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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endies 를 보고

위로 2016. 1. 31. 22:47

시카리오를 본 후, 단번에 드니 발뇌브 감독의 팬이 되기로 결심하여 지난 주말 그을린 사랑을 봤다.
한국 제목을 참으로 잘 지었다. 시적이고, 영화의 배경인 중동과도 딱 맞는다. 원제보다 더 좋은 것 같다.
엄마의 유언을 위하여 이란성 남녀쌍둥이인 잔느와 시몬이 과거 지독한 내전을 겪었던 중동국가 다래쉬를 방문하여 알고 싶지 않았던 어머니의 진실을 알게 된다는 내용이다.
다래쉬는 지도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국가지만, 영화 속 상황을 비추어 볼 때 레바논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이 영화를 본격 정신 학대 영화라고 표현해 놓은 걸 봤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나 역시도 정말 괴로웠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레바논 내전의 모습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다.
몇 년 전 보았던, 허트 로커, 이번의 그을린 사랑 그리고 매일같이 접하는 시리아 뉴스를 보며 대체 중동은 답이 없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예수님이 태어난 땅이고, 구약과 신약 성경의 주무대이고, 전세계에서 가장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가진 (또 난 개인적으로 전세계에서 제일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은 중동인들이라고 생각한다) 중동은 왜 평화가 찾아오지 않는 것일까.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전쟁이 나면 아직 예비군인 남자들은 전쟁에 나가 싸워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 현대 전쟁 중 전체 사상자 중 군인의 비율은 7% 정도라고 한다. 가장 큰 피해자는 힘없는 여자와 아이들을 비롯한 민간인들인 것이다.
이 영화를 보고 종교와 진실, 용서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종교인으로서 가끔 종교가 인류에게 정말 필요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나는 나에게 기도할 수 있는 대상이 있는 것이 좋다. 아마 죽을 때 까지 종교인으로서 살 것이다. 하지만 종교가 인류에 미치는 좋은 영향과 나쁜 영향 을 따져보면 나쁜 영향이 더 크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종교적 신념은 일반적인 신념과는 성격이 전혀 다르다. 이 신념 앞에서 사람들은 죽음도 불사하게 되고, 그 어떤 짓도 신의 이름을 앞세워 행할 수 있다.
종교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생긴 것이 아니라, 어쩌면 싸우기 위해 생긴 것이 아닐까. 더 잔혹하게 더 잔인하게 싸우기 위하여 사람들은 신을 앞세워 보복하고 끝도 없는 불행의 구렁텅이로 인류를 몰아넣고 있다. 어떤 종교든 악을 설파하지 않을텐데, 어쩌다 이 세상이 이 지경이 된 것인지.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인류의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비롯하여) 종교를 갖고 있으니... 정말 아이러니할 뿐이다.
가끔 블로그에도 썼지만,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은 그냥 죽을 때까지 모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의 나왈 마르완은 자기의 자식들이 기가 막히도록 더럽고 추악한 진실을 마주하고 받아들이길 원했다. 그 진실을 마주해야만 용서도 가능하니까 아마 그런 선택을 했으리라.
악의 고리를 끊는 것은 결국 용서다. 보복은 더 큰 보복과 더 큰 불행을 가져올 뿐이다. 어떤 용기 있고 대단한 사람의 용서만이, 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이다. 종교가 아니라.
가련한 나왈 마르완의 인생을 통해 감독이 전하고자 했던 것도 결국 서로 용서하고 함께 잘 살아보자. 그리고 제발 싸우지 말자. 일 것이다.
시카리오도 그렇고 이번 그을린 사랑도 그렇고, 드니 발뇌브 감독은 복잡하고 민감한 세계적 핫이슈인 주제를 정말 잘 다루고, 실제 일어난 참혹한 사건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바가 확실하다. 주제의식, 스토리, 배우의 연기 뿐 아니라 화면의 구도나 톤, 사운드 등에도 엄청나게 세심하게 공들인 티가 난다.
영화 때문에 오랜만에 Radiohead 의 You and Whose army? 라는 곡을 들었다. 난 이 곡 들어 있는 Amnesiac 앨범 정말 싫어하는데, 시대를 앞서간 음반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첫 장면에서 폭격을 받은 소년 고아원의 아이들이 이슬람 민병대에 끌려가 강제로 머리를 미는 장면과 이 음악이 정말 잘 어울리고 강렬했다. 노래의 "너는 너무 쉽게 잊는다." 는 가사가 영화를 보면 정말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영화 중반쯤 이 영화의 반전을 눈치챘다. 하지만 설사 반전을 다 듣고 봤다 하더라도, 이 영화는 나에게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반전보다 더 충격적인 건, 레바논에서 그런 참혹한 전쟁이 일어났었다는 것, 그리고 현재 시리아에서도 똑같은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P.S 그을린 사랑으로 검색하여 블로그에 들어오는 사람이 너무 많아 제목을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