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친손'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1.07.13 예전 생각 6

예전 생각

일상 2011. 7. 13. 12:50

졸업 후 제대로 취직 못한 내가 아르바이트를 할 때 서랍에 손을 다친 적이 있었다. 서랍 위에 엄지가 올려져 있는 줄도 모르고 완전 세게 서랍을 닫는 바람에 엄지손가락이 멍들고 피까지 났다. 그때 아르바이트라는 직분에 맞게 복사도 많이 하고 팩스도 많이 받고 하느라 손에는 종이에 베인 상처가 많았다. 거기에 이 피나고 멍든 상처까지 곁들여졌던 것이다.

당시 내가 좋아하던 남자는 죽어도 자기가 먼저 만나자고는 안하는 남자였다. " 나 지금 바깥에 나왔는데 니 퇴근 시간이랑 맞을 것 같다." 까지만 말하고 그 뒤에 정작 내가 듣고 싶은 "만날래?" 이 말은 죽어도 안하는.
그럼 난 참지 못하고. 엇 그럼 내가 거기로 갈께. 라고 말하고 신이 나서 나가곤 했다. 난 시간을 같이 보내기는 좋은 여자였지만 사귀기는 좋은 여자가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앉아 있으면 끊임없이 떠들어줬으니까 말이다. 결정적으로 너무 없어보였다. 저게 뭐냐. 내가 간다니. (그리고선 또 퇴근 방향과 정 반대 방향인 곳이라 하더라도 친히 그곳까지 가고야 말았음)

여하튼, 그날 그렇게 퇴근 직전에 손을 다친날 지금 바깥에 있다는 문자를 받고, 바로 종각역으로 갔다. 밥을 먹는데 손을 보더니, 완전 걱정스러운 얼굴로 손 왜 그러냐고 물어보는거다. 서랍에 다쳤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고. 밥 먹고 차마시고 집에 오는 전철에서 혼자 가슴이 설레고 기분이 좋았다. 표정이 정말로 날 걱정하는 표정이었으니까. 

6월달에 학교 일반수학 시험 끝나고 애들이 낸 시험지를 분반별로 무식하게 큰 스템플러로 찍다가 손을 크게 다쳤다. 그 때 서랍에 다친 거 보다 훨씬 크게 다쳤는데도, 아무도 손 왜그러냐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어봐주지 않았다. 
빨리 새로운 남자를 좋아해서 모든 기억을 다 지우고 싶어버리고 싶은데 결국 또 생각이 나버렸다. 이정도면 병같다. 저게 몇년전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