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미공원과 여러가지

일상 2016. 10. 10. 09:36

1. 평일에 출퇴근 거리가 길어지면서, 운동을 전혀 하지 않다보니 건강이 점점 나빠진다. 환절기라 ​비염 때문에 점점 더 괴로워서 토요일에 내과에 가 약을 받아왔다.

요즘 친구 만나서 웃고 떠들 기분이 아니고 또 공교롭게도 주말마다 몸이 좋지 않아, 요근래 주말에는 거의 요양하며 집에 있는다.

2. 점점 아빠와 외출을 꺼리게 된다. 아빠가 야외에서 사고 칠까봐 외출해서도 내내 눈치보고 노심초사해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아빠와 내가 점점 더 멀어져 가는 걸 느끼며 안타까운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엄마가 많이 아픈데도 전혀 변화 없는 아빠의 모습에 나는 더 절망하고 포기하게 되고 그렇다. 아빠와 최소한의 대화를 하고 최소한 짧은 시간을 함께 하는 게 유일한 해답인 거 같다. 저번 상담해주시던 선생님 조언대로 아빠께 솔직한 감정을 말하고 변화를 촉구하기엔 내가 감당해야 하는 것이 너무 많다. 솔직히 말하면 상담을 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아빠다. 하지만 그런 말을 아빠에게 하는 거 조차 힘겹고, 수고스러워 관두기로 했다. 아빠의 병은 일종의 발달 장애니까 상담을 받는다고 해서 바뀔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요즘 들어선 엄마가 아빠의 성격을 왜 평생 참고 사신 건지 원망스러운 기분도 든다. 이혼한 가정의 자녀들도 그 나름의 고충과 애로사항이 있겠지만, 엄마아빠가 서로 맞지 않는 걸 인정하고 헤어졌으면 요즘 이처럼 괴로운 기분은 아니었을 것 같다.  

3.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번 주 목요일에는 가족이 주는 행복과 불행 중 대체 뭐가 더 큰 걸까. 하는 생각에 유서라도 먼저 써놔야 되나 싶었다. 엄마가 또 아빠 때문에 또 힘든 일을 겪는다면 정말 이 세상을 더 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다.

4. 토요일에 아빠가 대전에 가셔서 모녀만 집에 남아 홀가분한 마음으로 월미공원에 갔다. 주말에 엄마 데리고 어디를 가고 싶어도 아빠만 집에 혼자두기 뭐해서 못갔는데 토요일에는 기회가 좋았다.

바람이 너무 세서 약간 추웠지만, 하늘만 쳐다보고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파란 하늘과 맑은 공기 때문에 엄마도 나도 기분전환 확실히 했다. 오랜만에 토끼들을 가까이서 봤는데,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귀여워 걔네들 노는 모습을 한참 쳐다보고 있었다. 엄마도 아빠랑 외출하는 것 보단 나랑 나가는 게 편하실 테니 시간 나면 함께 시간 보내드려야지.. 하고 다짐했다.

5. 여기 쓴대로만 보면 난 인생 포기한 것처럼 사는 것 같지만 의외로 회사 생활 착실히 잘 하고, 친구들이나 회사 사람들한테 우울한 모습도 안 보인다. 지금 다니는 회사의 최대 단점은 월급인데 이걸 무마할 정도로 큰 장점이 몇 개 있다. 몇 개를 나열하자면, 회식이 거의 없는 점, 야근 없는 점, 전화 응대 적은 점,직원들이 사생활 관련 질문 안 하는 점. 정도? 특히 마지막 장점이 너무 좋다. 전 회사는 가족 같은 분위기라는 미명 하에 얼마나 많은 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을 나에게 했는가.. 정말 끔찍했다. 엄마가 치료 받으시는 동안은 군말없이 지금 회사에 몸 담으며 일 열심히 하기로 했다. 엄마가 입원하실 때마다 눈치 안보고 휴가 낼 수 있는 것도 큰 장점 중 하나이니.

6. 저번 주에 노트북이 완전히 고장나서 AS 센터에 보냈는데, 수리비가 14만원이 나왔다. 하드디스크가 완전히 못쓰게 됐다고 하여 하는 수 없이 SSD로 교체했는데, 과연 얼마나 좋아졌을지. 돈을 들였으니 앞으로 한 10년은 더 쓰려고 한다.




