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간식

일상 2016. 3. 22. 19:27


아침에 출근해서 자리에 앉자마자 옷도 안 벗고 하는 일은 커피를 내리는 일이다. 유난스러워 보이겠지만 나는 매일 아침 드리퍼로 혼자 원두커피를 내려 먹는다.
이렇게 내려서 마시는 커피가 내 직장 생활의 유일한 낙이라 해도 과장된 말이 아니다.
한국야쿠르트에서 나온 콜드브루 라는 제품을 먹어봤는데 엄청 맛있어서 앞으로 내려 먹지 말고 이거 매일 시켜 먹을까 고민하다가 가격 때문에 포기했다.
이미 난 매일 흰우유 하나에 요일마다 하루야채, 윌, 바나나우유를 돌려가며 시켜 먹고 있기 때문에 커피까지 시키면 한달 음료 값으로만 거의 7만원 이상이 나올 것이다.
아침에 커피만 마시는 게 아니라 꼭 과자도 같이 먹는다. 편의점에서 2+1 하는 과자를 쟁여놓고 먹는데 오늘은 큰 맘먹고 초코하임을 사놓았다. 비싸고 양은 적은 초코하임은 먹을 때마다 감탄한다. 우리나라 과자 중 최고 맛있는 것 같다. 오늘 초코하임 계산할 때 카운터에 있던 킨더가든의 달걀모양 초코렛도 샀다. 패키지 디자인이 귀엽고 안에 작은 장난감이 들어있고 초코렛이 엄청 고급이었지만 너무 비쌌다. 내가 어린이라면 볼 때마다 사고 싶을 것 같긴하지만, 난 어른이니까..
보통 오레오나. 사브레, 과일샌드 많이 사놓고 너무 우울할 땐 편의점에서 절대 세일 안하는 빈츠도 사먹는다.
역 바로 앞에 있는 편의점이 더 크지만 회사 가는 길에 있는 작은 편의점을 선호하는 이유는 사장님이 무척 친절하기 때문이다. 저녁에 퇴근 시간에 일하는 알바 총각은 엄청 미남이라 한번 이상 쳐다보리라 하고 결심했다. 근데 오늘은 깜박했네.
오늘 출근길에는 대학 4학년 때 대기업 면접 봤던 거랑 크리스 마틴을 생각했다.
웬만해선 안 떨어진다는 경쟁률 1.2 대 1 이었던 3차 최종 면접에서 난 떨어졌다. 그 회사에 붙었다면 난 지금 월급보다 훨씬 받으면서 자부심 갖고 일했을까? 우리 부모님은 친구 친척들한테 내 자랑 많이 했을까. 낯선 이를 만날 때 좀 자신감이 있었을까.. 붙었어도 단체 생활 못하는 종특 때문에 그만 뒀을 수도 있지만, 괜히 슬퍼졌다.
콜드플레이는 어느 순간부터 찾아 듣진 않고 있지만, 20대 초반을 함께 보낸 밴드라 애착이 간다. 수능 끝나고 집에 있으면서 콜드플레이의 1집을 참 많이도 들었다. 크리스 마틴은 내가 좋아하는 남자 체형의 최정점에 있는 사람 아닐까. 최근 나온 앨범을 들으며 이게 밴드 음악이 맞는거야? 라는 생각을 좀 했지만, 비욘세랑 부른 노래는 좋더라. 크리스 마틴의 상쾌한 느낌의 목소리는 1집이나 지금이나 변함 없다. 내가 싫어하는 기네스 펠트로랑 결혼한단 소식 듣고 참 슬펐는데....
이런 생각 하다보니 벌써 성수역이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핸드폰으로 퇴근길에 일기를 쓴다. 일기 쓰다보니 벌써 제물포역이다. 2월부터 급행이 제물포, 개봉 두개 역에 추가로 정차한다. 안그래도 오래 걸리고 사람 많은데... 더 느려지고 사람은 더 많아졌다.
이제 다음 정류장이 동인천이다. 휴. 오늘도 무사히 퇴근해서 다행이다.



