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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0.16 회사에서 부지런할 때. 4

 

 

나는 게으르다. 늘어지게 잠도 자고, 할 일도 다 미루고, 집에 가자마자 씻기는 커녕 12시까지 늘어져 있다가 간신히 샤워를 하다가 결국 늦게 취침하는 게 내 일과.  잠과 게으름을 휴식의 일등조건으로 생각하는 우리집 분위기가 나에게는 고마울 뿐이다. 어떤 집은 아침에 아빠가 일어나기 전에 무조건 일어나야 하는 집도 있다던데. 우리집은 잠에 관대하기 때문에 전혀 그럴 일이 없다. 우리 부모님도 잠이 무지 많으시니까.

이렇게 게으름에도 불구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 꾸준히 하루도 거르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바로 내가 사용하는 머그컵 설거지.
물론 누구나 사용 전에는 컵을 닦겠지만, 나는 아무리 바빠도, 반드시 퇴근 전에는 컵을 닦아 놓는다. 컵 하나 닦는데 얼마나 시간이 오래 걸리겠냐만, 그래도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이렇게 해왔다는 게 갑자기 신기했다.
출근해서 커피가 말라 붙어 있는 직원컵을 보면 저런 컵을 출근하자마자 봐야 한다면 기분이 나쁠 것이라 생각한다.
여담으로 지금 직장은 일회용 컵도 안쓰고 페이퍼 타올도 안써서 좋다. 딱 물 한잔 먹고 종이컵을 버리는 예전 회사 사람들을 보면서 저건 너무 심하다고 항상 생각을 했다. 내가 대단한 환경 운동가는 아니지만, 종이컵 이랑 페이퍼타올 그리고 쓸 데 없이 버려지는 A4 들이 왜이렇게 아까운지 모르겠다. (근데 난 듀얼모니터가 아니라서 웬만한 건 다 프린트... 내가 이면지 생산률이 제일 높은 듯)
근데 요즘 사무실은 다 컬러 레이저 프린터 쓰는건가. 솔직히 가끔 빼곤 컬러로 뽑을 일이 거의 없어서 나는 혼자 흑백 설정해서 흑백으로 쓴다. 혼자 흑백으로 쓰면 한가지 좋은 점이 있는데 여러 사람의 프린트가 섞였을 때 내 프린트만 흑백이라 찾기 쉽다는 거? 크큭.

사진에 보이는 내 컵은 예전 학교에서 일할 때 남는 예산으로 만원주고 샀다. 요즘 학교에서 일할 때 문구류 좀 많이 사서 가져올껄. 하고 후회 중이다. 여기는 포스트잇도 귀하고, Jetstream 이라는 최고 명품 볼펜을 쓰다가 여기서 Bic 볼펜을 쓰려니 답답도 하고. 뭐 학교 돈으로 다 사고 집으로 싸오는 건 나쁜 짓이지만, 그게 그냥 내 퇴직금이려니 하고 가져올껄. 흑. (퇴직금도 안줬던 더러운 대학교)

새로운 직장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나에게 실망했다가 다시 또 혼자 칭찬했다가 하고 있다. 예전 회사를 계속 다녔으면 곽대리 되고 월급도 꽤 됐겠지. 하는 생각과 나이 서른되서 새로운 일 배우느라 고생한다 하면서도, 그래도 그 회사에 계속 있을 순 없었지. 하는 결론에 봉착한다.
새 직장 구할 때 이력서를 올렸더니 동일 업종 동일 업무로 헤드헌터들에게 전화가 조금 왔었다. 유명한 회사들이라 솔깃했지만 그때 그냥 큰 맘먹고 뿌리치길 잘한 것 같다.

한 회사를 오래 오래 다닌 사람들도 존경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한번 회사를 때려쳐보는 것도 세상 사는데 도움 되는 게 꽤나 많은 것 같다. 역시 인생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