저번에 간단히 쓴다고 해놓고 구구절절 너무 길게 썼다. 영화에 대해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은 사람은 지금 내가 쓰는 글도 읽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으니 참고하셨으면.

1. 싱글맨

구찌 디자이너였던 톰포드가 감독한 영화. 잘생기고 멋진 남자들의 향연.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나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는 런닝타임 내내 눈호강 제대로 할 수 있다. 한동안 핸드폰에 넣고, 좋아하는 장면을 몇 번씩 리플레이했다.

가끔 보면 영국인을 동경하는 미국인들이 많은 것 같은데 톰포드도 그런 사람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나는 추호의 의심도 없이 톰포드가 영국 사람인 줄 알았는데, 미국사람이었다. 이 영화 주인공이 영국에서 온 미국대학 교수인데, 뭔가... 영국에 대한 자부심 같은 게 워낙 많이 나와서 톰포드가 영국 사람인 것으로 착각할만도 하다.

영화 내용은 간단하다. 죽고 싶었던 남자가 간신히 삶의 희망을 찾았는데 죽어버린다는 이야기다. 다른 건 다 재쳐두고 멋을 잔뜩 부린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 꽤 뜻 깊었던 영화다.

2. 센스 앤 센서빌리티.

한 10년 전부터 이 영화를 보려고 했는데 드디어 봤다. 페라스 역할에 맹한 젊은 시절 휴그랜트가 그렇게 적역일 수 없었다. 제인 오스틴은 여자가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남자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 같다. 어리숙하지만, 다정하고, 나만 바라봐주고, 능력도 있고, 속깊고, 진중하고, 가볍게 자주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진심이 느껴지는. 등등 더 말하고 싶지만 참는다. 제인 오스틴 시대나 지금이나 그런 남자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제인 오스틴이 괜히 평생 혼자 산 게 아니다.

지금은 거물이 된 이안 감독의 헐리우드 진출작인데, 영화만 봐서는 동양 사람이 감독인 거 전혀 느낄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이안감독이 아시안으로서 자존심을 버렸다고 (특히 브로크백 마운틴 감독한 뒤로) 싫어하지만, 이 정도로 국제적 감각을 가진 동양 감독이 다시 나올 수 있을까? 미국 배경이든 유럽 배경이든 중국 배경이든 자유자재.

그나저나 브로크백 마운틴은 보고 싶긴 한데 언제나 집에 엄마아빠가 계시니 볼 수가 없다. 휴. 나이 32살인데 아직도 이런 거에 엄마 아빠 눈치를 보다니...

3. 노트북

이 영화 매니아층이 꽤 있는 거 같던데. 난 정말 재미 없었다. 여자주인공이 진짜 나쁜년이다. 남자 주인공도 좀 싸이코 같다. 나 버리고 떠난 여자 그리워 하면서 왜 전쟁 미망인은 매일 밤 불러내서 같이 자는 것이며, 여자 주인공도 진심으로 자기 좋다는 백만장자에게 사랑한다고 해놓고 종종 첫사랑 남자 만나서 바람이나 피고. 대체 사람들은 이 영화가 왜 좋아하는거야? 이해불가.

두 남녀가 너무 민폐다. 아무리 어린시절 풋사랑으로 어쩔 수 없이 헤이져 서로 그리워 했대지만.

4. 부기나이트

이 영화에 대해서는 꽤 긴 포스팅을 남기고 싶었지만, 결국 이렇게 짧게쓰게 되어 안타깝다. 이 영화는 내가 중학생 때 개봉했다. 그 때 당시 영화 잡지고, 신문이고 난리가 났었다. 천재 감독이 나타났다고.

이 영화를 만들 당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은 29살.

난 만으로 쳐도 벌써 30살 인데도 이렇게 살고 있는데 29살밖에 안된 영화 감독이 이정도 작품을 내놓았으니 당시 세계가 난리가 날만하다.