나의 가치

일상 2012. 6. 10. 00:22

나는 전체적으로는 평균이하의 사람이다. 저번에는 블로그에 중위권에서도 상위권이라고 개소리를 늘어놨지만, 4년제 졸업 초임보다도 훨씬 못한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6년차 직장인이고, 대한민국 평균여성보다 키도 작고. 하여튼 그렇다.

나는 친한 친구에게는 다정한 친구고, 남자친구가 생기면 언제든지 그 남자친구를 걱정해주는 여자친구도 되어줄 수 있고, 남동생한테도 돈도 가끔 준다. 엄마한테도 용돈을 줘야지 하는 생각을 항상 하고는 있다. 쥐꼬리 같은 월급 때문에 그렇게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난 솔직히 어쩔 때 보면 진짜 괜찮은 사람인데. 사회에서의 나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난 졸업할 때 우리과에서 성적도 5등이었고, 대학생 때 안자려고 서서 공부하면서 시험보고 그랬는데. 아 근데 이정도 노력은 누구나 하는건가? 난 그런데 정말 열심히 살았다. 오늘 이력서 본 사장도 그런 말 했어. 열심히 살았다고. 근데 손에 쥔 게 하나도 없잖아.

난 솔직히 월급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전에도 말했지만, 아 일하기 싫어서 죽고 싶을 지경이라는 생각이 안든다면 괜찮다. 8월 계약만료가 돌아오고, 2010년 4개월간의 백수 경험을 볼 때, 난 기본적으로 계속 집에만 있으면 우울해지는 성격이고... 또 죽어라 워커홀릭처럼 일하다가 40대 되도록 결혼 못한 여자들 처럼 되고 싶지는 않아서인지 적당히 여가 즐기면서 일은 그냥 내인생의 부수입 같이 일하고 싶다. 별로 돈욕심도 없는 편이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오늘 면접 본 여의도에 있는 그 곳이 제시한 연봉은 정말 한숨나는 수준이었는데, 또 가만히 생각해보면 난 내가 졸업한 후에 모든 경력을 다 쓸모없이 만들고 싶으니까. (다신 그 경력을 살려서 취직하고 싶지 않다) 4년제 대학 졸업해서 처음 받는 돈이라고 생각하면 뭐 괜찮은 연봉인거 같기도 하고. 나이 서른인데. 근데 또 다시 이력서 쓰고 말도 안되는 소리만 늘어놔야 하는 면접을 또 봐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물가는 계속 올라가는데 그 연봉으로 나 혼자만의 생활을 유지하는 건 어림도 없다. 그런데 뭐 당분간은 내가 월세를 얻어서 혼자 살아야 하는 건 아니고. 그런 자리라도 붙들고 있어야 하는 건가 싶고. 아 젠장. 고민이 깊어지는 밤이다. 수요일까지 답변 주기로 했는데. 

나랑 사려깊게 이런 얘기를 해주는 연장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고민상담처럼 말이다. 그런데 또 난 가만보면 주변사람들에게 고민상담을 잘 하지도 못하는 성격이고, 또 내 주변 사람들은 해답을 주는 사람들도 아니고. 하긴, 뭐 이런 문제에 해답이 있을 리가 없잖아. 내일 교회가서 기도라도 해야겠다.


