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벌써 4월인데 이제서 일본 여행의 마지막날에 대해서 쓴다.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
앞의 모든 일정이 애초에 계획대로 안되었기 때문에 마지막날은 일정대로 가보지 못한 곳 중에서 가고 싶은 곳에 가기로 했다.
이제까지 호텔에서 먹은 아침밥을 한번도 말한 적이 없는 것 같아서 올린다. 내가 묵었던 호텔 힐라리즈 라는 곳은 비지니스 호텔이라 그 안에 식당 같은 건 없고 그 건물 1층에 있는 Pronto 라는 카페에서 커피한잔과 토스트하고 샐러드를 줬다. 커피는 진한 거 좋아하는 사람은 좋아할 수 있는데 나는 너무 썼다. 거의 탕약 수준. 좋은 원두에 잘 내린 커피였지만, 역시 난 그냥 카페모카 같은 달달한 커피가 더 좋다. 아니면 너무 쓰지 않은 아메리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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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에 여행왔는데 오사카를 제대로 못 본 것 같아 오늘은 오사카 주유패스로 할인되거나 공짜인 곳만 쭉 둘러보자! 라고 결심하고 가이유칸이 있던 오사카코 역으로 다시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이 없는 이유로 오사카코역에 갔는데, 간 이유는 오로지 단 하나 대관람차를 타기 위해서였다. (오사카 주유패스로 공짜로 탈 수 있었음 몰라, 그냥 할인인데 그거 한번 타 보겠다고 갔던 데를 또 갔다. 아이고 돈 아까워)  갔는데 타는 사람은 딱 3팀 이었다. 첫번째는 우리, 두번째는 중국여행객, 3번째는 또 다른 한국 여행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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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차를 타고 오사카 주유패스를 이용해 공짜로 전망대를 볼 수 있다고 하여 WTC 타워 정망대에 가기로 했다. 오사카코역에서 뉴트램이라는 귀여운 전철을 타고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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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트램을 타고 코스모스퀘어역에 도착하여 WTC 타워에 도착.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 반쯤인데 전망대는 11시 부터라는거다. 아니 어떤 책자에도 이런 얘기는 없었어!! 라고 생각하며 이걸 기다려 말어. 하다가 그냥 다른데 가기로 했다. 거기까지 간 것이 좀 아까웠지만, 내가 그냥 다른 데 가자고 한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히메지성(姬路城)에 미련을 못 버렸기 때문이었다. 동생은 너무 멀다고 안 내켜 했는데 나는 어떤 게시판에서 히메지성 진짜 좋다는 말에 혹해서 가보고 싶어서 내심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동생이 별로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갈래면 가자고 해서 우리는 우메다역으로 가서 산요히메지행 급행을 타기로 했다. 근데 히메지성까지 가는 요금에 헉. 하고 놀랬다. 1290엔이었나?? 남은 돈도 별로 없는데.. 라고 생각하며 간사이쓰루패스로 공짜로 갈 수 있는데까진 가서 거기서 내려서 다시 산요히메지 직행을 타자고 하고 일단 우메다역에서 한 두정거장 갔다. (거기까지밖에 공짜가 아니었다) 이름모를 유명하지 않은 역에 내려서 어디서 표를 사는건가 하고 둘러보아도 표 사는 기계만 있고, 그 기계는 근거리 표 밖에 안 팔았다. 거기서 얼쩡거리다가 발권기에 남아있던 거스름돈을 줏었다. 한 800엔 됐나? 흐흐 누가 볼까봐 무서웠지만, 기분은 좋았다. 그리고 황급히 그 기계 앞을 떠나서 다시 한신 철도 역사무실 같은 데를 찾아서 들어갔다.
