거나 처리가 되어야 하는데 아직 그게 안되고 있으니 부모님 답답한 마음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가족들이 보기에도 내가 이런데, 제 3자들이 보기에는 얼마나 더 한심할지.

 

  일기에서 너무 징징대는 거 스스로 읽는게 괴롭긴 하지만, 난 요즘 지인 혹은 가족에게는 즐겁게 사는 사람으로 보이려고 엄청 노력하고 또 그렇게 보이기도 하니... 그리 큰 문제는 안되겠지. 하며 이 일기의 우울함을 변호하고 싶다.

 

  요즘 Ben folds 의 So there 앨범을 누워서 멍하니 듣는 일이 많은데, 참 위로가 많이 된다. 그리고 우연히 듣게 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 2악장도 좋다. 모차르트 음악은 Major(장조)여도 어딘지 모르게 병적이고 슬픈 느낌이 든다. 놀랍게도 터키행진곡 이라 불리는 피아노 소나타 no.11 도 Major. 모차르트의 곡은 언뜻 들으면 산뜻한 곡들 마저도 일말의 정신병적 나른함이 있다. 

 

  난 정말로 음악과 문학의 힘으로 간신히 살고 있다. 저번주에는 좋아하는 체호프 님의 '마녀'를 읽다고 혼자 킥킥대며 잠들었다. 그리고 한 3일동안 아래 문장이 생각나서 즐거웠다.

 

 

  사벨리는 주인공 여자의 못생긴 교회지기 남편인데, 눈보라 치는 어느 날 밤 길을 잃은 잘생긴 금발 우편배달부가 집에 불쑥 찾아온다. 교회지기의 부인은 넋을 잃고 잠든 미남 우편배달부를 쳐다보는데, 그를 보다못한 '사벨리'는 우편배달부의 얼굴을 천으로 가려버린다. 그 뒤에 나오는 부분이 저 부분.

  우울한 와중에도 어찌나 웃기든지. 회사에서도 '칠면조' 같은 두 다리. 이 부분이 생각나서 혼자 킥킥댔다.

 

  나의 문학적 저변이 더 넓어지지 않고 있어서 좀 걱정이다. '체호프' 책만 너무 반복해서 읽고 있다. 체호프 외 다른 작가의 책을 읽으려고 해도 재미가 없다.

 

  요즘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저도 세상에 온 이유가 있고, 쓸모가 있겠지요. 하고 자꾸 묻고 있다. 대체 뭘까.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이유. 폐기물이 되라고 이 세상에 보내신 건 아닐 것 같은데. 이런 생각 하는 게 사실은 부모님께 하나님께 참 죄스러운 일이다. 자기 전에 용서해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