절망적인 느낌

일상 2011. 2. 5. 02:04

의외로 지역 수협 필기에 붙어서 난 최종면접을 보고 떨어졌다. 나보고 연평도 백령도 갈 수 있냐고 물어서 당연히 갈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떨어졌다. 사실 난 백령도나 연평도 못간다. 난 혼자서도 한정된 인간관계 내에서 잘 지내는 사람이지만, 그정도로 강한 사람은 아니다. 우리집 앞 인천항에서 쾌속선을 타도 4시간 걸리는 곳으로는 못 가겠다. 갑자기 생각났는데 저번에 태풍 불었을 때 인천항의 천 자가 날아가서 "인 항" 이 되어버렸던 게 생각나네. 엄청 큰 천 자가 날아갈 정도의 태풍이었으니, 곤파스는 짧고 강렬했다.
우리 동네에는 백령도가 고향이고 가끔 뭍으로 나오는 아주머니들이 있는데 우리 엄마가 그런 아주머니들이랑 좀 친하다. 지금은 쾌속선이 있어서 3시간 반이고, 예전에는 육지 한번 나오려면 10시간이었댄다. 10시간이면 이거 거의 미국 가는 시간인데, 이런거 보면 인천이 참 넓어. 인천이 공무원 하면 무조건 한번은 섬 한번 갔다온다던데, 그래서 인천시 공무원이 하기 힘들다는 거 같기도 하고. 전남도 공무원한번 하면 완도 이하 섬으로 발령나면 속된 말로 뭐 되는거라 전북 공무원 경쟁률이 더 높다고 한다.
난 솔직히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섬 들어가라고 하면 백번도 더 들어가겠는데 혼자서는 못 들어가겠다. 이런 경험으로 인해서 내가 섬에 들어간다면? 하는 생각도 한번 하게 되어보고. 재밌었다. 면접비 5만원 줬으니까 뭐 본전은 한거라 치자.
29살이 되도록 안정된 이러고 있으니 참 한심한 느낌이다. 나랑 친한 언니한테 나 안정된 삶을 좀 살고 싶다니까, 안정된 직장 관두고 나온거 아니냐는 대답이 나왔다. 그런데 저번 직장에도 여기는 내가 머물 곳이 아니라는 느낌에 언제 관두지만 고민했다. 보통은 그렇게 고민만 하면서 다니는데 난 진짜로 실행에 옮긴게 골 때리는 짓이긴 했지만, 내가 만약에 거기 계속 다녔으면 진짜 전철에 몸 던져서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크크크크.
요즘에는 나만 빼고 다들 잘풀리는 인생들인 거 같아서 배가 아프고 괴롭고 그렇다. 뭐 내가 그들이 잘되가는구나 하고 느끼는게 한정된 글이나 들리는 소식 말고는 없지만, 어쨌든 분명 나보다는 잘 되가고 있는게 분명하다.
면접을 보고 나오면서 연평도? 백령도? 허허허허허. 실없이 웃다가, 이렇게 늙어갈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에 다급해졌다. 갑자기.
면접을 보기 전 월요일까지 23살때 알았던 분이 사귈건지 안사귈건지 답을 달라고 했다. 대답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다가 그냥 난 아무 연락도 취하지 않았다. 물론 나쁜 짓이지만 생각할 시간을 더 달라고 하는건 그쪽 기대감만 높이는 거 같았다. 생각은 계속 하고 있었지만.
갑자기 오늘 뭐든 그 사람한테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귀자는 말이 아니더라도) 하지만 상대방은 이미 날 영원히 안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쨌든 내가 그쪽 자존심을 완전히 뭉개버린거니까 이해는 했지만 이게 마지막이라는 통지(?)도 없이 혼자서 이게 마지막이야 하는 것에 화가나서 난 전화를 바로 했다. 회의 중이라서 받을 수 없다는 문자가 다시 왔다. 난 금요일이니 거기까지 직접 가겠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더이상 나랑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는 문자가 다시 왔다. 난 원래는 그날 만나서 내 심정을 잘 말해볼 생각이었고, 사귀자고 할 생각은 없었지만 상대방이 이렇게 나오니 당장 사귀자고 해야겠다는 미친 생각까지 했었다.
하지만 난 그 사람 직장이 어딘지 정확히 몰랐다. 아마 정확히 알았으면 당장 가고도 남았을 것. (정말 다행이다)
그런데 단 5분 만에 난 완전한 평온을 되찾았다. 그렇다 난 이제 23살 짜리 찌질했던 곽미영이 아니었던거다. 다시 원래의 나로 되돌아왔고 면접도 연평도도 사귀자는 결심도 다 없었던 일이 되었던 거다. 영원히 못보는 거면 그래 못보는가보다 하면 되는 거였다.
또 몇 년 전 일이 오버랩 됐는데, 안될 인연은 어떻게 해도 안된다는 말로 자위를 하지만, 결국은 내가 타이밍을 놓친 거였다. 타이밍을 놓쳤다는 것도 아깝고 가슴이 아프지만 그 이후로 내가 괴로웠던 건 내가 남자에게 전혀 매력이 없는 것일까 하는 고민 때문이었다. 지금도 사실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그날 이후로 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그 사람이 날 좋아할 확률은 거의 0%에 수렴하지 않을까 하는 아주 자신감 제로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데 지금의 날 보면 그 생각도 무리가 아니긴 하다. 아마 예전 그 사람도 뭔가 최후까지 맘에 안드는 게 하나 있으니까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았을까?
하지만 솔직히 지금의 나 같으면 그렇게 겁내 추한 모습으로 매달리고 찌질하게 굴진 않았을 거다. 25살과 29살의 차이가 뭔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때 난 더 젊고 몸무게도 지금보다 훨씬 적게 나갔는데 왜 그랬을까. 자존감은 지금이 더 떨어지는데 만약에 다시 그런 상황이 온다면 흔히 하는 말로 쿨하게 난 너 없이도 잘살 수 있다고 하고 적어도 다시 매달리는 일은 없을거다. 문제는 다시는 그걸 만회할 기회가 안 올 것 같다는 거지만.


