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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0.10 한글날 긴 일기

한글날 긴 일기

일상 2013. 10. 10. 00:25

1. 대한민국 0.1% 

  한글날  어제 오랜만에 집에 동생이 왔는데, 벌써 동생이 집에 오면 불편하다. 그래서 한동안 일부러 대화를 좀 피하고 그랬다. 하지만 어제는 엄마 나 동생 셋이서 밤 늦게까지 이야기를 했는데, 대화의 주제는 동생의 연애. 이런 거 보면 우리집도 좀 특이한 게, 보통 남매끼리는 연애 이야기 안한다든데 우리집은 꽤 자주 한다. 그리고 또... 동생은 막내라 그런걸까? 엄마한테도 종종 자기 여자친구 이야기 많이 하고. 

  동생 연애사라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흠 어느 정도 이제 이성을 찾은 단계인 거 같다. 우리 엄마는 자나 깨나 걱정이 많았는데, 이제 좀 마음을 놓으신 거 같다.

  동생이 집에만 왔다하면 우리 엄마는 니네 회사 사람 중 에서 괜찮은 사람이랑 빨리 누나 중매 시키라고 그렇게 성화를 부린다. 동생은 친누나라 불편해서 소개팅 못시킨다고 그러고, 나는 엄마한테 그만하라고 그러고. 이런 패턴인데, 정말 우리 엄마가 보는 사람마다 미영이 남자 소개시켜주라고 하는 거 지겨워 죽겠다. 어쩌다 우리 엄마는 나같이 못난 딸을 만나선, 저렇게 고생을 하는가 싶고. 솔직히 말해서 동생 회사서 괜찮은 남자가 왜 나를 만나겠나 싶은데 우리 엄마는 아직도 현실 파악을 못하신 거 같다.크크크.


  보통 사람들은 지금 난 부족한 거 없다고 하면 믿질 않는다. 아마 자기들과는 다른 내 신세에 대해 폄훼하며 위안을 얻고 싶은 것도 있겠지. 믿든 안믿든 난 사실 지금 상태도 그리 나쁘지 않은데. 

  어제도 또 불편한 대화를 하며 날 그냥 내버려두라고 엄마에게 당부를 했는데, 내년에도 계속 저러시면 아무래도 독립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할 것 같다. 이래서 나이들면 결혼 안해도 떨어져 살아야 되는건가. 


  생각해보면 내가 연애를 시작하는데 가장 걸림돌이 되는 건 의외로 "종교" 였다. 어제도 우리 셋은 이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은 내가 교회다니는 거 잘 모르고 교회다닌다고 하면, 니가? 이러면서 놀란다. (근데 교회 안간지 한달이 넘었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보통 사람들의 머릿속에 "교회 다니는 사람"의 이미지가 어떤지 잘 모르니까. 난 그러니까 열심히 다니는 성도는 아닌 것이다. 아마 남이 보기에도 그럴거다. 일요일 아침에 9시 반쯤 눈이 떠지면 교회가는거고, 도저히 눈이 안떠지면 안가는거고. 


  하지만, 우리집안은 아마 대한민국 기독교 믿는 사람들을 다 모아놓고 순위를 매기면 대한민국 0.1% 정도 될거다. 왜냐면 우리 아빠의 할아버지 그러니까 나한테는 증조할아버지, 동학농민운동 때 어린이였던 우리 증조할아버지 때 부터 기독교를 믿었기 때문이다. 증조할아버지-할아버지-큰아버지들 (우리 아빠는 넷째 아들이다) 을 비롯, 우리 집안의 친가 외가 4촌 이내에서 목사님이 몇명인지 모를 정도고, 나는 후로꾸 신자지만, 이게 자라온 집안 분위기를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애초에 종교 때문에 이건 서로 극복이 안되겠다. 싶어서 시작도 안한 사람도 있고, 또 상대방이 이런 이야기 듣고 아예 연락을 끊어 버린 경우도 있고 그렇다. 