영화를 보다보면 1970년 대에 대한 감독의 애정이 듬뿍 느껴지고, 포르노 업계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미국 사회를 정말 생생하게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에서 제일 놀랐던 장면은 등장 인물 이름이 빨간색 네온 사인 느낌의 자막으로 나오며 영화 속 포르노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를 영화 안에 그대로 사용한 장면인데, 그 장면은 지금 봐도 정말 혁신적인 연출 방법이다.

또 돈 치들 (극에서 포르노 업계에서 번 돈으로 오디오 가게를 열고 싶어하는 "벅" 역할) 이 임신한 부인을 위해 빵을 고르는 장면인데, 그 때 돈 치들을 진열된 빵 시점에서 얼굴을 카메라로 잡는데 그것만으로도 그 가게에서 심상치 않은 큰 사건이 일어날 것을 관객은 느낄 수 있다. 이런게 영화적인 기술인가 싶었다.

덕 디글러가 신예 포르노 배우에게 밀려나며 오랜 기간 함께 했던 잭을 떠나 거리에서 자신의 성기를 보여주거나 몸을 팔며 갖은 고생을 하다가 다시 잭을 찾아갔을 때 잭이 덕을 용서하고 받아줘서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참고로 난 그냥 모자이크 버전으로 마지막 장면을 봤는데 (모자이크 없이 보고 싶은 마음도 없음) 그 장면이 선정적이다는 소문으로 유명해졌지만, 어떻게든 그 시대를 다시 살기로한 한물 간 포르노 배우 덕 디글러의 결의와 희망이 느껴지는 중요한 장면이었다. 파격적이긴 하지만, 그의 거대한 성기 덕분에 포르노계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으니, 그런 방법으로 마지막을 장식하는 건 알맞는 연출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는 이래서 좋다.

어쨌든 끝에 가서는 인간에 대해 희망을 버리지 않고, 힘들고 한 때는 누구나 나를 혐오하고 나조차도 나를 혐오했다 하더라도,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넌지시 희망을 던져주니 말이다.

진짜 잭이 덕을 다시 받아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5. 겨울왕국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라푼젤 보다 겨울왕국이 더 좋은 것인가 진지하게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라푼젤을 한번 더 봤다. 그리고 역시 디즈니 영화 중 최고는 라푼젤이구나 하고 단호하게 결론을 내렸다.

엘사라는 이제껏 디즈니에서 볼 수 없었던 걸출한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좋게 볼 수 있겠지만, 이야기의 연관성이 라푼젤 보다는 좀 떨어지는 느낌이다.

라푼젤에서는 라푼젤과 유진이 서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여러 가지 상황이 있었다. 그런데 안나랑 크리스토프는 갑자기 왜 뜬금없이 좋아하는 것인지 좀 의아했다.

하지만 못말리는 라푼젤빠인 나도 한동안은 겨울왕국이 너무 좋아서 사운드트랙을 하루에 2번 이상씩 듣고, let it go 동영상을 하루에 적어도 5번 이상 씩은 돌려보고, 극장에서 이 애니메이션을 2번이나 시청했을 정도로 좋아했다.

엘사가 방에 갇혀 있을 때, 엘사가 자기 정체가 밝혀져서 도망갈 때, 울라프가 친구를 위해서는 녹아도 괜찮다고 했을 때도 눈물이 났다.

이정도면 라푼젤 만큼은 아니지만, 겨울왕국도 아마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10위 안에는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겨울왕국에 라푼젤 제작진도 참여했다는데, 대체 왜 남자 주인공들의 얼굴이 그렇게 현저히 못생겨 질 수 있지 궁금하다. 왕자님도 크리스토프도 너무 못생겨서 디즈니에 항의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유진은 진짜 완전 최고 멋있는데.... (심지어 성격도 남자답고) 근데 크리스토프는 아니야. 안 멋있어. 진심 슬펐다. 이 점이. 그리고 이 점이 라푼젤이 최고라는 내 결심을 더 굳히게 만들기도 했지....