청년 백수의 심정.

일상 2010. 8. 20. 13:07

대학을 졸업하기 전 서부터 계속 일한 나는 솔직히 청년 백수가 어떤 심정인지 몰랐다. 뭐 6개월동안 일했던 곳은 계약직이라 빨리 정규직으로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힘든 건 있었지만, 그래도 업무를 하다보면 그런 거 다 잊혀지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집에서 하루종일 있으면서 모니터 쳐다보는 기분을 알 수가 없었다.
회사를 관두고 그런 기분을 느끼고 있는데 이런 기분도 어느정도는 고비가 있고 그 고비가 지나가면 아무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불행히도 고비가 왔다.
생각보다 세상에는 일자리가 없고, 있다 하더라도 날 필요로 하는 자리는 없다. 솔직히 회사 다닐 때 닥친 일 그때 그때 잘하고, 시키는 일도 마다 않고 스트레스 팍팍 받으면서도 내색 안하고 회사생활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모양이라니.
요즘 들어 내가 헛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그렇게 큰 일이 아니고 정말 원대한 꿈도 아닌데 이정도 밖에 안되나 하는 생각도 들고, 면접에 갔다와서 떨어지면 내가 그리 별로인가 하는 자괴감도 들고 그런다.
전 회사를 관둔 건 큰 후회는 없지만, 하도 면접서 떨어지다보니 그나마 날 면접에서 붙여준 고마운 회사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왜 내가 그렇게 일 안하게 생겼나? 혹은 못 미더운가? 이런 나쁜 회사들.
정말 찜통 같은 날씨에 어제도 면접을 보고 왔는데 사람 병신 만드는 느낌 드는 공채 면접 분위기도 아니고 뽑는 사람이랑 나랑 1:1로 하는 면접이고 그럭저럭 잘 대답을 했는데 왜 왜 연락이 안오는거니!
회사를 관두고 펼쳐질 시간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 생각은 했는데 이 전환점을 넘기가 좀 힘이 든다. 훨씬 불행해지든지 그래도 만족하면서 살든지 둘 중 하나일텐데. 내가 원하는 건 무지하게 행복해 지는 게 아니다.
그냥 그래 그래도 집에서 노느니 지금 회사 다니는 게 낫겠지. 하는 생각이 드는 직장을 갖는게 내 꿈이란 말이다. 월급에 대한 욕심도 없다. 그런데 이렇게 너무 작은 걸 바라는 모습이 오히려 무기력해 보이고 의지없어 보이고 그런걸까?
여하튼 지독하게 더운 날씨에 면접 본답시고 발에 물집 잡혀 가면서 치마 입고 돌아다녔는데도 아무런 수확이 없으니 힘이 빠진다. 아 정년 과외 선생이 내 길인가? 으아아아.
28살에 무슨 내세울만한 능력 혹은 기술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이렇게 손놓고 마냥 놀아도 될만큼 집이 넉넉한 것도 아니고, 진짜 20살 때의 꿈을 찾아서 지금부터라도 대학원 들어가서 내 앞날을 바꿀까 하는 결심을 했다가도 그만한 용기도 없다.
아 초라하다. 그리고 오늘 날씨도 덥기 그지 없구나. 백수라 눈치보여서 에어컨도 절대 안틀고 땀만 줄줄 흘리고 있다.