역사무실을 진짜 순진하게 생긴 35살 정도 보이는 젊은 아저씨 혼자 지키고 있었다. 되지도 않는 영어로 히메지성 가고 싶어요. 라고 말을 했는데 그 젊은 아저씨도 영어를 엄청 못했다. 피차 영어 못해서 어찌나 맘이 편하든지, 그 아저씨가 one day ticket 이라고 딱 한마디 하시길래 그냥 우리는 히메지성 가는 티켓만 주세요. 라고 말을 했더니 그 아저씨가 흰 칠판을 꺼내드니 원데이 티켓 가격은 2000엔 임을 강조하느라고 거기에 '2000'  이렇게 쓰셨다. 모자쓰고 당황하면서 쓰는 모습이 매우 귀여우셨다. 그 젊은 아저씨가 말한 원데이 티켓 가격이랑 히메지성가는 왕복 차비를 비교해보니 그 원데이 티켓이 580엔이 더 쌌다. (1290엔 왕복하면 2000엔이 넘으니) 그래서 오케이 오케이 해서 원데이 티켓을 샀다. 일단은 한신철도를 타고 가다가 산요라는 회사에서 만든 철길을 이용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역 이름도 산요 히메지역) 그 아저씨에 대한 인상이 너무 좋아서 앞으로는 한신타이거즈 응원하기로 맘먹고, 일본은 여행객한테 절대 바가지 안 쓰게 하는구나. 선진국은 선진국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여행하는 내내 여행객이라는 이유 하나로 뭘 속인다는가 강요하는 느낌은 한번도 받지 않았다.
 
그 급행을 타면서 이제까지 어딜 가든 여기 책에 써 있는 시간보다 짤게 걸렸다. 이 책에는 1시간 반이라 써 있지만 분명 이것보단 빨리 도착할거다. 라는 말을 하면서 탔지만, 이번만은 그 책의 소요시간이 진짜였다. 정말로 1시간 반이 걸렸다. 그동안 내동생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사실 이동시간이 좀 아깝긴 했지.

바깥구경을 하다가 자다가를 반복하다가 엄청나게 큰 다리를 봤다. 그것은 바로 아카시 해협대교! 세계에서 제일큰 다리라는데 높이만도 290미터가 넘는다고 한다. 길기도 엄청 길어서 끝이 안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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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이동시간이 너무 길어서 점심을 먹고 있을 시간이 없어 히메지역에 도착하여 도너츠를 포장하여 길 가면서 도너츠로 점심을 때웠다. 히메지성이 있는 도시는 히메지시 라는 시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굉장히 한가롭고 오사카보다 더 남쪽인지 어쩐지는 몰라도 겨울임에도 가로수 나무가 그대로 다 살아 있고, 따뜻하기도 엄청 따뜻했다. 한가롭고 왠지 서양 같은 분위기도 나는 도시였다. 가로수 있는 곳에 조각상도 많고 이쁘게 꾸며놓은 곳 이었다.
역에서 나와서 바로 정면에 히메지성이 보여서 찾는데는 전혀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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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메지성은 1333년경에 처음 지어졌으며, 16세기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천수각을 증축했다. 그리고1601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사위 이케다 테루마사[池田輝政]가 대개축을 시작하여 1609년에 완성했고 현존하고 있는 건물의 대부분은 이때 지어졌다고 한다. 성의 구조가 거의 온전하게 남아있는 성이고, (오사카 성처럼 박물관으로 개조하지도 않았음) 적의 침투를 막기 위해 미로같이 설계된 것도 인상 깊었다. 그리고 성이 흰색인 이유도 불에 강한 회반죽을 칠해서 그런 것이라 한다. 
우리나라 성처럼 평지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일단 성 안에 들어가면 길이 엄청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천수각까지 올라가는 것도 꽤 힘들다. 그 길의 중간중간에는 함정을 만들 수 있는 시설이 2000개도 넘었다고 하는데, 난 함정에 한번도 안빠졌다.;;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미로의 벽에 아주 조그만하게 문 같은게 뚫려 있었던 것도 거기 통해서 적한테 화살 쏠 수 있도록 하느라 그랬나보다.