노트북

일상 2010. 3. 7. 15:46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컴퓨터는 동생이 고등학교 2학년 때 산 컴퓨터 이다.
그때 당시 꽤 가격을 주고 사서 지금도 멀쩡하다. 한번 연기나면서 터져서 메인보드를 갈았는데(100% 우리집 과실로) 품질보증기간 내라 공짜로 갈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동생이 이제 복학생인데 아직도 이 컴퓨터를 쓰고 있는 건 좀 심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뭐 컴퓨터 본체는 그렇다 치더라도, 모니터가 일단 CRT 모니터기 때문에.
대학 때 전주 내려가서 여름 방학 때 컴퓨터를 하면 이 CRT 모니터에서 나오는 열 때문에 땀이 엄청 났다.
하긴 나 대학 때 자취할 때 쓰던 컴퓨터는 윈도우즈 2000 에 하드 용량이 15기가에 부팅도 어찌나 느린지 컴퓨터 켜놓고 세수하고 나올 때까지 부팅 중이었는데도 잘만 썼다. (그때 느꼈지만 윈도우즈 2000은 최고의 OS 다. 그 후진 컴퓨터에서도 무리없이 돌아가고 한번도 고장 안났으니까)
우리집안의 모토가 한번 사면 뽕을 뽑자. 이긴 하지만 이 컴팩 컴퓨터도 뭐 뽕 참 잘 뽑았다.
아 그러고보니 지금 쓰고 있는 이 키보드도 나 중3때 산거네. 요즘 키보드에 비해 엄청 무거운데, 키감이라고 하나? 그게 참 맘에드는 키보드인데, 안눌려지는 키도 하나도 없고, 쓰잘데 없는 이상한 버튼도 없는 아주 기본에 충실한 키보드인데 이 키보드도 쓸 날이 머잖았다.
저번에는 우리 엄마가 시집올 때 사온 장롱이 최후를 맞이했는데 문이 뜯어졌다. 말 그대로 옷을 꺼내느라고 열었는데 문이 툭 하고 뜯어졌는데 미련없이 버렸다. 문 안 뜯어진 엄마 혼수였던 장롱은 아직도 엄마 방에 잘 있다.
물건을 오래 쓰면 왠지 그 물건에 내 영혼이 한 10g 정도는 옮겨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좀 못버리고 그렇다. 내 주변에 유난히 오래된 물건이 많은데 심지어 중학교 2학년 때 대전 살 때 지하상가에서 샀던 남방을 아직도 입고 다니니. 어떻게 보면 내가 좀 물건을 곱게 쓰는 거 같기도 하고.
말이 길었지만, 동생이 도저히 못쓰겠다는 이유로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노트북을 구입했다.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던 컴퓨터가 동생 노트북을 보는 순간 무지하게 초라해보여서, 맨날 아 노트북 사고 싶다.를 연발하다가 결국 샀다. (동생 노트북을 산지 정확히 4일만에 못참고 구입)
내가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의 유일한 복지라고 한다면 아침 점심 저녁 밥 공짜 인데,(그런데 이 삼시세끼 다 공짜인 건 복지라고 볼 수도 없는게 밥줄테니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렴. 이런 의미로 밖에 안 받아들여짐)  재작년 부터인가 지정한 사이트에서 물건 사면 6개월에 15만원씩 돌려주는 게 생겼다. 보통은 다 책 사는데 썼는데 이제 3월 말이면 관두고 한 13만원 남은 돈은 좀 써야겠고 싶어서 그거 합쳐서 샀는데 일단 내가 낸 비용은 56만원.
회사에 갚아야 될 돈도 35만원 남았는데 여기에 56만원까지 썼으니 3월 월급은 받아도 뭐...
엄마가 회사 물건 사다 달라는 걸 2년 넘게 그냥 돈 안받고 사다 드리다 보니 회사에 갚아야 될 돈만도 70만원 이었다. 저번달에 35만원 갚고 이번에 35만원 갚으면 퇴직금도 우리 회사는 1년에 한번씩 정산해서 주기 때문에 그것도 받을 돈 없는데 이거 잘하면 마이너스로 탈탈 털리면서 회사 나오게 생겼다.
으흐흐.
그렇다 하더라도 내 노트북 빨리 왔으면 좋겠다. 도시바 15.6인치로 샀는데 마음에 든다! (회사 지정 사이트가 후져서 모델이 별로 없었다)
이 덩치 큰 컴퓨터도 이젠 안녕!