면접 탈락.

일상 2010. 7. 16. 00:54
저번에도 이야기 했지만 난 예전 회사 경력을 이용하여 다른 일을 할 계획은 없다. 회사를 관둘 때 다시 정상적인 직장인으로 편입은 영원히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는 거 정도는 각오했기 때문에 요즘 내가 이렇게 고용보험 가입자가 아닌 상태로 놀고 있는 것에 조바심도 두려움도 없다.
그래서 과외나 하나더 늘려볼까 하고 나름의 영업활동을 펼쳤는데 그것도 뭐 그닥 잘 되질 않고. (엊그제도 집 가까운데 사는 애 하나 하는건가 싶었는데 별안간 다 취소되고)  
일전에 내가 송도에 간 이유는 이력서 때문이었다.
취업에 목숨 건 사람처럼 하루 종일 구직 사이트 들여다보고 이력서 쓰는 게 하루 일상의 전부는 아니지만 가끔 집에서 가까운 괜찮은 자리가 있으면 하나씩 그냥 넣어보고는 있다. 그 중 하나가 송도에 있는 거기였는데 평생 계약직이긴 했지만 가깝고 무슨 일 하는지 대충 알겠는거라 이력서를 넣었다.
한달이 넘도록 아무 연락이 없어서 또 서류 탈락이구나 하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그냥 과외 하면서 당분간은 돈벌자 하고 한건데 저번주에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유령도시 송도에 다시 갔는데, 생각보다 경쟁자가 너무 많았다.
한 3명 면접 보는 줄 알았더니 무려 5명.
예전 대학 졸업 후 면접 보러 다니면서 떨어진 면접 같은 경우는 느낌이 딱 오더니 역시나 그 예감이 딱 맞았다. 내가 면접실에 들어가자마자 거기 면접관들이 나한테 관심없는게 대번에 느껴져서 이러려면 날 도대체 왜 뽑았니 싶었다.
경력직으로 다시 취직하는 사람들 이야기 들어보면 이렇게 아예 신입 뽑을 때 처럼 여러 명 면접도 안보고 나름 대접해주면서 하는 거 같던데 다시 이런 취급(?)을 받다보니 새롭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그랬다.
부모님은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는데, 난 보기좋게 떨어져버렸다.
역시 사람한테든 회사한테든 거부당하는 느낌은 좋지 않구나.
과외를 두 집 하고 있는데 한 집 애는 다행히 머리가 나쁘지 않은 애라 성적이 꽤 올랐다. 뭐 중간고사 성적이 50점 이었으니 거기서 더 떨어지기도 어려웠을 터. 그리고 다른 한 집 애는 수업을 하면서 얘는 수학에 아예 관심이 없구나. 싶었는데 아니나다를까 30점이나 떨어졌다. 은근히 신경이 쓰이고, 30점이나 떨어진 집 갈 때는 껄끄롭고 그렇다. 그리고 그 30점 떨어진 집에서 7월이 중순인데 아직까지도 과외비를 안주고 있다.; 달라고 말하기도 뭐하고.
그런데 그 30점 떨어진 애는 내가 일차방정식의 활용 부분에서 소금물의 농도, 속도 속력 부분을 너무 못해서 내가 똑같은 문제유형으로만 한 30문제 풀어준 것 같은데, 그래도 전혀 한문제도 못 풀고 과외 시간에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중간 중간 문제만 읽어봐도 아는 질문을 해도 엉뚱한 대답을 하고 있으니,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아...다음 중간고사 때도 점수 떨어지면 왠지 짤릴 거 같다.
돈도 없고 비도 오고 면접에서 떨어지고 해서 갑자기 좀 우울해졌다. 아직도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내 인생.