보디가드들이 모여서 운동했던 운동장도 있고, 크기도 그렇고 모양도 그렇고 오사카성보다 20배는 좋았다. 1993년에 일본에서 최초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한다. 근데 그렇다고 해서 오오 정말 뛰어나고 멋있고 아름다운 성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물론 흰색 성이 멋있긴 하지만, 군데 군데 귀여운 (귀엽다는 건 나에게 있어 최고의 찬사;) 디테일 같은 것도 부족하고, 또 니조조 처럼 나무나 정원 같은게 이쁘지도 않고 회칠이라고는 하지만 왠지 시멘트칠 같기도 하고, 벽은 하얗고, 지붕은 까만게 계속 보니 좀 심심하기도 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일본 여행가서 내가 어딜 가기만 하면 비가 왔는데 히메지성도 마찬가지였다. 위에 맨 처음 사진 보면 하늘색이 심상치 않은데, 저 덴슈카쿠 가느라고 오르막길을 올라가는데 비가 조금씩 오더니 덴슈카쿠 들어가기 전에는 아주 가열차게 비가 오기 시작하는거다. 여름 소나기 정도는 아니지만 보슬비인데 많이 오는 정도? 바람도 엄청 불고. 역에서 히메지성을 향해 뛰어 갈때만 해도 오 날씨 엄청 좋아. 이러면서 뛰어갔는데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어두워지고 비가 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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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로 가기까지도 1시간 반이나 걸리고, 비도 오고 하여 우리는 덴슈카쿠만 갔는데 여기 덴슈카쿠는 7층짜리라 올라가는데 엄청 힘들다. 계단이 거의 이건 사다리 수준이라 무섭기까지 하다. 올라가서는 추워서 죽는 줄 알았다. 도대체 옛날 여기서 살 던 사람들은 겨울에 어떻게 버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온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벽난로도 없던데.;;
덴슈카쿠 맨 윗층은 히메지성과 관련된 사료들로 꾸며져 있는데 그 중 한문으로 쓴 편지도 있었다. 근데 옆에 중국 여행객이 중얼 중얼 거리면서 그 편지를 읽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해보니 중국사람은 일본에 와도 글때문에 불편하진 않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한국 사람 중에서도 한자를 잘하면 다 해석이 되겠지만, 내가 보기에 일본은 히라가나보다 한자가 훨씬 더 흔한 나라였다. 우리나라도 단어 역시 한자가 많지만 그래도 우린 그 단어들을 한글로 쓸 수 있는데 일본은 그걸 다 한자 그대로 쓰니 중국 사람들이 일본을 무시하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해보였다. 어쩐지 아직도 중국의 속국 같잖아. (뭐 중국은 세상 모든 나라를 무시한다고 하지만서도) 한자 그대로 다 빌려다 쓰고. 이런 거 생각하면 단어까지 다 한글화 시킨 북한은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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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서 내려와 다시 역으로 가는데 가까운 곳에 있던 중학교가 마침 끝나는 시간이었다. 일본은 자전거를 많이 타고 다니는데 그 중학교 애들도 여자애 남자애 할 것 없이 자전거 타고 하교하는 애들이 많았다. 역시 어린 애들은 어느 나라나 귀여워서 넋놓고 구경을 하는데 어떤 남자애 보니까 뿔테 안경에 반듯한 자세에 펌퍼짐한 교복까지 (러브레터에 나오는 교복과 흡사했음) 완전 전교 1등 이었다. 나랑 동생이랑 오~~ 전교1등 전교1등 하고 말했는데 걔는 눈길 한번 안주고 묵묵히 자전가 타고 지나갔다. 학교 앞이라 그런지 우리나라 입시 학원 같은 학원도 있었는데 도쿄대학 몇명 교토대학 몇명 이런거 써 있는 거 보니까 입시 역시 우리나랑 비슷한 듯 했다.
다시 1시간 반이나 전철을 탈 생각에 한 숨쉬며 전철을 탔는데 내동생은 맞은 편 여자가 완전 이상형이라고 떠들었다. 외국이라서 우리나라 말로 이런 저런 얘기해도 그 나라 사람들은 신경도 안쓰고 편했다.  피곤해서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 오사카에 도착하니 벌써 밤이었다.

사실 동생은 오사카 시내를 구석구석 둘러보고 싶었는데 나때문에 이미 밤이 되고, 오사카 시내 구경하기엔 너무 늦어버려서 좀 서운했나보다. 그리고 일본은 뭐 구경하고 싶어도 10시 이전에 문을 다 닫아버리니까 밤 늦게까지 구경도 못하고 기념품 사기에도 빠듯한 시간이었다. 돈이 없어서 사고 싶은 옷도 많았는데 하나도 못사고, 오사카 주유패스는 하나도 활용 못하고. 아쉬운 일본의 마지막 밤이 저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