  증조할아버지 때 부터 기독교를 믿어 그런지 우리 친척들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개방적이고 합리적이고, 각자 집안에 신경 끄고 사는 우리 집안의 분위기가 난 정말 편하고 더없이 좋다. (외국 문물을 빨리 받아들여서 그런 것이라 추측 중) 명절도 전혀 하나도 괴롭지 않으니까 말이다. 우리 집은 모여서 여자들만 음식 만들고 이런 거 전혀, 아예 없으니까, 제사는 당연히 없고. 정말 대한민국에 이런 집이 있을까 싶다. 근데 너무 우리집 대한민국 기독교 순위 0.1%라 괴로운 점이 분명 있고, 이거 때문에 나랑 동생은 엄마한테 푸념을 좀 늘어놓았다. 


  동생도 이 문제로 고민이 많은 거 같았다. 나는 동생 얘기 듣기 전까지는 우리나라 가톨릭이 그렇게 개신교를 싫어하는 지 몰랐다. 아직 아일랜드 관련 책 읽고 있는데, 그 책보면 아일랜드 에서 가톨릭교도 신교도가 그렇게 치고 받고 싸우고 결국에는 북아일랜드로 분리까지 됐는데, 니네 커플도 똑같구나. 라고 말하며 흐흐 웃으며, 니 알아서 잘 하라고 했다. 


2. 부천역에서 아저씨 

  여자애들이 여러 명 모이면 꼭 하는 주제 중 하나가 바로 "내가 만난 변태" 다. 혹은 "내가 당했던 성희롱" 이야기? 보통 변태를 만났을 때 서로 쳐다보고 있진 않으니 아주 짧은 순간 변태를 보고 대부분은 도망가거나 고개를 돌리거나 할텐데, 그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 임에도 여자 애들은 모든 것을 전부 기억하고 있다. 옷차림, 행동, 어떤 순서로 변태적인 행동을 했는가. 어디였는지, 등등. 듣다보면 와 저런 인간도 있구나. 싶어서 아주 흥미진진한데, 나는 여중 여고를 나왔음에도 단 한번도 변태를 만난 적이 없다. 이런 면에서는 억세게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 

  성희롱의 경우에도 대학 때 인천행 막차 전철 안에서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뒤에서 몸 밀착했던 아저씨랑 아르바이트할 때 심하게 야한 사진 보여줬던 차장 이렇게 두번이다. 그 두번 다 내가 하지 말라고 의사 표시를 해서 그런지 계속 되지는 않았고. 

  그런데 오늘 부천역에서 변태까지는 아니고 약간 미친 아저씨를 만났다. 

  오늘 오랜만에 대학 친구를 부천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내가 조금 일찍 도착해서 개찰구 앞에서 핸드폰으로 프로야구 문자 중계 보면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누가 내 팔뚝을 툭툭 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고개를 들어봤더니 심하게 가깝게 내 얼굴에 지 얼굴을 들이밀고, "예쁘네.. 특히 몸매" 이 지랄을 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있는 게 아닌가. 난 오늘 약간 짧은 랩스커트를 입고 나갔는데 다리를 아주 노골적으로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남자친구 있어요?" 물어보길래 있다고 말하고 자리를 뜨려는데,(아 정말 난 왜 이상황에서 그 아저씨에게 대답을 한 걸까. 이때부터 무시를 했어야 했는데)  내 뒷통수에다 대고 "근데 아직 골인 한건 아니잖아" 이러는게 아닌가 크크크크크크크.

  아 진짜 쓰면서도 황당하고 너무 웃기네. 40살은 족히 넘은 거 같은 아저씨였다.

  부천역에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휴. 하긴 내 친구 중 하나는 만원 버스 안에서 변태 만난 적도 있댔으니까.

   정말 이 정도에도 너무 황당하고 기분이 나쁜데, 기상천외한 변태들을 직접 만난 내 친구들은 정말 기분이 어땠을까 싶었다. 휴 앞으로도 제발 죽을 때 까지 안만나고 싶다. 그런 변태 미친 남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