요즘 과외하면서 그냥 저냥 지내고 있지만, 진짜 괜찮은 자리가 나오면 그래도 이력서라도 넣어봐야지 하고 몇군데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한 군데 진짜 괜찮은 곳을 썼지만 난 떨어졌다. 그 이력서 때문에 송도에 한번 가봤는데 가보고 정말 놀랬다. 완전히 망한 스멜이다. 내가 보기엔 송도가 겁나 고급 아파트들 많이 들어와서 분양 되면 대성공일 거 같다. 국제 업무지구? 풋. 그나마도 아파트까지 다 지어서 복작대려면 20년은 족히 걸리게 생겼던데.
그리고 송도에 가면서 난 또 한번 느꼈다. 인천이 무지하게 크다는 것을. 우리집은 그나마 바로 가는 버스가 있는데도 1시간을 꼬빡 갔다. 참 멀었다. 서울도 크다고 느꼈지만 서울은 서울 안에 지하철이라도 잘되어 있지 인천은 이거 버스도 무지하게 돌고 인천 지하철 역도 몇 개 없고.

송도를 가는데 어렸을 때 교회에서 억지로 끌려갔던 송도유원지가 보였다. 1박2일 인가로 갔던 거 같은데 비오는 추운 날씨에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 그리고 6살이었던 동생은 텐트에서 하룻밤을 잤다. 잘 씻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심약한 체질의 나와 동생은 교회에서 물속에 들어가라고 해서 하는 수 없이 물속에 들어가기도 했다. 물은 또 어찌 그렇게 똥물이었는지. 결국 나와 동생은 그 수련회를 다녀오자마 앓아 누웠고, 그 똥물이 귀에 들어간 뒤로 내 오른쪽 귀에서는 누런 고름이 줄줄 나왔다. 그때 귀가 아파서 어찌나 고생했는지. 아무래도 내가 학교 다닐 때도 수련회나 수학여행 같은 거 싫어하게 된 계기도 교회에서 끌려간 그 수련회의 영향이 큰 거 같다.

저번에 미즈키님도 말했지만 이력서 쓰다보면 정말 황당한 거 적어내라는 회사들이 많은데 키와 몸무게 혈액형은 예사고 아버지 출신 학교 아버지 직업쓰라는 회사도 꽤 된다. 면접 가서도 아버지 뭐하시냐 물어보는 경우도 많았다.(근데 이건 모든 어른들의 공통질문인 거 같다) 그리고 대학 졸업 직 후 썼던 어떤 이력서에는 지인 중 영향력 있는 사람을 3명 이상적어서 내라는 곳도 있었다. (회사랑 직급 쓰는 란 까지 있었다.) 드럽고 치사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나마 내가 아는 사람 중 좀 잘나가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어서 적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런 회사에 그렇게 적어냈나 싶지만 뭐 나름 처절했기 때문에.

몇 군데 면접을 갔을 때 한 곳은 공고에는 시청역 근무라고 되어 있었는데 알고보니 시청역 근무가 아니었고, 한 군데는 그 때 당시 뽀록으로 나온 내 토익점수를 보고 미국 사람들이랑 메신저로 대화하면서 일을 하라는데 저 정말 영어 못해요. 라고 말을 했음에도 나보다 토익 점수 낮은 사람도 다 잘한다고 그래서 황당했다.(뭐 나보도 토익 낮은 애들도 기본으로 다 어학연수는 다녀왔으니까 그렇겠지만 난 솔직히 말하면 학교 수업 이외에 외국인이랑 대화해 본 경험이 지금까지도 전혀 없다)  그회사가 더 황당했던 건 미국 업무시간에 맞춰서 일하라고 했다는 거다. 미국 업무시간을 계산해보니 대략 새벽3시에도 일을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길래 됐습니다 하고 나왔다.

대학 다닐 때 혹시나 하고 써냈던 이력서 후로 아무 연락이 없어서 역시나 이번에도 떨어졌구나 했는데 겨울방학이 되서야 면접보러 오라고 해서 7호선 학동역까지 어떤 건설업체를 간 적이 있었다. 가기 전에 그 건설업체에 대해 좀 알아봤는데 좀 이상한 회사 같아서 망설이다가 면접을 갈까말까 고민하는데 엄마가 그 회사가 좋건 나쁘건 넌 꼭 취직을 해야만 한다고 무조건 가라고 내 등을 떠미는 바람에 빈정이 상해서 학동역에 내렸는데 맙소사 학동역까지도 1시간 40분 가량 걸리고, 학동역에서 내려서 마을버스까지 타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총 소요시간 2시간 10분) 여기는 만약에 와서 다니라고 해도 못다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면접에서 물어보는 이야기가 여기서 일하려면 남자직원들한테 커피 타야 한다. 왜 이렇게 전학을 많이 다녔냐? 아버지 성격이 이상하신가보다. 하나 같이 내 자존심을 긁는 소리만 했다. 집으로 와서 그 회사 진짜 미친 회사라고 욕을 하는데 우리 엄마는 그래도 가라고 해서 더 열이 크게 받았던 기억이 난다. 결국 난 엄마가 돈 벌어오라는 성화에 못이겨서 바로 아르바이트라도 하겠다고 여의도까지 아르바이트를 다녔다.

대학 때 유명한 회사 인사담당 직원들이 와서 말하는 면접 비법 이런 거를 한번 들을 일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개소리였다. 아직까지도 생각나는 건 면접 갔을 때 왜 면접관들이 자존심 상하는 질문을 하는지 아냐. 그건 지원자가 얼마나 마인드 컨트롤이 되는지 보려고 그러는 거다. 라고 강의 하더라. 그걸 들으면서 난 속으로 비웃었다. 그 유명 회사 인사담당 사람의 얼굴에 "오만함" 이 가득했다. 

쓰다 보니 난 정말 이 사회에 불신이 가득한 거 맞는 거 같다. 예전에 내가 정신상태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싶어 학교에서 운영하는 심리상담소에 가서 상담을 한 번 받았는데 어떤 테스트를 하더니 사회에 대한 불신감 수치가 교도소에서 수감 중인 사람들 만큼 높다고 나한테 엄청 겁을 줬었다. 난 아직까지도 나름 전문가였던 그 아저씨가 계속 내가 상담받게 만들려고 조금 과장해서 말한 거라고 의심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별 거 아닌 것도 큰 의미를 둬서 말을 하는 부분도 꽤 있으니까.
새벽이 되어 뻘소리가 길었다. 내일 수영을 가야 쓰겄는가 말아야 쓰겄는가 고민 중이다. 술도 안마셨는데 술취해서 쓴 거 같은 이 포스팅을 내일 아침에 본다면 무척 쪽팔리겠지만, 그래도 포스팅 하고 이제 난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